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엇을 읽을까’

저희가 제안하는 프로젝트는 ‘독서문화진흥’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그런 전시용 캠페인이 아닙니다. 저희는 ‘무슨 책을 왜,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 없이 그냥 좋은 책을 모두가 읽자는 식의 캠페인에 반대합니다. 독서란 정신적 쾌감을 제공하는 상품의 소비가 아닙니다. 저희는 과거 정신의 만족이 아니라 새로 시작하는 정신의 탄생을 위해서 책을 읽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해 우리 모두의 주의를 환기하고,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으기 위해 책을 읽습니다.
시민들의 독서 네트워크를 제안하면서 저희는 어떤 책을 읽을까를 고민했습니다. 사실 어떤 책을 읽을까보다 우리가 지금 어떤 문제와 대면하고 있는가를 고민했습니다. 고민 끝에 저희가 뽑은 열쇳말은 ‘불안’이었습니다. ……
여러분들과 진솔하게 우리 삶의 불안, 우리 삶의 불안정성에 대해서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책을 읽는 시민들 모두가 함께 동료들과 단 한 번이라도 말할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감히 저희 연구자들이 동료 시민들께 ‘우리의 불안정한 삶, 비정규직을 읽자’고 제안드립니다.
― 고병권, 「시민지식네트워크를 위한 독서 프로젝트」, 『추방과 탈주』, 그린비, 2009, 204~207쪽.

요즘도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며 가을마다 <필독도서목록>과 함께 독후감쓰기 숙제가 재앙처럼(?) 많이 내려지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친구들과 “가을이 무슨 독서의 계절이냐? 잠만 잘 오는구만”하며 이건 필시 책을 많이 읽게 하려는 출판산업의 음모라며 투덜댔던 기억이 나네요(그리고 저는 지금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_-). 그래도 읽고 숙제를 내야 했기에 그때부터 하나 둘 사 모은 책이 지금 제 책장을 차지하고 있고, 빈약한 제 독서 목록을 채워 나가는 책들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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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쇼핑하는 것'처럼, 다 읽지도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책을 모으는데 급급하다. "당신의 책장이 당신을 말해준다!"고 하는데, 지금 책장을 한 번 살펴보자!

그린비에 입사하기 전에 ‘독서목록’을 작성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멍 때렸던 기억이 납니다. 뭔가 꾸역꾸역 읽었던 기억은 많은데, '읽었다‘고 기억에 남는 책이 몇 없었습니다. 책장에 사 모은 책들을 하나하나 수첩에 적고, 워드 파일에 입력을 한 후, 어떻게든 제 나름의 분류를 해보려고 하니 이번엔 한숨이 나옵니다. 뭐 별 일관성이 없는 것은 둘째 치고, ‘내가 왜 저 책을 읽었던 거지?’하고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누군가 읽으라고 해서, 읽어야 했으니까’라는 답밖에 나오지 않는 책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독서이력서를 제출할 시간이 다가왔을 때, 부끄러움에 전송 버튼을 한동안 누르지 못했습니다. 그때 처음 제대로 질문을 던져 볼 수 있었습니다. ‘책은 왜 읽어야 하는 것일까?’

책은 무조건 많이 읽는 것이 미덕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건 점차 압박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린비에 들어와 “쇼핑하듯 책을 읽지 마라”는 말씀을 듣기 전까지는 사실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얼마 전부터야 제가 지금껏 지적 유희, 혹은 자기 만족감에 책을 읽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쇼핑과 다를 것이 없는 독서 말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나에게 왜 필요한지 별 생각 없이 따라서 읽고, 조금 읽다가 싫증나면 책장 한 구석으로 내팽개치는 그런 패턴으로 읽어 왔습니다. 이건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우스갯소리로 많이 들려주는 이야기인데, 뭔가 심각하게 읽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게 바로 신문 사이에 있는 ‘전단지’였던 적이 있습니다. 너무 과장된 비유일 수도 있지만, 지금껏 제가 아무 생각 없이 뭔가를 읽어 왔다는 걸, ‘소비’해 왔다는 걸 극명하게 말해 주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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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함께 읽는다는 것, 비정규직을 읽는다는 것은 내게 어떤 의미일까?

얼마 전, 친구의 친구에게 홍대 청소노동자 분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일이 본격적으로 터진 지 꽤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지금 매일같이 일하고 밥 먹고 차 마시고 하는 공간에서 벌어진 일이었는데 또 지나칠 뻔했습니다. 그 다음날 사내 게시판에 다음 아고라에서 홍대 청소노동자 지지 서명을 하고 있다는 짧은 메모가 올라왔습니다. 아고라에 서명을 하고, 프레시안이며 한겨레며 신문기사들을 찾아 읽었습니다. 읽고 있는데 마음 한구석에서 욕지기가 올라옵니다. 메일함에는 며칠 뒤 이제 곧 용산 2주기가 온다는 내용의 메일이 와 있습니다. 작년에 나온 『내가 살던 용산』이라는 책을 찾아 읽었습니다. 열사 5인의 생전 모습을 만화가들이 공동작업으로 그려 낸 책이었습니다. 신문기사로 읽을 때와는 또 다른 감정들이 밀려왔습니다. 혼자 읽으려니 아쉬웠습니다. 사실 한밤중에 밀려드는 두려움을 혼자 이겨 낼 자신이 없었습니다. 누군가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참으로 오랜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 이런 말주변으로는 누군가에게 같이 읽자고 말하는 것이 참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그러던 중 『추방과 탈주』라는 책에서 수유너머 연구원 분들이 동료 시민들에게 책을 함께 읽자고 제안하는 ‘선언문’을 읽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 ‘책을 함께 읽는다는 것’에 대해 설명하는 간결하면서도 힘 있는 문장들이 하나하나 와 닿았고, 특히 ‘비정규직을 읽자’는 말에 그만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지금 내가 읽어야 할 책이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인터넷 서점의 ‘인문학’ 코너를 서성일 것이 아니라, 어떻게 채워도 빈약하기만 한 책장 근처를 서성일 것이 아니라, 시선을 세상으로 돌려야 한다는 걸 단 한마디로 저에게 강렬하게 일깨워 주는 말이었습니다.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책들의 방대한 양에 더 이상 압도되지 않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동안 편집자라면 마치 그걸 다 읽고 알아야 하는 것 마냥 엄살떨었습니다. 지금 저에게 뭐가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 생각하기보다, 남들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렇지만 지금 나에게는 전혀 와 닿지 않는 책들 근처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내 왔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저는 한동안 긴 시간을 두고 ‘철거민 문제’를 읽고, ‘청소 노동자’를 읽어야겠다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매일 인터넷 서점을 서성이는 빈도만큼이라도 더 밖으로 나가 걸어 보려고 합니다. 함께 ‘읽을’ 분들, 이미 ‘읽고 계시는’ 분들을 찾아서 말입니다. 그간 생각만 많이 하며, 너무 앉아 지냈던 것 같습니다.

- 편집부 김미선
내가 살던 용산 - 10점
김성희 외 지음/보리
2011/02/08 09:00 2011/02/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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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순진한양 2011/02/08 13:29

    지난주에 설날 맞이 대청소(?)를 했는데요. 그 중에 가장 난감한 작업이 바로 책장정리였습니다. 과감하게 책상을 뺐더니 물과 기름처럼 나뉘어져 있던 책상 위쪽의 책장과 아래쪽의 잡동사니들 중 하나를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오랫동안 보지 않았거나 읽을 가능성이 없는 책들을 추려내는데 한편으로는 아깝기도 하고 한편으론 제가 한심해 보이기도 하고... ㅋㅋ
    저도 아마 쇼핑처럼 책을 사는가봐요. 살 때는 뭐든 읽을것마냥 생각이 되는데 말이죠.

    • 그린비 2011/02/08 21:49

      대청소라니! 고생하셨습니다. ㅎㅎ
      저도 늘 책은 넘치게 사고 있지만, 그 책들을 읽기도 전에 또 사고, 또 사고...그렇더라구요.
      안 읽을 것 같은 책은 과감하게 주변 분들에게 선물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빈 공간에는 인연이 닿는 새로운 책들이 자리잡길 바랄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