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란 무엇인가?』에 빠져 있는 것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이 시작된 이래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아 치료를 받는 재향군인의 수가 갈수록 늘고 있다. 이들은 잦은 악몽이나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자살에 이르기도 한다. 재향군인 가운데 적어도 30만 명이 외상에 따른 스트레스나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보고도 들린다. 이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들에게도 상이군인훈장을 수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신 손상도 신체 손상만큼이나 사람을 쇠약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 상이군인훈장 논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에 담긴 도덕 논리를 그대로 보여준다. 무공훈장은 어떤 미덕을 칭송해야 하는가를 묻지 않고서는 수여 대상자를 결정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물음에 답하려면 인격과 희생이라는 서로 다른 개념을 따져보아야 한다.(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23~24쪽)

수많은 사례를 들어 정의가 무엇인지 질문하는 책, 『정의란 무엇인가?』의 결론은 역설적이게도 “정의란 정의하기 어려운 것이다”라고 합니다. 이는 당연한 말입니다.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정체성, 수많은 이해관계들로 얽혀 있는 사회 안에서 도대체 무엇이 정의인지를 과연 단일한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정의란 무엇인가?』는 이처럼 정의 문제가 하나의 ‘딜레마’임을 보여 주는 데 노력하는 책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경우 양자택일을 강제하는 사례들을 보면서 기묘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분명하게 느낀 것이 이 사례입니다. 여기서 샌델은 이라크 전쟁이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한 미국의 재향군인들 중 ‘외상후장애스트레스’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상이군인훈장을 수여해야 하는지 아닌지를 사례로 들어 정의 문제를 논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이 문제도 ‘정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재향군인과 아무 상관도 없는(혹은 가해 국가에 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는) 제 입장에서는 이 사례가 부적절하게만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에 걸려 있는 정의 문제는, 그 전쟁이 정당한 것이었는지, 정당한 전쟁이 존재할 수 있는지, 전쟁에서 벌어진 극단적 부정의는 없었는지, 전쟁의 결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주민들은 어떤 처지에 처하게 되었는지, 그들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하며 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등등이기 때문입니다. 제 상식으론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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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피아니스트』 중 한 장면
_ 정당한 전쟁이란 존재할 수 있을까?

정의의 기준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기란(당연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생생한 사례들로 보여 주는 책 한 권을 읽는 것도 좋은 일일 겁니다. 그런데 샌델이 든 사례에서는 ‘기준’과 맞물려 있지만, 그와는 구별되는 다른 문제가 성찰의 대상이 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바로 ‘틀’(frame)의 문제입니다. 미국이라는 한 ‘국가’의 관점에서 보면, 샌델이 든 사례는 어쩌면 정의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정의가 적용되는 단위는 주권국가 형태를 띤 지리적으로 제한된 정치공동체”(낸시 프레이저, 『지구화 시대의 정의』, 59쪽)라는 가정을 의문시하는 순간, 이 사례는 매우 기이한 것이 됩니다. 이 문제를 ‘미국의 침공’이라는 관점에서 보게 되면, 따라서 정의를 미국 내에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까지(예컨대 이라크) 확대시켜 고민하게 되면, 즉 정의가 적용되는 ‘공간적 틀’을 확장시키면 샌델의 담론에서 배제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지구화 시대의 정의』에서 프레이저는 ‘틀’의 문제가 갖는 중요성을 지적합니다. 프레이저에 따르면 기존의 정의론은 ‘정의의 내용은 경제적 재분배이며, 정의의 당사자는 영토국가의 시민’이라는 ‘틀’ 안에서 작업해 왔습니다. 하지만 ‘정의의 내용이 다양해지고, 정의의 당사자가 초국가화되는’ 지구화 시대에 기존의 틀은 쓸모없어질 뿐 아니라 그 자체로 부정의를 유발하기도 합니다. 정의 문제에서 ‘당사자’로 고려되어야 할 사람들(예컨대 이라크 주민들)을 “잘못 제외하는 방식”으로 틀이 설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틀을 설정하는 결정은 분배, 인정, 일상적인 정치적 대표 문제와 관련하여 공동체 안에서 고려대상이 될 자격을 가진 사람들의 세계로부터 비구성원들을 효과적으로 배제해 버린다. 그 결과 심각한 부정의가 야기될 수 있다. 정의에 관한 질문의 틀이 어떤 사람들을 고려대상에서 잘못 제외하는 방식으로 설정되면, 그것은 특수한 종류의 메타-부정의를 야기하게 되며, 이로 인해 배제된 사람들은 특정한 정치공동체 안에서 일차원적 정의 요구들을 주장할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지구화 시대의 정의』, 42쪽)

(…)한 사례가 잘못 설정된 틀에 관한 나의 설명입니다. 이것은 메타-부정의의 한 유형을 나타내기 위해서 내가 고안한 용어입니다. 이러한 부정의는 정의에 관한 일차원적 질문들이 누군가를 고려대상에서 부당하게 배제하는 방식으로 틀이 설정될 경우 발생합니다.(『지구화 시대의 정의』, 237~238쪽)

정의란 어려운 것입니다. 기존 정의론의 문법들이 해체되고 있는 지구화 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만큼 어떤 문제가 정의 문제가 될 때, 그것이 혹시 다른 문제를 “부당하게 배제”하고 있지는 않은지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기존의 틀이 은폐했던 부정의를 폭로하고 한층 더 민주적으로 새로운 틀을 형성하는 것, 여기에 정의 실현의 첫 걸음이 있습니다. 나아가 그 새로운 틀도 부적절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틀을 설정하기 위한 사고와 행동을 멈추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떤 형태의 틀들이 잠정적으로 정당화된 것으로 출현한다 하더라도, 그 틀들은 배제에 관한 새로운 주장들이 그것들에 도전해 출현하는 경우 미래에 있을 수도 있을 수정에 대해서 항상 열려 있어야만 한다. 틀에 관한 논쟁들이 결정적이고 최종적인 해결책에 도달할 수는 없다고 가정하기 때문에 …… 비판적-민주적 접근은 그러한 논쟁을 지구화하는 세계에서의 정치적 삶이 가지는 지속적인 특징으로 간주한다.(『지구화 시대의 정의』 82쪽)



- 편집부 김재훈
지구화 시대의 정의 - 10점
낸시 프레이저 지음, 김원식 옮김/그린비
2011/01/21 09:00 2011/01/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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