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독자들에게


1995년 질 들뢰즈의 죽음 이후, 그의 저작에 대한 관심은 다방면에 걸쳐 점점 더 강렬하고 폭넓게 확산되었다. 비록 전통적인 철학 분과에서는 서양 ‘사유의 이미지’의 정초에 도전한 들뢰즈에게 여전히 반감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저작은 문화이론, 문학, 건축, 예술, 사회과학 분야에서 하나의 ‘사건’을 구성해왔다. 들뢰즈에게 과학의 과업이 ‘사태’—현실 세계 내의 물리적 신체들의 배치와 관계들—를 취급하는 것인데 반해, 철학은 개념을 창조함으로써 사건을 생산하는 일에 종사하는 것이다. ‘사건’은 들뢰즈에게 비非물체적이다. 가령 우리가 월드 트레이드 센터로 돌진한 비행기를 아무리 신체들[물체들]의 관계로 이해하려 해도 ‘9·11’이라는 말[언표]은 하나의 사건이다. ‘ 9·11’은 단지 우리가 물질적 사건에 붙이는 이름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9·11’이라는 사건은 의미 혹은 비물체적 표면을 창조한다(LS). 이제 우리는 불안, 무방비, 수치심, 의심, 분노(어쩌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생각에 대한 분노 또는 자유주의의 실패에 따른 분노)를 느끼면서 물질적 신체 전체와 [이전과는] 다르게 관계하게 되는 것이다. 물질적 세계와 의미의 비물체적인 면面사이의 관계는 인과적인 관계가 아닌 상호적 관계를 맺는다. 사건들은 우리로 하여금 일정한 방식으로 사고하고 움직이고 반응하고 몸짓하게 함으로써 현실적 세계에 일관성을 부여하지만, 그런 사건들은 오직 가능적일 뿐이며 신체들의 관계에 의해 변형될 것이다.

아마도 2000년대 이후에 들뢰즈라는 고유명사는 하나의 사건을 창조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오래도록 함께 작업한 펠릭스 가타리와의 공저『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그는 철학과 과학에서 고유명사의 역할에 대해 논하고 있다. 과학에서 고유명사들은 기능들과 결부될 수 있고, 그에 따라 우리는 ‘맥스웰의 도깨비’Maxwell’s Demon—현실적 인물이나 주체에 의해 점유되지 않고, 우리로 하여금 물질적 세계의 작용에 대한 어떤 일정한 형태와 양태를 사고하도록 하는 관점—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철학적 고유명사는 우리가 사유를 시작하도록 허용한다. 데카르트는 개념적 인격체이고, 우리가 의심에서 사유를 시작해 주체적 경험에 기반한 확실성을 향해 나아가도록 이끈다. 들뢰즈에게 철학의 핵심 문제는 사유가 어떻게 출발하는지—그것의 전제와 욕망—에 대한 이런 물음question에 있다. 오늘날 ‘들뢰즈’가 사건으로 작동하는 고유명사라면, 이는 그가 다음과 같은 문제problem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예술, 철학, 과학 안에서 사유할 때 대체 어떤 방향, 욕망, 전제, 개념, 감정을 전제하는가? 고유명사로서의 ‘들뢰즈’는 우리가 언제나 언어에 제한된다고, 철학이 과학을 뒤따라야 한다고, 진리를 향한 본능적인 욕망을 갖고 있는 ‘인간성’humanity이 실존한다고 전제하지 않고 사유할 수 있도록 하는 사건이다. 그래서 철학, 예술, 과학은 이들의 목적과 해답에 의해 규정되기보다 오히려 문제에 의해 규정된다. 왜냐하면 사유가 하나의 사건이 될 수 있는 것은 동일한 낡은 물음들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새로운 문제를 구성함으로써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철학과 비평이 들뢰즈를 통해 하나의 사건이 된다면, 그것은 문제들의 본성에 힘을 부여함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한 사례를 들어보자. 9·11 이후에 우리는 어떤 지배적인 문화적 물음들questions을 제기할 수 있게 되었다. 즉 테러리스트란 무엇인가? 테러와의 전쟁은 가능한가? 서양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는가? ‘우리’는 방어적인 반反테러주의적 노력 속에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손상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물음들은 다양하게 논의될 수 있지만, 들뢰즈가 말하는 ‘사유의 이미지’를 전제한다. 즉 우리는 테러주의적 타자들과의 대립관계에 놓인 ‘우리’를, 이 자명한 ‘우리’가 진리와 정의에 정향되어 있음을, 그리고 역사가 정의와 불의 가운데서 상연되고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 들뢰즈는 우리가 오직 새로운 문제들을 제기함으로써만—철학, 예술, 과학을 하기 위한—사유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음은 이미 해답의 유형을 규정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다르게 사유하도록 요구한다. 들뢰즈가 제기한 문제는 그에게 하나의 완전한 용어로 구성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사유의 이미지다(DR).

사유thought가 출발할 수 있는 그 어떤 초월적(외적, 초-역사적, 불변적) 바탕ground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내재적으로 사유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까? ‘사유의 이미지’라는 문제는 내재성에 대한 들뢰즈의 천착과 직접적으로 결부된다. 즉 우리가 어떻게 선先-구성된 규범, 형상形象, 이미지, 물음에 의존하지 않고도 사유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들뢰즈의 사유가 이제 비-영어권과 비-불어권 세계에서 번역되고 알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중요성을 갖는다. 들뢰즈는 서양 사유의 이미지가 그 출발을 항상 이데아적 진리, 신, 주체, 올바른 삶proper life과 같은 어떤 선-재先-在하는 규범 위에서 정초했다고 보았다. 들뢰즈는 그의 사유의 중요한 계기에서 내재적 사유함thinking의 스타일—선-재하는 토대들로부터 해방된 사유함의 방식—에 호소하였고, 서양을 넘어서서 조망함으로써 이를 수행하였다. 들뢰즈·가타리는 리좀rhizome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이를 상찬하면서, 스스로를 모든 위계에서 해방시키고 부단히 새로운 방향과 출발을 설정하면서 진행하는 사유와 글쓰기의 방식에 대해 논했다.

서양은 수많은 개인들을 포함하는 선별된 혈통에 기반한 농업이다. 동양은 광범위한 ‘분지군’分枝群으로부터 유래한 소수의 개인들에 의한 원예이다. 동양, 특히 오세아니아는 서양의 수목적 모델과 모든 면에서 대립되는 리좀적 모델과 유사한 어떤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오드리쿠르André Haudricourt조차 이를 서양에 친숙한 초월성의 도덕/철학과 동양의 내재적 도덕/철학의 대립의 근거로 본다. 이를테면 씨 뿌리고 수확하는 신은 옮겨 심고 땅을 파는 신과 대립한다(파종 대 모종). 초월성은 유럽의 특별한 질병이다(TP, 18).

반면 우리는 사유의 비-서양적 방식에 대한 이런 태도를 오리엔탈리즘의 진부한 몸짓—어떤 지배적인 규범 없이 삶의 완전한 무매개성[직접성]을 실행할 수 있는 타문화라는 노스탤지어를 자아내는 이미지화—으로 읽을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이 관념을 21세기의 도전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20세기 후반의 비판이론은—우리가 오직 언어를 통해 매개된 세계만을 알 수 있음을 제시하면서—언어에 갇힌 개념에 열중한 반면, 들뢰즈는 언어 혹은 기표작용이 단지 수많은 기호 체계들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하면서 몸짓, 살아 있는 신체, 유전 코드, 시각 기법, 사회 체계가 상대적으로 자율적이고 상호작용하는 체계들을 구성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유의 과업은 비판적인—단지 우리의 사유함이 어떻게 조건 지어졌는지 묻는—게 아니라 창조적인 것이다. 예컨대 들뢰즈는 우리가 기호 체계에 의한 사유 주체 개념에서 벗어날 때, 새로운 개념들과 새로운 사유의 이미지들을 창조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지 없는 사유를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는 내재성의 철학으로 귀착될 것이다. 사유는 단순히 이미 실존하는 물음들과 체계들을 다루는 대신에, 그와 같은 사유함이 어째서 가능한지를 알고자 힘쓸 것이다. 들뢰즈는 이것[사유함]이—예를 들어—철학이 문제들을 재창조할 수 있는지를 알고자 예술 및 과학과 조우하는 곳에서, 혹은—더욱 중요하게—서양이 재인이 아닌 재창조의 형식으로 [서양의] 타자들과 만날 수 있는 곳에서 조우[마주침]를 요구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들뢰즈의 비판적 사유가 유럽의 바깥에서 사용되는 것은 시기적절하다. 왜냐하면 이때 비로소 새로운 문제들, 즉 비판의 현재 영토에 응답하기보다는 새로운 영토를 재창조하는 문제들이 출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들뢰즈가 ‘보다 높은 탈영토화’higher deterritorialisation라고 부르고 싶었던 것이다. 만일 우리의 작업을 상이한 맥락들에서 바꾸어 말한다면, 맥락과 개념의 본성 자체도 재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2007년 가을
클레어 콜브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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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독자들에게 |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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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들뢰즈 핵심용어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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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철학, 예술, 과학을 통해 사유하기 | 문제 | 실존주의, 현상학, 인간주의: 현실적인 것에서 잠재적인 것으로 | 탈인간적 차이 | 차이의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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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_생명과 현동적 차이의 정치학
부정적 차이 | 부정적 차이와 정신분석 | 기표: 구조주의 | 자본주의와 오이디푸스 | 현동적 차이 | 곡선과 변곡 | 초월성: 초월면 | 지각의 정치학: 일의성 | 강도 높은 배아적 유입과 영토화 | 종합과 차이의 억압 | 성차 | 강도 | 미시정치학 | 자본주의와 코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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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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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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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 이해하기
클레어 콜브룩 지음, 한정헌 옮김|도서출판 그린비 | 갈래 : 인문, 철학

발행일 : 2007년 12월 20일 | ISBN : 978-89-7682-306-9
신국판 변형(150X220mm)|3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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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1 15:36 2008/01/1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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