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가 아는 한국사의 종언”
― 한국의 역사를 새로 쓴다!! 위험하고 무모한 비판적 한국사, 재미는 상상 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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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회무진 한국사』- 남경태의 역사 오디세이 3부작

남경태 지음 | 도서출판 그린비 | 갈래 : 역사
발행일 : 2001년 8월 17일 | 신국판 | 432쪽(상), 432쪽(하)
| ISBN : 978-89-7682-920-7(상), 978-89-7682-921-4(하)

이 책은 일반 통사 책처럼 객관적인 사실만을 흩뿌리며 한국사를 개괄하지는 않는다. '비판적 한국사'라는 지은이의 말처럼 그는 우리 역사를 미화하거나 찬양하기는 커녕 불쾌하다 싶을 정도로 우리 역사의 뒤틀린 부분들을 들춰낸다. 또한 지금까지 우리 역사를 '한민족'이라는 단일 민족의 역사로 바라보는 것에서 벗어나 한국사를 '한반도'의 역사라는, 지역적 틀 속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라면 단일민족의식이 거의 없었던 신라와 백제 그리고 고려 삼국을 굳이 '우리 역사'의 틀 안에 가둘 필요가 없고, 발해를 한국사 안에 편입시키는 것도 별 의미가 없다고.


∎ 지은이 소개

남경태 | 우스개말로 ‘종합 지식인’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지은이는 3년 전 『종횡무진 동양사』를 발간할 때부터 세계사의 전체적 개요를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겠다는 무모한(?) 욕심을 키웠다. 그래서 1999년에는 688쪽의 ‘짧은’ 분량으로 서양사를 총정리한 『종횡무진 서양사』를 썼으며, 이듬해에는 영국의 저명한 문필가인 줄리어스 노리치가 쓴 『종횡무진 동로마사』를 번역해서 동양과 서양의 중간지대에 위치한 동유럽과 중동의 중세사를 독자들에게 제시했다. 『종횡무진 한국사』 상·하권은 그 마무리에 해당하는 역작이다. 한국사가 포함되어 있는 만큼, 아마 세계사의 전 부문을 이렇게 한 사람이 일관적인 관점으로 종합 집필한 경우는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할 것이다.
    원래 지은이는 뜨거웠던 시대인 80년대에 가장 뜨거웠던 사회과학 출판을 하던 인물이었다. 당시 ‘남상일’이라는 필명으로 그가 번역한 레닌의 『제국주의론』과 마르크스주의 고전들을 영한대역이라는 독특한 기법으로 소개한 『공산당 선언』, 『포이어바흐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 등을 기억하는 386세대는 적지 않을 것이다. 90년대 들어 지은이는 왕성하게 인문 대중서를 집필하고 번역하는 일에 종사했는데(그 중에는 현대철학자 31명을 다룬 『한눈에 읽는 현대철학』이 있다), 지은이 개인적으로도 이 『종횡무진 한국사』는 역사 분야를 마무리하는 작업이며, 앞으로는 그동안 정리한 현실의 역사에다 지성의 역사를 배합하여 일반 대중이 소화할 수 있는 참신한 철학사를 꾸미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현대 물리학에서 말하는 ‘대통일이론(GUT)’이 인문학 분야에서는 지은이와 같은 크로스오버와 퓨전 지식인에게서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 목 차

[ 상권 ]

책 머리에
프롤로그 : 한국사를 시작하면서

제1부 깨어나는 역사
1. 신화에서 역사로
2. 왕조시대의 개막

제2부 화려한 분열
1. 고구려의 역할
2. 깨어나는 남쪽
3. 뒤얽히는 삼국
4. 진짜 삼국시대

제3부 통일의 바람
1. 역전되는 역사
2. 통일 시나리오
3. 통일의 무대

제4부 한반도의 단독 정권
1. 새 질서와 번영의 시대
2. 소용돌이의 동아시아
3. 단일왕조 시대의 개막

제5부 국제화 시대의 고려
1. 모순된 출발
2. 고난에 찬 데뷔전
3. 안정의 대가

제6부 표류하는 고려
1. 왕이 다스리지 않는 왕국
2. 최초의 이민족 지배
3. 해방, 재건, 그리고 멸망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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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권 ]

책머리에

제1부 유교왕국의 완성
1. 건국 드라마
2. 왕자는 왕국을 선호한다
3. 팍스코레아나

제2부 왕국의 시대
1. 왕권의 승리
2. 진화하는 사대부
3. 군주 길들이기

제3부 사대부 국가의 시대
1. 개혁과 수구의 공방전
2. 병든 조선
3. 비중화 세계의 도전 : 남풍
4. 비중화 세계의 도전 : 북풍
5. 복고의 열풍
6. 조선판 중화세계

제4부 왕정 복고
1. 조선의 새로운 기운
2. 한반도 르네상스
3. 마지막 실험과 마지막 실패

제5부 불모의 세기
1. 사대부 체제의 최종 결론
2. 허수아비 왕들
3. 위기와 해법
4. 되놈과 왜놈과 로스케 사이에서

제6부 식민지와 해방과 분단
1. 가해자와 피해자
2. 식민지 길들이기
3. 항전과 침묵과 암흑의 시기
4. 해방, 그리고 분단

에필로그 : 한국사의 여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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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사건으로 갑자기 역사가 시대의 화두처럼 되어버린 듯하다. 때마침 TV 드라마들도 <태조 왕건>, <여인천하>, <명성황후>, <홍국영> 등등 사극 메뉴가 그 어느 때보다도 풍성하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인문학의 대표라 할 역사에 일반 대중이 관심을 가진다는 건 일단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사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일본의 한국 침략과 그것을 합리화하거나 묵과하려는 일본의 태도를 비판하는 것은 지극히 정당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침략을 허용한 우리 역사의 허점과 지배층의 잘못을 덮어버린다면 그것은 온당치 않을 뿐더러 늘 모든 책임을 바깥에만 전가해온 우리 역사의 또 다른 허점을 드러내는 데 불과하다.

그래서 우리 역사를 바라볼 때는 특히 비판적 관점이 중요해진다.이 책은 한국사를 통사적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 대중 역사서지만, 결코 아무런 사관도 없이 우리 역사를 그저 요약,정리해놓은, "한 권으로 읽는" 혹은 "알기 쉬운" 등의 수식어에 어울리는 역사서는 아니다.

때로는 가슴 아프고, 때로는 가슴이 뜨끔하고, 때로는 한숨이 나오는 우리 역사의 큰 흐름과 후미진 곳을 섬세하게 아우르며 종횡무진하는 역사서다. 아마 연구서와 대중서를 통틀어 최초로 시도되는 가장 통렬한 비판적 역사서라는 게 이 책의 정체일 것이다.

우선 이 책은 한국통사다. 요즘 유행하는 테마사(역사를 조각내서 장면들을 추스린 책)도 아니고, 정식 역사서에는 없는 역사 속의 특별한 일화나 야사를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는 책과도 거리가 멀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지은이가 일관적인 사관으로 한국사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는 역사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접하는 독자는 일단 한국사의 수많은 사건들을 요령있게 정리한 지은이의 솜씨에 놀랄 것이며, 이름은 들어 알고 있는 그 수많은 역사상의 사건들이 마치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한국사의 전체적 흐름 속에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다는 데 또 한 번 놀랄 것이다. 역사의 모든 구슬들이 한치의 빈틈도 없이 정교하게 꿰어맞춰져 있는 데서 독자는 역사적 필연성이라는 게 결코 역사학자들의 추상적인 개념이 아님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은이도 밝히고 있듯이 "우리 역사에서 민족적 자부심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좋다. 이 책은 우리 역사를 미화하거나 찬양하기는커녕 불쾌하다 싶을 정도로 우리 역사의 뒤틀린 부분들을 해부해서 낱낱이 밝히고 있으며, 그 왜곡된 부분들이 오늘의 우리에게까지도 면면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집요하게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모든 時事의 배후에는 歷史가 있다).

어찌 보면 우리가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국사'의 정체가 실상 이런 것인가 하는 기분이 들 정도다. 예컨대 이 책에서는 단군신화가 실상 우리 조상이 중국에서 넘어온 외래인임을 말해주며, 단군이 선진 농법인 미작 농경술을 한반도에 전함으로써 한반도가 장차 중화세계의 일원이 되는 단초를 열었다고 쓰고 있다.

"단군 시대 이전 한반도인들은 조, 기장, 보리, 콩 등을 먼저 경작했고 그런 작물들을 바탕으로 원시적 농경문명을 일구었다. 그러나 단군은 한반도인들에게 미작 농경을 권하고 퍼뜨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았다면 단군이 새삼스럽게 토박이들에게서 지배자로 인정받기 어려웠을 것이며, 감히 천제의 후손임을 자처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그의 아버지인 환웅의 특기도 바로 쌀 농사와 관련된 중요한 요소들(바람과 비와 구름)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 그러나 미작 경영은 한반도의 지리적 조건에 맞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이후 역사 시대 내내 우리 민족이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처음부터 여건에 맞지 않는 미작 농경을 주업으로 삼은 데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릇 역사를 바라볼 때 오늘의 관점을 그대로 투영한다면 그것은 요즘 우리가 비난해 마지 않는 "역사 왜곡"을 빚을 것이다. 삼국시대의 삼국은 오늘날과 같은 "선(線)" 개념의 강역을 지닌 영토국가가 아니었고 단일민족의식도 거의 없었다. 이렇게 본다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은 굳이 '우리 역사'의 틀 안에 가둬놓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은이는 민족 이데올로기를 앞세우는 "한국사"의 관점보다 중화세계와 비중화세계라는 "지역사"의 관점에서 우리 역사를 바라볼 것을 권한다. 그렇다면 19세기까지 중화세계에 속했던 한반도 왕조들에 현대적인 국적을 부여하는 지금의 "국사관"에는 문제가 있다. 예컨대 역사학적 쟁점 가운데 하나로 발해가 중국사라든가 한국사라든가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더욱이 지은이는 용감하게도(?) 발해가 전혀 고구려의 계승자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발해는 대외적인 주장과는 달리 고구려와는 거의 무관해 보인다. 우선 영토적인 면을 봐도 그렇다. 알다시피 고구려의 영토적 중심은 늘 랴오둥과 한반도 북서부였다. 하지만 발해는 처음부터 랴오둥을 포기했으며, 한반도 북서부에도 전혀 세력을 뻗치지 못했다. 한번도 옛 고구려의 핵심부를 차지한 적이 없는데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좋게 말해서 발해의 외교적 제스처이고 나쁘게 말하면 발해가 고구려의 이름을 팔아먹은 격이다.

또한 주민의 구성으로 봐도 발해는 옛 고구려의 유민들보다는 말갈을 비롯한 만주 거주 민족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일단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영토와 주민에서 발해는 고구려의 계승자가 될 자격을 전혀 갖추지 못한 것이다. …… 건국자인 대조영부터 그랬듯이 발해는 전성기 때조차도 랴오둥을 노리지 않았는데, 그것은 발해의 운명을 위해서는 커다란 판단미스였을 뿐 아니라 당말오대에 북방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분위기에 역행하는 것이었다.

만주를 근거지로 삼는 왕조로서 랴오둥을 차지하지 못한다면 결국 패망하고 만다는 것은 일찍이 고구려의 역사 전체를 통해서도 분명한 사실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발해가 만주에 안주한 것은 곧 북방에서 부는 새로운 바람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발해를 대신해서 세대교체의 선두주자로 발돋움한 것은 거란이었다."


이렇듯 지은이는 한반도 왕조들이 중국의 한족 왕조에게 사대함으로써 중화 문명권의 일부로 편입되는 흐름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지은이에 따르면, 그것으로 동북아의 역사는 중국과 한반도의 중화세계와, 중원 북방과 일본의 비중화세계로 나뉘어 전개되며, 한반도의 왕조들은 중국 한족 왕조들에게서 '특별한 오랑캐'의 지위를 부여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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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28 14:32 2007/12/28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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