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종문화 : 근대성 넘나들기 전략』 편집후기

네, 기다리고 기다리던 『혼종문화』가 출간되었습니다. 친구에게 『혼종문화』라는 책을 편집한다고 했더니 “너 복잡한 거 하는구나?”라고 답하더군요. ‘혼종’이라는 표현, 좀 복잡하게 다가오는가 봅니다.
사실 이 책에서 ‘혼종성’이란 복잡한 문화현상을 일컫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복잡하다는 게 개념 자체가 복잡하다는 게 아니구요,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이 다양한 문화적 현상으로 뒤얽혀 있다는 …… 얘기지요. 그러니까 거칠게 보면, 라틴아메리카라는 지역 자체의 토속문화와 서구에서 유입된 근대문화가 얽혀 있고, 여러 민족과 계급들의 삶이 거기에 또 얽혀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될 것 같습니다(아, 조금 모호합니다). 물론,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그 복잡성의 기준이 되는 것은 서구 근대의 원리라는 것입니다. 근대를 서구인들의 시선에서 볼 때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은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되는 것이지요. 여기서 예민한 분이라면, ‘근대가 뭔데?’라고 물을 법도 합니다.

‘근대’(modern)란 어떤 것일까요? 흔히 근대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위르겐 하버마스, 마샬 버먼, 미셸 푸코 등의 서구 이론가들에 기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종종 근대 철학의 시초를 알렸다고 평가되는 데카르트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합니다(“근대는 생각하는 ‘나’의 발견, 즉 세계를 대상화하는 주체의 발견이다”라고). 하지만, 저는 시선을 좀 달리해 볼까 합니다. 시선을 달리해서 ‘근대’라는 개념을 문제 삼는 이 책의 의도를 부각시켜 보고자 합니다.

이 책은 그린비출판사에서 출간하는 ‘트랜스라틴’ 총서의 네번째 책이기도 합니다. ‘트랜스라틴’ 총서의 기획의도를 설명하는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의 글 「<트랜스라틴>을 간행하며」에는 ‘근대’적 지식체계 속에 있는 한국 지식인들의 연구 풍토가 어떠한 것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라틴아메리카 연구를 하는 것은 씁쓸한 일이었습니다. ‘주변부’를 연구한 대가로 저절로 학계의 마이너리그로 떨어지게 되었으니까요. 당연하지 않느냐고 할 사람도 있을 겁니다. ‘남미병’을 들먹이거나 라틴아메리카의 ‘시원치 않은’ 국제적인 위상 운운하면서요. 하지만 라틴아메리카의 소중한 꿈, 다른 목소리, 심오한 성찰을 들려주어도 별로 소통되지 않는 국내 현실이 반드시 그런 이유 때문일까요?(「<트랜스라틴>을 간행하며」, 라틴아메리카의 근대를 말하다」, 4쪽)

우리가 오늘날 ‘인문학’이라 부르는 것이 너무나 서구중심화되어 있다면, 우리는 그 인문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제 머릿속에도 이미 맑스, 프로이트, 푸코, 벤야민 등의 서구이론가들이 세계를 설명하는 틀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서구의 시선에서 나를 본다는 것, 서구의 거울에 비춰진 ‘나’의 모습이 위태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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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와 사회진화론으로 인해 서구인들 사이에서의 인종적 우월감이 팽배했던 19세기. 고갱은 타히티의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찬양했지만 철저한 식민주의적 시각 또한 엿보인다. (타히티의 여인들, Paul Gauguin, 1892)

‘근대’라고 번역되는 영어 ‘modern’의 어원인 라틴어 ‘modernus’는 원래 그냥 ‘오늘날’을 의미하는 단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단어가 19세기를 전후로 하여 하나의 특정한 시대상을 의미하는 역사적 개념으로 변모한 것이지요. 어떤 시대상이었을까요? 그것은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을 기반으로 형성된 19세기 서구의 ‘문명’이었습니다. 그곳에는 국민국가라는 정치체제가 확립되었고, 자본주의라는 근대 경제의 새로운 메커니즘이 표면화됩니다. 당시 서구인들은 그러한 시대상을 ‘문명’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했고, 그것을 통해 자신들이 식민화한 지역을 인식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한편에는 문명(서구)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야만’(비서구)이 있다는 것, 한편에는 근대의 역사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역사 없는 삶이 있다는 것이지요. ‘근대’와 ‘문명’은 분리불가능한 개념쌍을 이루며, 서구의 식민주의적 인식틀을 생산해 냅니다.

이제 ‘근대’를 ‘오늘날’이나 ‘현재’라는 연대기적 의미에서 사용하는 사람은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 단어는 19세기 이후 서구의 시대상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채택됐고, 근대적 주체로 탄생한 서구가 ‘문명’이라는 범주로 포괄되지 않는 ‘비서구’ 지역의 삶을 대상화하는 프레임으로 기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서구로부터 대상화되었던 우리는 무엇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설명해야 할까요?
 
근대가 서구적 개념이라면, 먼저 그 개념을 상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서구 외부의 지역을 잘 알자는 취지를 넘어 식민주의적으로 규정된 근대의 범주를 해체하자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이 책 『혼종문화』가 갖는 중요한 함의가 있습니다. 하나의 시대상(서구)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라틴아메리카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라는 개념 자체의 패러다임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의 문제의식입니다. 그 문제의식은 ‘혼종성’이라는 개념으로 표현됩니다. 하나가 아닌 근대, 하나가 아닌 계급, 하나가 아닌 민족이 하나의 시대 속에 공존한다는 것(그래서 혼종성이란 복잡한 것을 지시하는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민속학과 사회학, 그리고 인류학이 서로 교차되고 융합되어야 합니다. 그곳에서는 정치를 사유하는 방법에도 보다 복합적이고 의미론적인 전략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이 책을 편집하면서 저는 이 책이 보다 깊고 진지하게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깊고 진지하다는 것은 라틴아메리카의 정보를 얻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 우리의 시대를 성찰하기 위한 독서가 이 책과 함께 시작되길 바란다는 것입니다. 라틴아메리카라는 저 먼 곳에서 우리의 성찰을 촉발하는 또 다른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 편집부 고태경
혼종문화 - 10점
네스토르 가르시아 칸클리니 지음, 이성훈 옮김/그린비
2011/02/21 09:00 2011/02/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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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Brave Trials Cheats

    Tracked from Brave Trials Cheats 2014/10/17 10:08  삭제

    그린비출판사 :: [편집후기] 탈식민적 문화연구의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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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르래 2011/02/21 11:01

    그렇군요, '라틴아메리카의 소중한 꿈'을 말하는 것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근대라는 개념을 망가뜨려버리는군요.

    그런데 고갱의 그림에서 '식민주의적 시각'이란 어떤 건지 좀 풀어서 말씀해주실 수 있는지요?

    • 그린비 2011/02/21 15:39

      안녕하세요. 도르래님~

      저도 포스팅 준비를 하면서 그림을 보다가 알게 되었는데요, (그림을 풀어서 설명해 드릴 실력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고갱은 산업혁명으로 오염된 서구 문명에서 벗어나 순수한 자연의 예술을 추구하기 위해 타히티로 가서 그들과 함께 살며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예술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타히티 원주민들은 그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어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는데, 정작 그들의 삶과 입장은 배제된 채 미화되어 표현되었다는 것이죠. 그리젤다 폴록의 『고갱이 타히티로 간 숨은 이유』라는 책이 관련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2. 문혜진 2011/08/17 03:42

    격식을 갖춰야할 다소 공식적인 내용을 댓글의 형식으로 쓰는 것이 적합한 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곳이 알라딘에 링크된 그린비 출판사의 대표 블로그로 보이고 담당 편집자의 이메일 주소나 여타 정보를 알지 못하는 고로 여기다 씁니다.

    저는 몇달 전 '혼종문화'를 구입한 독자이고, 이런저런 일에 치여 읽지 못하다가 최근에서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몹시 당황스러운 점을 발견하고 출판사의 답변을 듣고 싶어 글을 남깁니다.

    저는 '혼종문화'라는 책의 존재를 포스트식민주의를 공부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정확히는 Robert Young의 '트리컨티넨탈리즘'을 읽으면서였던 것 같습니다. '혼종 문화'는 라틴 아메리카 포스트식민주의의 고전이고 그래서 원서로 읽을 생각을 하고 있던 터에 번역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몹시 기뻤고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영어 중역이 아니라 스페인어 원서를 직접 번역해주신 것 같아서 더욱 그러했고요.

    그런데 어떤 연유로 학술서에 참고문헌이 수록되지 않은 것인지요.
    설마 제 책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고, 저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특히 책 서문에 '혼종성'에 대한 기존의 여러 관점의 해석들이 설명되어 있는데,

    예를 들어, 12쪽의 " 상호민족적이고 탈식민적인(Bhabha; Young), 세계화(Hannerz), 여행과 국경의 교차(Clifford), 예술과 문화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융합(De la Campa; Hall; Martin Barbero; Papastergiadis; Webner) 등을 묘사하기 위해 이 개념이 사용되고 있다"

    같은 부분에서, 본문에 해당 학자들의 이름만 병기해놓고 참고문헌이 없으면 대체 그 학자들의 어떤 책을 가리키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국내에 '혼종성' 관련 연구는 아직 부족한 상태라 칸클리니의 이 책은 혼종성 연구의 지형도를 그려주는 귀중한 지도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지도책에 인덱스만 있고 내용은 다 지워진 형국이니 책의 가치는 최소한 절반이하로 반감됩니다. 참고문헌이 부재한 '혼종문화'는 칸클리니의 해석과 주장만을 전달하는 역할만 할 뿐, 이를 위해 그가 공부하고 체계화한 혼종성 이론의 전반은 손가락 사이로 흘러가 버립니다.


    아마도 역자는 원서의 포맷 그대로 번역을 하신 것 같고, 이를 편집부에 넘기신 것 같은데 편집부에서 뒷쪽의 참고문헌 수록을 누락하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최종 원고 체크시 역자가 왜 이를 체크하지 못했나도 의아하지만, 설마 고의로 누락했다고는 생각되지 않고 꼼꼼하게 챙기지 못한 탓이라 생각됩니다. 허나 그렇다 하더라도 이는 학술서에서는 실수로 보기엔 너무나 큰 오류입니다. 책의 구실을 반쪽 밖에 못하는 것이니까요. 아니 조금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이는 학술서에 대한 기본 개념이 없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종류의 명백하고 커다란 실수입니다.


    공부하는 사람인 저로서는, 참고문헌의 부재 하나 때문에 원서를 다시 사야할 것 같습니다. 책을 산 독자가 원서를 다시 구입해야 한다면 한국어판의 출간 의의가 무엇인지요.

    편집상의 부주의함때문에 5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의 학술서를 힘들게 번역하고 좋은 해제까지 달아주신 역자의 노고에 흠집이 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국내에 인문서 출간이 출판사 입장에서 얼마나 어려운가를 모르지 않는터라, 그린비 출판사에 대해서는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건은 저로서도 충격이었습니다.

    이 책이 트랜스라틴 총서라 본디는 다른 시리즈도 사려고 했는데.. 지금으로서는 서점에 가서 참고문헌 유무를 확인한 후 사야할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2쇄를 찍게 되시면, 반드시 참고문헌을 추가해주시고 이를 인터넷 서점의 책 소개에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린비에서 출간하시는 다른 학술서에서도 참고문헌을 반드시 수록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힘들게 애써서 만드신 학술서가 그저 표면적 전달에 그치지 않고 온전히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린비 2011/08/17 12:06

      안녕하세요. 문혜진 독자님.
      그린비 출판사 편집장 박순기입니다. 먼저 저희 책을 아끼고 찾아주셨는데,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지적해 주신 사항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독자님께서 본문을 들어 말씀해 주신 곳은 <신판 서문>인데요, 이 부분을 확인한 결과 <신판 서문>의 참고문헌이 편집과정에서 누락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술서 편집에서 기본적으로 챙겨야 할 사항을 누락한 중대한 실수, 진심으로 사죄 말씀드립니다. 저희 책을 아껴주시는 독자님께 불편과 실망을 드려 무어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다만, 본문 전체의 참고문헌은 누락된 것이 아니라, 본문의 각주에 서지사항을 모두 밝혀 놓았기에 생략했던 것이었습니다. 저희가 학술서를 편집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인용문헌 및 참고문헌입니다. 그렇기에 저희 책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미주나 후주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각주 형식을 주로 이용하는 있는데요, 이 역시 학술서를 보는 독자님들께는 이것이 소중한 정보임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도 각주에 있는 정보라 하더라도 다시 한번 참고문헌을 뒤에 달아주었다면 독자님들이 전체를 일별하시기 편하시겠다는 걸, 이번 독자님의 질책 속에 제대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 앞으로도 더욱 독자님들 입장에서 편집해 나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위에 말씀드린 누락된 "신판 서문"의 참고문헌 데이터는 저희 홈페이지 <혼종문화> 책 정보란에 올려 놓도록 하겠습니다. 독자님께는 따로 메일로 보내드리고 싶지만, 이메일을 남겨 놓지 않으셔서요.... 혹시 이곳에 메일 주소를 남겨 주시거나 저희 사무실로 전화를 주신다면 따로 "신판 서문"의 참고문헌 파일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저희의 실수로 독자님께 불편함을 드려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앞으로 편집부 전원이 더 주의하고 고민해서 이런 실수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진심으로 죄송하고,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_ _)

    • 그린비 2011/08/17 15:49

      홈페이지 책 소개 페이지에 '신판 서문' 참고문헌을 다운받으실 수 있도록 올려둔 상태입니다.
      http://www.greenbee.co.kr/book/book_view.php?article_id=219
      불편함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ㅠㅠ

  3. 비밀방문자 2011/08/17 15:48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그린비 2011/08/17 15:59

      말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신판 서문' 참고문헌은 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앞으로도 노력하는 그린비가 되겠습니다~ (_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