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사람과 '직접' 부딪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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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씀드리자면(음?) 이 책을 읽고 샘이 난다는 그린비 식구들도 있었습니다. 부럽기도 하고, 샘나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고… 한 사람을 대할 때, 모두 똑같은 감정을 느낄 수 없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안티도 애정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하하;) 저의 경우에는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무식한' 공부법이 무척 놀라웠습니다. 이제껏 책을 읽을 때에는 어떤 지식을 배우고, 그 안에서 무엇을 얻는 것만이 제대로 된 공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무식' 혹은 '무지'라는 단어는 늘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눈에 번쩍 들어온 구절이 있습니다.

나는 『노마디즘』이라는 책을 십 개월 동안 읽었다. … 책을 읽을 당시에는 들뢰즈의 이름이나 그의 철학사적 맥락은 아무것도 몰랐을뿐더러, 철학에 대해서라면 아주 초보적인 것까지 깜깜무식한, 그야말로 '무지' 상태였다. 내용을 가르쳐 줄 사람도 없고 요약해 놓은 참고서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정말로 무언가를 '배울' 수 있을까? 머리가 딸려서 배울 수 없다면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다. 모르긴 몰라도 어쨌든 '읽을' 수는 있을 것이다. 나는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이 책을 정말 '무식하게' 읽었다. …
머리로의 이해가 공부의 주라고 생각한다면 이 무식한 독서법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누군가에게 내 경험담은 구구단도 못하는 유치원생이 미적분을 공부하려는 모습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유치원생이 구구단을 무작정 외우는 것이나 미적분 기호를 무작정 보는 것이나 무슨 차이인가? …
내 무식한 책 읽기에도 분명 지적인 사건들이 있었다. … 외계어를 읽는 그 와중에도 나에게 벼락같이 꽂혔던 몇 구절이 있었다. 그 순간에는 흰색과 까만색뿐이던 종이에서 밑줄 그은 구절에서만 빛이 났다. 그 내용을 기억하느냐고 묻는다면 다시 한 번 까먹은지 오래라고 대답하겠다. 그게 무슨 잘못인가? 망각은 무지가 아니다. 사람들은 '기억'과 '앎'을 혼동한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려고 애쓰는 것들은 머리에 잠깐 왔다가 다시 흘러가 버리는 지식의 조각들일 뿐이다.
─ 『다른 십대의 탄생』, 114쪽

무식한 독서법! '어렵다고 포기말고 그냥 '몸' 하나로 부딪혀 볼까?' 하는 용기가 생기더군요!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징하게' 책을 읽게 된 이유가 글을 써야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앞으로 나는 계속 글을 쓸 것이다.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겪고, 보고, 듣고, 느끼는 수많은 것들은 글을 쓰지 않으면 그냥 흘러가 버린다. 글을 쓸 때 그것들은 비로소 '나'가 된다. 내가 쓴 글은 내 소유물이 아니다. 내 이름이 박힌 글은 곧 '나'이고 나는 글을 쓸때 내가 된다. 그리고 내가 쓴 글이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닐 때 비로소 나는 세상과 만난다. 내 글은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부딪힌다. 사람들은 내가 그대로 담겨 있는 내 글을 읽을 때 어떤 핸디캡도 주지 않고 그대로(솔직하게, 냉정하게, 진심으로) 반응을 보인다. 이때만큼은, 나는 세상과 동등하게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쓸 때 내 전부를 던진다. 그리고 내 글과 전면적으로 부딪혀 줄 누군가를 기다린다.
─ 같은 책, 165쪽

글로 사람들과 세상과 '직접' 만나고 싶다는 소녀, 저는 이 글에서 간절함과 절박함을 느낍니다. 절박함이 없다면, 그 자리에 머물기만 한다는 말도 떠오릅니다. 왜 변해야 하는 것일까, 라고 물으신다면 더 '잘' 살기 위해서라는 대답 밖에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방법은 모두 자신만이 알 수 있다고 믿습니다.

며칠 전 수업에서 선생님이 "지금 내가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제대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를 제대로 관찰했다면 그렇게 말할 수가 없다."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를 보고, 정면으로 부딪힌다는 것! 이제껏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지만, 이제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기분이 듭니다. 여러분에게도 이 인터뷰가 힘이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글쓰기이든, 어려운 책이든 두려워하지 않고 무작정 덤빌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



고미숙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공부는 쿵푸다’를 직접 체험한 것 같은데요, 이 경험에 대해 좀더 자세히 말해준다면요?

(제가 다닌 대안학교에서는) 중3이 되면 졸업 작품을 써야 되거든요. 수필집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학교에서 수필집을 쓰려면 멘토를 정하래요. 그래서 국어선생님한테 첨삭을 부탁하러 갔는데, 선생님은 (신청한 친구들이 너무 많아서) 진행과정만 봐주시겠다고 하셨어요. 그때 고미숙 선생님이 연구실에서 에세이 첨삭(채찍질)을 하시던 때라 제가 선생님께 멘토 해주실수 있냐고 여쭤봤죠. 그랬더니 선생님이 멘토가 뭐냐고 되물으셨고, 제가 멘토가 이러이러한거다 하니까 선생님이 “그럼 니가 글을 써오면 내가 읽고 말해주면 되냐”라고 물으셔서 제가 “그렇다”고 대답했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재밌겠다, 일단 써와라” 그렇게 해서 글을 써갔는데, 피바다의 첨삭을 거치게 되었죠. 그런데 저는 그때 선생님의 첨삭이 정말 좋았어요.
 
고미숙 선생님이 글을 쓰는 데 수필이 가장 어렵다, 철학적인 기초가 없으면 글이 정말 깊이 없이 감상적으로 된다고 하셔서 철학책을 읽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노마디즘』을 읽어보라고 하셨는데, 그 책을 권한 특별한 이유는 없었던 것 같아요. 마침 집에 아빠가 사오신 『노마디즘』이 있었어요. 들뢰즈가 누군지도 모르고 노마디즘이 영어로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책은 두껍고…. 어쨌든 읽기 시작했는데 하얀 것이 종이고 까만 것이 글씨인데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고, 용어도 너무 낯선 거예요.    
근데 저를 버틸 수 있게 해준 것은 글을 안 써가면 선생님을 만날 구실이 없잖아요. 그때 제가 선생님을 엄청나게 좋아하게 된 뒤여서,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글을 써갔어요. 그러면서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어떻게든 이해를 했어요. 세 번씩 읽고, 개념을 정리하고, 내가 이 책으로 무엇을 써야 될까 고민하면서 글을 쓰고…. 저는 그 책을 읽었을 때가 등 뒤에 칼이 있다는 생각을 해야만 읽을 수 있었던 밀도였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열 달 동안 열심히 읽었는데) 사실 지금은 기억도 안나요. 그래서 까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요새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개념을 생각하거나 생각을 연상할 때 뭔가 그때(『노마디즘』을 읽었을 때) 생각이 나요. 몸에 남아있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노마디즘』의) 개념이나 들뢰즈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할 수 없는데 몸에는 남아있는 것 같아요. 글을 쓴다는 게 정말 배수진을 치게 만든 거죠. 설렁설렁 읽을 수가 없으니까요.
 
글을 쓰게 된 최초의 원동력이 좋아하는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외에도 글을 쓰게 한 힘이 있다면요?

글을 써야할 이유를 만들고 쓰지 않아요. 글을 쓰다 보면 왜 쓰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가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글을 쓰는 것이 제 문제를 해소하는 것도 있지만, 사람과 만나는 데 굉장히 좋다고 생각해요. 글로 소통을 한다는 것이 진부할 수도 있는데, 저는 실제로 느끼게 되었거든요.

제가 평소에 십대로서 많이 느꼈던 것이 바로 (책 제목이기도 한) ‘소녀는 인문학을 읽는다’ 컨셉이에요. 자퇴를 했고, 미성년자고, 부모님 영향 아래 있고, 근데 다른 공부를 하고 있고… 이런 이미지나 아우라가 저에게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사람을 만날 때 자꾸 제가 그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만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 생각이 ‘빨리 어른이 되야 하는가’ 이렇게 표출이 되기도 했지요. (저를 둘러싼 이미지를 거치지 않고) 제가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저는 어리게 봐도 제가 어떤 글을 썼을 때, 그 글에 대해서는 굉장히 냉철하게 보거든요. ‘니 글이 이런 게 문제고, 이건 니가 이렇게 생각을 하다가 이렇게 빠졌고, 이건 느낌이 별로 안좋고…’ (합평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직접 접하게 되었어요. 글은 저이기도 하고 제가 아니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글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저는 사람들과 그 글을 가지고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린비 블로그에) 연재를 할 때에도 모르는 사람이 제 글에 댓글을 달 때가 있었어요. 칭찬을 할 때도 있고 욕을 할 때도 있고 다른 생각을 쓸 때도 있었는데, 그것도 저에게는 굉장히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제가 글을 계속 쓰는 이유가 저의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까지는 아니더라도) 푸는 것과 같이 사람들과 직접 만나는 그런 기능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책을 읽을(읽은) 독자 분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어떤 걸 하려고 싸우거나, 다른 길로 가려고 기를 쓰거나 그런 상태가 아니에요. 자연스럽게 살았고, 그걸 책으로 쓰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굉장히 필연적인 도움들이 많았어요. 이 책을 읽을 때 ‘대안학교의 대안이다’ 아니면, ‘이건 얘만의 특수한 상황이니까 나랑은 거리가 멀어’ 이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저 아이가 이렇게 살고 이렇게 생각을 했구나…이럴 수도 있구나’ 이렇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십대의 탄생 - 10점
김해완 지음/그린비
2011/04/05 09:00 2011/04/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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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독후감] '다른 십대의 탄생' 을 읽고

    Tracked from 열심남의 일상 2011/05/09 22:25  삭제

    고미숙님의 일련의 달인 시리즈로 부터 알게된 출판사 그린비~ 고미숙님이 좋은 출판사라고 하는곳... 그래서 그린비의 블로그를 구독하다가 우연하게 눈에 들어온책 '다른 십대의 탄생' 다른 십대의 탄생김해완 상세보기 책의 저자 김해완님은 93년생이다. 본인 스스로 중졸백수라고 칭하는 저자. 중졸 백수라... 그럼 대학은 물론 고등학교 졸업도 안했다는것인데. 이 친구가 어떻게 책을 썼을까? 책의 부제 역시 '소녀는 인문학을 읽는다'이다. 본인스스로 중졸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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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ipp 2011/04/06 01:24

    인생을 살아가는 길은 어려 갈래가 있죠..
    많은 이들이 한쪽으로 간다고 꼭 그 길을 따라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책임질 수 있는 자유와 독립,이런것들과 함께라면 어느 길이나 그건 바로 내 길이 되는거죠.
    저자의 성숙한 사고가 보기 좋습니다. ^^

    • 그린비 2011/04/06 10:55

      우와! Lipp님! 멋진 말씀입니다~!
      자신이 선택하고 걸어가는 길에 책임지기!
      저자의 목소리가 힘차고, 밝은 것도 아마 그런 마음 때문이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