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은 니즈, 원츠, 디멘드로 구성된 세계다. 출판은 사람들의 니즈(Needs, 욕망)에 기초해, 원츠(Wants, 제품)를 만들고, 최종적으로 이를 디멘드(Demand, 시장수요)화 하는 과정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 경제학적 표현을 철학적으로 표현하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람들의 욕망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을 보이는 것으로 만들려면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니즈를 파악한 후 제품을 만들어 낼 때 사람들의 욕망은 비로소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온전한 드러남이 아닌 반쪽의 드러남이다. 에디터나 마케터의 눈에는 보일지 몰라도 독자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독자들의 눈에 띄게 하기 위해 출판사는 프로모션을 한다. 그러나 프로모션을 통해 독자들의 눈에 띈다 하더라도 온전한 드러남과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독자가 구매하지 않는 한, 그것은 독자의 눈에 띈다 하더라도 독자의 욕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따라서 없는 것이나(즉 보이지 않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최종적 구매를 통해 책이 독자의 손에 들려졌을 때, 책은 비로소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 보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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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 보이는 많은 양의 교정지들은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한 과정 중 하나일 뿐이다.

지금 우리 출판계에는 세 가지 유형의 출판사가 있다. 첫째 유형은 ‘따로따로형’이다. 기획, 편집, 판매의 역할이 확연하게 나뉘어 있는 유형이다. 둘째 유형은 ‘부분통합형’이다. 에디터는 니즈에 주목해서 제품을 개발하고, 마케터는 니즈 관점에서 제품을 디멘드와 연결시키려 노력한다. 하지만 에디터는 제품을 개발하고 만드는 데만도 시간이 부족하고, 마케터는 원츠에 대해 충분히 모른다는 점, 그리고 실적이 좋지 않을 경우 서로를 탓하기 바쁘다는 점에서 첫째 유형과 둘째 유형은 큰 차이가 없다. 셋째 유형은 ‘통합적 가치사슬형’이다. 니즈-원츠-디멘드를 하나로 인식하고, 가치사슬 관점에서 에디팅하고 마케팅하는 유형이다. 에디터는 디멘드까지 자기 업무 영역으로 인식하며, 마케터 또한 원츠를 충분히 장악한 상태에서 이를 디멘드로 연결하려 노력한다. 이 유형의 경우 출판, 에디팅, 마케팅의 세 용어는 동의어가 된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우리 출판계에 셋째 유형의 출판사는 그리 많지 않다. 에디터나 마케터의 눈에 쉽게 보이는 원츠(그것도 신간) 중심으로만 출판활동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신간을 만들지 않는다면 에디터나 마케터는 아노미 상태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신간은 물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구간들이 독자들의 시야에 포착되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커뮤니케이션이 뒤에서 강하게 받쳐 주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강력한 네트워크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출판계에서 강력한 자기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출판사는 매우 드물다. 네트워크에 기반한 커뮤니케이션을 생략한 결과, 우리는 책이 잘 나가도 왜 잘 나가는지, 잘 안 나가도 왜 잘 안 나가는지 확신을 갖고 판단할 수 없다. 이래서는 니즈, 원츠, 디멘드가 따로 놀 수밖에 없고,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그저 우연의 결과에 지나지 않게 된다.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을까.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일상화하는 건 효과도 금방 나타나지 않을뿐더러 비용 또한 적지 않게 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전자책으로의 이행을 앞두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에디터와 마케터의 눈에는 여전히 전자책만 보일 뿐, 독자와의 소셜네트워크는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지 않은가. 알다시피 웹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세계다. 전자책을 낸다는 것은 출판이 웹 속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이고, 따라서 네트워크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게다가 네트워크 기술의 비약적 발달로 커뮤니케이션 비용 또한 혁명적일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런데도 왜 출판사들은 네트워크 속에서 독자와 직접 커뮤니케이션하기를 주저하는 것일까. 아마 분업의 오래된 습관 때문일 것이다. 그 낡은 습관 탓에 볼 수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것,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경쟁우위를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 차별화를 통한 경쟁우위의 확보는 낡은 습관을 벗어던질 때, 그래서 ‘보이지 않던 것’을 볼 수 있게 될 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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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네트워크 툴을 활용하면, 물리적인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거의 실시간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보이고 누구나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매스모델형 사업방식이라면, ‘특정 네트워크의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은 소셜모델형 사업방식이다. 매스모델형이 인구통계학(성별, 연령별, 직업별, 지역별 데이터)에 의존해 사업을 전개한다면, 소셜모델형은 특정 네트워크에 속한 사람들의 특정 관심 주제에 포커스를 맞춰 사업을 전개한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웹의 세계는 출판에게 매스모델형(소품종 대량)이 아니라 소셜모델형(다품종 소량)일 것을 요구한다. 이런 변화된 조건을 보지 못한 채 분업시스템을 그대로 고집하는 것은 출판의 무능력만을 드러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제 분업에 기반한 출판시스템은 그 수명을 다했다. 지금의 출판환경은 분업시스템을 폐기처분하고 니즈-원츠-디멘드를 통합한 새로운 시스템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에디터와 마케터는 네 일과 내 일을 나누는 낡은 태도를 버리고, 함께 기획하고, 함께 만들고, 함께 파는 ‘공동(共動)의 리듬’을 익혀 나가야 한다.

우리 출판계의 에디터와 마케터의 일상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대개의 에디터는 열심히 책을 만들 뿐 판매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있다 하더라도 결과에 책임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없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제품(책) 만드는 일에 자신의 열정과 에너지를 다 쏟아부어 여력이 없는 탓도 크다. 에디터가 이렇게 좁은 세계에 갇히게 된 건 그가 원래부터 책 만드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 아니다. 기존의 분업시스템이 그를 그렇게 ‘책 만드는 기술자’로 만들었던 것이다. 출판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그는 ‘고독한’(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다. 커뮤니케이션을 나누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는 독자와 멀리 떨어져 있으며, 그런 점에서 고독할 수밖에 없다) 장인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상은 이 고독한 장인을 마구 흔들어댄다. 장인은 혼란스럽다. 기술자로서 자기 영역만 고수하자니 책이 안 팔리고, 자기 존재를 재창조하자니 막막하다. 어쩔 수 없이 에디터는 주위의 책들을 살피며 모방상품이나 틈새상품을 만들어 낸다. 불만족스럽긴 해도 그것이 자기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차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마케터도 별반 다르지 않다. 변화된 출판환경에 맞게 시장 전체를 다시 디자인하는 것은 낭만적인 얘기다. 당장 발등의 불을 끄기에도 바쁘다. 분업시스템에 오랫동안 길들여져 온 탓에 그의 관심은 오로지 원츠를 디멘드와 연결시키는 테크닉에만 쏠려 있다. 에디터가 생산기술자라면 마케터는 판매기술자다. 판매기술자는 제품을 들고 이 서점, 저 서점을 바쁘게 오가며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공급률, 이벤트 등 여러 가지 조건을 걸고 열심히 흥정(?)을 한다. 물론 자신이 팔려는 제품이 정말 좋은 제품인지 어떤지는 스스로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런 환경에서 니즈-원츠-디멘드를 관통하는 차별화된 마케팅은 설 자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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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환경의 빠른 변화로 이제 에디터와 마케터는 니즈-원츠-디멘드 관점에 입각해 제품을 만들고, 판매하려 한다. 하지만 아직도 이 세 요소가 따로 노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니즈-원츠-디멘드로 나아가는 과정은 내재되어 있는 잠재성이 밖으로 드러나는 현행화(現行化)의 과정이다. 책은 두 번의 현행화 과정을 거친다. 먼저 니즈라는 잠재성은 에디팅의 과정을 거쳐 텍스트(책)로 현행화된다. 그러나 이 현행화는 아직 완결된 것이 아니다. 구매되어 독자의 손에 들려지기 전까지는 아직 잠재적인 것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즉 원츠에서 디멘드로 다시 한번 현행화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1차 현행화 과정이 텍스트화(에디팅) 과정이라면, 2차 현행화 과정은 콘텍스트화(마케팅) 과정이다. 콘텍스트(context)의 ‘콘’(con)은 ‘with'의 뜻을 갖는 접두사로, 콘텍스트란 “텍스트를 가지고” 만들어 내는 맥락이나 상황, 사건 등의 뜻을 갖는다. 출판은 관점에 따라 수백 수천의 정의가 가능하겠지만, 나는 “독자의 니즈에 입각해 책을 만들고, 이 책이 독자의 손에 들려질 수 있도록 맥락, 상황, 혹은 사건을 만들어 내는 사업”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이 정의에 따르면 결국 콘텍스트를 만들어 내는 능력의 크기가 디멘드(매출)의 크기를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따라서 출판에서는 텍스트를 만들어 내는 능력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콘텍스트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중요하다. 이 콘텍스트는 공통의 관심주제를 갖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데, 그곳이 바로 소셜네트워크다.

위의 그림에서 니즈, 원츠, 디멘드로 나아가는 화살표의 방향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니즈에서 원츠로, 원츠에서 디멘드로 나아가는 화살표 방향은 알겠는데, 디멘드에서 원츠로, 원츠에서 니즈로 되돌아오는 화살표의 방향은 무얼 의미할까. 그건 잠재성과 현행화의 관계를 나타낸다. 잠재성이 없다면 현행화의 결과물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니즈를 제대로 파악할 때만 그에 맞는 제품을 개발할 수 있고, 또 그런 제품이 독자의 최종 선택을 받을 잠재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잠재성은 현행화에 앞서 존재한다. 즉 잠재성이 원인이라면 현행화는 그 결과에 해당한다. 그러나 둘의 관계는 일방적인 선후의 관계가 아니다. 쌍방향적이고 서로를 규정하는 관계다. 즉 결과에 따라 원인이 달라지는 그런 관계인 것이다. 우리는 흔히 원인과 결과를 따로 떨어트려 놓고, 원인을 고정된 것, 결과에 앞서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사고방식에 따르면 원인이 일방적으로 결과를 만들어 낸다. 한마디로 책(원인)이 좋으면 판매(결과)도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이 어디 그런가. 책이 좋아도 안 팔리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니즈를 아무리 잘 파악하고 그에 기반해 아무리 제품을 잘 만들어도, 독자들이 최종적으로 책을 구매하지 않는다면 그 책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디멘드라는 최종 결과만큼의 원츠와 그만큼의 니즈가 있는 것이다. 원인이 좋아야 결과가 좋은 것이 아니라 결과가 좋아야 원인이 좋은 것이다. 물론 좋지 않은 책이 많이 팔리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재수가 좋았다’고 하지, 원인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재수는 어쩌다 한번이다. 또 좋지 않은 책을 많이 판 것은 그대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밖에 없다. 실망한 독자들을 양산하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출판을 지식네트워크 사업이라고 할 때, 실망한 독자들을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은 스스로 몰락을 재촉하는 지름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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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원츠가 디멘드화되는 과정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위의 그림에서 점선으로 박스가 쳐져 있는 부분을 클로즈업해 보기로 하겠다. 원츠가 디멘드화되기 위해서는 세 단계를 거친다. 제1단계는 독자가 책의 존재를 아는 과정이다. 독자에게 책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출판사는 프로모션 혹은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한다. 1단계 과정을 통해 책의 존재를 알게 된 독자는 2단계로 구체적인 반응(구매하거나 구매하지 않거나)을 보인다. 2단계에서 독자가 구매를 결정하는 데는 제품(유익할까, 재미있을까), 가격(싼가, 비싼가), 유통(품절, 절판, 당일배송 등의 여러 유통 조건들), 프로모션 혹은 커뮤니케이션(광고, 홍보, 서평 등)이 변수로 작용한다. 독자가 책을 구매하면 다음 단계인 3단계로 넘어간다. 책을 구매해서 읽은 독자는 그 반응에 따라 대만족한 독자, 만족한 독자, 불만족한 독자의 세 부류로 나뉜다. 사람들은 기대치보다 높은 사용경험을 하게 되면 크게 만족하고, 기대만큼의 경험을 하면 어느 정도 만족을 하며, 기대치보다 낮은 경험을 하면 불만족을 느낀다. 대만족한 독자는 책이 고맙고, 필자가 고맙고, 출판사가 고맙다. 이런 독자는 자신의 만족스런 경험을 소셜네트워크와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여기저기에 퍼트린다. 필자와 출판사가 브랜드가 되려면 이런 독자를 많이 만들어내야 한다. 이런 독자가 끊임없이 만들어질 때만 출판시장은 확대된다. 기대한 만큼 그럭저럭 만족을 느낀 독자는 크게 감동을 하지도, 크게 불만을 갖지도 않는다. 이런 독자는 한 사람의 독자로 현행화되었다가 한 사람의 잠재독자로 다시 돌아간다. 이런 독자들이 많아지면 출판시장의 성장과 확대는 멈추고, 출판사들은 동일한 파이를 놓고 레드오션에서 시장쟁탈적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심각한 경우는 세 번째 부류인 불만족 독자다. 불만족 독자는 책에, 필자에, 출판사에 실망한다. 한 사람의 실망 독자는 출판사의 잠재성을 심각하게 위축시킨다. 혼자 가만 있지 않고 네트워크를 통해 여기저기 불만을 쏟아놓기 때문이다. 이런 독자가 많아지면 출판시장의 유지나 확장은 물 건너가게 된다.   

두 번의 현행화 과정에서 니즈와 디멘드를 이어 주는 역할을 하는 원츠는 두 가지 측면을 갖는다. 원츠는 니즈가 현행화된 것인 동시에 디멘드로 현행화되기 이전의 잠재성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원츠는 결과인 동시에 원인이며, 도착점인 동시에 출발점이다. 따라서 원츠를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니즈를 파악하려 하거나 디멘드라는 성과를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대개의 에디터는 니즈에 기반해 원츠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까지만 관여한다. 마케터 역시 마찬가지다. 마케팅 포인트를 찾아내기 위해 그는 독자 니즈에 최대한 집중하려 한다. 그러나 허망하게도 콘텐츠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원츠 장악에 실패하고 만다. 원츠 장악에 실패했다는 것은 니즈 파악에 실패했다는 말이고, 이런 상태에서 원하는 결과 즉 디멘드를 끌어낸다는 것은 애시당초 무망한 일이다. 에디터와 마케터가 절반의 현행화 과정에만 참여하는 이런 조건에서 현실의 성과는 늘 불만족스러운 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디멘드를 모르는 에디터, 원츠를 모르는 마케터는 결국 실패라는 결과를 앞에 놓고 정면으로 충돌한다. 에디터는 원츠에 대한 이해가 충분치 않은 마케터에게 할 얘기가 많다. 자기가 만든 뛰어난 원츠가 디멘드로 연결되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무능한 마케터 때문이라고 비난의 화살을 날린다. 마케터 역시 고객(시장)의 니즈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원츠를 만들어낸 에디터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이래서 금성 에디터와 화성 마케터는 한 지붕 두 가족이 되고, 원츠는 반쪽짜리 상품이 되고 만다. 체인 끊어진 자전거가 제대로 굴러갈 리 없는 것처럼, 반쪽짜리 상품이 시장에서 제대로 팔릴 리가 없다.  

반쪽짜리가 아닌 온전한 상품을 만들려면 끊어진 체인을 이어야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에디터와 마케터 간의 소통하려는 열린 마음, 상대 업무에 대한 이해나 배려, 이런 건 부차적인 문제다. 중요한 건 두 가지다. 하나는 에디터와 마케터가 텍스트를 기반으로 콘텍스트의 세계에서 하나로 만나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텍스트를 ‘가지고 놀’ 정도의 실력이 요구된다. 텍스트를 가지고 놀면서 다양한 장면과 맥락에서 독자에게 쉽게 다가가 말걸기를 시도할 수 있을 때, 독자들 역시 그 텍스트에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리액션을 보여 준다. 디멘드, 즉 매출은 이 리액션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또 하나는 앞에서 본 것처럼 니즈-원츠-디멘드가 상호 규정의 ‘원인-결과’ 관계라면, 에디팅이 곧 마케팅이고, 마케팅이 곧 에디팅이라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상호규정성을 이해할 때만 에디터와 마케터는 서로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고, 또 그럴 때만 둘은 공동체(共動體)의 일원이 될 수 있다. 둘을 지칭하는 공통의 이름이 있다면, 그건 ‘출판마케터’일 것이다. 출판마케터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둘이 통합될 때 반쪽짜리 상품은 비로소 온전한 하나의 상품이 될 것이고, 그 온전한 상품세계 속으로 독자가 들어와 결합할 때, 출판생태계는 보다 큰 선순환의 사이클을 그리며 자기를 확대 재생산해 갈 것이다.

- 대표 유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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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마케터'의 활동을 꿈꾸며, 패러디(^^;) 한 표지

2011/01/18 09:00 2011/01/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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