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운동’의 관점에서 본 최초의 병역거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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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기운이 높아질수록, 병역거부의 의미도 더욱 뚜렷해진다. 내가 잡은 총이, 내가 하는 훈련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는 병역거부자들의 이야기가 전쟁의 시기만큼 명확해질 때도 없기 때문이다. 병역거부자들은 자신이 쏜 총에 맞아 죽어 갈 이들이 과연 누구인가를 묻는다. 2010년 11월 23일, 국군 역시 북쪽으로 대응포를 쐈고 우리가 받은 것보다 훨씬 더 큰 피해를 입혔다고 알려졌다. 먼저 포를 쏜 북한의 책임이야 분명하지만, 우리 역시 이름 모를 그 누군가를 죽인 것이다. 많은 이들을 더 많이 죽이지 못해서 아쉬워했으며, 기회가 되면 확실하게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 물어야 한다. 과연 얼마나 죽여야 '철저한 응징'인가? 그렇게 죽어 갈 북한의 이름 모를 누군가는 연평도 포격에 어떤 책임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 응징의 대가로 불을 뿜을지도 모르는 북한 장사정포에 죽어 갈 수도권 시민들의 목숨은 '숭고한 희생'인가?
─ 「책을 내며」, 『삼켜야했던 평화의 언어』, 20쪽

'병역거부'를 처음 들었을 때, 반감이 생겼습니다.  남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의무를 하지 않겠다는 책임 없는 행동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남동생이 입버릇처럼 "남자는 역시 군대를 갔다 와야지~"라는 말을 하는 것처럼 선배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후배들에게도 자주 세뇌(?)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전쟁 영화가 싫습니다. 화면에서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면, 영화 속 이야기일 뿐인데도 왠지 안타깝고 슬펐습니다. 아마도 제게는 전쟁이 너무 큰 자극인가 봅니다. 동생이 군생활을 할 때 휴가를 나오면 늘 저에게 용돈을 달라고 보챘습니다. 알고 보니 한 달 월급이 몇 만원, 저는 노동 착취도 그런 악랄한 착취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차라리 그 기간 동안 부려 먹을 거면, 월급을 많이 주는 용병제가 낫지 않을까 싶었죠. 지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이 그건 안 된다고 하더군요. 휴전이라지만, 전쟁이 해결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군사력으로 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용병제를 하면 군인의 숫자가 줄어들 것이라고요.

연평도에 포격 사건이 발생한 날, 부모님이 제게 괜찮냐며 전화를 하셨습니다. 당장이라도 전쟁이 날 것 같은 분위기였으니까요. 다행히 험한(!) 상태로 가지 않았지만, 비싼 미사일을 샀다는 소식을 들었지요. '주먹에는 더 센 주먹으로 대응하겠다'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들은 잘 몰라'하는 말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물론 겪지 않은 것을 잘 알 수는 없지요. 하지만 전쟁은 겪지 않아도 전쟁이 일어나는 건 싫습니다. "징병제,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이런 질문을 생각해 볼 수는 없는 걸까요? 평화가 어떤 의미인지,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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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성

누군가 먼저 총을 내려놓는 것이, 바보 같아 보이지만 전쟁과 폭력을 멈출 수 있는 하나의 씨앗이라는 믿음으로 병역거부를 택했다. 서울구치소와 충주에서 수감생활을 했고, 2006년 5월 출소했다. 출소 이후에는 평화학을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에서 ‘폭력의 사회학’이란 화두를 가지고 징병제, 군사주의, 평화운동, 법과 폭력 등을 연구해 나가고 있다.


병역거부를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인데도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병역거부를 인정해야 된다, 대체복무제가 필요하다, 해외 사례가 이런 거다”에 관한 이야기는 어렵지 않은데 제가 왜 병역거부를 하고, 감옥에 갈 수 밖에 없었는지를 얘기하는 건 항상 어려운 일입니다. 대개는 묻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인데요… 어렸을 때 큰 트라우마가 있다거나, 특별한 종교를 갖고 있다면 ‘다른’ 사람으로 인식되고 소수자로 인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저는 그러한 경험이나 종교가 없기 때문에 묻는 이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제가 군대에 대해 고민하는 나이가 됐을 때, 한국사회에서 병역거부가 이야기되었고, 우연한 기회에 그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활동을 하다 보니 ‘이게 내 이야기일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때 병역거부에 대한 생각을 내 안에 많이 쌓아갔습니다. 또 하나는 2003년 이라크 파병 사건입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사회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대중적인 반전운동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때도 활동에 참여하면서 전쟁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를 계기로 병역거부를 하는 게 맞다는 확신을 갖고 병역거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병역거부 과정에서 주변의 많은 도움을 받았고, 출소를 했습니다. 출소 이후 뭘 할까 고민하다 대학원을 진학해 공부를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대체복무제를 둘러싸고 어떤 일들이 있었나요?
지난 10년 동안 병역거부처럼 떠들썩했던 운동도 몇 개 안되는 것 같아요. ‘병역’ 뒤에 ‘거부’가 붙으면서 사람들이 가진 반감, 혹은 호기심이 굉장히 컸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 생각보다 빨리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공론화된 후 병역거부자들의 형량이 3년에서 1년 6개월로 바뀌었습니다. 사법부에서 병역거부가 합헌이라는 판결을 냈고, 국회에서 적극적으로 해결해야한다는 내용도 판결문에 담았고요. 국회에서 대체복무 법안들이 최초로 상정되는 기회도 있었는데 이 과정들이 2004년, 2005년, 2006년에 집중적으로 일어났습니다.
 
2007년에는 노무현 정부가 대체복무제 시행을 결정하고, 국방부는 감옥행이 계속되는 현재의 상황을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발표합니다.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가는 것을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것을 해결해야 하는데, 감옥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신념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바로 대체복무제의 틀입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면서 국방부가 대체복무제를 백지화하고, 무기한 유보하겠다고 쐐기를 박았습니다. 

왜 백지화됐을까요?
제가 군인이면 대체복무를 하는 사람들이 싫고 미울 것 같아요. 일 년에 천 명 가량 감옥에 가고, 이 인원이 국방력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방식의 복무를 인정하기 싫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 노무현 정부 때는 행정부나 법원에 다양한 조직들의 압력이 있었지만, 정권이 바뀐 이후에는 그런 압력들이 없어지면서 국방부에서 원하는 대로 하게 된 것이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병역거부를 했고, 또 하고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한국사회에서 징병제의 시작은 1944년부터로 보는데, 지금까지 만 오천 명 정도가 병역거부로 수감이 되어서 이십대를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2010년 12월 통계로는 950명 정도가 수감 중이죠. 투표를 해서 대표를 뽑는 국가 수준에서 병역거부로 투옥을 시키는 나라는 한국을 제외하면 터키가 유일합니다. 전 세계에서 병역거부로 수감되어 있는 사람 중 한국 감옥에 90% 정도가 있다는 통계도 있지요. 국방부 장관이나 반기문 UN 총장도 들으면 깜짝 놀랄 텐데, UN에서는 병역거부가 큰 이슈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놀람이 해결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습니다.

숫자도 숫자지만, 감옥 안에서 느낀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수감 중에는 기술을 배우게 되는데, 그 이유가 전과를 가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수감생활을 할 때 만난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한 친구에게 출소 후에 뭐 할 거냐고 물어보니까 컴퓨터 가게를 차리겠다고 하더라구요. 그 직업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직 어린 친구인데 자신의 ‘꿈’을 미리 한정짓는 것이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병역거부자들은 수감 생활을 극복해야 할 사회 문제가 아니라 숙명처럼 받아들인다는 느낌을 받았죠. 저는 그것이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특정한 집단이나 소수의 정치적 병역거부자들에게만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군대를 가지 않으면 감옥에 가야 한다’는 방식의 체념이나 배제가 주변에서도 쉽게 확인될 수 있습니다. 50~60년 동안 병역거부로 인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어떤 변화도 없었다는 것이 참 무서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대체복무제를 넘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가요?
병역거부를 하고 감옥에 가는 사람들을 “무정부주의자니까”, “종교적 신념 때문에”, “파리 한 마리도 못 죽이는 특이한 사람이기 때문에”라는 한 문장으로 규정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들이 어떤 생각으로 병역거부를 택했는지 드러내고 싶었는데, 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에서 어떤 마음으로 생각했는지, 그 사람이 느꼈을 두려움이나 혼란, 외로움 등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책에서 평화학의 방법론으로 ‘공감’을 이야기했던 이유는 평화를 연구하는 것이 폭력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폭력이라고 낙인찍는 순간, 그것은 나쁘고 없애야 하는 것이 됩니다. 평화연구는 그것을 악이나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지 않고, 폭력이 왜 등장했고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만지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식민지시기 위안부 할머니들을 통해서 당시 폭력들의 결을 보고, 용산 참사의 경우에도 화마를 목격하고 그 속에 있었던 철거민들을 통해 폭력을 분석하고 그 사람들에게 공감하는 방식이 평화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병역거부자들의 글과 인터뷰를 통해서 그들이 했던 얘기, 혹은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함께 공감하면 좋겠어요.  
 
계속 ‘문턱’을 넘으려고 했던 것이 지난 10년 동안의 병역거부운동이었다면, 앞으로 10년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공감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요? ‘감옥 가는 것이 불쌍하니까 구제해야지’가 아니라 왜 그 사람이 고통스러운지 이해하고, 아픔을 같이 나눌 수 있는 것, 저는 그게 공감이라고 생각해요.

평화가 상당히 포괄적이고 이상적인 가치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화와 평화학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어디 가서 평화운동 한다고 말하면, ‘좋은 거 하시나 봐요’라고들 해요. ‘평화운동은 뭘 합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병역거부, 징병제, 미군기지…… 이런 대답을 하는데, 듣던 분의 표정이 안 좋아지죠. 평화라는 말은 예쁘고 누구나 쓰고, 평화로운 세상을 거부하는 사람은 없는데 실제로 ‘무엇이 평화냐’라고 들어가면 그때부터 불편해 지는 거죠.

저는 비판적 평화연구를 하는데, ‘비판적 평화연구’는 갈퉁(요한 갈퉁 Johan Galtung, 평화 연구자)이 썼던 표현입니다. 기존에 전쟁을 막자, 이런 것들을 다뤘던 영역들은 있었습니다. 그것과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던 사람들이 1960~1970년대 사이에 등장했던 평화연구자들이죠. ‘비판적 평화연구’에 두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현실에 대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분석을 지양하고 현실을 바꾸기 위한 방식으로 파악하고 분석하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평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비현실적이라거나 이상주의자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진짜 비현실적인 건 전쟁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평화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스스로 비현실적인지 확인해야 하고 자신에게 물어야 할 필요가 있죠. 전쟁을 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의지가 눈앞에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것이 전쟁을 더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쟁을 할 때 발생하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은 감당하기 힘들죠. 저는 평화운동이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이 낮아지는 훨씬 더 나은 방식의 갈등해결이라고 믿습니다.

재성 씨가 활동하는 ‘전쟁없는세상’에 대해 알려 주세요.
‘전쟁없는세상’은 저에게 굉장히 의미 있는 단체이고, 제가 하는 것은 활동이라기보다 활동을 돕고 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습니다. 5월 15일은 세계병역거부자들의 날인데, 병역거부자들이 피해자로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목소리를 내보자는 뜻을 가지고 2003년 5월 15일에 활동을 만들었어요. ‘전쟁없는세상’은 병역거부자들이 활동하는 통로, 혹은 구심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와 경험이 쌓인 지 8년쯤 되었는데, 문의도 많이 옵니다. 하나는 병역거부까지는 아니어도 입영을 고민하는 사람들인데, 군대에서 문제가 생겨서 휴가 때 전화를 하는 분들도 있어요. 이렇게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단체가 되는 건 좋은 것 같아요. 또 하나는 군대 문제를 인터뷰하고 싶은 언론이나 단체들입니다. 군대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단체가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전쟁없는세상’은 앞으로도 병역거부가 중심뿌리겠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 - 10점
임재성 지음/그린비
2011/02/11 09:00 2011/02/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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