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는 누구의 것?

중년 사내는 이해하지 못했다. 줄을 서서 5분째 기다렸다고 화를 냈다. “지점장, 나오라 그래.” 그는 조금 전, 고추장 돼지불고기 1kg을 사갔다. “이렇게 손님이 많으면 계산대 직원을 더 써야지. 왜 손님을 기다리게 하는 거야?” 지점장을 나오게 할 능력이 나에겐 없었다. 그는 계산을 마치지 못한 불고기를 씩씩거리며 반품했다. 화내는 손님이 더 없었으므로 나는 혼자 상상을 해봤다. 계산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려면 더 많은 계산대 점원을 채용해야 한다. 그들을 고용해 파견하는 용역회사는 마트에 더 많은 돈을 요구할 것이다.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마트는 점포의 매출 경쟁을 더 부추길 것이다. 어쩌면 20%의 수수료율을 더 높일 수도 있다. 더 빨리 더 많은 점포가 망할 것이다. 더 많은 노동자가 더 빨리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 손님을 기다리게 할 것인가, 노동자를 일하게 할 것인가.
― 안수찬, 「멈춰선 무빙워크」, 안수찬 외, 『4천원 인생』, 한겨레출판, 2010, 130쪽.

마트 한복판에서 불같이 화내는 중년 사내를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도 가끔 물건을 살 때 카운터에서 보내는 몇 분이 아까워 초조하고 열 오를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제 주변엔 가게 홈페이지에 들어가 직원의 불친절함이나 업무 미숙함을 지적하는 글을 올리는 발 빠른 친구들도 있습니다. ‘소비자의 권리’는 중요한 것이고, 고객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들은 바로바로 ‘어떻게든’ 시정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저도 십분 동의했습니다. 그래도 얼굴 붉히고 언성 높이는 ‘진상’ 손님 되는 것보다야 백 배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 어떤 조치들이 취해질지, 그 뒤에 일어날 일들은 사실 제 관심 밖의 일이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형 마트의 계산대에는 의자가 없다. 24시간, 365일 동안 운영하는 곳도 있다. 우리는 이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진 않았을까?

카운터에서 오래 기다리는 것에서만 불만을 느꼈던 것은 아닙니다. 가끔은 제 평화로운(?) 시간을 방해하는 판촉 행위들에 짜증스럽기도 했습니다. 알아서 내가 원래 사려고 했던 것들만 빨리 사서 나가고 싶은데, 왜 자꾸 ‘이거 사라, 저거 사라’ 와서 말을 거는지 귀찮다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어떨 때는 잠깐 보는 척 하다가 자리를 옮기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못 본 척, 못 들은 척 지나치기도 합니다. 점포들 간에 서로 경쟁을 붙이기 때문에 판촉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경쟁이 서로에게 밀리면 두세 달 만에 점포를 빼야만 하는 살벌한 경쟁이라는 것도요. 그토록 중요하게 여겨 왔던 ‘소비자의 권리’라는 것, ‘서비스’를 받는다는 것이 참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편하고 기분 좋자는 명목하에(더 깊이 들어가 생각해 보면 ‘대접받고 싶다’는 이유로) 착취에 암묵적으로 동조해 왔던 것은 아닌지… 죄책감 같은 것이 밀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왜 저는 이토록 ‘작은 일에만 분개’해 왔던 것일까요.

'서비스(service)'의 어원은 '노예'를 의미하는 라틴어 'Servus'다. '돈'을 매개로 '노예'를 부리니 미안함이 덜하다. ― 같은 책, 63쪽.

그것은 전투다. 그 싸움에서는 어떤 노동자도 이기지 못한다. 매일 지기만 한다. 마트는 석 달에 한 번씩 여러 돼지고기 업체들의 매출액을 정산한다. 꼴지가 되면 물건을 빼야 한다. 대신 다른 돼지고기 업체가 제 상품을 진열할 것이다. 승리는 항상 마트의 차지다. ― 같은 책, 102쪽.

책장을 덮는 순간, 울컥 화가 나기도 했지만 알 수 없는 허무함이 밀려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마트나 식당에 가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분들에게 화 내지 않고 친절하게 대한다고 해서 달라질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에 화를 내야 할지 몰라 아무 힘도 없는 애꿎은 직원에게 ‘진상’을 부렸던 중년 아저씨처럼, 저도 사실 지금 어디에 화를 내야 하는가 혼란스럽습니다. 마트에 세 들어 운영하는 점포 주인에게 화를 내야 할지, 서비스직 노동자를 관리하는 용역업체에 화를 내야 할지, 점포 간에 경쟁을 부추기는 마트에 화를 내야 할지… 말입니다. 그래도 분명한 건 ‘대체할 상품’들과 ‘서비스’가 넘쳐나는 이 공간에서 우리는 어디에선가, 누구에겐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 같습니다. 서로에게 화를 낸다고 해서 그 승리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승리는 항상 마트의 차지’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곱씹어 보게 됩니다.

- 편집부 김미선
4천원 인생 - 10점
안수찬 외 지음/한겨레출판
2011/03/24 17:16 2011/03/24 17:16
RSS를 구독하시면 더욱 편하게 그린비의 글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 ]

trackback url :: http://greenbee.co.kr/blog/trackback/1347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순진한양 2011/03/25 11:14

    무한 경쟁을 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매우 가슴아픈 현실이네요...
    그리고 고객의 요구에 맞춰서 점원을 늘리면 결국 경쟁력이 떨어져서
    더 많은 실업자가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은... 차마 거기까지는 생각지도 못했었네요.
    친구들하고 가끔씩 내기 당구를 치는데(전문 용어로 '죽빵'이죠. ㅋ)
    항상 나올 때는 이런 말을 합니다. "당구장 아저씨만 돈 벌었네... ㅠㅠ" 라고요.
    정말 진정한 승자는 뒤에서 힘 쓰지 않고 웃고 있는자 같아요 ㅋ

    • 그린비 2011/03/25 11:22

      저는 서비스의 어원이 '노예'라는 부분을 읽고 목에 뭔가 왈칵 올라오는 것을 느꼈어요.
      현금 서비스, 고객 서비스 등등....
      서비스라는 이름의 '노예-되기'가 이렇게 많구나, 이런 생각때문에요.

      당구, 저도 몇 번 구경한 적이 있는데...재밌어 보이더군요!
      게임의 진정한 승자는 게임에서 이긴 사람이 아니라, 게임의 판을 짠 사람인가봅니다. ^^

  2. 오늘 2011/03/30 09:23

    저도 은행이나 백화점에서 심하게 친절한 서비스에 처음엔 당혹스러웠다면 점점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거 같습니다. 요즘은 그냥 담담한 직원들에겐 서비스마인드가 없다는 느낌까지 받고 있었는데요.... 서비스의 어원이 '노예'였다니... 정말 저를 돌아보게 만드네요.

    • 그린비 2011/03/30 10:30

      점점 '당연'해지는 것에 우리가 좀더 민감해질 수 있다면!
      저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