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대가 공유하는 특정한 한계, 경향성,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내가 이 한계를 파악하고 새로운 가능성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내가’ 판단하고 내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결국 세대의 장벽 안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는 십대이고, 나에게 십대의 세미나가 필요하다면 바로 이런 지점에서다. ‘십대들의 아지트’ 꽁치세미나는 십대끼리만 공부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십대의 수준(?)에 맞춰서 쉽게 가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십대의 시선’으로 공부하겠다는 선언이다. 십대를 둘러싸고 있는 견고한 장벽을 더듬거리며 짚어 보겠다는 생각이다. 십대의 한계 내에서 출발한 고민을 바탕으로 공부 주제를 잡고, 책 속에서 십대의 문제의 실마리를 잡았다가 놓치고, 다른 십대들에게 책의 괘씸함을 토로하면서 한 발짝씩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십대의 세미나가 가질 수 있는 의미이다. _ 『다른 십대의 탄생』, 137~138쪽.

대학 다닐 때 학회라는 데에 적을 두었더랍니다. 정치경제학 학회였는데, IMF 구제금융 이후 그 망할 놈의 ‘신자유주의’가 점차 노골화되어 가던 그 시절(저는 99학번입니다), 그 어떤 분야의 학회보다도 치열하게 공부했습니다, 라고 당당히 말씀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사오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시궁창이니 — 세미나에 안 오는 사람이 절반이요, 그나마 온 사람 중에서도 (30쪽이 될까 말까 한) 그 주의 커리큘럼을 안 읽은 사람이 절반이요, 발제는 겉돌지 않으면 섭섭하고, 왁자지껄하게 겉도는 얘기라도 하면 그나마 다행이게, 다들 새침하게 앉아 눈치만 보다가는 슬슬 시간이 됐다 싶으면 ‘그럼 못 다한 이야기는 뒤풀이에서’라면서 와르르 일어나 시장통 소주집으로 몰려가서 칠렐레 팔렐레 정신을 잃었죠. 그야말로 뒤풀이에 주력(主力)함으로써 주력(酒力) 신장에 정진하는 곳이었습니다. 뭐, 저도 거기의 주력 멤버였으니 남 탓 하는 건 아니고요(;;).

그렇게 2년을 넘게 살다 보니 ‘세미나 피로증’이라고 할 만한 게 생기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겁니다. 아무도 치열하게 공부하지 않는 곳에서 형식적으로 오가는 이야기들에 탄력이 붙을 리도 없고 흥미를 느낄 리도 없죠. 부실한 커리큘럼, 깊이 없는 분석, 토론을 할라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패턴인 ‘대안이 뭐냐’와 ‘이 자체가 의미가 있는 거 아니겠냐’(-_-;;), 그렇게 겉도는 이야기들 속에서 이런 얘기들 해서 뭐해, 그냥 빨리 뒤풀이나 가지 하는 마음이 생기는 건 인지상정일 겁니다. 그 후로 수년이 지났지만, 가끔씩 세미나 비스무레한 자리를 가면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음 번 스텝을 유도하고 서로의 삶에 얼마만큼 흔적을 남길 수 있을 때, 그것을 친구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서로의 길에 간섭하고 친구의 다음 발자국이 되어 줄 수 있다면 친구에 있어서나 공부에 있어서나 '실패'는 없을 것이다."
- 『다른 십대의 탄생』, 144쪽

그런데 십대 때부터 그…… 세미나를 한다고? 그런 게 될까? …… 하기야 요즘엔 토론 수업이 대세라니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세미나를 어떻게 했느냐보다 더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무작정 꾸린 세미나의 실패 앞에서도 ‘내가 왜 다시 이것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해완 양의 모습이었습니다. 그것은 저의 그 시절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가끔 ‘난 도대체 뭘 하고 살았기에 이 나이 먹도록 이런 것도 못해 봤을까’라는 생각을 할 때면 쓴 입맛을 다시며 그 시절을 아까워하긴 했지만, ‘학회생활의 실패’에 대해 진정으로 고민해 본 적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지요. 해완 양의 글을 읽고 확 와 닿은 제 실패의 이유는, 바로 나(우리)에게 나(우리)의 ‘시선’이 없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대학생이니까 맑스 정도는 조금 알아 두어야지’ 하는 마음도 ‘학과 활동에서 소외되고 싶지 않으니까 이 친구들이랑 어울려야지’ 하는 마음도, 모두 ‘남들의 시선’의 재현물이었습니다. 그래도 맑스니 노동해방이니 신자유주의니 코뮌이니 하는 말들 속에서 가끔의 울림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런 단어도 그런 감정도 너무나 비현실적인 곳에 있다는 느낌에 (보통 사람들이 머무는) ‘현실의 시선’으로 서둘러 돌아와야 했지요. 이렇게 ‘나의 시선’이 아닌 ‘남의 시선’으로 집회나 연대활동에 나가 본들 진정한 연대감이 샘솟을 리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고요. 그렇게 내 시선은 없고 내 주량(!!!)만 있었던 겁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견고한 장벽을 더듬거리고 짚어” 보기는커녕, 그 높은 장벽을 올려다보면서 한숨을 내쉬는 척했지만, 그 속내는 조금쯤 든든하고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강연이든 세미나든, 요즘은 마음만 먹는다면 ‘공부’를 하기가 쉬워진 듯합니다. 인문학의 위기니 맑스는 죽었느니 어쩌니 해도, 제가 했던 것 같은 세미나(라고 할 수도 없는…)가 아니라 정말로 열심히 공부를 해오신 분들이 기틀을 닦아 놓으신 덕분에 많은 단체와 네트워크들이 만들어졌지요(그린비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 중에는 실제로 그런 공부에 참여하고 계시는 분들도 많을 거라고 믿습니다^^). 저 역시 그린비에 와서 그런 부분들을 많이 배워 가고 있는데요, 워낙에 때가 많이 끼어서인지 마음처럼 공부가 잘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해완 양의 글을 다시 읽어 봐야겠습니다. 한계 속에서 끊임없이 꿈틀거리며 한 발짝씩 나아갈 것. ‘철저히 나의 시선으로, 우리의 시선으로.’

- 편집부 태하
다른 십대의 탄생 - 10점
김해완 지음/그린비
2011/04/26 09:00 2011/04/26 09:00
RSS를 구독하시면 더욱 편하게 그린비의 글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 ]

trackback url :: http://greenbee.co.kr/blog/trackback/1383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