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한국 드라마의 트랜드는 ‘사극 열풍’이었습니다. 기존 사극과는 다른 다양한 형태의 사극이 시도되었는데, 그 중 가장 화제를 모았던 것은 배용준이 출연한 ‘태왕사신기’였습니다. 판타지와 사극을 결합한 형식이었는데, 나름 초반부는 ‘무협지’ 세계관을 잘 배합해 흥미롭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판타지’가 한국 고대사에 대한 ‘환상’과 결합하면서 이상한 형태의 드라마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환상은 광개토대왕이 중국을 거쳐 서역과의 교역로를 만든 것으로 묘사됩니다. 이러한 내용은 역사학계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재야사학자들의 공상에 불과합니다. ‘판타지 드라마 인데 공상이 좀 들어가면 뭐 어때?’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만, 무시하고 지나치기에는 고대사에 대한 이러한 역사왜곡이 문제를 많이 유발시키고 있습니다. 당장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이 발생하기도 하고(‘태왕사신기’가 중국에 수출을 못했다고 합니다) 국내의 ‘배타적 민족주의’ 세력을 키우게 됩니다. 일본과 중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역사왜곡이 계속 시도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한국, 일본, 중국은 고대사에 대한 역사 왜곡을 하는 것일까요? 이성시 교수는 『만들어진 고대』(삼인, 2001)에서 이 문제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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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고대』

민족주의에 대한 근대적 연구는 유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에르네스트 르낭이 『민족이란 무엇인가』(책세상, 2002)에서 민족을 문화적으로 규정한 이후, 많은 학자들이 민족 개념을 정의해왔습니다. 학자들마다 다양한 관점을 보여주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유럽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이 근대 이후,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만들어'졌다고 연구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베네딕트 앤더슨과 같은 학자는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라고 규정합니다(『상상의 공동체』, 나남, 2002). 한국의 경우 차이는 있지만, 근대적인 의미의 민족이란 개념은 일제시대 이후 탄생합니다. 일본 식민정책이 한국인을 ‘국민’으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저항적 민족주의’가 힘을 얻었으며, 이승만, 박정희 정권은 ‘국민국가’를 만들기 위해 ‘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국가통합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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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의 공동체』                 『민족이란 무엇인가』

그래서 근대 이후 민족사란 이념의 역사, 가치관의 역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고대사는 어떨까요? 얼핏 보기에는 고대사는 근대 이후 ‘민족 만들기’와 상관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고대사는 랑케의 실증주의에 따라 유물과 사료만으로 구성된 역사일까요? 이성시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중국과 한국, 북한, 일본의 고대사는 근대 정치의 반영이기 때문입니다. 이성시 교수는 광개토대왕 비문 해석을 예로 들면서 고대사 해석에 숨겨진 근대 정치사의 이면을 읽어냅니다.

흔히들 알고 있는 것처럼 광개토대왕 비문 해석은 지난 100여 년 동안 논란의 대상이었습니다. 고구려가 한반도 이남에 침략한 왜를 무찔렀다는 비문의 내용을 통해 일본은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할 수 있었고 일본 고대의 전설을 현실로써 역사화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기반 해 한반도에서의 일본 제국주의 침략을 정당화 할 수 있었습니다. 원래 한반도의 남반부는 왜(일본)의 영토였다고 해석한 것이죠. 왜는 북반부의 패자인 고구려와의 다툼에서 패해 한반도의 패권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삼아 일본은 한반도 침략을 정당화하는 것은 물론, 일본 국민들에게는 강대국과의 힘겨루기(과거에는 고구려, 당시에는 러시아)에서 패배하는 것이 얼마나 가혹한 결과를 가져오는가에 대한 교훈을 주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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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광개토대왕 비
"신묘년 왜가 바다를 건너 와서 백제와 신라를 파해 신민으로 삼았다(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羅以以爲臣)"라는 부분이 여러가지 해석을 낳는 부분이라고 합니다.

광개토대왕비에 대한 일본의 해석에 처음으로 의문을 제기한 것은 정인보였습니다. 정인보는 광개토대왕비가 왕의 업적을 기리는 비문이기 때문에 광개토대왕에게 불리한 서술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비문을 해석합니다. 비문의 글자 곳곳에 다른 글자를 넣어(비문의 특성상 주어와 서술어 등이 생략되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다시 해석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 역시 당시 조선의 현실을 담고 있는, 근대가 반영된 고대사 해석입니다. 정인보의 뒤를 이어 일본의 해석에 의문을 제시한 북한의 역사학자 김석형 역시 이러한 방법으로 일본의 주장을 뒤집고 있습니다(비문 해석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책을 한번 읽어보시면 정인보와 김석형이 어떻게 해석했는지 재미있게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일본의 주장을 근본적으로 뒤집기보다는 근대이후 현대의 정치적인 의도까지 반영되어 또 다른 고대를 생산해 낼 뿐입니다.

이성시 교수는 광개토대왕 비문 해석과 관련한 문제에서 한국과 중국, 북한과 일본의 고대사 연구의 문제점을 짚어 내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 중국은 고대사를 각국의 현실 정치에 유리하게 해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대사는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가 아니라 '만들어진 고대'가 되고 맙니다.

이성시 교수는 이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동아시아 세계'에 입각해 역사를 해석하자고 주장합니다. 일국사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같은 문화를 향유하고 있고 서로 교류를 해온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역사를 연구하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혹시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과거의 망령을 떠올리시는 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성시 교수는 과거 일본이 주장한 대동아 공영권이 아니라 서로의 역사를 좀더 객관적으로 해석하고 함께 공유하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통해 올바른 고대를 정립하기 위해, 일국사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역사연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성시 교수의 책을 읽고 난 후, 다시 한․중․일 삼국의 고대사를 살펴보면 색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고대사와 얽힌 논쟁을 ‘사실관계’의 유무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동북공정의 문제도 ‘역사적 사실은 우리가 맞다’라는 식으로 주장했고, 상대방의 오류를 지적하기 위해 더 오래된 역사서를 뒤지는 방식으로 대처해 왔습니다. 고대사와 얽힌 논쟁뿐만 아니라 독도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독도가 일본 영토다, 한국 영토다, 는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얼마나 더 오래된 역사적 자료를 ‘발굴’해 내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사실 중요한 것은 사료의 발굴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어떻게 바꾸느냐 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성시 교수의 동아시아사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당장 가능한 것일까의 문제는 별도로 생각한다면요(유럽에서도 통합유럽사를 서술하기 위해 학자들이 노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통합사 서술이 참 힘들긴 힘든 모양이더군요. 한국과 일본, 중국에 비해 훨씬 탈민족화 되어 있다는 유럽의 학자들도, 각 국가의 사실을 조율하는 것 때문에 의견이 분분하답니다. 아마도 동아시아사를 서술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다양한 정치적 시도[movement]가 아닐까 합니다. 즉 역사 서술은 결코 몇몇 역사학자들만의 몫이 아니라는 것이죠).

- 편집부 진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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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3 15:46 2008/01/03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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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eatles for sale 2008/01/03 17:31

    근래 민족주의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성시 선생의 동아시아 공동체론은 비단 이성시 선생 뿐 아니라
    최근 역사학계에서 서양사를 전공한 학자들 중심으로 많이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논리는 매우 참신합니다.
    저도 궁극적으로 역사 분쟁이 해결될 수 있는 대안으로 동아시아 공동체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유럽과는 다른 몇 가지가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가장 중요한건 우리는 공통의 경험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서양의 고대는 로마라는 하나의 단일 국가의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중세 역시 현재 국민국가의 하나의 역사로 치환시키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 한반도는 중국에게 夷로 파악되는 존재였습니다.
    한반도 국가의 일본인식도 비슷해서 고구려에게 신라와 백제는 옛 속민으로 되찾을 존재였으나
    倭는 타도의 대상이었을 뿐입니다.

    이후 동아시아 국가들은 계속해서 서로를 타자화 시킨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근대의 '민족'의 개념은 아니었지만,
    각자가 기억하고 싶고, 기억하는 역사가 달랐고, 그것은 역사서로서 표현 됐습니다.

    근대 이후에 이러한 경향은 민족의 탄생과 더불어 더 강해진것이 아닌가 합니다.
    일본은 조선을 타자화 하며 민족주의를 강화시켰고, 조선은 일본의 타자화에 대응해서 민족주의가 탄생했습니다.
    중국 역시 중화주의와 민족이 합쳐지며 민족이 탄생하고 강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삼국 모두 민족은 생존의 문제였고, 때문에 민족은 여전히 강고합니다.

    또한 국사라는 것이 근대 국민국가의 탄생과 더불어 국민을 만들기 위해 탄생한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국사교과서는 학계의 의견이 아니라 국익에 기초하여 쓰이게 됩니다.

    다소 장황하지만 정리하자면,
    1. 동아시아는 함께 공유했던 문화는 있지만, 국가는 없고, 또 너무 일찍부터 서로를 타자화 시킨 것은 아닐까?
    2. 근대 이후 민족은 동아시아 삼국에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는데, 그 잔재가 여전히 너무강하지 않나?
    3. 그 민족을 계속해서 재탄생시키는 국사 교과서의 내용이 바뀌지 않는한 민족을 중심으로한 역사서술을 사라지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어떻게 해야 역사 분쟁이 사라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고대사가 결국은 현대 정치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중요한 것은 '민족감정'이나 '국민정서'에 얽메이지 않는
    고대사 연구자들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가 합니다.

    다소 장황하게 글을 써서 죄송합니다.

  2. mimesis 2008/01/03 18:23

    남에게만 좋은 논리같군요. 상대도 상대 나름아닐까요. 그렇게 왜곡하고 뒤엎는 상대국들을 상대로 저런 논리를 펴면 누가 좋아할 지 뻔한 것 같습니다.

  3. 가나다 2008/01/03 18:23

    윗분께서 좋은 지적을 해 주신 것 같습니다.
    서양과 달리 동북아 3국은 단일 국가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저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세계는 블록화 되어가는데 왜 동아시아는 협력할 수 없는가"에 대해
    고대사,민족주의 관점에서 설명한다면 어느정도 일리가 있을까요?
    세 나라 각자의 민족주의가 강하고, 고대사에 대한 의견충돌이 있어서
    우리가 쉽게 EU,NAFTA와 같은 경제공동체를 만들지 못하는 것입니까?
    아시는 분, 모자란 저에게 답변해 주셨으면 합니다.

  4. 진승우 2008/01/03 18:57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beatles for sale님이 지적해 주신 것처럼 동아시아 3국의 역사는 유럽과 달리 ‘공통의 역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이성시 교수가 주장하는 ‘동아시아사’를 구성하는 것이 어떤 형식으로 이루어져야 할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상이 잡히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동일한 ‘동아시아’(각 국이 동등한 입장에서)를 구성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하면 유럽은 ‘하나의 유럽’을 지향하는 움직임이 상당히 오래전부터 있어왔습니다. 르낭뿐만 아니라 『레미제라블』로 유명한 빅토르 위고도 유럽의 통합을 꿈꿨으며 이러한 생각은 당시 지식인들에게 어느 정도 상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유럽과의 이러한 역사적 차이 때문에 유럽의 민족주의 이론을 한국사에 그대로 적응시키는 것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민족주의 이론은 많은 점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한-중-일 삼국의 민족주의는 근대 이후 국민국가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지금의 형태를 띄게 되었으며, 근대 이전의 단일 국가 체제(가령 조선)에서와는 다른 양상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는 지금 한-중-일 삼국의 민족주의는 정통적인 민족주의와는 다른 양상을 보여줍니다. 다카하라 모토아키가 『한중일 인터넷 세대가 서로 미워하는 진짜 이유』(삼인, 2007)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현재 삼국의 민족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요인'에 대한 이해가 꼭 필요합니다. 유럽의 민족주의가 '이민노동자'를 배척하는 형태로 나타나듯이, 한-중-일 삼국의 민족주의는 자국의 경제적 상황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죠. 가령 독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민족주의적 대응은, '그래 일본놈들은 다 그래' 혹은 '한국놈들은 다 그래'라는 식의 반응이 아니라, 자국의 경제적 상황에 대한 불안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윗글 마지막에 밝혀 놓았듯이 민족주의적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movement'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movement'는 개별 국가적 차원이 아닌 삼국(적어도 한-중-일)의 '지각있는 사람들'이 연대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다양한 시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는 것이니, 한계가 많지만 통합교과서를 써보는 것도 좋을 테고, 여러가지 강연, 문화제 등도 함께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시도가 쌓이게 되면 미약하지만 변화의 조짐이 생기지 않을까요?

    mimesis 님/ 저는 "남에게만 좋은 논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단 역사왜곡의 문제에 있어서 한국만 깨끗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한국인들도 주변국의 역사를 한국 중심으로 왜곡해 온 것이 사실이니깐요. 저 역시 mimesis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이러한 주장이 '자국'(한국)에 손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좀더 길게 보면 결코 손해보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계속 독도 문제를 사용하게 되는군요) 재작년 독도 사태와 같은 '쓸데없는'(제 생각에는) 일에 개인의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어질 테니깐요. 물론 고대사 서술을 바꾸려는 시도는 한국과 일본, 중국의 '지각있는 사람들'(활동가라 하기도 그렇고 해서 이 표현을 사용합니다)이 연대해서 해야 할 일이겠죠.

  5. 진승우 2008/01/03 19:15

    가나다 님/ '경제 블록'은 일종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유럽 공동체에 대한 서구 지식인들의 오랜 갈망이 있었지만, 실제로 만들어진 것은 경제적으로 유럽경제가 돌파점을 찾아야 했던 1990년대 초 였습니다. 물론 이러한 단일화에는 다양한 정치적 실험과 이상이 결합되어 있습니다만....

    한-중-일 역시 공동 블록이 생긴다면 그것은 경제적 필요에 의해 생겨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최근 일본에서 의미심장한 일이 있었는데, 일본 경제인 협회 회장이 일본의 민족주의적 형태(가령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에 일침을 고한 적이 있습니다.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자신들의 상품을 팔아먹는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었죠. 한-중-일 삼국의 경제인들에게 민족주의는 귀찮은 장벽일 뿐입니다. 물론 민족주의 마케팅을 통해 상품을 팔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또 달라지겠지만요. 즉 아직은 한-중-일 경제블록의 필요성(경제블록으로 생겨날 이익)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경우 일본과 FTA가 체결된다면 이익보다는 손해를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FTA라는 것이 원래 선진국 혹은 경제적으로 더 우세한 국가에게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중국과 일본의 경우는 어떨까요? 즉 이렇게 꼬리를 무는 이익관계 때문에 아직 동아시아 삼국의 경제블록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EU는 단순히 경제적 요인으로만 설명이 불가능한 측면이 있습니다(경제적 필요가 강한 추동력을 갖게 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만). 다양한 사람들(좌파와 우파 양쪽 모두)이 EU에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내걸고 있기 때문입니다. EU뿐만 아니라 세계 통합 정치 체제에 대한 열망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UN과 비슷하긴 하지만, 훨씬 더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는 기구입니다. Robert J. Holton이 쓴 『Globalization and the Nation-state』(MACMILIAN PRESS, 1998) 에 좀더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6. 비밀방문자 2008/01/0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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