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을 넘어선 '필연'적 만남이라고 하고 싶소
어떤 ‘인연’: 『차별에 저항하라』, 『장애학 함께 읽기』를 거쳐 『우리가 아는 장애는 없다』까지

책의 내용에 충실한 편집후기를 쓰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이 책과 저의 ‘인연’을 먼저 소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때는 2009년 가을이었습니다. 제 단골 산책코스였던 도서관을 몇 바퀴 돌던 중 우연히 김도현 선생님의 저서 『차별에 저항하라』*(박종철출판사, 2007)를 발견한 그때, 저는 이전까지는 다른 방식과 느낌으로 ‘장애’ 문제와 접속하게 되었습니다. 잠깐 소개를 하면 『차별에 저항하라』는 한국 장애인운동사를 시기별/주체별로 정리하고 앞으로의 운동과제와 전망을 밝히는 책으로, (여전히 열악하긴 하지만) 지금의 장애인정책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건과 투쟁이 있어 왔는지 역동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을 통해 저는 한국 장애인운동 역사가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 장애인운동에 다양한 주체와 갈래가 있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외부의 무미건조한 시각에서는 그저 ‘장.애.문.제’라는 한 덩어리로 보이던 것들이 그제야 다양한 결들로,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차별에 저항하라』부터 시작된 우연은 『우리가 아는 장애는 없다』까지 이어졌다. 이 정도면 '인연'이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김도현 선생님의 책에 감응을 받았던 저는 내친 김에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메이데이, 2007)와 그 당시 따끈따끈했던 신간 『장애학 함께 읽기』(그린비, 2009)도 이어서 함께 읽었습니다. 그 책들을 읽으면서 저는 처음으로 ‘장애’라는 개념 자체, 손상을 입은 이들을 구조적으로 배제하는 이 사회구조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보게 되었습니다. 장애인들이 노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많은 영역에서 차별받고 있는 것에 대해 마치 ‘어쩔 수 없는 것’, 혹은 ‘손상으로 인한 당연한 결과’라 답하고 이에 맞춰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사회가 낯설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장애학 함께 읽기』에서 소개하고 있는 마서즈 비니어드 섬의 사례(농인의 비율이 높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화를 구사할 줄 아는 이곳에서는 청각손상이 장애로 구성되지 않음)는 그해 겨울 친한 동생과 수화를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비록 오랜 시간 함께하지 못한 채 끝이 나긴 했지만, 소심하게나마 ‘장애’라는 차별적인 개념에 저항하고 싶었습니다. 이제 와 의미를 부여하자면, 저는 처음으로 ‘장애학’을 알게 된 2009년 가을에 이 책 『우리가 아는 장애는 없다』와의 인연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차별에 저항하라’라는 문구는 4.20 장애인차별철폐투쟁의 슬로건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아는 장애는 없다』 제목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그때의 인연이 이어져 ‘장애학’ 컬렉션의 첫 책을 맡게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책 제목을 정하는 일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이 책의 원래 제목은 Disability and Culture로, 그대로 번역하면 ‘장애와 문화’였습니다). 이 책의 번역자이신 김도현 선생님으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았습니다. ‘미선 씨, 이 책 제목으로 『우리가 아는 장애는 없다』는 어때요?’ (약간 과장하자면) 순간 저는 ‘얼어붙었습니다’. 제목이 주는 임팩트 때문이었습니다. ‘문화인류학적 접근, 장애라는 개념의 해체, 균열, 장애의 사회적 구성……’ 뭐 이런 어렵고 느낌도 없는 단어들만 노트에 빼곡히 적고 애꿎은 머리털만 뽑고 있던 때에, ‘정곡을 찌르는 듯한’ 제목 하나가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분명 ‘차별에 저항하라’라는 제목에서 느꼈던 강렬함과는 다른 강렬함으로 다가오는 제목이었습니다. 이 제목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토대부터 의심해 보라는, 우리가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을 의심해 보라는 말로 다가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장애'를 만드는 것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믿는 그 가치들 때문은 아닐까?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장애인가? 우리는 왜 '정상/비정상'을 구분하는지를 질문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가 아는 장애는 없다』라는 제목의 이 책은 우리가 ‘보편적’이라 생각하는 ‘장애’라는 개념이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다양한 문화의 사례들을 통해 밝히는 책입니다. ‘장애’가 없는 곳도 있다고 말이죠. 즉, ‘장애’라는 개념이 ‘근대 서구’라는 특수한 사회적 맥락에서 구성된 것임을, ‘장애’가 서구화된 사회 안에서만 유효한 개념임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사례를 하나 들면, 마사이족의 언어에는 ‘장애’라고 번역될 만한 단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키가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이 존재하듯, 간혹 ‘다리를 저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장애’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신체적·정신적으로 손상을 입은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특별하게 취급되거나 배제되지도 않습니다. 이들은 다만 ‘다를’ 뿐, ‘장애’인이 아닙니다. 이렇듯 마사이족을 비롯한 다양한 부족사회에는 ‘장애’도, ‘장애인’도 없습니다.

다른 문화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기


서구화되지 않은 부족사회의 문화를 책을 통해 접하고 이해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부족사회의 의례와 관습들에 대한 서술을 읽으며, 기이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미신’ 같다는 생각을 버리기가 힘들었습니다. 기존에 우리가 갖고 있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았기에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의미를 찾아야 할지 갈팡질팡하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잘 근대화된 서구적 인간일 테니까요. 하지만 그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기존의 ‘상식’과 ‘익숙함’을 벗어던질 때, 사람들이 특정한 행위를 통해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에 집중했을 때에만 가능해지는 것 같습니다.

부족사회의 사람들은 서구 의학의 관점에서 보기에는 비과학적이고 비위생적인 치료의례를 통해 질병과 장애에 대처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의식이 실제적으로 효과가 있는지의 여부보다도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신체적으로 이상이 있는 사람들에게 기울이는 공동체의 ‘관심’입니다. 우리에겐 ‘미신’처럼 보이는 이 의례를 통해 사람들은 손상이 왜 발생했는지, 어떤 치료를 행해야 나을 것인지, 앞으로 이 구성원에 대해 공동체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해 자연스럽게 공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우리는 ‘장애’ 문제에 대해 해당 개인과 가족의 문제로 여기고 대부분 나 몰라라 하는, 재활과 복지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를 묻게 됩니다.

사실 우리가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들도 관점을 조금만 달리 하면 엄청 낯설고 기이하게 다가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의 몸에 등급을 매기는 ‘장애등급심사제도’는 어떤가요. 손상을 입었다는 이유로 가족과 사회공동체로부터 격리시키는 현대적 의료의 관행은 또 어떤가요.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사회 안에서도 이 같이 기이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임에도, 관행적으로 굳어져 당연하게 반복되어 온 일들이 많다는 걸 이 책을 통해 비로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장애’를 낯설게 바라볼 수 있을 때, ‘장애’를 인식하고 말하는 토대 자체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때, 사회구조의 허술한 빈틈을 찾아 여기에 저항할 수 있는 역량도 함께 커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과정이 그러한 빈틈을 함께 찾아가고, 함께 역량을 키워가는 과정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버스를 탈 때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사회적 제도의 마련 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공감할 수 있게 된다면...

저 개인적으로는 『차별에 저항하라』라는 책과의 짧은 만남에 그치지 않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그 ‘인연’들을, 고민들을 놓치지 말라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앞으로 남은 11권과의 만남(*<그린비 장애학 컬렉션>은 총 12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을 통해 제 고민들이 더 깊고 넓어지길 바라며, 편집후기 마칩니다.

- 편집부 김미선
우리가 아는 장애는 없다 - 10점
베네딕테 잉스타 & 수잔 레이놀스 휘테 엮음, 김도현 옮김/그린비
2011/04/12 13:00 2011/04/12 13:00
RSS를 구독하시면 더욱 편하게 그린비의 글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 ]

trackback url :: http://greenbee.co.kr/blog/trackback/1371

  1. Subject: court action

    Tracked from court action 2014/09/23 17:36  삭제

    그린비출판사 :: 이 정도면 필연적 만남! - 『우리가 아는 장애는 없다』편집후기

  2. Subject: mouse click the next page

    Tracked from mouse click the next page 2014/10/14 09:17  삭제

    그린비출판사 :: 이 정도면 필연적 만남! - 『우리가 아는 장애는 없다』편집후기

  3. Subject: African Safari videos

    Tracked from African Safari videos 2014/10/17 18:06  삭제

    그린비출판사 :: 이 정도면 필연적 만남! - 『우리가 아는 장애는 없다』편집후기

  4. Subject: animal videos

    Tracked from animal videos 2014/10/20 06:52  삭제

    그린비출판사 :: 이 정도면 필연적 만남! - 『우리가 아는 장애는 없다』편집후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