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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넌 꿈이 뭐니?"라고 물으면, 저는 특정한 직업을 얘기했습니다. 슈바이처 위인전을 읽고 의사가 되고 싶었다가 만화책을 읽으면 만화가가 되고 싶었고, 재미있는 소설을 읽으면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평범(!)한 아이였지요. 그때는 '꿈=직업'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직업을 갖고 사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믿었구요. 백수가 된다는 것은 인생의 패배자, 이렇게 연결시키곤 했습니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복지가 더 좋은 회사에 가고, 더 유명한 회사에 가는 것이 부러웠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에는 '나는 저 회사를 못가는 것이 아니라 안가는 거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지요. '당당한 삶'의 판단 기준이 제 자신이 아니라 외부의 시선에 있었던 것입니다.
 
누구나 살다 보면, 각기 다른 자신만의 벽을 만나게 됩니다. 그 벽을 피할 것이냐 넘을 것이냐는 스스로의 선택이죠. 저는 이제껏 문제와 '직접' 부딪치기 보다는 피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일을 하다 힘들 때면, '회사를 그만두면 괜찮아 질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회사를 그만둔 적도 있었지요. 몇 번의 회사를 거치다 보니, 저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제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물론 회사가 혹독한 곳도 있었습니다만…) 제가 변하지 않는 이상 어디에서 일을 하든 언제나 같은 문제로 힘들게 될 것이라는 것도 절실하게 깨달았지요.

나도 세상 앞에서 떳떳하게 살고 싶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당신의 말씀을 몸으로 실천하는 것을 보았고, 나도 커서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당당함'은 반드시 학력과 직업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할머니는 국민학교를 겨우 졸업하셨고, 남들이 밟는 가장 아랫공간인 바닥을 청소하면서도 당당하게 살고 계신다. 할머니의 삶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는지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당당한 삶'과 '편안한 삶'은 다르다.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을 가지는 것이 왜 당당하게 사는 것일까? 남들이 우러러보기 때문이라면, 그것은 당당함이 아니다. 당당하게 산다는 것은 타인의 시선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내가 나 자신에게 떳떳해야 하기 때문이다.
─ 『다른 십대의 탄생』, 37쪽

최근에 『동의보감』 수업을 듣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누구나 고비를 만나게 된다, 그 고비는 세 번을 넘어야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다. 이 어려움을 피할 수는 있지만, 결국 다시 만나게 되고 어쩌면 그 어려움은 피하기 전보다 더 크게 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어떤 문제와 부딪칠 때, 두려움이 조금 적어졌습니다. 다음에 더 큰 어려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이건 그거에 비하면 사소한 거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십대의 탄생』에서 유독 저 문구가 눈에 띄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스로에게 당당하다는 것은 무엇일지, 나는 지금 이 상황에 충분히 맞서고 있는지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네요. 여러분에게도 이 인터뷰가 '나는 지금 당당하게 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해보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대학에 안가는 것은 사회에 대한 저항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해완 양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좀더 이야기 해주세요.

김예슬 양이 “나는 대학을 거부한다, 트랙을 달리지 않겠다”라고 글을 멋있게 쓰시고 화제가 됐잖아요. 제가 대학을 안가는 것은 그 분하고 다를 수밖에 없는데, 처해있는 위치나 살아온 것이 다르기 때문인 것 같아요. 김예슬 양은 일반 학교를 쭉 다니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꿈이 있다고 생각하고 대학에 갔는데 “없다”고 생각하시고 나온 것 같아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부모님이 대학에 가라고 강요하신 적이 없었어요. 물론 부모님도 헷갈려 하시긴 하지만요. 어쨌든 저한테 직접적으로 압박을 주신 적이 없었고, 저는 대안학교에 가서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해봤기 때문에 대학에 가야될 동기부여 자체가 없는 것 같아요.

대학을 가면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다고 하는데요, 이런 공부를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분명히 공부를 제대로 한다고 했을 때 ‘공부의 방법’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주 기본적인 것들, 예를 들면 책을 읽는 능력, 요약하는 능력, 텍스트를 간파하고 개념을 정리하고 이런 부분은 분명히 공부를 할 때 필요해요. 하지만 “공부를 해서 뭘 할까?”라고 질문을 할 때에는 다른 방식의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삶에서 부딪친 문제들을 해결까지는 아니더라도 고민할 수 있는 그런 공부요.
  누구도 제 문제를 그대로 책에 써놓지 않잖아요. 그건 제가 스스로 공부를 해야 되는 건데, 삶에서 부딪치는 문제를 갖고 있으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책을 읽어도 그 책 안에서 제 문제를 만나게 되요. 『무엇을 할 것인가』는 연애소설인데,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독립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그 책이랑 부딪친 거죠. 이런 걸 공부하고 생각하고 글을 쓰고 토론을 하고, 그러면서 책을 다르게 해석을 하고 동시에 제 문제를 다르게 생각해보고……. 제가 하고 싶은 공부고 할 수 있는 공부는 이런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체계적으로 공부를 하는 순간 이런 부분이 증발하는 것 같아요.
  결국 사람은 자기가 있는 곳에서만 인식을 할 수 있잖아요. 내가 어디에 있겠다고 선택을 하고, 그곳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지 꼭 어떤 장소에 가야만 어떤 시야를 갖게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곳(대학)이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면 가도 소용이 없겠죠.

다른 사람들이 본인의 진로에 대해 보는 시선이 부담스럽진 않나요?

좋은 대학에 가고, 졸업장이 있어야 당당하게 살 수 있다, 그래서 대학에 가라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당당하다’는 게 남들이 우러러보고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로 먹고 살고, 뭔가 성취하고 만들어지는 느낌을 제가 스스로 해야 당당한 거지 어떻게 당당해지겠어요? 부딪치는 벽을 넘을 때, 내 힘으로 살 때,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내 힘으로 구축하면서 당당하게 살려면 힘들고 괴로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당당하게 살아야 편안하다는 등식은 저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아요.

좋은 대학의 졸업장을 갖고 좋은 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저는 결코 편안하다고 얘기할 수도 없는 것 같아요. 그것도 충분히 힘든 일이니까요. 정말 존재를 걸고 공부해서 대학에 가잖아요. 그것을 ‘좋고 나쁘다’라고 제 시선으로 판단하기는 어렵고, 그렇게 열심히 해서 직장다니면서 돈 벌고 사는 것도 제가 볼 때는 무척 힘든 일 같아서…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힘든 건 마찬가지 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대학을 안가는 것이 사회에 대한 저항이나 다른 꿈을 찾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저에게는 자연스러운 경로에요. 오히려 대학에 가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경로죠.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해완 양이 생각하는 독립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저는 늘 독립을 하고 싶어 했어요. 학교를 나오고 싶었고, 집을 나오고 싶었고, 그리고 서경재에 들어가 사람들하고 같이 살고 싶었고, 연구실에서는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제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여전히 학교를 다니는 학생의 느낌도 있었고, 다른 사람의 도움도 많이 받았거든요. 저는 어떤 좋은 환경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아직도 너무나 좋은 환경 속에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이제 정말로 독립을 해야 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럼 ‘왜 내가 이렇게 독립을 하고 싶어 하는가, 왜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벗어나서 살고 싶어 하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되었는데, 생각해보니 저는 제가 되고 싶었던 거였어요. 저 자신이 되고 싶었던 궁극적인 이유는 사람들, 세상과 직접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돈을 벌지 못하고 누구 집에서 얹혀살아도 ‘내가 이 일을 하고 있고, 내가 이 사람이랑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을 때 이것이 독립이고, 이것이 제 뜻을 세우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무조건 집을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제가 부모님에게 일방적으로 받기만 했던 관계를 친구, 혹은 제가 뭔가 드릴 수 있는 것으로 새롭게 바꿀 때가 진짜 독립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집을 뛰쳐나오는 게 아니구나, 차근차근 밑바닥을 다지면서 가야겠다는 생각을 이번에 하게 되었습니다.

※ 다음 인터뷰 예고!
다음 주에는 몸으로 공부하게 된 사연, 글쓰기에 관한 저자의 솔직한 이야기가 찾아옵니다. 커밍 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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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십대의 탄생 - 10점
김해완 지음/그린비
2011/03/29 09:00 2011/03/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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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독후감] '다른 십대의 탄생' 을 읽고

    Tracked from 열심남의 일상 2011/05/09 22:25  삭제

    고미숙님의 일련의 달인 시리즈로 부터 알게된 출판사 그린비~ 고미숙님이 좋은 출판사라고 하는곳... 그래서 그린비의 블로그를 구독하다가 우연하게 눈에 들어온책 '다른 십대의 탄생' 다른 십대의 탄생김해완 상세보기 책의 저자 김해완님은 93년생이다. 본인 스스로 중졸백수라고 칭하는 저자. 중졸 백수라... 그럼 대학은 물론 고등학교 졸업도 안했다는것인데. 이 친구가 어떻게 책을 썼을까? 책의 부제 역시 '소녀는 인문학을 읽는다'이다. 본인스스로 중졸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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