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학-함께하기’를 위하여
— 그린비 장애학 컬렉션을 발간하며

김도현(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휴학을 했던 기간을 포함해 대학시절의 5년,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운동을 해왔던 10년, ‘장애’는 제 운동의 가장 중요한 핵심어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운동을 하면 할수록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장애 그 자체가, 장애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참 모호하고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고 사실 여전히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쉬웠던 것 중 하나는, 그 어려움을 풀고자 함께 수다를 떠는 데 있어, 혹은 사고를 진척시키는 데 있어, 어떤 ‘단초’나 ‘꺼리’가 되어줄 만한 텍스트를 찾기도 역시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운동을 해 나가면서 느끼게 된 것은 이러한 공백이 단지 개인적인 아쉬움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 활동을 하면서 전체 장애인 중 절반이 초등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을 지닌 채 살아간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저는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 세대만 해도―참고로 저는 74년생 범띠입니다―특별한 일 없으면 고등학교 정도까지 다니는 것은 일종의 ‘상식’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 비상식적인 상황에 대해, 그리고 그러한 상황이 함의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제가 다녔던 특수교육과의 교재나 수업에서는 전혀 언급조차 되지 않았습니다(흔히 장애를 다루는 3대 학과라고 하면 특수교육과, 사회복지학과, 재활학과를 꼽습니다).

2000년 여름, 저는 졸업 한 학기를 앞두고 노들장애인야학의 상근교사 겸 사무국장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딱히 졸업을 할 의지가 없다보니 수업을 안 나갔는데, 저는 우리학교 사범대 역사상 최초로 졸업 이전에 ‘취업’을 나간 것으로 행정 처리되는 영광을 안았고^^;, 아름답게도 All~ D학점을 받고-.-; 졸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01년부터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시작되었는데, 노들장애인야학이 장애인이동권연대의 간사 단체를 맡다보니 자연스레 열심히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지하철 선로 점거, 버스 점거, 도로 점거 등 점거를 참 많이 해서 시민들로부터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주변의 다른 단체 활동가들도 그런 전술이 가져올 수 있는 여론의 악화 등 역효과에 대해 우정 어린 충고를 해주기도 했지요. 그러나 그 때마다 노들장애인야학의 교장이신 박경석 선생님(현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이기도 합니다)은 “야, 욕을 바가지로 먹든 한 트럭을 먹든, 욕을 더 많이 먹어서라도 우리 문제가 「100분토론」에 한번 나와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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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특별한 날로 기념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삶에서 '다른 신체'들을  분리시키고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지난 10년간 우리사회의 장애인들은 삶의 기본적 권리들을 주장하며 처절한 투쟁을 벌여왔고, 굵직한 이슈도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까지 매 주마다 하는 공중파 방송의 토론 프로그램에서 장애문제를 다룬 것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대략 1,560회(=3개 채널×52주×10년)의 이슈 중 장애문제가 ‘단 한 번’ 낄 자리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양상은 사실, 소위 운동사회 내에서의 주요 학술행사나 토론행사에서도 대동소이하게 나타납니다. 그런 공론의 장에서 장애는 함께 공유하고 논의해야 할 무엇으로서 좀처럼 초대받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 한국 사회의 장애인들은 무수히 많은 말들을 해왔지만, 어떤 면에서 그러한 말들은 좀처럼 사회화되지 않았고, 담론화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들의 말은 다른 말들과 말들의 체계 속에서 다시 반복되고 증폭되고 재해석 되면서 의미를 획득했던 반면, 장애인들의 말은 이 사회를 향해 내뱉어진 뒤 대부분 날 것의 말 그대로 소멸되어 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에서의 답답함과 서운함을 가라앉히고 조금 냉정한 관점에서 보자면, 이러한 문제에 대한 원인을 모두 장애인 공동체 외부와 상대방에게서만 찾을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장애인들의 날 것의 말과 몸짓을 ‘현장에서 직접’ 소통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이 사회의 그 상대방들, 그들과 공간성 및 일시성의 제약을 뛰어 넘어 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매개물이 필요한 건 아닐까, ‘아’ 했는데 ‘어’라고 듣지 않도록 일정한 리듬 및 코드에 맞춰 소통을 가능케 하는 공동성 자체를 증대시킬 기제가 마련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고민을 해보게 되는 것이지요. 그린비 장애학 컬렉션의 발간 작업은 바로 이러한 매개물 및 기제를 구성해내기 위한 실천의 일부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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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튀세르Louis Althusser는 형식화된 텍스트로서의 철학은 거의 생산하지 않았지만 철학이라는 장場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철학의 무대인 세계를 변화시켰던―그리하여 또한 새로운 철학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던―맑스를 염두에 두면서, 비非철학으로서의 철학, 철학의 새로운 실천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을 조금 더 확장되고 일반화된 의미에서라면 그냥 ‘철학-하기’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장애학 역시 장애학이라는 장을 형성하기 위한 하나의 필요조건으로서 텍스트의 생산이 요구되지만, 앞서 얘기되었던 맥락에 비추어보자면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장애학-하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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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봅니다. 아니 텍스트로서의 장애학은 그러한 장애학-하기의 일부분으로 자리매김 될 때만이 진정으로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장애학-하기는 필연적으로 공동의 작업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다시 ‘장애학-함께하기’라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함께 장애학을 읽고 성찰하는 것, 그러한 성찰을 말과 글을 통해 함께 나누는 것, ‘장애인-되기’를 감행하는 것(즉, 장애/비장애라는 분할을 가로지르고 넘어서는 새로운 관계 맺기와 이를 통해 스스로의 변태變態를 시도하는 것), 절실한 삶의 요구를 걸고 아스팔트 위에 선 장애인의 곁에 함께 서는 것, 그리하여 장애라는 현상을 구조화시키는 세계의 배치를 변화시킴으로써 새로운 장애학의 탄생과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것! 그린비 장애학 컬렉션은 또한 ‘장애학 함께 읽기’를 넘어 바로 이러한 ‘장애학-함께하기’를 위한 바람 속에서 기획되었습니다. 그 바람이 더 많은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바로 이 시간 이 글과 조우한 여러분들의 관심과 참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학 때 제가 활동했던 동아리(이름이 프락시스praxis인데, 제가 졸업할 때 마지막으로 회장해먹고 망했습니다-.-;)의 한 선배가 했던 말 중 긴 여운을 남기며 종종 떠올리게 되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소수자의 문화와 시선에 담겨있는 진보성과 긍정성’인데요, 요즘 이진경 선생님의 『코뮨주의』를 읽으며 이 말을 다시 되새겨보고 있습니다. 『코뮨주의』에서는 진정한 코뮨을 구성하기위한 기본 전제로 인간중심주의humanism로부터의 탈피와 모든 존재자의 평등성을 이야기합니다. ‘인간’, 인간이라는 주체가 대상으로 간주해왔던 ‘자연’, 인간이 만든 인공물로서만 사고되는 ‘기계’, 그 존재자들 모두가 사실은 자연이자 동시에 기계이며 또한 평등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그 내용을 접하며 저는 장애인을 떠올렸고, 장애인의 모습에서 어떤 ‘잠재력’을 읽습니다.

요즘 예능의 대세인 리얼 버라이어티 중 「남자의 자격」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실제 내용이 그 타이틀과 얼마나 상관성을 갖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남자의 ‘자격’이란 곧 남자라는 집단 내에 포함될 수 있는 ‘조건’과 ‘능력’을 뜻합니다. 그린비 장애학 컬렉션의 첫 번째 책으로 발간된 『우리가 아는 장애는 없다: 장애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접근』이 전해주는 핵심적인 메시지 중의 하나는 어느 문화에서나 장애―혹은 서구적 장애 개념에 일정하게 대응하는 무엇―는 인격이라는 개념, 즉 인간의 자격이라는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범주라는 사실입니다. 장애가 인격의 개념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은, 반복해서 말하자면 장애dis-ability라는 상태condition를 질문하는 것은 곧 인간의 능력ability 및 조건condition을 질문하는 것과 분리될 수 없음을 말합니다. 장애인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바로 인간 이하의 존재, 즉 비인격체non-person로 간주되는 존재인 것이지요.

이것이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하나의 대전제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 보이는 서구화된 세계에서는 부정될 수 있을 것 같지만, 오히려 훨씬 더 정확한 진실입니다. 인간이 시민으로 존재하는civilized(문명화된!) 세계에서 장애인들이란 정확히 시민자격citizenship으로부터 배제된 자들이니까요. 전체 장애인의 절반이 초등학교 졸업 학력 이하의 학력을 지닌 채 살아간다는 것, 전체 장애인의 2/3가 노동으로부터 배제되어 있다는 것은 무얼 의미할까요? 여기서 교육과 노동(근로)이 대한민국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라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그것이 단순히 교육권과 노동권이라는 권리로부터의 배제만은 아님을, 즉 기본의무의 면제(배제)와 더불어 그러한 의무를 전제로 하는 일련의 권리와 공동체로부터의 배제임을 간파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2000년대까지 장애인운동의 현장에서 가장 빈번하게 외쳐졌던 구호는 다름 아닌 ‘장애인도 인간이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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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한 극장 안의 장애인 전용 화장실. 법으로 지정된 시설을 확보하는 것과 '배려'는 다른 생각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렇다면 인간 이하의 시선에서 세상을 경험하고 또 바라볼 기회를 지닌 장애인들은, 다양한 기계나 인공물을 이미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중증장애인들은(집회 현장에서 강제 연행을 당하며 전동휠체어를 빼앗길 때, 제 중증장애인 동료들은 “이 자식들아, 그건 내 몸의 일부야”라고 외칩니다), 그러한 존재론적 평등성을 훨씬 더 잘 구현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존재들이 아닐까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말 그대로의 단상인데요, 이러한 단상들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풍부화할 수 있는 기회도 그린비 장애학 컬렉션과 더불어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 또한 즐겁고 유의미한 ‘장애학-함께하기’의 과정이 될 테니까요.

우리가 아는 장애는 없다 - 10점
베네딕테 잉스타 & 수잔 레이놀스 휘테 엮음, 김도현 옮김/그린비
2011/04/11 09:00 2011/04/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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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순진한양 2011/04/11 13:31

    아... 노들야학이라니... 참 반갑기도 하고 죄송스럽기도하고... ㅎ
    저도 지금 10년째 참빛야학이란 곳에서 활동하고 있는데요.
    노들야학 소식을 접할 때 마다 남 얘기 같지 않아서 안탑깝고 걱정은 되지만
    정작 나서서 함께하지 못하는 죄송스러움이 있었습니다...
    저하고 함께 공부를 한 형 중에도 장애로 인해서 불편을 격으면서 대학에도 진학하고
    취업도 하고 열심히 사는 형이 있는데요. 그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장애인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사람들이 자기를 '장애인'으로 본다는 것이라고요.
    친한 친구들이야 별다른 느낌 없이 어울리며 놀고 그러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은
    왠지 모를 시선을 준다며 그 시선을 이겨내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 그린비 2011/04/11 14:39

      이 글을 읽으면서 김도현 선생님의 글 중에 존재자들 모두가 자연이자 동시에 기계이며 또한 평등하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장애는 정상이라는 기준이 있기 때문에 만들어지고, 정상이 아닌 것은 동정하거나 차별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구요.

      저도 대학 후배 중에 몸이 불편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로 인해 학교 시설이 무척 불편할 수 있겠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런 공감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저상버스가 더 많아지거나 지하철을 조금 더 편하게 탈 수 있는 방법 등등 일상 생활에서 불편함을 덜 느낄 수 있는 사회적 배려가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그런 부분에 관심을 기울이려고 맘 먹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