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는 유명한 이름만큼이나 많은 오해를 받은 인물입니다. 『군주론』은 1532년 출간된 이후 많은 비난을 받았고, 결국 1559년에는 바티칸의 금서로 지정되었습니다. 또한, 16세기 이후 그의 이름을 딴 마키아벨리즘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수단을 써도 괜찮다는, 부정적이고 냉혹한 이미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선입견을 지우고 만난 마키아벨리는 어떤 모습일까요? 새로운 시선으로 읽는 『군주론』을 함께 만나 보시죠!

※ 이 글은 수유너머N의 '운명의 파도를 타고 넘는 역량의 정치학 :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이라는 제목으로 열렸던 정정훈 선생님의 강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로 곧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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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1469~1527)
_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사상가, 정치철학자

마키아벨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강의를 듣게 된 저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피도 눈물도 없는 놈에 대해 공부한다는 것이 어쩐지 좀 기분 나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의 진짜 모습이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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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와 르네상스
피렌체 사람인 마키아벨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동시대 인물이었는데(+_+), 피렌체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도시였고 도시 사람들은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피렌체는 정치 공동체인 폴리스를 유지하면서 세습 군주제를 가장 건전한 정부 형태로 간주하던 당시의 지배적인 사고방식과 달리 1년에 한 번씩 선출되는 포데스타(Podesta) 제도로써 공화정을 정체로 삼아 ‘자유’를 중심을 하는 정치 이론을 구축했습니다. 이러한 자유를 지키기 위해 대외적, 대내적 투쟁을 거치면서 근대적 권리 개념과 정치적 자유 개념의 초석을 놓았다고 합니다.

마키아벨리는 피렌체 공화국의 서기국 국장으로 임명되어 관직 생활을 시작하고 이후 외교와 군사에 관련된 일을 맡아 다른 나라로 파견을 나가는 일이 많아 유명한 정치가들을 가까이에서 만나는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일을 좋아했으며 또 유능했지만 이후 그 업무로부터 추방되어 “공적 무대로부터 서재의 책상으로 물러앉”았는데 바로 그 서재에서 “사물의 실제적 진실”을 연구하며 많은 고전을 읽고 또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를 집필했습니다.

마키아벨리에게 매우 중요한 인물 체사레 보르자(Cesare Borgia)는 18세 나이에 추기경이 되었다가 스스로 사임하고 교황군 총사령관에 취임합니다. 그는 교황청에 복종하지 않는 이탈리아 군소 도시들을 정복하는 임무를 띠고 파병되며 정복 전쟁 과정을 통해 강력한 군주로 떠올랐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사절단의 대표 자격으로 체사레 보르자를 만나 석 달 동안 가까운 거리에서 그를 경험하면서 그의 치밀한 계산에 바탕을 둔 전략적 행동, 과감한 결단력, 비정한 계략을 갖춘 군주의 덕목과 능력을 보았습니다. 체사레 보르자와의 만남은 그가 『군주론』을 통해 자기 시대에 필요한 지도자의 상을 그리는데 핵심적인 영감을 제공했다고 합니다.

신족과 거인족의 사유
기독교가 정치권력을 비롯하여 사회문화 전반을 장악하면서 기독교적 이해 방식이 중세의 기본적인 세계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러한 세계관은 정치에 대한 기독교인의 이해에도 반영되어 초기 기독교인들의 신에 대한 대표적인 표상은 왕이 됩니다. 정치권력은 신의 대리자로서 공동체를 다스려야 한다고 믿어집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이 세계를 창조할 때 부과된 자질에 따라 위계화되어 충돌하지 않고 잘 조화하는 것이 필요함을 주장했고 아퀴나스는 창조의 위계 내에서 전체를 구성하는 상위의 창조물들이 하위의 창조물을 통치하는 체계가 정치의 질서이며 신은 근본적으로 하위의 창조물을 통치하는 군주적인 존재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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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74)
_ 중세 기독교의 대표적 신학자

서양철학의 역사에 있어서 존재론의 역사는 신족(영원불변한 것을 사유)과 거인족(생성과 변화를 추구하는 사유)으로 나뉠 수 있는데 플라톤 이후 초월주의 노선이 지배적인 경향이 되어 왔습니다. 마키아벨리의 사유는 바로 초월주의적 정치철학의 지배에 대한 내재주의 정치철학의 반란이라는 맥락 속에 있다고 합니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초월주의적 정치철학으로부터 서서히 내재주의 정치철학으로 전환했는데 마키아벨리는 바로 그러한 전환이 완전하게 이루어졌음을 보여 주는 인물인 것입니다.

그때까지 철학자들은 추상적인 사유에만 머무르면서 영원불변한 진리 탐구에만 몰두했다면 마키아벨리는 “사물의 실제적인 진실”, 즉 인간의 정치적 행동이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현실을 탐구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마키아벨리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나뉘었는데, “한 사람의 사상가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나뉜다는 것은 이전의 척도로는 규정할 수 없는 낯선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마키아벨리와 『군주론』의 탄생
마키아벨리는 피렌체 정청에서 추방되어 관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술과 놀음에 만취하여 지냅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간 이후 늦은 밤에는 고대의 위대한 정치가들의 고전을 읽으며 지성의 진수성찬을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마키아벨리는 초월적 정치사상과 결별하고 정치를 인간의 구체적인 현실 영역 내의 문제로 파악합니다. 당시 이탈리아는 통일되지 못하고 이민족의 침입과 약탈에 의해 고통을 당하는데,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 반도의 통일이 필요함을 깨닫고 그 조건에 대해 매우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 조건은 우연적 요인들에 맞서 자기 의지를 실현할 수 있는 정치 지도자, 즉 군주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군주의 이미지를 최초로 보여준 것은 체사레 보르자가 아닐까” 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나네요.

마키아벨리는 운의 변덕 앞에서 무참히 스러지던 체사레 보르자를 경험하면서 이상적인 군주에 근접한 인물조차 운명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에게 운이란 자신의 주체적 의지와 역량으로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밖에서 그 일의 성패를 결정할 수 있는 외부의 힘을 의미하는데 자연적 힘과 타인의 힘을 말합니다. 말하자면 운은 그에게 부정적인 요소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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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사레 보르자(Cesare Borgia, 1475~1507)
_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아들. 요즘 쓰는 말로 '엄친아'랄까, 아버지의 후원으로 추기경이 되었고 교황군의 총지휘관이 되었다. 그러나 알렉산데르 6세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그의 운명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마키아벨리에게 중요한 것은 외부적 힘에 대한 통제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역량에 의존하는 것이 군주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생각했습니다. 외부적 힘은 수시로 변하므로 외적 존재의 변화에 따라 지도자의 실천 방식이 달라져야 하고 시대와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군주는 인간적인 면모와 야수적인 면모를 때에 따라 조절하여 사용할 수 있어야 하며 오히려 야수적 면모가 외부적 힘에 휘둘리지 않는 좋은 덕목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마키아벨리에게 여우의 지성이란 도덕적 가치들에 얽매이지 않고 계략을 사용할 수 있는 냉철한 지식이며 사자의 무력이란 필요하다면 적들을 철저하게 짓밟을 수 있는 폭력이었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군주가 대중들에게 “사랑도 받고 동시에 두려움도 받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다면 차라리 두려움을 받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그는 말합니다.

16세기 알프스 너머에서는 정치체가 봉건제에서 중앙집권적인 절대왕정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는데 이탈리아는 도시국가 형태를 넘어서지 못하고 문화적, 경제적으로 절대왕정제의 국가들에 의해 유린당하고 있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고민한 것은 단숨에 역사적 지체를 뛰어넘는 행동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행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주체, 바로 군주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두 얼굴의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가 절대군주에 대한 신봉자라는 것은 일면의 진실이지만 일인 군주의 이익을 옹호했던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는 군주의 절대 권력과 군주의 사적 이익을 분리시켜 권력을 사유화하는 것을 철저하게 경계했습니다. 『군주론』에서 말하는 절대군주의 권력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민을 위한 것이라고 하며 『로마사 논고』에서는 도시국가를 잘 건설하기 위해서는 결국 인민들의 자유를 박탈하는 군주정체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상반되는 두 입장 중 어느 것이 그가 주장하는 핵심적인 정치이론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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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기의 이탈리아 지도. 비슷한 시기 프랑스에서는 루이 11세가 중앙집권의 기틀을 완성했다.

그러나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 사이에 단절이 있다고 볼 수는 없으며 마키아벨리의 기본적인 관점은 동일하다고 합니다. 『군주론』이 당대의 이탈리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으로써 역량 있는 군주를 제시한다면 『로마사 논고』는 군주가 지향하는 ‘목적’으로써의 공화정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마키아벨리는 정부 형태의 순환을 군주정 → 귀족정 → 민주정의 순서로 파악했는데 이러한 순환은 더 완전하거나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으로의 변화입니다. 마키아벨리는 사분오열된 이탈리아의 상황이 민주정이 타락한 무정부상태와 같다고 보았습니다. 때문에 바로 공화정체제를 수립할 수는 없고 군주정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공화주의자로서의 마키아벨리의 면모는 『로마사 논고』를 통해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는 로마가 가장 강성하던 시기의 정체는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이 공존하는 혼합 정체였다고 말하면서 평민들과 귀족들의 대립은 로마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마키아벨리는 공동의 역량, 공동선을 기반으로 구성된 공화정이야말로 국가를 강력하게 만들 수 있는 정치체라고 생각하고 공동선은 자유와 평등을 기초로 서로 연합된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연합체가 역량을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키아벨리와 해방의 정치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오랫동안 비난과 긍정적 평가를 동시에 받아 왔습니다. 그의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는 단절되어 있지 않고 연속적이었는데, 『로마사 논고』에서 그가 지지하는 공화정은 ‘민주’ 공화정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좋은 정체는 반드시 인민, 군주, 귀족이 공존하는 혼합정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를 해방의 정치학의 전통으로 읽는 것은 불가능할까요?

마키아벨리의 사유에서 해방의 성격이 가장 분명한 지점은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 모판을 인민으로부터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주장은 『군주론』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군주의 역량은 인민에게 근거할 수밖에 없고, (제도화된) 권력의 기반은 인민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탈리아에 가장 적합한 군주국으로 신생 군주국, 그 중에서도 시민형 군주국을 꼽습니다. 이유는 인민이 우선적으로 다수이며 그것은 다양한 인재의 가능성이 높고, 그가 중요시했던 국민군이 구성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군주와 다중의 인민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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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Rome」의 한 장면,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제압해야 할 대상은 인민이 아니라 귀족계급이라고 말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억압하는 것의 필요성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그는 군주의 공포정치는 인민의 자유가 개개인의 사적 이익으로 변질되어 공동의 이익이 위기에 처할 경우에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또한 폭력으로 제어해야 하는 일차적 대상은 사실상 인민이 아니며 무엇보다 귀족집단이라고 합니다. 그는 인민이 원하는 것은 단지 자유일 뿐이며 타인을 지배하려는 성향을 가진 존재인 귀족들이 바로 군주에게는 경쟁자가 된다고 말합니다. 귀족과 대항하기 위한 인민과의 연합전선이 필요하며 인민과 귀족의 투쟁에서 인민의 편을 택하는 것이 군주의 정부여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맑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부르주아적 질서를 파괴할 때 소유권과 부르주아적 생산 관계들에 대한 전제적 침해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에서 프롤레타리아는 전제적 수단을 통해서 부르주아를 억압하는데 이러한 폭력적 억압은 어디까지나 이행의 시기에 국한되는 것입니다. 억압자들에 대한 억압, 수탈자들에 대한 수탈로써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마키아벨리에게 군주는 인민의 자유에 기반한 통일된 국가라는 새로운 질서로의 이행을 위한, 근대성의 새벽에 제시된 또 다른 해방을 위한 독재의 기획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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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사유와 맑스의 사유를 연결시킨 것은 참 재미나고 신기한 부분이었습니다. 관심에 없던 인물에 대해 이만큼 공부하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선입견으로 좋지 않게만 생각했던 그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되고 오해도 풀린 것 같아서 뿌듯합니다. 또 어쩐지 외로웠을 것 같은 마키아벨리의 친구(?)가 된 것 같아서 마음이 흐뭇하네요(길 가다 마주치면 인사할 것 같아요).

- 디자인팀 서주성
군주론 - 10점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강정인.김경희 옮김/까치글방
2011/04/18 09:00 2011/04/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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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i007 2011/04/19 01:50

    다 읽고나니, 맑스도 마키아벨리도 독재의 힘으로 혼란의 시대에 재빠른 사회 변화를 원했던 것 같네요. 그 후에는 평온하면서 평등한 사회를 꿈꾼 거고요. 유토피아죠. 그런 세상 절대 안 옵니다. 문제는 그렇게 자리잡은 권력이 과연 타락하지 않을 수 있겠냐는 거죠. 저는 정치 형태에 대한 논의는 별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어차피 자기 이익 추구에서 못 벗어나니까요. 군주론이 여전히 읽히는 이유는 현실적으로 정치 지배력을 갖는 과정이 여전히 윤리적 정당성보다는 교묘한 술책인 경우가 많아서이지 않을까 싶네요.

    • 그린비 2011/04/19 10:31

      유토피아가 없다는 말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고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예전의 사고를 깨고 나가고, 또 깨고 나가는 새로운 사유가 나오는 것 아닐까요?
      그렇다면 한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윤리적 정당성을 갖는 정치 권력자가 있다면 그 '정당성'은 무엇일까요?
      시대적 맥락과 정치적 맥락에 따라 그 정당성 역시 달라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

  2. swanny 2011/04/19 13:32

    아..! 드디어 _ 정말 흥미로운 강의였답니다!

    • 그린비 2011/04/19 13:39

      안녕하세요 swanny님.
      강의를 들으셨군요.
      이 책이 더욱 반가우실 것 같습니다. ^^

  3. 쌈닥 2011/04/21 11:52

    양면성이 잘 알려지지 않아 저도 의외였습니다.

    안병진씨가 마키아벨리를 공화주의자로 분류하면서 언급한 것에 따르면,
    인민의 공화주의적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네요.

    묘하게 오버랩되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 그린비 2011/04/21 12:06

      정치체가 고정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함이 공존하는 '혼합정'이 좋다는 마키아벨리의 말에 공감합니다.
      그 시대에는 마키아벨리의 이야기가 금서로 지정될 만한 충격이었을 거라는 생각도 드네요.

      『군주론』은 시대적 맥락이 다른 지금도 여전히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주는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