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도 독립!

현재 내 꿈은 ‘독립’이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어른이 되고 싶다는 뜻이다. 하루 빨리 어른 흉내를 내고 싶어 하는 평범한 십대의 마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평범한 십대인 나는 어른만큼의 능력을 획득해서 자랑하고 싶지 않다. 나는 이 세상과 동등한 위치에서 관계를 맺고 싶다. 연구실에서 내가 사람들과의 갭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것도 그들과 동등한 관계를 맺고, 또 정면으로 부딪치려면 나를 대신해서 나를 설명해 주는 것들을 벗어나야 한다. 나를 일방적으로 보호해 주는 것들에서 벗어나야 한다.
_김해완, 『다른 십대의 탄생』, 164쪽

출근 둘째 날(저 3월 2일부로 재출근했어요~), 이전부터 블로그에 글을 연재하던 해완 양의 원고가 『다른 십대의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전부터 흥미롭게 읽던 글이라, 책으로 어떻게 묶여 나올지 은근 기대가 되더군요. 그 책의 오탈자 교정 부탁을 받고 글을 읽는데,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출근 전까지 저를 힘들게 하던 문제들이 그녀의 글 속에서 명확하게 풀리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혼자 살 집을 구한다고 칼바람 맞으며 망원동을 돌아다닐 때도 모호했던 그 문제들이, 해완 언니의 글로 조금씩 구체화되고 뚜렷해지는 듯했습니다. 분명 책 제목은 『다른 십대의 탄생』이라는데, 글들은 대부분 삶에서 헛다리짚는 저 같은 30대를 위한 내용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164쪽에 있던 ‘독립’이라는 단어, 출근하기 전까지 고민했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주는 날카롭고 명료한 단어를 만났을 땐, 솔직히 말하지만 화장실 가서 눈물도 좀 흘렸습니다(네, 저 눈물이 참 헤픈 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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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셔, 무작정 마음 가는 대로 살면서 모든 것을 '운명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 예를 지킨다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이별이 닥치더라도, 예상치 못한 감정이 찾아오더라도, 이것들과 맞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해보는 것이다.(『다른 십대의 탄생』, 62~63쪽)

해완 언니도 말하고 있지만, 그리고 누구나 한 번 정도는 경험해 봤겠지만, 동등하게 관계를 맺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서로가 정한 생활의 윤리를 지키고, 필요할 땐 허용할 수 없는 것들에 당당히 문제를 제기하고 내 입장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어야만, 만들어집니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쉬는 기간 내내, 남편과 힘들었던 이유를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그저 그만의 문제, 혹은 나만의 문제로 책임을 전가하는 게 아니라, 정말 우리 사이에 어떤 것들이 부족하고, 뭘 이해하지를 못했는지 그녀의 글을 읽으며 (물론 오탈자 교정도 봤습니다~) 하나씩 다시 생각했지요.

이제 와 고백하자면, 저는 이랬다저랬다 변덕도 많았고, 피곤할 땐 아무런 상의도 없이 제 일을 남에게, 남편에게 넘겼습니다. 이런 일만 있던 게 아닙니다. 해완 언니가 지적하는 것처럼 “그들과 동등한 관계를 맺고, 또 정면으로 부딪치려면 나를 대신해서 나를 설명해 주는 것들을 벗어나야” 하는데, 저는 쉬는 동안에는 남편과 싸움을 피하기 위해, 그에게 내 입장을 설명하는 일을 그만뒀습니다. 성차별적 발언에는 대꾸를 안 하는 걸로 넘기고, 아이 때문에 싸움이 날 것 같으면 그 뒷날 더 깨끗하게 집을 청소하고, 더 맛있는 음식을 해주는 걸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덕분에 전 이제 양식․중식․한식․베이커리 카페, 뭘 차려도 성공할 정도로 요리를 잘합니다). 동등한 관계를 맺어 보려고 시도하는 것보다, ‘엄마/아내’ 역할에 충실함으로써 그것들이 ‘나를 대신해 설명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나를 일방적으로 보호해 주는’ 가족과 남편이 자주 내가 견딜 수 없는 요구를 하더라도 싸우는 것보단 덜 피곤할 테니, 그냥 참고 받아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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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두 세계 사이에서> _  "무엇을 해야 할까?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밥 세 끼를 먹어야 하고, 잠을 자야 하고, 건강을 챙겨야 한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한다."(『다른 십대의 탄생』, 163쪽)

의존관계는 곧 권력관계를 만들어 낸다. 이런 배치에서는 경제적 능력이 아무리 뛰어난들 ‘독립’이라고 말할 수 없다. 역으로, 관계는 독립된 주체 사이에서만 ‘진짜로’ 형성된다. 나와 타인 사이에는 직접적 만남을 방해하는 수많은 요소들이 있다. 성별, 나이, 외모, 국경, 편견, 직업…… 우리는 흔히 상대가 아니라 상대의 이런 요소들과 관계를 맺는다. 대신해서 나를 설명해 주는 것들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여기에 의존해서 관계를 맺는 한, 아무리 관계에 공을 들여도 정작 상대는 머나먼 곳에 있다. 의존관계와 지배-피지배관계를 넘어서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상대의 존재에 닿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상대에게조차 의존하지 않고 내가 ‘나’에 대해서 설명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나로부터 관계를 시작하며,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관계를 쌓아야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로’ 나와 상대에게 ‘부딪힐 수 있다’._김해완, 『다른 십대의 탄생』, 196쪽

(인용된 글 참 멋있지 않습니까?) 이 글에 밑줄을 여러 번 그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가사노동을 하면서도, 그와 가까워진다는 느낌이 없었던 이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점점 지쳐 갔던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저는 원하지 않는 삶을, 남편과 아이를 위해서라는 허울 좋은 이유로 살고 있었습니다. 남편에 대한 미움은 나 스스로를 삶에서 배제시켜 놓고, ‘아내/엄마’라는 틀에 기대어 살고 있는 저에 대한 미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상대의 존재’에 닿기는커녕, 냉정하게 말하면 관계조차도 유지하기 힘든 상태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발로 서는 것을 기피하고, 그저 일로만, ‘아내/엄마’ 역할로만 관계를 맺었기에, 저도 타인들도 공허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아무리 같이 있어도 남 같은 사람과 살아가는 것, 그에게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나를 둘러싼 외적 조건에 기대지 않고, 나를 설명하기란 정말 쉽지가 않습니다. ‘싫다’와 ‘할 수 없다’라는 말을 하고 나면, 세상이 뒤집어질까, 또 싸움이 날까 두려워하던 저에게 독립은커녕 거부의 표현을 하는 것도 어렵게 느껴지지만, 지금 이 순간 노력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와도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저를 다시 한번 움직이게 합니다. 덕분에 나의 거부가 핑계나 일상으로부터의 도피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좀더 제 생활을 다잡게 되었습니다. 자기연민에 빠지는 대신, 이 사람에게 뭘 전달해야 하는지, 뭘 놓치고 있는지 정말 ‘관계 속에서’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들을 조금씩 진행하다 보니 독립적인 관계를 위한 노력은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행복해지는 것임을, 나를 위해 더 잘 사는 것임을 배웁니다. 내가 행복해야만 타인에게도 행복을 전달할 수 있고, 나 역시도 그런 관계 속에서만 만족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또한 그래야만 관계는 다음 방향으로, 또 다른 관계로 흐를 수 있겠죠.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결론이 다가올지, 그 결론이 내게 어떤 기쁨을 주고, 어떤 상처를 줄지, 아직은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어떤 결론이든, 해완 언니가 삶의 방향을 ‘자유’와 ‘독립’에 초점을 두었을 때, 자기만의 길을 만들 수 있었던 것처럼, 저 역시도 ‘독립’에 방점을 찍을 때에만 후회가 없을 것임을, 이제는 명확하게 압니다.

- 편집부 강혜진

2011/04/01 13:00 2011/04/0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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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비출판사 :: 아내, 엄마라는 역할로부터의 독립! - 새로운 '관계맺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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