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연이 똑같은 운명을 탄다. 시간이 흐르면 만나게 되고 헤어지게 되어 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이 운명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무작정 마음 가는 대로 살면서 모든 것을 ‘운명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공자님이 사람의 관계에서 예(禮)와 의(義)를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도, 그것이 하늘과 운명의 장난에 끄달리지 않기 위해 사람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이기 때문이다. 예를 지킨다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이별이 닥치더라도, 예상치 못한 감정이 찾아오더라도, 이것들과 맞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해보는 것이다. 불쑥 찾아온 이 감정과 끝까지 싸워 보든지, 아니면 나와 이 관계에 대해서 밑바닥까지 생각해 보고 후회 없이 결단하든지. 변화와 새로운 국면은 그 다음에 찾아온다.

얼마 전, 첫사랑을 봤습니다. 정확하게는 보고 바로 쌩깠습니다(하하;;). 스무 살에 연애를 시작하면서 이미 ‘헤어진 사람은 두번 다시 보지 않겠다’고 다짐한 저는 정말 강단 있는 여자였다지요. 아무리 죽고 못 살았다고 한들, ‘헤어지면 땡’이라는 게 당시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잘 헤어진다는 것은 그 사람의 흔적을 완전히 박멸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이별의 순간이 왔습니다. 저야 뭐, 아무리 어린 스물하나였다지만 워~낙 성숙한 아이였기 때문에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막상 닥치고 보니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디다. 좌우간 뱉은 말이 있으니 ‘쌩’이어야 했고, 또 스스로 이별을 받아들여야 했기에(풋!) ‘쌩’이어야 했고, 새로운 사랑에게 제 과거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쌩’이어야 하다 보니 어느새 10년이 흘렀네요.

사실 진작부터, 이젠 뭐 남아 있는 것도 없는 마당에, 더욱이 현실적으루다가 나이 들고 이런저런 경조사에서 어쩌다 한두 번씩은 마주쳐야 하는 사이에(하..하필 연애를 지역사회에서 하는 바람에;;) 이럴 필요가 있나 싶긴 하였지만, 내둥 없는 사람 취급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돌변하여 ‘이제 서로 친하게 지내자^^’ 하는 성격은 못 되니 그냥 살던 대로, 얼마 전에도 그대로 고개를 돌려 버린 것이지요. 하지만 뭐랄까요, 마음 한편이 참 찝찝합디다. 당췌 이 껄쩍지근함은 무엇인가, 하고 생각해 보니 답은 바로 저 문장 속에 있었습니다. 지난 날 어떤 시간을 보냈든, 그것이 좋았든 말든, 이제는 끝났으니 너도 과거도 나는 모른다는 식의 예(禮)를 지키지 못한, 아니 지키지 않은 돼먹지 못한 이별이었으니 어떤 식으로든 끝이 구릴 수밖에요. 제대로 한 번 맞서 보거나 싸워보지 않고, 그 이후에 열릴 새로운 관계에 대해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았던 제가 당연히 받을 수밖에 없는 인과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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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겪는 이별의 아픔도 우주의 순환이라 생각하면, 조금은 달라진 자세로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꼭 ‘서른 즈음’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매일 이별을 합니다. 그것은 붙들고 있던 일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연인일 수도 있으며, 몇 년간 몸담았던 직장일 수도 있고, 자식만큼이나 아꼈던 반려동물일 수도 있고, 믿었던 친구일 수도 있고, 가족 중 누군가일 수도 있겠죠. 그들 중 누구라도 불필요한 관계 혹은 저를 불편하게 하는 관계라(고 생각된 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설사 인생에서 그 부분이 공백으로 남는다고 하더라도 과감하게 베어 버리는 것이 저는 깔끔한 마무리라고 생각했지만, 생각해 보면 저는 상황이 불리해지면 예의고 뭐고 꼬리까지 잘라 버리며 도망쳐 버리는 도마뱀과 같은 이별(먹튀?)을 반복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다시 마주쳐 버리더라도 또 잘라내고, 또 잘라내고, 결국 제 살을 다 잘라 먹어 버리는 도마뱀 말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예의’ 없는 짓이고, 또 제 삶의 순환을 방해하는 짓이었는지를 이제야 깨닫게 됐습니다. 순환의 동력은 마무리라고 하더라구요. 이제는 마무리가 그냥 손을 떼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진정한 마무리는 “어느 날 갑자기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이별이 닥치더라도, 예상치 못한 감정이 찾아오더라도, 이것들과 맞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해보는 것”이라는 것을 부끄럽지만 일반적인 삼십대는 ‘다른 십대’에게 배웁니다.

―편집부 봉식어멈

2011/04/04 14:00 2011/04/0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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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웃긴행복 2011/04/13 16:07

    이런 찝찝함을 한번 느껴본 적이 있었는데, 진단서와 같은 글을 여기서 발견하는 군요.
    내 꼬리 잘라먹는다는 비유로 이해하니 아주 체감적으로 와닿습니다.
    꼬리 잘라먹지 않고 맞서봐야 한다.라는 교훈을 얻어갑니다.

    • 그린비 2011/04/13 16:19

      도망치고 싶은 순간을 마주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지요.
      다리가 후들거려도, 맞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