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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동 막달레나의 집의 성모상 _ "비가 오면 집안 곳곳에 빗물받이 양동이를 대어 놓아야 할 정도로 집이 낡은 데다 비좁기도 했지만, 재개발을 앞두고 더 이상 수리가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는 쫓기다시피 새로운 집을 구해 이사해야 했다."

동네에서 성을 파는 여성들은 나이가 많건 적건 ‘아가씨’라고 불렸다. 지금이야 그런 용어가 많이 줄어든 것 같기는 하지만 막달레나의집이 처음 문을 연 1980년대에는 용산의 업주들 사이에서 여성들을 ‘냄비’ 혹은 ‘기계’라고 부르는 경우가 흔했다. …… 그러니 그런 여성들을 이용해 돈을 버는 사람들에게 여성들의 존재는 냄비와 다름없었다. 밥을 먹기 위한 도구일 뿐인 냄비처럼 누군가에게는 성매매 공간의 여성들 역시 돈을 벌기 위해 몸을 파는 도구일 뿐이었다.
― 『막달레나, 용감한 여성들의 꿈 집결지』, 26~27쪽.

여성들을 ‘냄비’나 ‘기계’라고 부르는 그 주변 관계와 우리 사회의 편견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여성 스스로조차도 자신의 존재를 그렇게 인정하며 삶을 체념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여성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주변으로부터 자신의 존재가 그렇게 인식되며 어느덧 자기 스스로도 하루하루 아무 의미 없이 몸을 팔며 돈을 버는 그들의 부속물쯤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곧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어 간다는 것이며, 삶의 희망이 점점 사그라져 간다는 의미였다.
― 같은 책, 29~30쪽.

자기 삶을 송두리째 부정당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물론 살면서 그런 일이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 싶지만, 순간순간 부정당하는 것 말고 삶 자체가 완전히 부정당하는 그런 느낌말이다. 누군가 자신의 존재가치를 잊어버릴 만큼 ‘기계처럼’ 일을 하고 있다고 해도, 대놓고 그를 가리켜 ‘기계’, ‘생산을 위한 도구’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그를, 그의 삶을 손톱만큼이라도 존중한다면 말이다.

‘냄비’, ‘기계’, 그리고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로 불려 왔던 성매매 여성들의 삶. 앞서 말한 ‘적어도’라는 표현이 무색해지는 불편한 ‘예외’가 있다는 걸 느낀다. 막달레나의집 이야기를 접하기 전에 성매매 여성들에 대해 막연하게 가졌던 내 느낌은 일종의 ‘억울함’이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무시당하고 차별당하는’ 현실보다 더 억울하게 느껴졌던 것은, 언니들 스스로도 자신의 존재를 그렇게 인식하고 삶의 희망을, 더 나아가 삶 자체를 접어 버리는 일이었다. 막달레나의집 이야기 속엔 복작복작 재미있는 얘기도 많지만, 외롭게 죽어 간 언니들의 이야기도 많다. 이 시공간에서 힘들게 애써 살아갔다는 어떤 흔적도 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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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업에 나선 여성들의 삶에 생기가 돌았다. … 서로가 서로에게 모델이 되어 주었고, 그 모델들은 동료의 손에 들린 카메라 앵글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춥고 지루하던 거리의 영업시간에 카메라는 새로운 친구가 되어 주었다."

성매매집결지에 사는 사람들은 유독 사진 찍히는 것에 예민했다. 그곳에서 카메라를 들이밀었다가 ‘삼촌들’에게 걸리면 뼈도 못 추렸고, 여성들에게 걸리면 욕지거리를 몇 바가지씩 먹어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성매매집결지는 언론에 관심을 받는 단골 주제였지만, 언제 한번 그곳이 ‘사람 사는 따뜻한 곳’으로 비춰진 적이 있던가. ― 같은 책, 312쪽

다만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사진을 찍는 일뿐이다. 사회로부터 손가락질만 받던 인생들이었으나 사진 한 장 한 장에 담겨 있듯 그 당사자들에게는 온 힘을 다해 살아 낸 삶의 여정이었음을, 우리사회 역사에 얼마쯤은 남겨도 좋을 것이다. ― 같은 책, 316쪽

자신이 먹고, 입고, 노는 그 모든 것을 남기지 못해서 안달을 내는 시대에, 언니들은 사진을 찍히는 것도, 찍는 것도 싫어한다고 했다. 어쩌면 그래서 언니들의 사진프로젝트에 더 눈길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는 ‘위험한 곳’, 혹은 ‘더러운 곳’이라고 불리는 공간이지만, 언니들에게는 일터이자 놀이터, 삶의 터전인 공간. 언니들에게는 그런 소중한 공간을 돌이켜보고 흔적을 남길 만한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언니들 삶 자체가 그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려내고 지우고 싶은 기억, 어떤 흔적을 남겨서도 안 되는 기억……. 묵묵히 성매매 여성들의 곁에 함께 있어 주던, 막달레나의집은 언니들의 힘겨운 삶들을 대신 기억해 주고 보듬어 주던 그런 공간이 아니었나 싶다. 언니들에게도, 우리에게도 지워서는 안 될 기억들을 말이다.

사진을 찍는 일상, 무언가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평범한 일상이 나에게도 조금은 다르게 다가온다. 내가 기억하고 남겨야 하는 건 뭘까, 혹은 다른 이를 대신해서 기억해야 하는 건 뭘까. 매일매일 스쳐가는 사건과 사진들 속에서 무얼 남기고 기억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 밤이다.

- 편집부 김미선
막달레나, 용감한 여성들의 꿈 집결지 - 10점
엄상미 지음, 이옥정 구술/그린비
2011/05/06 09:00 2011/05/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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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강여호 2011/05/06 09:38

    그들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 그린비 2011/05/06 10:31

      점점 그들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