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국의 고향집에서 1만 6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와 있지만, 내 사고 방식은 조금도 바뀌지 않고 있었다. 내가 살던 곳은 좌뇌의 세계에 속해 있었다. 나는 논리, 판단, 읽기, 쓰기, 수학, 인과 관계를 배우며 자랐다. 그런데 지금은 우뇌를 써야만 하는 상황에 있었다. (...) 나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을 참사람 부족과는 다른 존재, 그들과는 별개의 존재로 생각했다. 우리 모두가 '하나'이며, 자연 속에서 '하나'가 되어 살고 있다고 그들이 끊임없이 말했지만, 그 순간까지도 나는 관찰자일 뿐이었다. 나는 늘 나 자신을 그들과 따로 떼어놓고 있었다. - 말로 모건, 『무탄트 메시지』, 200쪽

그린비에 입사한지 일 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예전에는 온라인 게임을 만드는 일을 했지요. 처음에는 다른 환경이 마냥 신기하고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공간에 서서히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어려운 점도 생겼습니다. 그건 바로 '말'이었죠. 회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 공통 화제를 찾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저는 TV를 자주 안 보는데다, 예능프로는 무한도전만 보며, 대부분의 일상이 게임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용하는 단어들(예를 들면 레벨, 스킬, 아이템, 캐릭터 등)은 예전에 일했던 업계에서 자주 쓰던 말이었는데, 그린비에서는 같은 단어라 하더라도 사용되는 맥락이 달랐습니다. 말은 통하지만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적도 있었지요. 저뿐 아니라 저와 대화를 하는 분도 아마 많이 답답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금도 가끔 그렇지만요.^^;

저는 융통성이 없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들으면 울컥합니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죠. 최근에 또 이 이야기를 듣고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대체 융통성 있는 건 뭘까? 어떻게 하면 되는 걸까? 『무탄트 메시지』를 읽다가 그 답을 찾게 되었습니다. 제가 융통성이 없었던 것은 바로 끊임없이 거리를 재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일과 개인 생활의 거리, 책과 저의 거리, 상대방과 저의 거리, 그 거리감은 제가 상황에 완전히 몰입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몰입하지 못한 상태에서 제가 만들어 낸 변명거리는 바로 '환경이 너무 달라서...', '처음 해보는 일이라...'였죠. 지금 생각해 보니 거리를 두는 것과 동시에 과거로 도망을 가고 있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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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 대한 불신과 경계는 타인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하고 거리를 두게 함으로써 몰입을 방해한다.

얼마 전, 고미숙 선생님의 특별 강좌를 들으며 뜨끔했습니다. '일은 기교만으로도 할 수 있다'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누가 저를 쳐다본 것도 아닌데, 괜히 찔리더군요. 최근에 제가 일하는 방식이 '나름' 기교였기 때문입니다. 뭔가를 준비할 때 새로운 방법을 고민하기보다는 예전에 했던 기억이나 경험을 끌어다 쓰기만 했거든요. 최근 제가 가지고 있던 고민인 '나는 왜 융통성이 없을까?'도 이러한 맥락에서 연결이 되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범주의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기도 어려웠거든요.

고미숙 선생님께서 '고통 없이는 열매도 없다'라고 하신 말씀이 엄청난 무게로 다가왔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제까지 고통받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피하면서 지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고통을 피하는 방법으로 저는 거리 두기를 택한 것입니다. 그러고는 스스로에게 '난 지금 최선을 다했어'라는 거짓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융통성이 없다는 말을 듣고, 고미숙 선생님의 말씀이 계기가 되어 저는 평소의 습관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무심코 하는 작은 습관이 일과 직결되는 것 같습니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사는 것, 상대방의 말을 끊는 것, 상대방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몰라도 그냥 넘겨 버리는 것, 책을 대충 빨리 읽는 것 등등. 지난 1년을 돌아보니 이런 버릇이 제가 일하는 과정에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책 속의 내용과 제 삶의 연결고리를 찾지 않고 그냥 넘겨 버렸던 것도 다 이런 버릇 때문이었던 셈입니다. 아이고.
 
사소한 일이 큰일보다 더 어려운 법이라는 루쉰의 말이 이제야 귀에 들리기 시작합니다. 사고 싶은 것이 생기면 별 고민 없이 샀던 습관, 이것부터 극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달 가까이 옷을 안 샀더니 금단증상인지, 군것질이 조금 늘었습니다. 하지만 옷을 못사는 고통을 기꺼이 극복하면, 저는 옷으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다른 습관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겠지요. 하나씩 버리다 보면, 그만큼씩 제 안에 빈 공간이 생겨 다른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비어 있을수록 대상과의 거리가 줄어드는 셈이지요. 제가 주변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고, 조금 더 배려할 수 있고, 조금 더 거리를 좁힐 수 있다면 그 과정에서 융통성이란 자연스럽게 발휘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엇을 더 가지려고 애쓰기보다는 더 버릴 수 없는지를 늘 고민하려고 합니다. 습관이 달라진 저는, 지금보다는 분명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나는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에게 자동적으로 무엇인가를 주지만, 무엇을 줄 것인지 선택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진다는 것을."
- 같은 책, 114쪽

- 웹기획팀 이민정
무탄트 메시지 - 10점
말로 모간 지음, 류시화 옮김/정신세계사
2011/02/15 09:00 2011/02/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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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홍홍홍 2011/02/15 11:18

    저는 제가 '객관적'이지 못하고, '관찰자'이지 않기 때문에 상황에 대한 판단력이 부족한 것(융통성 없는 것)이라 생각해 왔습니다. 글을 읽고 나니, 오히려 상황에 자꾸만 거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나, 이전의 것들을 고집하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나 생각해 보게 되네요.

    • 그린비 2011/02/15 14:19

      홍홍홍님도 질문과 만나셨네요!
      변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도 항심을 유지하는 건 참 어렵네요.
      홍홍홍님도 화이팅입니다!!

  2. 도르래 2011/02/15 12:52

    관성에 거스르려고 힘을 주는 모습
    오 그게 참 아름답습니다! 응원합니다

    • 그린비 2011/02/15 14:22

      관성에 거스르려 힘을 주다 풀썩 쓰러졌다, 다시 후들거리며 서고 있습니다. 군것질이나 다른 걸로 눈 돌리지 않고 다시 맞서야겠어요! ㅠㅠ
      힘이 나는 말씀, 감사합니다. ^^*

  3. 무량수 2011/02/16 14:56

    융통성이라 말하셨지만 아마 이과쪽의 사고 개념과 문과쪽의 사고 개념의 차이에 대한 생각이라고 보이는데 맞는지요?? ^^;;

    그것이 맞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영어 문장 해석하면서 그런 차이를 느꼈답니다. 이과에서 문과로 바꾸면서 이과식 영어에 익숙해진 저에게 있어서 문과에서 사용하는 영어는 딴세상 영어 같았거든요. 마치 다른 외국어를 하나 더 배우는 듯한 느낌 같았다고 할까? 뭐 그랬거든요.

    물론 인용하신 부분에서 의도하는 동서양의 생각의 기준 차이와는 조금 다르겠지만 격어오신 경험은 문과적 이해와 이과적 이해의 차이에서 오는 다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

    • 그린비 2011/02/16 17:44

      그냥 유연하고 순발력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너무 어려운 목표를 잡았나 싶기도 합니다만...후후.

      무량수님의 말씀을 들으니 '이과식 영어'와 '문과식 영어'는 어떤 차이들이 있을까 궁금해지네요. 다른 외국어를 배우는 것 같다고 느끼셨다면, 엄청난 차이같은데요! ^^

  4. 무량수 2011/02/18 00:48

    뭐 오래 전 경험담이라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생각나는 것은 resistance라는 단어였어요. 제가 있던 공대가 전기 계열이었던지라 이 단어의 파생어들까지 줄줄이 꿰고 있었거든요. 보통은 저항이라고 하는데 전기 분야에서 저항은 전기의 단위를 표현하는데도 쓰이고 어떤 수학적 계산을 할 때도 쓰이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문과쪽에서는 이 단어를 그런 의미보다 어떤 투쟁의 느낌이 담긴 단어로 쓰지요.

    게다가 이과쪽 영어는 꽤 정형화되고 간결한 반면에 문과쪽 영어는 두루뭉술하고 에메모호하기 그지 없구요. 특히 이과쪽에서는 관용어구가 그다지 많이 사용되지 않는데 문과쪽을 오면 쉴새없이 쏟아지는 관용어구들 때문에 밑에 깔린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엉뚱한 이야기로 해석되기도 하고.. 뭐.. ^^;; 제가 그것 때문에 문과쪽으로 넘어오고 꽤 고생을 했었답니다.

    그래서 우스겟 소리로 이과애들은 전공서적을 벗어난 영어는 제2외국어처럼 느껴진다고 해요. 뭐 이과중에도 몇몇은 예외가 있긴 하지만요.

    • 그린비 2011/02/18 11:26

      오! 설명해주시니 이해가 쏙쏙 됩니다! ^^;

      저도 같은 단어지만 맥락마다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게 참 신기하고 어려웠어요. 저는 '존재'라는 단어를 무심코 썼다 지적당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생각하던 존재는 '뭔가 그냥 있다'라는 의미 정도였는데 생각보다 더 많은 것들을 표현하는 단어더라구요.

      근데 또 이렇게 풍부한(!) 의미를 알아가는 게 재밌네요.
      무량수님 감사합니다! ^^*

  5. 레몬에이드 2011/02/23 19:33

    거리감이라... 묘하게 동질감이 느껴지네요 ㅇㅅㅇ
    오랫만에 등장해서 뭔가 하나 또 깊게 느껴가네요... 잘 지내시죠?

    • 그린비 2011/02/24 09:17

      일과 생활의 거리, 책과 나의 거리, 상대방과 나의 거리... 이 외에도 우리가 알게 모르는 거리감들을 좁혀나간다면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든 몰입할 수 있지 않을까요? ^^
      레몬에이드 님도 잘 지내시죠? 자주 등장해주세요!! ^_^

  6. 히힣 2011/06/11 01:28

    정말고마워요 글쓴이님 정말 제이야기를 하는것같아요! 너무도움됐어요~~~
    히힣이제는 조금 저도 마음이 가벼워질것같아요~

    • 그린비 2011/06/11 02:56

      와~ 어쩐지 공감대가 형성되니 기쁘네요!!! ^^;
      (여전히 자연스럽게) 잘 되지는 않지만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니, 예전보다는 훨씬 마음이 편하네요.

      언제든지 블로그에 놀러 오셔서 편하게 말 걸어주세욧~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