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을 예감하는 이들의 목소리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출간기념회 후기

지난 2월 22일(화),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그린비, 2011)의 출간기념회가 있었습니다. 홍대 앞 어느 작은 클럽에서 열렸는데요. 저와 우리 그린비 식구들 몇 명이서 그 축하의 자리에 함께했습니다.

“평화의 링겔을 꽂아라!” 출간기념회가 열리던 행사장 무대의 배경으로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습니다. 행사장으로 막 들어간 제 눈에 그 플래카드의 문구가 들어옵니다. ‘평화의 링겔(링거)’이라! 군사주의에 감염된 이 세상에 평화의 링거를 꽂는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시원해집니다. 연평도 사태로 해병대 지원이 늘어나는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아마 저 링거의 바늘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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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를 비롯하여 무수한 폭력에 저항하는 이들이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의 출간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다.

‘빵’ 이라는 귀여운 이름의 클럽. 그 작은 공간에 사오십 명의 참가자들이 있습니다. 병역거부를 실천하고 있는 이들, 군사주의적 폭력에 저항하는 활동가들, 그리고 일상에서 무수한 폭력의 흔적들을 발견하는 이들이 이 책의 출간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흔히들 출간기념회라 하면 저자의 업적을 축하하는 형식적인 자리를 떠올리곤 하지요. 그러나 이곳의 분위기는 조금 다른 듯했습니다. 비단, 책 속에 징병제에 반대했던 많은 이들의 이름이 나오기 때문은 아닐 듯합니다.

기념식이 시작되자 한 분 한 분 무대에 올라가 책에 대한 소감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공감’, ‘활동가와 학자 사이’, ‘세상을 진보케 하는 거부’ 등의 표현들이 들려옵니다. 그 표현들을 들으며 저는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없는 감성의 무능력이 이 군사주의적 폭력을 낳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자가 활동가로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없었다면, 결코 이 책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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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들.(왼쪽부터 유정민석 씨, 저자 임재성 씨, 박석진 씨)

무대 위에는 저자와 함께 오랜 시간 군사주의적 폭력에 저항했던 이들이 올라가 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그들이 함께 했던 시간의 긴 울림이 있습니다. 91년 고(故) 강경대 열사 사망 당시 전투경찰로 복무하고 있다가 병역거부 선언을 했던 박석진 씨, 자신의 동성애적 정체성을 밝히며 징병제의 ‘남성’ 만들기에 저항했던 유정민석 씨가 병역거부 선언 당시의 심정을 들려줍니다. 그들은 예민해 보이고, 그래서 ‘감히’ 국가의 군사주의적 폭력에 대항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입니다. ‘병역거부’ 앞에 붙는 ‘양심적’이라는 말, 어떤 결단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소심하고, 예민하며, 나약한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소심하고 예민하며 나약하다는 것, 저는 ‘양심’이라는 말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단어들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낍니다. 그들은 양심의 무게로 병역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그저 세상의 숱한 폭력을 느꼈을 뿐이라고 합니다. 군사주의가 낳은 폭력성을 견딜 수 없어 그들은 병역거부를 선택합니다. 폭력을 느꼈다는 것이 범죄가 되는 것, 이 사회가 낳은 아이러니입니다.

행사 중에 평화운동 단체 ‘전쟁없는세상’의 활동기록이 담긴 영상물이 상영되었습니다. 함께 웃고 토론하고 저항하며 쌓였던 시간이 그 한 장의 필름 속에서 지나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영상물에서 이 책의 저자 임재성 씨가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부모님’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순간 그에게서 눈물이 쏟아집니다. 그는 ‘병역거부’라는 말만 들어도 아들의 구속으로 절규하시는 부모님께 이 책을 드릴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이 책의 「책을 내며」). 그 이야기를 읽으며 저에게서도 눈물이 납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책을 통해 자신의 번민, 외로움 그리고 고통이 저 감옥의 좁은 방을 벗어나 세상에 표현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이곳은 행복한 공간이 되고, 이 공간을 함께한 제 마음도 행복해집니다. ‘병역거부’라는 말에는 폭력을 느끼고, 그 폭력이 사라지길 바라는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이 행복한 소망이 이 책에 실려 다른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리라 생각합니다.



- 편집부 고태경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 - 10점
임재성 지음/그린비
2011/03/01 09:00 2011/03/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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