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Romanticism)는 대개 산업 혁명 이후 18세기 중반 서유럽에서 발생한 예술 사조로 이야기됩니다. 그러나 『낭만주의의 명령, 세계를 낭만화하라』의 저자 프레더릭 바이저는 "초기낭만주의를 미학적 운동으로 보는 것은 전적으로 옳지만, 미학적인 것을 문학과 비평으로만 한정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라고 말합니다.
  이번 주에는 낭만주의 시기에 속했던 회화들을 통해, 낭만주의가 어떤 분위기였는지 함께 느껴보고 싶습니다. 저자는 미술 작품을 통해 낭만주의를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낭만주의의 전부는 아님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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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레이튼(Frederic Leighton, 1830~1897), <Flaming June>

프레드릭 레이튼은 빅토리아 여왕이 그의 작품을 살 정도로 당시에 잘 나가는 화가였다. 최초로 '남작'작위를 받은 화가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그렸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빼어난 외모를 자랑하는 것이 특징! 그는 1855년부터 1859년까지 파리에 살았으며 당시 들라크루아, 밀레, 앵그르와도 교류가 있었다고 한다.

낭만주의 윤리학의 핵심 개념은 사랑이다. 낭만주의자들은 한때 계몽과 칸트-피히테 윤리학에서 이성에 부여되었던 모든 위상을 사랑에 부여했다. … 슐레겔은 사랑과 법의 관계는 정신과 문자의 관계와 같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사랑은 이성이 단지 코드화하는 것을 창조한다. 사랑의 힘은 진정 모든 도덕 규칙을 초월한다. 사랑은 고무하지만 법은 억압하고, 사랑은 용서하지만 법은 처벌한다. 또한 사랑은 이성보다 훨씬 더 강력한 “의지의 결정 근거”―칸트가 말하듯―이며, 훨씬 더 효과적인 도덕적 행동의 자극제이다. 개인을 공동체와 국가에 묶어 주는 끈은 이성의 보편적 규범이 아니라 애정과 사랑의 헌신이다.(191~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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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던컨(John Duncan),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잠자는 숲 속의 공주」는 1697년 샤를 페로의 『어미 거위 이야기』에서 처음 발간되었다. 이 작품은 이후 오랫동안 구전되고, 번역되었다. 차이코프스키는 이 이야기를 발레모음곡으로 작곡했다. 저주에 걸려 잠이 든 공주를 왕자의 키스로 깨운다는 설정은 익숙하다 못해 너무 뻔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하지만 잠을 깨운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면, 그것이야말로 마법 같은 일이 아닐까?

예술가는 오직 사랑의 고무하는 힘을 통해서만 우리 감각을 낭만화할 수 있다. 모든 사물을 사랑의 정신에서 볼 때만 우리는 세계를 다시 신비화할 수 있다. 즉 그것의 잃어버린 미와 신비, 마법을 재발견할 수 있다. 사랑을 통해 우리는 자연과 타인들 안에서 우리를 보고, 그래서 다시 세계와 일체가 되며, 다시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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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 1732~1806), <빗장>

프라고나르는 프랑스 화가이자 판화 제작자이다. <빗장>은 1778년경의 작품이다. 작품 속에서 빗장을 열려는 남자와 그에 저항하는 여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그림은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라는 소설의 표지로 쓰이기도 했다. 『위험한 관계』 속 메르퇴유 후작 부인과 발몽 자작은 퇴폐적인 사랑 놀음의 달인들로 18세기 파리 사교계를 무대로 그들의 솜씨를 마음껏 뽐낸다. 메르퇴유 부인은 사교계에 들어온 뒤 자신의 인격이 형성된 과정을 밝힌 편지에서 "나 자신 또한 나 자신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라고 쓰기도 했다. 이 작품은 발표 당시 선정적인 내용 때문에 큰 스캔들을 일으켰지만, 스탕달, 보들레르 등 후세의 작가들은 그 매력을 찬양했다고 알려졌다.

낭만주의자들의 사랑의 재발견은 그것의 정신적인 의미를 재평가하는 데 근거했지만, 그들이 사랑의 육체적 뿌리를 결코 경시하거나 폄하하지 않았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욕망을 교육하는 것은 우리의 정신성뿐만이 아니라 감성을 불러일으키고 계발하는 것을 의미했다. 우리는 성(性)을 받아들이고 즐기는 법을 배워야 하며, 성을 사랑의 일부로 간주해야 하고, 완성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성적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프리드리히 슐레겔의 소설 『루친데』(Lucinde)의 핵심 주제였는데, 이는 당대의 대중에게 충격을 주었다. 여기에서 슐레겔은 성을 결혼 안에서만 정당한 것으로 여기고 결혼을 가족의 편의 문제로 보는 억압적인 사회 규범에 항의한다. 만약 이혼과 4인 공동생활이 개인성과 인간성의 발전을 가져왔다면 그는 거기서 어떠한 잘못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며, 결혼과 순결이 억압과 경멸로 귀결되었다면 거기서 어떠한 올바름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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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슐레겔의 『루친데』, 독일어판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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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와 그의 약혼자였던 프리데리케 브리온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괴테를 이름 있는 작가로 만든 베스트셀러였다. 작품의 많은 인기 때문에 주인공 베르테르의 옷차림이 유행하고, 베르테르 인형이 팔려 나가고, 베르테르처럼 권총 자살을 기도하는 젊은이들까지 나타났다. 작품 속 베르테르는 사랑하는 여인 샬로테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자 자살한다. 이런 이야기가 왜 베스트셀러가 되었을까?
  저자 괴테는 베르테르처럼 자유로운 연애를 했는데, 그림 속에 등장하는 프리데리케에게는 일방적으로 약혼 파기를 통보하기도 했다. 그녀와 헤어진 후에 『제젠하임 시가집』을 썼는데, 괴테는 이 책을 프리데리케에게 바친다고 적었다.(왜?)

『제젠하임 시가집』에 수록된 「5월의 노래」읽기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능력을 가진 진실한 인간들과의 우정과 사랑을 통해서가 아니면 그리고 우리들과 우리들 안의 신적인 것과의 접촉을 통해서가 아니면 인간성을 접종할 수 없고, 덕을 가르치거나 배울 수 없다.
  독일낭만주의의 역설은 인류의 교육에 대한 순전한 확신과 헌신, 그러나 이것을 이루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는 인식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론과 실천 사이에 눈에 띄는 간극을 갖게 된다. 그런데 이 간극을 극복하는 것이 바로 낭만주의의 목표였다. (194쪽)


낭만주의의 명령, 세계를 낭만화하라 - 10점
프레더릭 바이저 지음, 김주휘 옮김/그린비
2011/03/04 09:00 2011/03/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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