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부속품의 일부로서의 나. 카운터에서 버튼을 누르는 일을 통해 나는 도대체 무슨 기술을 습득할 수 있을까? 맥도날드 메뉴 전체를 외우게 되었고, 어떻게 메뉴를 조합해서 시켜야 가장 유리한지도 알게 되었지만, 나는 앞으로 맥도날드에서는 햄버거를 사먹지 않을 생각이기 때문에 이것은 별로 필요 없는 기술이다. 나는 카운터 '김해완'이 아니라 이름 없는 '1번 카운터'다.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고, 나 역시 언제든지 이 일을 포기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알바시간은 언제나 '4,110원' 그 이상의 의미도 이하의 의미도 아니다." (김해완, 『다른 십대의 탄생, 소녀는 인문학을 읽는다』, 그린비, 2011, 72쪽)

저의 엄마는 '식당 아줌마'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식당들 아줌마'입니다. 얼마 전까지 일하던 식당에서 인격적인 무시를 일삼는 사장님과 크게 한 판 싸운 다음 그곳을 나와서 지금은 용역업체에 인적사항을 등록해 두고 필요한 곳에서 연락이 오면 그날그날 일하고 일한 만큼 일당을 받고 계십니다. 연락이 오는 곳의 대부분은 식당이고요.

엄마의 꿈은 적게 벌어 적게 쓰고 공부하며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깨어 있는 시간을 몽땅 노동으로 채워야 하니 저렇게 소박해 보이는 꿈도 사실상 실현 가능성이 적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부터 엄마는 공부와 명상을 즐기셨습니다. 당시 엄마가 제게 공부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 어리기만 했던 저는 엄마가 항상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나 '잡념이 없는 상태'에 대해 끊임없이 다양한 언어로 제게 설명하려 하셨을 때 저는 그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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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일하는 현장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카운터'라는 일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했을 때, 나는 기계적 체계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기술자가 될 것이다. (『다른 십대의 탄생』, 75쪽)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엄마의 이야기 상대가 되어 드릴 수 없었던 것이 참 아쉽습니다. 공부라고는 교과서 공부밖에 몰랐던 저는 엄마의 공부를 현실에서는 전혀 쓸모없는 공부쯤으로, 아니 그것은 공부조차도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저뿐만 아니라 주위 대부분의 사람들이 엄마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렇게 엄마는 함께 얘기 나누고 공부하고 서로를 촉발시킬 '친구' 하나 없이 외로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처음으로 엄마를 공부의 길로 안내해 주었던, 그리고 엄마의 유일한 친구였던 아빠와 이혼한 뒤 그 외로움은 더욱 심해졌겠지요.

현재 엄마는 홀로 지내시면서 그냥저냥 생계를 유지하고 가끔 명상을 즐기십니다. 물론 생계유지를 위한 식당일은 엄마에게 '일당' 이외의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루 종일 온갖 궂은 일을 다 하고는 몸마저 상해 버렸지요. 손이 저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도 많았고 허리디스크로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습니다. 식당에서 엄마는 부르면 달려가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나르는 ‘아줌마’라는 ‘기계’일 뿐입니다. 또 정직원이 아닌 ‘하루 직원’이니 유독 하기 싫었던 궂은일을 엄마가 도맡는 것도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인간 ‘윤영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주어진 공간 안에서 맡은 일을 해내지만 그곳에서 엄마는 인생 자체를 의미 있게 만들어 줄 그 무엇도 찾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너무나도 외로운 삶이지요.

제가 그린비에 입사하고 엄마가 제게 회사 생활은 어떠냐고 물었을 때 저는 공부도 하고 글쓰기도 하고 사람들과 함께 와글와글 지낸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너무 아름답게 묘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저의 생활이 너무나도 부럽고 또 대견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공부에 대한, 친구에 대한 엄마의 바람을 이룰 수 있도록 제가 나서서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도시에 살지 않는 엄마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고민하고 있는 저에게 주간님께서는 강의를 함께 들어 보는 것은 어떨지 제안하셨습니다. 아, 왜 그 생각은 못했을까요? 강의라고 해도 일주일에 한 번 꼴이니 딸내미 만나러, 서울구경하는 셈치고 오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엄마에게 공부하며 소통하며 함께 사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생활하는 공간을 보여 드리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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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을 뛰어넘어 자유롭게 공부하는 것, 그것은 '장벽을 뛰어넘는 방법을 공부'하는 것과 함께 간다. 공부로써 친구가 되었지만 또한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이 공부였다. 다른 나이, 다른 조건, 다른 삶, 다른 존재가 어떻게 친구가 되고 또 어떻게 함께일 수 있는가. 계속 가져가야 할 고민일 것이다." (『다른 십대의 탄생』, 22쪽)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일하는 것도 힘든데 서울까지 올라와서 강의를 듣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한 번쯤 시도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냐고, 함께 강의를 듣는다는 것이 엄마와 저 서로에게도 아주 소중한 기회가 되지 않겠냐고요. 다행스럽게도 엄마는 흔쾌히 응하셨습니다. 강의는 평소 엄마가 제게 자주 말씀하시던 이야기와 많은 부분 닿아 있는 고미숙 선생님의 강의로 정했습니다. 고미숙 선생님의 강의가, 또 <연구공간 수유+너머>라는 공간이 엄마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벌써 조금은 긴장되고 기대도 됩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가 엄마에게 조금은 덜 외로운 인생을 선물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정말로, 진심으로 바라봅니다(두근두근).^^

- 디자인팀 서주성
다른 십대의 탄생 - 10점
김해완 지음/그린비
2011/04/07 15:00 2011/04/0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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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리경 2011/04/07 15:50

    어머니와 함께 듣는 강의 이야기 가끔씩 들려주세요 ^^
    저도 엄마와 같이 강의도 듣고, 책에 대한 수다를 떨면서
    와글와글(?^^) 지내고 싶네요..!

    • 그린비 2011/04/07 16:29

      저도 두 분의 이야기가 무척 기다려집니다.
      함께 기다려요~ 두근두근~ ^^

  2. 알라 2011/04/07 18:25

    어머님도~ 주성씨도 너무 멋있어요!!
    저도 나중에 사랑하는 제 딸이랑 함께 강의를 들으러 다니는 멋진 엄마가 되고 싶네욤!!

    • 그린비 2011/04/08 09:24

      알라님 여유있게(!) 기다리셔도 좋을 것 같아요.
      언젠가 그런 모습의 두 사람을 상상하게 되네요~ ^^*

  3. miamo 2011/04/08 16:43

    와, 정말 감동적입니다. 훌쩍. 저도 벌써부터 어머니의 강의 후기가 기대됩니다. 꼭 올려주세요. ^^

    • 그린비 2011/04/09 01:34

      눈물 닦으시고...후기 기다려 주세요! ^^*

  4. 잠퇘지 2011/05/06 13:17

    그린비라는 공동체에 몸담게 된 주성씨도 부럽고, 주성씨 같은 자식을 둔 어머님도 부럽네요. 보다 좋은 공동체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계'가 아닌 그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삶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