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낭만주의’라는 표현은 대부분 무언가를 풍자하거나 조롱할 때 사용된다. 현실도피적인 경향, 외적․내적 조건들을 무시한 공상적인 사변 등을 지칭할 때 우리는 ‘낭만주의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낭만주의’에 관해 우리는 실제로 무엇을 알고 있는가? 이런 통념들을 제외하면, 낭만주의자들의 사유와 언어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낭만주의, 특히 초기낭만주의에 관해 갖고 있는 인상은 그것이 철학보다는 감성을 중요시한 문학 운동이었고, 중세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보수적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낭만주의의 명령, 세계를 낭만화하라』에서 바이저는 이런 편견을 거부하고, 초기낭만주의가 일관된 철학․세계관이었으며, 나아가 당대의 현실을 개혁하려 한 정치적 운동이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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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프레더릭 바이저는 현재 시러큐스(Syracuse) 대학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성의 운명: 칸트에서 피히테까지 독일철학』(1987), 『계몽, 혁명 그리고 낭만주의: 1790~1800 근대 독일의 정치 사유의 탄생』(1992), 『독일관념론: 주관주의에 대한 투쟁. 1781~1801』(2002), 『헤겔』(2005) 등의 저서를 집필한 계몽주의․독일낭만주의․독일관념론 연구의 권위자이며, 『낭만주의의 명령, 세계를 낭만화하라』(2003)는 국내에 처음 번역되는 그의 저서이다. 바이저의 방대한 문헌연구, 치밀하고 객관적인 분석, 명료한 서술 스타일을 통해 우리는 초기 독일낭만주의에 대해 그간 갖고 있었던 편견을 깨뜨릴 수 있을 것이며, 초기낭만주의자들의 사유가 현재에 던져 주는 의미까지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초기낭만주의자들의 미학적 혁명은 훨씬 더 급진적이어서 예술과 학문의 개혁을 위한 모든 계획을 훨씬 넘어섰다. 그것은 세계 자체를 낭만화하여 개인, 사회 그리고 국가가 모두 예술 작품이 되게 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했기 때문이다.  세계를 낭만화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소설이나 시로 만드는 것을 의미했으며, 그리하여 우리의 삶은 파편화된 근대 세계에서 잃어버린 의미와 신비, 마법을 되찾게 될 것이었다. 초기낭만주의자들은 우리 모두가 내면의 깊은 곳에서는 예술가임을 열렬히 믿었으며, 낭만주의적 기획의 목적은 우리 안에서 잠자고 있는 예술가적 재능을 일깨워 각자가 자신의 삶을 아름다운 전체로 만들게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초기낭만주의자들의 핵심적인 목표는 예술을 책과 연주회장, 박물관으로 한정시키고 세계를 매우 추한 곳으로 만들어 버린 예술과 삶 사이의 장벽을 깨부수는 것이었다.( 『낭만주의의 명령, 세계를 낭만화하라』, 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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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편견을 깨기: 보수적 문학 운동에서 개혁적 정치 사상으로

서구의 근대 지성사에서 ‘독일낭만주의’는 주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 왔다. 낭만주의가 당대의 반동적․보수적 흐름을 대표했고, 나치 시기에는 파시즘의 주도적 이데올로기로 기능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반대로 최근 들어 낭만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에 영감을 준 사조로 이해되어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프레더릭 바이저는 낭만주의에 대한 전통적 해석과 포스트모더니즘적 해석 모두가 일면적이라고 비판한다. 『낭만주의의 명령, 세계를 낭만화하라』의 목표는 이 두 해석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두 가지 오해를 교정하는 것이다. 그 오해는 낭만주의, 더 정확하게는 초기 독일낭만주의가 하나의 ‘문학’ 사조였으며, 나아가 사회정치적 현실에서 도피하려 한 ‘보수적’ 운동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이저가 보기에 이런 평가는 후기낭만주의(1815~1830)의 성격을 초기낭만주의(1797~1802)에까지 확장 적용해 부당하게 일반화한 것이다. 그는 이런 오해에 맞서 초기 독일낭만주의가 하나의 철학이었으며, 정치적으로는 개혁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바이저는 지금껏 알려져 온 낭만주의의 상(象)을 깨고 초기낭만주의자들의 사유를 ‘그들이 직면한 문제, 그들의 언어 그 자체’를 통해 이해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낭만주의자들의 철학적․정치적 문제의식, 그들이 내놓은 해결책, 그들 사상의 의의와 한계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세계를 낭만화하라!: 초기낭만주의의 급진적 명령

초기 독일낭만주의의 주도적 사상가들―프리드리히 슐레겔, 아우구스트 빌헬름 슐레겔, 프리드리히 셸링, 노발리스 등―의 핵심 개념은 낭만시(romantische Poesie)였다. 이들은 낭만시 개념을 정립하는 것을 주요한 목표로 삼았고, 이 때문에 낭만주의에 대한 기존 연구도 낭만시 개념의 의미를 밝히는 데 주력해 왔다. 그런데 문제는 낭만시 개념이 문자 그대로 ‘시’(poetry)로만 받아들여진 탓에, 낭만주의가 철학과 정치학보다는 문학 연구의 대상이 되어 왔다는 것이다. 바이저는 낭만주의자들의 텍스트를 면밀하게 분석한 뒤, ‘낭만시’ 개념이 ‘시’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그들에게 포에지(Poesie)란 “모든 창조적 활동”을 의미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낭만시’는 낭만주의자들이 문학뿐 아니라 이 세계 전체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사용한 개념이다.

초기낭만주의자들은 낭만시 개념을 통해 자신들의 형이상학․정치학․윤리학을 확립하려 했다. 초기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사상가인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칸트의 정언명령에 버금가는 낭만주의의 명령으로서 “세계를 낭만화해야 한다”라고 선언했고, 또 다른 핵심적인 낭만주의자 노발리스는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시적 국가”(poetic state)라는 용어로 표현하기도 했다. 바이저는 ‘낭만시’라는 용어와 ‘세계는 낭만화되어야 한다’라는 명령을 정치와 윤리, 철학을 포괄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는 낭만화되어야 한다’는 명령은 세계를 문학의 영역으로 축소하라는 유미주의적 선언이 아니며, ‘낭만화’라는 그들의 이상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이렇게 보면, 낭만주의가 단순한 문학 운동이었다는 가설은 유지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낭만시 개념을 이렇게 철학적․정치적․윤리적으로 확장할 때, 비로소 낭만주의자들의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이상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낭만화’란 무엇인가? 이 용어를 통해서 낭만주의자들은 무엇과 대결했고, 어떤 이상을 제시한 것인가?

계몽의 계몽: 개인의 완성과 유기체적 국가를 위하여

초기낭만주의자들은 계몽의 ‘비판 정신’에 공감했다. 하지만 이성만을 강조한 계몽은 끝없는 회의주의와 공동체 감각의 상실로 귀결되었다. 그래서 낭만주의자들은 계몽을 계승하면서도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걸음을 내딛는다. 그들은 세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세계의 아름다움과 신비, 삶의 마법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을 지향했다. 이러한 인간성은 문화(Bildung)를 통해 형성되며, 그 결과 사람들은 이성과 감성의 통일, 자기–실현, 사랑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윤리학은 초기낭만주의의 정치학과 직결된다. 초기낭만주의자들은 국가와 개인이 유기체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공동체국가를 꿈꾸었다. 그들에게 유기체적 공동체국가는 문화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정치체였다. 이 국가에서는 전체와 부분이 분리되지 않으며, 각각의 성장이 나머지의 성장의 조건이 된다. 후대의 사상가들은 낭만주의자들이 정치적으로 보수적이었으며, 그들의 국가관이 전체주의의 시조라고 말한다. 하지만 바이저에 따르면 이는 큰 오해다. 낭만주의자들은 열렬하게 프랑스 혁명을 옹호했으며, 공동체적․유기체적 국가관을 내세운 것도 혁명이 변질되어 더 이상 국가가 개인의 자기–실현을 도울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세계는 낭만화되어야 한다’라는 초기낭만주의자들의 명령은 개인과 사회, 자연에 대한 철학적 세계관을 집약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낭만화’는 현실과 무관한 공상 속에서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는 보수적인 세계관을 드러내는 표현이 아니다. 바이저가 밝혔듯이, 이들은 자유로운 교제가 가능한 유기체적 국가 안에서 사람들이 아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초기낭만주의가 단순히 문학 운동에 불과한 것도, 보수적인 운동도 아니었다고 바이저가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오히려 초기낭만주의자들은 계몽의 비판 정신이 지닌 회의주의적 경향을 넘어 인간의 인격 성장과 공동체의 확립까지 고민한, 계몽의 계몽과 근대성의 완성을 추구한 개혁적 사상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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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슈바인, <로마 캄파냐의 괴테> _ 슐레겔은 낭만시의 목적이 "시를 사회적이고 살아 있는 것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사회와 삶을 시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낭만주의의 명령, 세계를 낭만화하라』, 52쪽)

낭만주의의 유산: 역사적 재구성에서 현재적 의의까지

『낭만주의의 명령, 세계를 낭만화하라』에서 프레더릭 바이저는 방대한 문헌연구, 역사적․철학적 배경조사, 명료한 서술을 통해 낭만주의자들이 사회정치적 현실에서 도피해 문학의 영역에만 안주하려 한 유미주의자들이 아니었으며, 이들의 사상이 당대의 현실을 개혁하려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임을 설득력 있게 입증한다. 이런 시도는 초기낭만주의자들의 사유를 그 역사성 안에서 재구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는 초기낭만주의자들의 역사적 한계 역시 놓치지 않고 지적한다. 스피노자와 칸트, 피히테를 종합하려던 그들의 형이상학적 시도는 결국 해소될 수 없는 아포리아를 남겨 놓았다. 또 그들은 후기에 이르러 결국 종교를 옹호했고, 정치적으로는 보수 운동으로 선회하게 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이 결국 옳았는가 틀렸는가라는 양자택일이 아니다. 지성사가의 임무는 그들이 맞닥뜨린 구체적인 상황이 무엇이었고, 그들이 이 상황에서 무엇을 성취하고자 했는지를 그들 자신의 언어를 세밀하게 살핌으로써 밝혀내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프레더릭 바이저의 『낭만주의의 명령, 세계를 낭만화하라』는 낭만주의 연구뿐 아니라 지성사 서술의 전범을 보여 주는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프레더릭 바이저는 초기낭만주의자들이 가졌던 복잡다단한 사유의 가닥들을 살펴 가며, 우리가 알지 못했던 초기낭만주의의 면모들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초기낭만주의의 실제 모습뿐 아니라 그들의 사유가 오늘날 지니는 의미까지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초기낭만주의자들이 직면했던 문제는 현재의 우리 역시 고스란히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초기낭만주의자들은 회의주의와 소외, 공동체를 고민했고, 이는 여전히, 아니 오늘날 한층 더 사람들을 고통스럽고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는 문제들이다. 근대성이 야기한 질병들에 대한 이들의 사유가 완벽한 해답을 던져 주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맞섰던 문제들이 여전히 우리의 것으로 남아 있다면, 그리고 그 문제들 앞에서 다시금 새로운 꿈을 꾸려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은 먼저 앞서 꿈꾼 이들의 발자취를 알아야 할 것이다”(「옮긴이 후기」, 352쪽). 지금껏 오해되었던 초기 독일낭만주의의 이상과 한계를 보여 주는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그들의 유산 상속자임을 깨닫게 될 것이며, 그들의 목표와 모순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그들보다 한발 더 나아갈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동서고금을 가로지르는 사유의 공간, 
삶의 근본 문제를 질문하는 '철학의 정원'

시리즈!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정원(아카데미)에는 제자들뿐만 아니라 어린아이와 노인, 여성, 노예가 함께 모여 철학을 했다. “너는 무엇을 먹고 마실까보다 누구와 먹고 마실까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했던 그와 제자들은 각자 형편에 맞는 기부금을 내고 함께 공부하고 우정에 넘치는 공동생활을 영위하면서 간소하면서도 지고지순한 정신적 쾌락을 추구하였다. ‘철학의 정원’은 그러한 열린 철학의 정신을 표방한다.

그 열림 아래 '철학의 정원'은 사유의 종(種) 다양성을 실현하는 공간이고자 한다. 동양과 서양, 고전과 현대 철학에 얽매이지 않고 시대와 사상을 넘어 삶의 근본 문제를 질문하는 철학 텍스트들이 이 정원에 모이게 될 것이다. "나는 인간 행동을 조롱하지도 한탄하지도 저주하지도 않고 오히려 인식하기 위해 진력해 왔다"던 스피노자처럼,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을 '인식'하려는 열정으로 채워진 철학적 텍스트들의 웅성거림이 넘치는 공간을 '철학의 정원'은 꿈꾼다.

○ 근대적 세계관을 탄생시킨 자연 철학자들의 위대한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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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련 출신 철학자, 현대 철학자 10인을 만나 새로운 사회의 가능성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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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의 명령, 세계를 낭만화하라 - 10점
프레더릭 바이저 지음, 김주휘 옮김/그린비
2011/03/02 09:00 2011/03/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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