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 인문학 지각변동』에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1989년의 베를린 장벽 붕괴’입니다. 저는 두 가지 이념으로 분단되었던 독일이 하나의 이념으로 통일되었던 사건이라고 기억합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베를린 장벽의 붕괴나 구소련의 몰락이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한국 사회의 담론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맑스주의가 실현되었다고 믿었던 국가가 사라지면서 맑스주의에 대해 의문이 생기고,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알튀세르, 푸코, 들뢰즈 등 많은 학자들의 책이 읽히고 이야기된 것이었던 것이지요. 또 그런 흐름이 있었기에 맑스주의에도, 포스트 맑스주의에도 관심이 없었던 제가 알튀세르, 푸코, 들뢰즈의 저작들을 읽을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기억들은 나의 ‘영혼’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내가 그 기억 속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 나 이전에 존재하는 것이 그 기억이고, 나의 직접적인 ‘참여’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이 그 기억이며, 나의 이탈이나 소멸 이후에도 존속하는 것이 그 기억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나를 포함하는, 그러나 나로 축소될 수 없는 집합적 주체에 의해 구성되는 집합적 기억. 우리는 이런 기억을 흔히 ‘역사’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집합적 주체의 다양한 층위마다 존재하는 역사들이 있음 또한 알고 있다.
— 이진경, 『문화정치학의 영토들』, 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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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8일 전남대학교 앞

1970~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분들과 1980~9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분들,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학을 다녔던 분들에게 『인터뷰 한국 인문학 지각변동』이 주는 강도는 당연히 다를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학번과 세대를 떠나 ‘다른 기억’을 함께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어렴풋한 기억 속의 사건이 책 속에서는 어떻게 이야기되고 있을까요? 학생운동을 하지 않고 대학 시절을 보낸 만수와 맹달(소개 보러 가기), 이 두 사람은 어떤 문장에 밑줄을 긋고, 공감했는지 그 일부분을 공개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밑줄은 어떤 부분인가요?

김철 : 한글세대와의 단절
공부하다가 뛰어나가서 최루탄 맞으면서 돌 던지고 하는 게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그런 시절이니까요. 이념적으로는 물론 맑스주의가 가장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고, 아까도 말했듯이 정치적인 올바름, 더 나아가서는 계급성・당파성을 확보하는 것이 학문적으로도 올바른 것이라는 데에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 과정에서 사회구성체 논쟁(사구체 논쟁)도 벌어졌죠. 20세기를 ‘혁명의 세기’라고 부른다면 아마 그것의 마지막 불꽃은 80년대 한국에서 타올랐던 것 같아요. (『인터뷰 한국 인문학 지각변동』, 21~22쪽)
저는 맑스주의의 가치나 이상이 사라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것들을 사회주의 몰락 이후의 세계 속에서 실현할 수 있는 방안에 관한 사유가 한국 인문학 내부에서 미약했던 것 아닌가. 그게 80년대 말~90년대 초의 상황이라고 보입니다. 그걸 마치 맑스주의의 위기처럼 인식했던 거죠. 어떤 점에서는 그런 상황이 새로운 인문학적 사유나 인문학 연구의 발전을 위해서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같은 책, 24쪽)

조한혜정: 자본주의적 신체의 감각과 지식생산
1학년 아이들이 사회학과에 들어와서 페미니즘 수업에서 조모임을 시키면 ‘편안한 페미니즘 조’, 이렇게 이름 붙여요. “페미니즘을 사람들이 다 불편해한다”라고. 자기는 그런 신자유주의 애들이 불편한 존재가 절대로 되고 싶지 않은 알파걸들인데, 페미니즘 이론은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편안한 페미니즘 조’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해요. 페미니즘은 정말 남자를 따라 할 수밖에 없는, 적하고 싸우기 위해 적하고 비슷해진 그런 과정을 거쳐 온 거지만, 거기서부터 해방될 때도 된 거죠. 그래서 이제는 리액션하는 것으로서의 운동이 아니라 상황을 앞서서 주도하는 프로액티브(proactive)한 운동을 해야 해요. 다른 어떤 존재들과 만나 서로를 구원할 수 있는 영역으로 가야 된다는 거죠. 생태 페미니즘이 진부하지만, 실제로 그런 쪽으로도 가고 아까도 얘기한 돌봄・살림・소통・사회적 기업 이런 쪽으로 가서 페미니스트가 정말 다르구나, 라는 걸 보여 줘야 된다고 생각해요.(같은 책, 162쪽)

맹달은 왜 밑줄을 그었을까요? +_+

김철 선생님의 인터뷰를 보고 제가 꼬맹이이던 시절 그러니까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대학을 다닌 선배들의 대학생활이 어땠는지 대학이란 곳은 어떤 곳이었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었는데, 이 순간이 『인터뷰 한국 인문학 지각 변동』에 대한 호기심을 높였습니다. 뭐랄까요? ‘아...내가 아는 게 아는 게 아니었구나’ 하는 느낌! 제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건 영화나 드라마에서 피상적으로 본 장면에 불과했던 것이죠. 대학 때 운동도 한 적 없고 잔디밭에 둘러 앉아 통기타도 쳐본 적 없고 막걸리를 마시며 울분을 토한 적 없는 저에게 “학문 연구가 정치투쟁의 일환이라는 사고가 당시 지배적이었고(…) 공부하다가 뛰어나가면서 최루탄을 맞으면서 돌을 던지고 하는 게 일상적으로 벌어지던 시절, 이념적으로 맑스주의가 강력하게 자리 잡고, 정치적인 올바름, 나아가서 계급성, 당파성을 확보하는 것이 학문적으로도 올바른 것이라는 데에 의심을 하지 않았다.” 는 부분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대학은 (당연히) 취직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생각했던 저에게 ‘의식’을 가진 그때의 대학생이 참 커보였습니다. 그때는 얼마나 뜨거웠을까? 이런 상상도 하게 되고요. 별다방이나 가서 폼이나 잡고 앉아있던 제가 이런 대학 생활을 한 선배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얼마나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조한혜정 선생님의 인터뷰를 재미있게 읽었는데 해체주의랄지 포스트모더니즘이랄지 알고 있는 듯 하지만 설명해 보라고 하면 절대 설명 못할 개념이 나와도 부담스럽지 않았어요. 그 이유는 선생님이 들고 있는 예들이 생생해서였습니다. 제가 지나왔던 시절의 (그때는 전혀 몰랐던) 문화 현상의 속살이나 특정한 장소의 사회적 의미, 만나지 않고는 듣기 힘든 세대의 생각과 흐름 말입니다. 이렇게 여러 선생님들의 인터뷰를 읽다 보니 인문학의 영역이 우리의 삶과 관계된 모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 굉장히 당연한 말이죠. 그러나 책을 보기 전에는 이 역시도 피상적으로 갖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보고 나서는 명확해졌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은 어떠한 토양 아래 만들어진 것인지, 또 그 토양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짚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낯선 개념이나 용어, 사조 등은 그리 크게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역으로 인터뷰를 보면서 그 개념들을 공부해 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습니다. 『인터뷰 한국 인문학 지각 변동』은 인문‘학자’들만의 담론이 아니라 내 삶의 이야기네요! 우리 삶의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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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어 놓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문화 컨텐츠 산업'은 익숙한 단어이다. 그러나 이 단어가 등장한 시기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황종연: 종언 없는 비평

전통적으로 문화는 자본의 외부, 경제 외부에 존재하면서 그것에 대해 저항하거나 그것으로부터 배재된 것들을 받아들이거나 하는 영역이었는데, 이제 거꾸로 문화가 자본의 자기증식에 도움이 되는 자원으로 변한 거죠. (같은 책, 210쪽)

이성시 : 역사학의 역사성을 생각한다
이것은 제가 한 말은 아니지만, 인문학이 여타의 학문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그것이 지금 당장 쓸모가 있는 것이 아닌, 시공간을 초월하는 학문이라는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쓸모가 있다고 할까, 서서히 효력을 드러내는 것이 인문학적 성과이며, 단기적으로 쓸모 있는 것은 인문학에서는 별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이지요. 이를테면 고전이 가지는 의미 같은 것 말입니다. 의식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같은 책, 303쪽)

윤해동 : ‘회색지대’의 역사학
근대를 어떻게 보든, 근대라는 규정 또는 발상에서 '식민주의'라고 하는 것을 처음부터 떼어 놓을 수 없는 측면이 있어요. 식민지와 근대를 같은 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다면 근대로부터 식민주의를 떼고 생각해도 된다고 보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기는 매우 어려우니까요. 따라서 "근대라고 하는 것이 어떤 측면에서는 본질적으로 식민주의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근대성과 식민성은 상호규정적이라든지 어느 한 쪽에 방점을 두는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식민성과 근대성의 문제는 본래적으로 근대 규정의 문제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같은 책, 332쪽)

만수는 왜 밑줄을 그었을까요? +_+
식민지, 근대화, 민주화, 시장경제가 함께 맞물려 돌아가며 시대적으로 어떤 사건들로 발생했는지를 볼 수 있던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억압적이었던 시기에 문화적으로는 자유로운 개방을 했다는 점. 이때 문화정책이 3S였고, 저도 좋아하는 프로야구가 그 중 하나였지요. 그 이후 문화가 상품화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속에서 미니 시리즈인 '질투'가 나오고, 서태지가 데뷔했다는 내용이 기억에 남네요. 문화가 자본의 자기증식에 도움이 되는 자원이 되었다는 문장을 읽을 때 떠오른 단어가 '문화상품'이었습니다. 글이나 그림, 혹은 춤 등의 다양한 활동의 가치 척도가 '돈이 되느냐'에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죠. 그동안 지인들에게 "그거 돈 되는 일이야? 아님 때려 쳐!" 라는 말을 너무 쉽게 했던 것은 아닐지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식민지와 근대성의 문제는 근대 규정의 문제다"라는 윤해동 선생님의 말씀도 기억에 남네요. '근대화가 이식된 식민지'의 예는 한국 사회 뿐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 등 다른 사회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KTX나 비행기를 통해 빠르고 편안하게 갈 수 있다는 것! 그동안 제가 생각하는 '근대화'는 이런 긍정적인 부분이 많이 내포된 단어였죠. '식민지'는 억압되고 수탈당했던 시기라는 부정적인 면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이 둘을 다시 생각하려면 공부를 더 해야 할 것 같네요. 하하;

책을 읽기 전에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경계를 철학, 문학, 역사와 정치, 경제로 분리하며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경계에서 자꾸 틈을 만든다는 것은 떨어져 있다고 생각한 것들을 묶기도 하고 관계없는 것들을 섞기도 하는 활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치, 학문연구는 늘 남이 하는 것이라 저와는 큰 관계가 없다고 멀리했는데, 제 삶에서 그 영향을 찾을 수 있다는 것도 새삼 느끼게 되었지요. 시공간을 초월하는 '인문학'의 효력을 느끼려면 더 많이 공부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문화정치학의 영토들 - 10점
이진경 엮음/그린비
인터뷰 한국 인문학 지각변동 - 10점
김항.이혜령 기획,인터뷰,정리/그린비
2011/02/14 09:00 2011/02/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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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순진한양 2011/02/14 12:38

    인문학의 지각이 변동한다는 것은 시대가 바뀌면서 당연한 일이겠죠? 다만 그 당시를 경험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자료나 혹은 인터뷰를 통해서만 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역사도 비슷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역사 속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건 안에서
    그 누가 어떻게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서 같은 사건 속에서 발생하는 진실은 다양할 수 있으니 말이죠. 각자가 경험한 진실이 진리인줄 알고 서로 싸우는 모습은 지금도 많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옳바른 사관과 많은 진실을 알기 위해서라도 기성 세대들의 증언이나 토론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국민학교 다닐 때 음악시간에 처음 배웠던 노래 가사말이 '총칼로 육체무장 단단히 하고... ' 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진실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초등학생들은 믿지 않겠죠?

    • 그린비 2011/02/14 15:09

      노래 가사가 의미심장합니다!
      저는 유치원때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이런 노래를 배운 것 같은데 말이죠. 아하하;;

      순진한양님 말씀처럼 하나의 사건은 누가 어떻게 경험했느냐에 따라 다른 기억이 되고, 다른 역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다른' 역사들이 함께 읽히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