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에 관한 이상과 현실

“계급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먼저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를 알아야 한다. 중산층은 ‘속물’이라는 말에서 그쳐버린다면 아무 도움도 안 된다. 속물근성이란 것이 일종의 이상주의와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다. 그런 근성은 중산층의 자제가 목 씻기와 나라 위해 목숨 바칠 각오를 배우는 것과 거의 동시에 ‘하층민’을 멸시하는 법을 배우는 초등 교육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 어느 부르주아 사회주의자를 봐도 그렇다. 그는 이론상으로는 바리케이드에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지만, 아직도 양복 조끼 맨 아래 단추는 채우지 않는다. 그는 프롤레타리아를 이상시하지만, 그의 습성이 그들과는 너무 무관한 게 놀랍다. 치즈를 칼끝으로 찍어 입에 넣는다거나 모자를 쓰고 실내에 앉아 있다거나 접시에 고인 차를 마신다거나 하는 일은 그로서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한 시간이 넘도록 자기 계급을 비판하는 장광설을 들어본 적은 여러 번 있어도, 프롤레타리아의 식탁 예절을 익힌 경우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도대체 왜 그럴까? 이유는 속으로는 프롤레타리아의 몸가짐을 역겨워한다는 것밖에 없다. 노동 계급을 혐오하고 두려워하고 무시하도록 배운 어린 시절의 교육에 아직도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 조지 오웰,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이한중 옮김, 한겨레, 177~184쪽

예전에 난 육체노동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땀 흘려 일했던 소소한 기억 때문인지, 집안의 모든 물건을 뚝딱뚝딱 만들고 고치는 아버지들의 모습 때문인지, 영화 속의 근육질 몸매에 대한 동경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육체노동이야말로 노동 중의 노동이며,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없다 생각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인 것 같다. 작년 한 해 동안 가까운 친인척 세 분(모두 육체적으로 고된 직업에 종사하신다)은 각각 허리디스크, 목디스크, 화상으로 고생하셨다(모두 입원치료와 수술이 필요하셨다). 당진의 29세 청년은 용광로에서 생을 마감했고,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은 백혈병으로 쓰러졌으며,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의 절반은 직업병 환자라고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가까운 곳에선 외국인노동자들의 손가락 절단 사고가 끊이지 않고, 어딘지도 모를 먼 곳의 제3세계 노동자들은 한 끼를 위해 온몸을 바칠 것이다. 무심한 나는 이들과 다른 직업에 종사하고 있음에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점점 앞을 향하는 복부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로망은 무슨... 노망이라 불릴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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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에는 귀천이 없다고 배웠다. 그런데 정말 직종 간의 차이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웰의 문제제기는 계급에 대한 생각이 부족한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갑상선에 문제가 있던 젊은 시나리오 작가가 끼니를 굶은 끝에 요절했음을, 용역회사에 하청 고용된 청소부 아주머니를 비롯한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오늘도 거리에서 싸우고 있음을 우리는 곁에서 보았지만, 계급에 대한 생각, 계급적 차별에 대한 비판은 점차 옅어지고만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무파업 선언을 하고 임금 결정을 사측에 맡기는 일은 미덕이 된 시대다. 실업수당이나 무상교육, 무상급식 등 위정자의 수혜를 기다리는 것은 효율적인 삶이다. 실업의 공포는 현직에 있는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대학생들도 몸을 낮추게 만들었다. ‘시가’의 현빈을 보며 상류층에 대한 혐오감을 표시했다간 분위기 썰렁하게 만드는 이상한 사람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일까. 장시간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기어서 3~4km의 갱도를 기어가 허리를 굽혀 7~8시간 일하는) 탄광 노동자들의 삶을 보고 슬퍼하고, 이와 관련된 오웰의 논평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감동받았지만, 지금 우리 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며 ‘불쌍한 사람들...’ 하며 혀를 차는 수준을 넘지 못하는 나 자신과 이 세태를 보며 답답함을 느낀다.

- 편집부 주승일
위건 부두로 가는 길 - 10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한겨레출판
2011/03/18 09:00 2011/03/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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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리경 2011/03/18 10:07

    인용한 조지오웰의 문장을 저도 공감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나요..
    또 주위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불합리한 일들에 화를 내고 연민?의 감정을 느끼지만
    분석된 글을 읽는 것에 그치죠....
    아님 한번쯤 현장에 간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거나..

    • 그린비 2011/03/18 11:44

      아...저 또한 그렇습니다.
      불합리한 것에 화를 내지만, 이내 일상생활에 맞춰서 살고...또 잊어버리고.
      하지만 이런 아픔을 '공감'하려고, 멀어지지 않아야겠다 생각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