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 편집후기

제가 소심한 줄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겁이 많은 줄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작년 말 ‘연평도 사태’ 때 말입니다. 진짜 전쟁이 일어나는 걸까, 미사일이라도 날아오면 어쩌지……. 고백하건대 저는 (6살 때 갔던 월미도 귀신의 집 이후 처음으로) 진심으로 ‘쫄았습니다’. 내후년이면 예비군도 끝나는데 ‘하필 이런 때’ 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가 전혀 없었다고는 말 못하지만, 그런 개인적인 소회(?)와는 ‘다른 종류의 두려움’이 분명히 섞여 있었습니다.
  아참, 그런데 이 살벌한 시기에, 확전이니 응징이니 하는 단어들이 연일 미디어를 장식하며 “군사주의가 턱밑까지 차오르던” 그때에 어이없게도(?) 감히 병역거부를 선언한 젊은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혹시 알고 계시나요? 2001년 오태양 씨 이래로 정확히 50번째의 ‘정치적 병역거부자’ 문명진 씨가 “끊임없는 전쟁의 시대, 살상을 거부할 권리”를 외치며 국방부 앞에서 병역거부를 선언했더랍니다. 물론 대부분의 매체는 별로 주목하지 않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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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선언하고 있는 문명진 씨는 "먼저 총을 내려놓아야 전쟁을 멈출 수 있다. 그것이 느리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런 무관심이 단지 ‘시국’ 탓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양심적 병역거부’ 하면 절로 이어서 떠오르는 ‘대체복무제’는 (처음 이 말 들은 게 도대체 언젠데!) 여전히 시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그러셨어요. 아무리 좋은 말도 세 번 들으면 질린다고……. 그러니 심리적 피로감이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겠죠. 하지만 더 결정적인 건, 그 피로감을 극복하지 못하게 하는 ‘거리감’이 아닐까 합니다. 병역거부는 보편적인 공감을 얻기에는 너무도 ‘극단적인 선택지’였고, 병역거부자는 ‘얼마간 부담스러운 존재’였습니다(저는 이 원고를 맡기 전의 제 얘기를 하고 있지만, 많은 분들도 비슷하게 생각하시지 않을까 싶네요). 아, 저희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종교나 신념의 충돌은 일단 피하고 보는 게 장땡이라고…….
  덕분에(?) 병역거부에 대해서는 그리 깊이 알지도 못했고, 알려 들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민주시민’답게 대체복무제 도입을 지지하는 포지션만을 취하고 있었을 뿐이죠. 하지만 저는 이 책의 초벌 원고를 읽고 제 마음속에 저도 모르게 세워져 있던 벽을 하나 발견했고, 그것을 어느 정도 허물어 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병역거부자들이 아주 별난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조금이라도 더 ‘인간적’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삶을 보존하려는 노력이 자본/국가의 거대한 힘에 의해 바스러져 갈 때 우리는 그 희생자들을 감싸고 응원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처지는 달라도 공감을 하게 되고, 그것을 출발점으로 삼아 연대하고 실천하고자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악랄한 정리해고에 저항하는 고공크레인 농성을 지지하고 있고,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젊은 예술가를 추모하고 있으며, 등록금 때문에 대학생을 자살로 내몬 사회적 조건에 분노하고 있지요. 이러한 ‘공감’의 마음과 이어지는 행동들이 우리를 괴물이 아닌 인간으로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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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비츠, <전쟁은 이제 그만> _ 1924년 석판화로 제작되어 독일의 거리 곳곳에 나붙었던 이 포스터는 반전운동 확산의 촉매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원고는 바로 그 ‘공감’을 통해 병역거부에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병역거부자들이 어떤 계기로 전쟁의 참혹함과 군사주의의 족쇄를 인식해 나갔는지, 그 안에서 어떤 괴로움을 느끼며 인생에서 결코 쉽지 않은 선택에 다다르게 되었는지를 찬찬히 따라가면서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또 그것을 ‘평화학’이라는 학문분야의 관점에서 하나로 묶어 내고자 하고 있었고요. 저는 이 독특하고도 의미 있는 책을 독자분들께도 꼭 보여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그 어느 집단보다도 제대로 ‘공감’받지 못하고 있는 병역거부자들이, 당장 눈앞에서 허덕이고 있는 수많은 빈곤/차별 계층은 물론이고 나아가 아직 우리의 시야에 들어오지 못한 이들의 잠재된 아픔에까지 누구보다도 ‘공감’하고자 한다는 점을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연평도 사태는 이 책의 초교가 진행 중일 때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제가 앞에서 말씀드린 ‘다른 종류의 두려움’에 관해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정체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던 전쟁의 참상이 이 땅 위에 펼쳐진다는 상상을 하니 너무 끔찍했고, 혹시 내가 살아남는다 한들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수많은 생명들이 권력자 몇 명의 손에 왔다 갔다 한다는 사실이 너무 억울했고, 전쟁을 겁내지 않는 사람들의 날선 말들에 묻어나는 결기가 겁났습니다. 쉽게 말해 전쟁 속에서 파괴될 모든 것들, 그 안에서 싹을 틔울 모든 것들이 두려웠다고나 할까요. 그러고 보니 전 이 책을 담당하지 않았더라면 전쟁 ‘따위는’ 시크하게 넘겨 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이런…… 저는 이 책 덕분에 겁쟁이가 되어 버렸지만…… 아무렴, 어쨌건, 그때 아무 일도 없어서, 정말로,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아무 일 없었으면 합니다.

- 편집부 태하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 - 10점
임재성 지음/그린비
2011/02/16 09:00 2011/02/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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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르쇠 2011/05/09 12:07

    스파르타 예기를 해봅니다.

    스파르타는 이웃 메세니아라는 도시를 이유없이 쳐들어가서 전 주민을 농노로 삼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스파르타 시민에게 할당합니다.
    스파르타인들은 매년 초마다 이유없이 젊은이들로 구성된 부대를 만들어 돌아다니면서 눈에 뛰는 메세니아 주민들을 학살합니다. 공포심을 주기 위해서이죠
    그리고 덩치가 크거나 전쟁에서 공을 세웠다면 어김없이 보상을 해준다는 명목으로 골라내어 죽입니다. 반란의 싹을 없에기 위해서이지요
    그런 상황을 지켜본 아테네인들이 왜 그러냐고 하니.. 상관 말라고 합니다.
    그런 상황을 300년이나 겪은후에야 메세니아는 해방됩니다.

    해방된 메세니아인들이 처음으로 한일은 자신들의 도시에 성벽을 쌓는거였습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철저한 군사훈련을 시키는것이었고 예외는 없었습니다.

    평화롭게 사니까 양심적 병역거부란 말도 나오는겁니다.

    사람들이 평화로와서 사회가 평화로운게 아니라
    평화로운 사회가 구성되었기에 사람들이 평화롭게 되는겁니다.

    소말리아 해적은 처음부터 나쁜사람들이 아니었을겁니다.
    그들의 폭력이 그들의 본질이 나빠서 나온건 아닙니다.

    그들의 사회가 그들을 폭력으로 내몰았기에 그런겁니다.

    내전을 겪고있는 소말리아처럼

    우리 남북한도 내전상황입니다. 다만 휴전시기라 평화로울 뿐이죠.

    양심적 거부는 사리분별 없게 보일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양심적 행동을 욕하진 않습니다.


    사람은 급하게 되면 양심도 저버릴수밖에 없고 또 그게 옳을 경우도 있으니까요.


    사회가 보호해주니 약자가 생존하는것이고. 약자의 주장이 먹히는거란 사실은 분명하니까요.

    사회를 보호하는것은 어디까지나 폭력입니다.

    이건 분명한거죠.

    • 그린비 2011/05/09 13:06

      모르쇠님은 '사회를 보호하는 것은 폭력이다'라는 전제에서 말씀해주셨지요.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는 그 폭력으로 인해 고통받고 상처받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공감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누군가 고통받는다면, 그 고통을 나와 내 주변의 사람이 받는다면, 사회는 그런 고통이 당연하다고 말한다면, 그 전제 자체에 대해 질문을 하는 것도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비록 현실과 괴리가 있다 하더라도 그런 시도를 계속 하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는 일 아닐까요?

    • 아무것도몰라요 2011/05/09 13:30

      모르쇠님을 '폭력으로' 보호해주고 싶어요.
      또는 '폭력으로부터' 보호해주고 싶네요. ^^

  2. 위메프대박 2019/04/0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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