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강의석 씨가 병역거부를 선언했습니다. 고등학교 재학 중에 학내 종교집회에 대한 문제 제기로 처음 이름을 알렸고, 이후 하는 일마다 화젯거리가 되었던 그가 ‘한동안 잠잠하다 싶더니’ ‘또 한 건 해준’ 겁니다. 엔간한 병역거부 선언에는 꼼짝도 하지 않던 언론들은 발 빠르게 기사를 실어 날랐고, 인터넷 포털과 게시판에는 ‘예측 가능한’ 반응들이 이어졌습니다. ‘나는 양심이 없어서 군대 갔다 왔냐’, ‘다 군대 안 가면 나라는 누가 지키냐’, ‘권리만 찾고 의무는 이행하려 하지 않는 파렴치한’과 같은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통상적인 비난에 ‘너 이럴 줄 알았다’, ‘노출증 환자답다’, ‘저러고 나중에 한자리 차지하려고’와 같은 강의석 개인에 대한 원색적 공격이 더해졌지요.

저는 이러한 비난들에 대해 동의하지 않지만, 그러한 덧글을 단 분들의 사고체계 내에서는 그것이 타당한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병역거부라는 사안은 그분들의 논리로는 전혀 말도 안 되는 궤변일 수 있고, 강의석이라는 인물은 그분들의 감정에는 불편하고 짜증나는 존재일 수 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죠, 아무리 그렇게 생각해 보려고 해도, 저는 이러한 논리와 감정을 가진 ‘민주’ 시민들의 공격성에 섬뜩함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인권과 다양성에 반대하는 것은 촌스러운 것이 되어 버린’ 요즘 시대에 그 두 단어로도 침몰시키지 못하는 거의 유일한 영역인 ‘병역의무’의 강고함을 다시 한번 절감하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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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안 가면 감옥을 가야 하는 불이익을 매년 1천명이 감수하는 것이 우리 사회인데 이들을 감옥에 보내는 것이 과연 유일한 대안인가에 대해 사회가 고민했으면 좋겠다." - 강의석 인터뷰 중

저는 병역거부를 단순히 소수자‧인권 담론에만 한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평화운동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의 편집을 맡게 되면서 병역거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병역거부’라는 네 글자 속에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들 — 인권, 소수자, 군사주의, 국가폭력, 대량학살, 종교, 제도화와 내면화, 민주주의 등등 — 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요. 그리고 강의석 씨에게 쏟아지는 격렬한 반대와 비난을 보며 제가 떠올린 것은 그 여러 이야기들 중에서 ‘다를 수 있는 자유’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다를 수 있는 자유는 사소한 사안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는 자유의 그림자에 불과할 것이다. 기존 질서의 심장을 건드리는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도 다를 수 있는 자유가 실질적 자유의 기준이다.

Freedom to differ is not limited to things that do not matter much. That would be a mere shadow of freedom. The test of its substance is the right to differ as to things that touch the heart of the existing order.

미국의 대법관을 지낸 로버트 잭슨(Robert Jackson, 1892~1954)의 말입니다. ‘웨스트버지니아주 교육위원회 대 바넷’ 사건(1943)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면 퇴학에 처하는 교육위원회의 규정을 위헌으로 선언한 판결문에 실린 내용이지요. 글쎄요, (제도적으로도, 그리고 구성원들의 마음 속에서도)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것이 기존 질서의 심장을 얼마나 건드릴지는 잘 모르겠지만, 진정 ‘자유’로운 사회를 지향한다면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이러한 공격과 비난은 다소 과한 것이 아닐까요? 더군다나 이들은 최고법이라는 헌법 19조에도 명시된 ‘양심의 자유’를 지키려는 사람들인데 말입니다! (‘양심의 자유’는 ‘착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에 어긋나는 일을 강제에 의해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군대 갔다 온 나는 비양심이냐’라는 질문이 성립할 수 없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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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무엇이 척도이고, 누가 그것을 정하는가? 무엇을 정치적 의제로 삼을 것인가? 무엇이 공적인 것이고, 무엇이 사적인 것인가? 이런 물음들이 앞으로 한국의 대중운동에서도 중요하게 부각될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아니, 이미 한국 사회는 이와 관련된 투쟁들을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 -『추방과 탈주』, 70쪽

휴전국가에서 배부른 소리 말라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때에야말로 우리 사회의 건강함과 성숙함이 진정 시험대에 오르는 때가 아닐까요?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의 저자 임재성 씨는 잭슨 대법관의 말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다를 수 있는 자유’이며, 다를 수 있는 자유란 “기존 질서의 심장을 건드리는 사안에 대해서 다를 수 있는 자유”이다. 분단 상황이기 때문에 안 된다가 아니라, 그럼에도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역사적으로 병역거부는 분단 상황 정도가 아니라 실제 전쟁을 치루고 있는 한가운데에서 인정되어 왔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병역거부를 인정한 영국이 대표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의 병무청장이었던 허시 장군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민주주의에 대한 실험이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도 소수자의 권리들을 보존하기에 충분한지 알아내기 위한” 척도라고까지 표현했다.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 78쪽)

병역거부를 반박할 수도 있고 그것에 불편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 1년 6월의 감옥 생활 이후에 평생 전과자라는 낙인을 달고 살아가야 하는 이들이야말로 누구보다도 불편을 감수하고 있는 이들입니다(편하려면 그냥 군대 가고 말지요!!). 자신의 인생을 걸고 선택한 일이고, 대가를 치르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익을 따라가는 정치인들의 언어가 아닌, 상처받는 자들의 아픈 언어로 스스로의 삶에 책임을 지려 하고 있습니다. 혹 이성적으로 감정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 사람들의 ‘다를 수 있음’을 조금 더 차분한 눈으로 지켜봐 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고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 편집부 태하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 - 10점
임재성 지음/그린비
2011/05/06 13:00 2011/05/0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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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맥주소녀 2011/05/07 23:55

    안녕하세요. 매번 눈팅만 하다가 처음으로 덧글을 다네요. 저도 강의석씨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사람들을 좋게 보진 않았는데 지식이 딸리다 보니 반박할 근거가 부족함을 느끼고 답답했었거든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 그린비 2011/05/09 09:25

      안녕하세요 맥주소녀님! 쿵아 3기시군요~ (전 2기! ^^;)
      이 글을 읽으셨으니 이제 조금은 원색적인 비난에 반박할 근거를 만나셨을 것 같습니다.
      블로그에서 자주 뵈어요~

  2. 모르쇠 2011/05/09 11:40

    한가진 분명합니다.

    군복무자들에 대한 헤택이 강화되어야 한다는거

    그리고 군복무자들만이 사회와 정치의 중요한 자리에 올라가야 한다는거

    왜냐하면 전 평화롭게 살고 싶거든요.

    • 그린비 2011/05/09 12:02

      모르쇠님이 말씀하신 군복무자들에 대한 혜택은 이 글의 논점과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

  3. 모르쇠 2011/05/09 11:48

    다름을 인정하는건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현행법에서 행하는 상황을 이해하란겁니다.

    당신들 양심에 뭐라하진 않습니다.

    당신들도 현행법에서 그러한 사한을 그렇게 처리할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해하란 소립니다.

    왜 당신들의 다름은 인정해야 되고

    우리나라의 특수적 상황하에서의 법제도의 다름은 인정못합니까?


    불만 갖지 마시고 걍 법집행 당하시면 됩니다.

    저같으면 일인시위 안하고 감옥가겠습니다. 조용히..

    떠들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언젠간 법이 바뀌겠죠.. 그때까진 준법 합시다.

    • 아무것도몰라요 2011/05/09 12:17

      너나 법집행 당하세요~ '다를수 있는 권리'로요~ 군복무 10년쯤으로 개정되더라도 '다를수있는' 권리로다가~ '평화롭게' 법집행 당하시면 좋겠네욤~! 준법하고 천국가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