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인생역전한 십대 백수? 새로운 種의 탄생!”
― 학교를 나온 중졸 소녀의 리얼 버라이어티 독립기!!

“……그런데 새로운 지식은 여전히 나를 그대로 통과해서 지나쳐 버렸다. 여전히 학교는 그저 그랬고 내 삶도 그저 그랬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흥미를 느끼고, 시험보고, 잊어버리고, 이 사이클이 계속 반복될 것 같아 보였다. …… 배움이 이렇게 무미건조해도 되는 걸까!”

학교는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삶도 그저 그랬다는 솔직한 고백. 그리고 자신이 초중등교육에서 경험한 것과 같이 배움이라는 사건이 이렇게 무미건조하고 시시할 리 없다는 의문. 그 의문 혹은 질문에서 한 소녀의 삶이 비로소 시작되었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친구들은 소위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괴로워했고, 소녀는 학업의 이유는 찾을 길 없이 지치기만 했다. 별안간 소녀는, 자퇴를 결심한다. 부모님은 말리지 않았고, 소녀는 기꺼이, 혹은 기쁘게 ‘중졸’이 되었다. 혹시나 ‘루저’가 되지 않을까 친구들과 전전긍긍하던 그 고민의 순간들이 무색하게, 소녀는 어느새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루저’의 스펙을 얻게 되었다―‘중졸 백수’! 그러고선 사람들이 말리거나 말거나, 놀라거나 말거나 자신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율하게 만들었던 ‘다른 공부’(인문학)가 있던 곳, <연구공간 수유+너머>로 가 대학생 언니 오빠, 백수, 아줌마, 아저씨들과 똑같이 책을 읽고 토론하고 글을 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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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물건이 거의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괜찮은 일이다. 알고 보면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물건은 몇 개 되지 않는다(노트북, 필기도구, 책, 옷, MP3 정도?). -『다른 십대의 탄생』, 86쪽

이 책은 열여섯에 학교를 나온 중졸 백수가 <연구공간 수유+너머>를 만나 그곳에서 어른 백수들과 친구가 되고, 그들과 밥을 짓고, 함께 세미나를 하면서 치열하게 공부하고 글 쓰고 고민하고 혼나고 성장한 기록, 교육에 대한 대안담론이 넘쳐나지만 정작 그 어떤 것도 검증된 것은 없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십대의 ‘이보다 더 리얼할 수 없는 독립기’이다. 대안학교에 진학하였으나 그 안에서 대안을 발견하지 못한 십대, 그래서 학교를 나왔으나 학교를 나오고 나서 오히려 책 읽고 공부하느라 더 바쁜 십대, 커서 변호사나 의사나 선생님 같은 무언가가 되는 것보다는 “나를 대신해서 나를 설명해 주는 것들을 벗어나” 독립을 하는 것이 장래희망이라고 말하는 십대 김해완은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근사한 길이 닦여 있어도 내 발로 직접 한 걸음 걸었을 때 그것이 내 길이다. 세상의 시간이 성공을 향해 빠르게 질주하더라도, 그 속에서 온몸으로 한 숨 살아내는 것만이 내 시간이고 내 삶이다.”
  이제, 학교를 뛰쳐나온 중졸 백수 소녀의 삶이 시작된다.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소녀가 읽는 책이 어렵다고 놀라지나 말길.

내가 풀어야 할 숙제는 ‘대학’이 아니라 ‘삶의 문제들’!

▶ 대학? 거부하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모를 뿐!  
어떤 이는 저자의 ‘특이’하다면 특이할 ‘스펙’이 오히려 대학갈 때 어드밴티지가 있을 거라고 부추겼다. 소녀의 남다른 행보를 마치 봉사활동이나, 인턴십 같은 것과 동일한 것으로 두고, 다른 여러 사회경험과 같은 평면에 놓고 생각한 것이다. 소녀가 고등학교를 1년도 채 다니지 않고 그만둔 것, 그리고 연구실이라는 곳에서 공부를 한 것 역시 빛나는 미래, 즉 ‘대학’이라는 찬란한 관문을 통과하는 데 발판이 되어 주지 않겠느냐는 세속적인 기대 혹은 자연스러운 결론. 물론 자퇴를 한 십대라면 누구나 “그 다음엔 뭐할 건데?”라는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을 맞닥뜨려야 한다. TV나 책에서 학교를 그만둔 아이들을 보면,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거나 아니면 우리나라의 숨 막히는 교육제도를 비판하며 홈스쿨링을 택한다. 대한민국의 교육이 문제인 거지, 핀란드 같은 나라의 교육은 마땅히 받아들일 만한 것이므로. 그러나 『다른 십대의 탄생』의 저자, 해완은 대한민국의 교육이 문제라고 핏대세워 부르짖지도 않을뿐더러, 그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다. 이 소녀에게 자퇴는 그저 자신의 삶을 잘 살기 위한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을 뿐.

“정작 내가 풀어야 하는 숙제는, 잘 알지도 못하는 ‘대학’이 아니라 일상에서 걸려 넘어지는 문제들이다. 즐거운 것도 왜 매일 하면 즐겁지 않을까? 자퇴를 해도 왜 내 생활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할까? 사람에게 예를 갖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왜 책을 많이 읽어도 삶이 변하지 않을까? 머리를 쓰는 것과 몸을 쓰는 것은 뭐가 다른가?”(「백수 손녀와 청소부 할머니, 그리고 대학」, 본문 35쪽)

소녀는 다만 자신에게 떳떳해지기 위해, 학교를 나오고 백수가 되었어도 매일 바쁘게 책 읽고 공부하고 글을 쓰고, 또 그 공부를 통해 당당하게 자신을 책임지기 위해 오늘도 ‘빡세게’ 책을 읽고 공부를 한다. 물론 그 공부는 어렵고 고통스럽다. 그러나 고통을 피해 즐거움만을 좇아서 움직인다면, 자신의 삶은 단 한 번의 풍파에도 꺾여 버릴 것임을 소녀는 연구실의 공동체 윤리를 통해, 세미나의 실패를 통해, 관계의 실패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래서 소녀는 책을 통한 공부보다 어떻게 살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의 질문에 답하려는 그 힘겨운 과정이야말로 진짜 자신이 해야 할 공부임을 안다. 그리고 그런 과정 속에서 자신의 질문이 더 단단해질 것을, 그런 질문들이 자신의 존재를 고양시켜 줄 수 있음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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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있는 시간은 시간표가 보증해 주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근사한 길이 닦여 있어도 내 발로 직접 한 걸음 걸었을 때 그것이 내 길이다. -같은 책, 48쪽

▶ “나는 남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 이것은 차라리 평범하고 일상적이다   
대한민국에서 학생으로 산다는 것은 몸도 마음도 통장도 괴로운 일이다. 앎에 대한 기쁨이나 감동 도 하나 없이 학생들은 문제를 외우고, 답을 외운다. 돈 들여 배우는 만큼 점수는 올라가지만 그를 통해 더 좋은 가르침을 받기보다는 더 좋은 졸업장을 얻게 될 따름이다. 아무튼 대한민국 십대라면 거의 대부분 힘들게 입시준비를 하고 모두가 ‘高3’이 아닌 ‘苦3’을 보낸다. 그 힘든 삶에도 불구하고 그 트랙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그 레일에서 빠져나온 해완을 보고 사람들은 “남다르다” 내지는 “특이하다”, “용기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해완은 놀랍게도 남들이 자신을 정말 다르다고 생각할까봐 그게 제일 걱정된다고 말한다. 자신이야말로 이보다 더 평범할 수 없는데 말이다. 자신의 삶에 있어서 대학입시를 선택하지 않은 것은 운동 후에 배가 고파서 밥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결과이며, 자신이 대학을 선택하는 게 오히려 자기 삶에서 ‘튀는’ 행보라고 말하는 소녀는, 『다른 십대의 탄생』이라는 책을 통해서 사실은 하나도 다르지 않은 십대, 그러니까 모두와 똑같은 자신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진짜로 좋은 선택은 당위가 아니라 자기 삶의 유효성이라고 믿는 십대. 학교에 남아 있는 친구들과 그렇지 않은 자신의 선택을 두고 누가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퇴라는 결정이 자신에게는 유효했고 친구들에게는 그렇지 않았을 뿐이라고 담담히 말하는 십대. 이 십대 소녀의 삶은 자신의 말처럼 ‘남들과 다르지 않을’지 몰라도, 그의 공부법, 혹은 그의 장래희망은 입시에 지친 수많은 십대, 취업에 지친 더 많은 청년들과는 분명 ‘다르다’.

“국가에도, 가족에도, 학교에도 포섭되지 않는 내 삶은 특정한 공간이나 특정한 관계가 보장해 주지 않았다. 하긴, 한 인간이 바꿀 수 있고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지 않은가.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내 뜻’을 세우는 수밖에 없다. 그것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나의 언어로 완성해 가는 과정이다.”(「Outro_장래희망은 독립」, 163쪽)

장래희망으로, 다른 게 아니라 자신의 두 발로 설 수 있는 어른이 될 것을 적는 소녀. 이제 그의 친구들은 고3이 되었다. 대개의 친구들은 머지 않아 대학에 입학할 것이고, 대학을 졸업하면 또 좋은 직장에 취직하려고 애쓸 것이다. 그렇게 그 친구들은 소위 독립이란 것을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십대, 중졸 소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에서 독립할 것이다. 소녀에게는 공부가 곧 독립의 방법이고, 독립을 향한 그 과정이 또한 공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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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자, 치사하게 치졸하게 치열하게"를 줄여서 '꽁치'다. 지금 꽁치방은 '웹진방'으로 바뀌었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VS “공부, 맨땅에 헤딩!”

▶ 몸으로 하는 공부 ① : 힘겹게 읽은 구절을 기억하는 것은 머리가 아닌 몸!
인문학을 읽는 십대 소녀 해완은 어른들과 똑같이 여러 인문학 책들을 즐겁게, 신나게 읽었다. 자크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을 읽고, 한자문맹이면서도 『논어』를 읽었다. 『노마디즘』, 『임꺽정』, 『공산당선언』, 『도덕의 계보』 등등 이름만 들어도 부담스러울 책들도 읽었다. 그러나 이런 책의 목록은, 이 소녀가 특별히 천재이거나, “공부가 제일 쉬웠”기 때문에 가능한 것은 아니다. 소녀는 단지 무지한 제자의 공부법을 익혔을 뿐이다. 사람들이 어려운 철학책을 읽고 있는 자신에게 좀더 쉬운 책을 읽으라고 권할 때, 오히려 그 사람들을 향해 “그들은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바로 무지한 자에게는 8급 한자나 1급 한자나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이다. 무지한 자는 공부의 수준을 식별할 수 없다. 무지에는 위계가 없기 때문이다. ‘오, 무지한 자여, 완전히 무지한 것보다 조금 ‘덜 무지한 것’부터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좀더 빨리 무지에서 벗어나는 길이야.’ 이 말에 의미가 있는가?” 하고 되물을 수 있는 담담함. 이것이 바로 이 소녀가 정말로 다른 십대가 될 수 있었던 공부법의 비밀이었다. 소녀는 누구나 알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다 해낼 수 없었던 것을 해냈다. 몸으로 공부하기!

“어쩌면 내가 배운 것은 책 속 활자가 아니라 바로 텍스트를 ‘무식하지만 정면으로 통과하는 방법’이었다. 결국 나는 책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끝까지 읽어냈다! 물론 끙끙대며 정리했던 내용이나 개념 따위는 잊어버린 지 오래다. 오직 책과 대결했던 내 신체만 남았고, 그후로 나는 어려운 텍스트를 별로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공부, 맨땅에 헤딩」, 본문 113쪽)

▶ 몸으로 하는 공부 ② : 맥도날드에서 건져올린 삶의 가르침
시간당 4,110원, 맥도날드 카운터에서 알바를 하면서 소녀는 한 달에 19만 7천 원을 벌었다. “그걸 누구 코에 붙이냐?”고 되물을 수 있는 돈, 그래서 소녀는 어쩔 수 없이 더 창의적인 삶의 방식을 고안해 낼 수밖에 없었고, 공동체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고, 중고장터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한끼 밥값이 1,800원인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공간적 특수성도 이 소녀의 저렴한(?) 삶이 가능할 수 있게 한 힘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것은 소녀가 자신이 가진 현장에서 깨지고 배우면서 실감한 ‘진짜’ 세상에 해석, 그 세상에 대한 자신의 태도였다. 소녀는 패스트푸드점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으며 손님들이 ‘어린 알바생’인 자신을 엄청나게 하대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지만, 거기에 분노하기보다는 그들을 안쓰럽게 여겼고, 자신의 시급인상에 대한 관심보다는, 돈은 있는데 시간은 없는 현대인들을 목격하며 먹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죽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에 더 많은 감정을 쏟았다.

“그들은 절대적 서비스를 요구하며, 돈을 내는 손님인 이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에게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가끔은 내가 햄버거를 파는 것이 아니라 짜증을 참아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아닌가 헛갈린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불쌍하다. 그들은 자신의 초보적인 감정, 불쾌함이나 초조함을 다스릴 줄 모른다. 화폐가 개입하지 않을 때도 그들이 누군가에게 그렇게 함부로 대할 수 있을까?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소비하는 주체로서만 해소한다.”(「맥도날드 아가씨」, 본문 74쪽)

교과서 밖의 세상에서 자신 나름의 ‘현장’을 갖게 된 소녀는 패스트푸드점 알바를 하는 시간을 배움의 시간으로 변환시켰다. 알바를 하러 갈 때 ‘세미나’를 하러 간다고 할 정도였으니……. 연구실 주방에서 몇십 인분의 밥을 짓는 경험을 통해 먹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를 통해 패스트푸드점에서 ‘패스트’하게 ‘푸드’ 같지도 않은 것을 허겁지겁 먹는 사람들을 걱정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 책으로만 보던 경제와 생활을 소녀는 직접 땀 흘리며 보고 듣고 살았고, ‘다른 교육’ ‘대안 교육’이 글로 가르쳐 주지 못했던 ‘다른 삶’을, 소녀는 현장에서 그야말로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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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는 것은 간단해 보이지만, 이것을 못하기 때문에 병이 난다. 말은 쉬운데 실천하기 참 어렵다.

중졸 백수의 깨달음, 살면서 우리는 배우는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 우리가 어떤 삶을 사느냐이다.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면서 결국 중요한 것은 책을 읽었다, 공부를 했다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더 나아졌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소녀는 어른들도 놀랄 만한 이름의 책, 혹은 두께에 압도될 책들을 많이도 보았지만 어쨌거나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녀가 어떤 삶을 사느냐이다. 소녀는 자신이 읽어 온 그 엄청나게 훌륭한 책들의 목록이 무색하게도 여러 선택의 순간들에서 미욱했고, 또한 잘못도 많이 했다. 실패가 많았고, 넘어짐도 많았다(십대들의 자발적 세미나 꽁치의 실패, 연애의 실패……). 그러나 “문턱에 걸려 넘어졌다면 그 다음 할 일은 똑같은 문턱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 것”이라 말하며 소녀는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난다.

“여덟 살이든 여든여덟 살이든, 살아간다면 반드시 각자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그때서야 비로소 내 눈 앞에 까맣게 무지가 깔려 있음을 알게 된다. 나에 대한 적의로 가득 차있는 곳에 홀로 남겨졌을 때, 친구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때, 한 방에서 일곱 명의 사람과 함께 자게 되었을 때, 식칼을 들고 삼십 인분의 점심을 준비할 때, 너무 빨리 권태가 찾아올 때, 사람들 속에서 밀려난다고 느낄 때, 나는 어린아이처럼 허둥거린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 혹은 넘어지려 하지 않을 때 모두 배우는 수밖에 없다.”(「나무가 자라려면 믿음이 필요하다」, 본문 150쪽)

어려서 걸음마를 배울 때, 수백 수천 번을 넘어지고서야 비로소 한 발을 내딛었던 경험. 우리는 그 엄청난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잊고 산다. 이미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우리가 넘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똑같은 문턱에 또다시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고 공부하는 것. 그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중졸 백수다”라고 맹랑하게 선언해 버린 십대 소녀 김해완은 스스로의 힘으로 문턱 하나 하나를 넘을 때마다 경험하는 그 찰나의 자유를 위해, 오늘도 내일도 독립 만세를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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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연구실 벽 귀퉁이,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라는 노긍정 선생님이 떠올랐다.^^

다른 십대의 탄생 - 10점
김해완 지음/그린비
"다른 탄생 시리즈" 카테고리 글 모음
2011/03/22 10:28 2011/03/22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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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null 2011/03/22 18:42

    "새로운 지식은 여전히 나를 그대로 통과해서 지나쳐 버렸다." 아무리 어려운 책을 많은 시간 들여 읽어도 정작 별로 달라진게 없다는 허무함! 물론 몸의 변화는 시간이 필요한 일이지만.. 진짜 공부는 머리가 아닌 몸으로 한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책 기대할게요^^

    • 그린비 2011/03/22 20:24

      저도 며칠 전에 암송을 하다 벽에 부딪치는 느낌이 들었지요. ㅠㅠ
      눈으로 읽는 것과 소리내서 읽는 것, 외우는 것이 너무 다르더라구요.
      anull님도 『다른 십대의 탄생』의 마음에 드는 구절을 소리내서 읽어보시면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