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졸 백수 소녀와 내가 공유하고 있는 것

나는 여덟 살 이후로 학교에서 10년간 공부했고 지금은 학교를 나온 상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일상에서 번번이 벽에 부딪히며 그때마다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때 나의 상태는 어린아이가 처음으로 숟가락을 손에 쥐고 밥을 푸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애쓰는 것과 똑같다. 여덟 삶이든 여든여덟 살이든, 살아간다면 반드시 각자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그때서야 비로소 내 눈앞에 까맣게 무지가 깔려 있음을 알게 된다. 나에 대한 적의로 가득 차 있는 곳에 홀로 남겨졌을 때, 친구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때, 한 방에서 일곱 명의 사람과 함께 자게 되었을 때, 식칼을 들고 삼십인분의 점심을 준비할 때, 너무 빨리 권태가 찾아올 때, 사람들 속에서 밀려난다고 느낄 때, 나는 어린아이처럼 허둥거린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 혹은 넘어지려 하지 않을 때 모두 배우는 수밖에 없다(『다른 십대의 탄생』, 150쪽).

그러나 ‘독립’에는 직업에 앞서서 가장 일상적인 것들이 먼저 자리 잡아야 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평범한 일상을 내가 마주한다는 뜻이다. 이 평범한 일상 하나하나를 ‘어떻게’ 꾸릴 것인가? 모든 익숙한 것들이 나로부터 다시 시작되는 것, 그것이 독립이다(『다른 십대의 탄생』, 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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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고 느낄 때가 있다. 막막한 그 순간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김해완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가 쓴 글들을 하나둘 읽으면서 이런저런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런 어린 나이에 글을 그토록 잘 쓴다는 게 신기하고 부럽기도 했고, 저의 십대 때와(그리고 지금과도) 비교돼 슬쩍 질투심이 일기도 했으며, ‘너무’ 조숙해 보여서 괜히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런 감정들은 모두 이 글들을 쓴 이가 ‘어리다’는 사실에만 온통 신경을 썼기 때문에 생겨난 것들이었습니다.

책으로 출간된 뒤 이 글들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나보다 한참 어린 사람이 쓴 글로만 받아들이는 것, ‘이 십대가 얼마나 대단하고 놀라운 사람’인지에만 집중하는 것은 좋은 태도가 아니라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한 건 아닙니다. 반대로 글을 읽으면서 삶에 대한 그의 고민이 어떻게 보면 나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느꼈고, 그러면서 (나이와 무관하게) 그를 그냥 한 권의 책을 쓴 저자로 대하게 되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여러 고민을 저와 공유하고 있는 동등한 한 명의 인간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십대도 아니고 소녀는 더더욱 아닌 저는 『다른 십대의 탄생: 소녀는 인문학을 읽는다』를 읽으며 (열아홉 살 때의 제가 아니라) 지금의 저에 관해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벽에 부딪히고, 그것을 훌쩍 뛰어넘고, 그런 다음 똑같은 벽에 다시 부딪히거나 예상치 못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또 한 걸음 더 나아가거나 그러지 못하고 한동안 후퇴하는 과정을 겪습니다. 저자는 벽을 앞에 두고 불안감을 느끼기도 하고 바닥에 넘어져 다치기도 하면서, 허둥거리기도 하고 버둥버둥 애를 쓰기도 하면서 삶을 배웁니다. 많은 시행착오가 겪었을 테고 지금도 여러 어려움에 부닥쳐 있겠지만 여하튼 저자는 계속해서 배워 나가고 있고, 점차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넘어갑니다. 이 책은 그 성장의 과정,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독립’을 성취해 나가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른’이라는 것은 물리적으로 일정 정도의 나이를 지나면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혹은 도달할 수밖에 없는 어떤 단계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독립적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순간”에야 우리는 (좋은 의미에서) 어른이 됩니다. 그렇게 보면 나이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제가 지금 갖고 있는 고민과 어려움이 저자가 갖고 있는 것과 동일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어떤 고민을 하고 있냐는 것이 아니라 고민을 안고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에 직면해 있냐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배우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사실 비슷한 지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중졸 백수’의 성장보고서를 저는 이렇게 읽었습니다. 특별한 십대가 쓴 책, 십대라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관해 쓴 책이 아니라, 나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성장 중에 있고 또 성장통을 앓고 있는 한 사람이 쓴 책으로 말이죠. 저자가 말한 것처럼 “여덟 삶이든 여든여덟 살이든, 살아간다면 반드시 각자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직 어립니다. 그렇지만 삶 속에서, 삶을 배우면서 조금 더 큰 사람이 될 겁니다. 김해완의 『다른 십대의 탄생』은 힘을 내서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공감하기도 하고,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기도 하고, 나와 생각이 다른 점에 반대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저 역시 또 한 번 무언가를 배워 나갑니다.

- 편집부 김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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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똑같은 분신과 싸울때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어제의 나보다 강해지는 것' 뿐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오직 자기 자신만 알 수 있는 것 아닐까?

다른 십대의 탄생 - 10점
김해완 지음/그린비
2011/03/30 09:00 2011/03/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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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량수 2011/03/30 10:15

    나이란 가면을 벗어버리고 사람들을 보자고 하앙 다짐하지만 언제나 그 가면만을 바라보게 되지요. 그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면 나이를 묻지않고 대답도 안해주기는 하지만 말을 하다보면 '어릴 것이야' 혹은 '많을 것이야' 등등으로 상상하게 되고 지레짐작으로 사람들을 판단하게 되더군요.

    결국 나이가 많든 적든 목표하는 인생이란 같은 것임을 알지만요. ^^

    • 그린비 2011/03/30 10:35

      어리다고 덜 힘든 것도 아니고, 어른이라 더 힘든 것도 아니고...
      누구나 자신만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는 말이 저도 참 와닿았습니다.
      나이를 떠나 열살 차이도 친구가 되었다는 예전이 왠지 부럽기도 하네요.
      요즘은 '나이'에 참 많이 얽매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
      저도 요번 기회에 열살 많은 친구를 사귀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