루쉰을 읽는다, 이 말에는 단순한 독서를 넘어서는 어떤 실존적 울림이 담겨 있다. 그래서 루쉰을 읽는다는 말은 루쉰에 직면한다는 말의 동의어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루쉰에 직면한다는 말은 대체 어떤 입장과 태도를 일컫는 것일까?
  2007년 어느 날, 불혹을 넘고 지천명을 넘은 십여 명의 연구자들이 이런 물음을 품고 모였다. 더러 루쉰을 팔기도 하고 더러 루쉰을 빙자하기도 하며 루쉰이라는 이름을 끝내 놓지 못하고 있던 이들이었다. 이 자리에서 누군가가 이런 말을 던졌다. 『루쉰전집』조차 우리말로 번역해 내지 못한다면 많이 부끄러울 것 같다고. 그 고백은 낮고 어두웠지만 깊고 뜨거운 공감을 얻었다. 그렇게 이 지난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혹자는 말한다. 왜 아직도 루쉰이냐고. 이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아직도 루쉰이라고. 그렇다면 왜 루쉰일까? 왜 루쉰이어야 할까?
─「『루쉰전집』을 발간하며」중

『루쉰전집』을 번역한 선생님들께 루쉰은 어떤 존재일까요? 저는 발간사를 읽으며 선생님들의 마음속에 있는 루쉰은 어떤 모습일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여쭤 봤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인 라디오스타 버전으로 말이죠. "선생님께 루쉰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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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5월 28일, 「아Q정전」러시아어판 출간을 기념하기 위해 베이징에서 촬영했다.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이 한번 생기면 다른 모습을 보기 힘들다고 합니다. 루쉰을 백 년 전 중국의 위인이라고 생각하면, 그의 위대함만 기억에 남을 뿐 인간적인 면은 잘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의 마음속 루쉰은 어떤 사람인가요? 아직 그려진 상이 없다면 어떤 모습의 루쉰을 가장 먼저 만나고 싶은가요? 영상을 보며 루쉰의 다양한 모습과 만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또, 여러분의 마음속에 루쉰의 새로운 모습이 계속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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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7 09:53 2011/01/07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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