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 민주주의와 대의할 수 없는 민주주의

“한때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것, 심지어 그때의 이념과 습속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는 것, 그것으로 어떤 사람이 영원한 민주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맑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린이의 진실’을 생산하지 못할 때, 다시 시작하는 자가 되지 못할 때, 그 민주주의자는 늙기 시작한다. 현 체제 안에 존재하는 ‘이후’의 요소를 포착하지 못하는 한에서 그 민주주의는 이미 ‘종언’을 기다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민주주의의 어른스러움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달리, 민주주의는 영원히 어린아이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란 언제나 처음 질문, 즉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반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0년대 한국 사회에서 이 질문은 분명 다시 돌아왔다.”(고병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그린비, 2011, 97쪽)

선거철이 또 한 번 지나갔습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선거를 해서, 정치권이 들썩들썩하고 주변도 확성기 소리로 시끌시끌합니다. 평소엔 관심도 없던 정치인들의 이름도 알게 되고, 누가 무슨 공약을 내거는지도 들춰보게 됩니다. 심지어는 투표 현황과 선거 결과를 알기 위해 밤늦도록 TV 앞에 앉아 있는 경우도 생겼습니다(스포츠중계마냥 흥미진진하기도 하더군요). 이를 보면 마치 선거는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이벤트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사회를 이끌 리더를 뽑음으로써 내 삶의 질을 잘 바꿀 분기점을 마련한다는 (어쩌면 내게도) 특별한 날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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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개표 방송을 볼 때, 현실같지 않은 낯설음을 느끼곤 한다. 다수결이 대표를 뽑는 최선의 방법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곱씹어 보면, 우리가 선출한 그들은 ‘리더’라기보다는 ‘권력’(권력의 화신)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심부름꾼이라기보다는 군림하고 있는 군주의 한 형태 아닌가 싶습니다. 과거의 예를 들면, 박정희는 흔히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꼽히곤 합니다. 그 근거로는 ‘경제발전’과 ‘강력한 리더십’이 많이 회자됩니다. 그러나 강력한 리더십이란 ‘군사적 폭력에서 비롯한 무소불위의 권력’이라고 보는 게 더 맞을 것 같고(많은 분들이 희생당하신 얘기를 굳이 꺼내진 않겠습니다), ‘경제발전’은 박정희의 공이 아니라 전체 산업 인력, 특히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 같은 노동자들, 일반 서민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정희 아니어도, 그 누가 대통령이 되었더라도, (어쩌면 대통령과 아무 상관없이) 우리 부모세대에 경제 기적을 충분히 이룰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서민들은 열심히 (무슨 일이든) 일할 준비가 되어 있었으니 발전의 역량이 갖춰진 상태였고, 위정자들과 기업인들이 열심히 떠먹었을 뿐이라고 보는 게 더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때는 쿠데타에 의한 집권이었기 때문에 민(民)의 의지에 반(反)하는 것이었다 한다면, 직접선거에 의해 구성된 정부는 좀 다른 게 있을까요? 4대강 사업을 찬성하는 사람은 별로 보이지도 않는데 계속 강행되고 있고, 새만금 갯벌은 간단히 사라집니다(작년에 준공되었고 올해 구체적인 사업계획이 나왔습니다). 검찰은 한 시민이 G20 포스터에 쥐 그림 낙서를 했다고 실형을 구형할 정도니 그 권력의 무도함이 도를 넘었습니다. 이번 정부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노무현 정부 때도 이라크파병, 한미FTA, 쌍용차 헐값 매각 등 정치와 경제 정책 모두에서 기대치 않은(기대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했었습니다. 그런즉 우리의 선거란 민주 사회의 출발점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통제하에 놓이는 권력의 이양이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대의(代議)는 결코 민주사회의 대의(大義)가 아니라는 점을 시간이 지날수록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대의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 이 표현에 잘 들어맞는 게 ‘대의제’일까요? 대의제는 민주주의의 초석이라기보다는 직접민주주의를 시행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련된 민주주의의 보완물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니면 가라타니 고진의 말처럼 “각자가 주권자이고 그 주권자들의 합의가 없으면 아무 일도 결정되지 않는 것을 ‘민주주의’라고 한다면, 대의제는 원래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일본정신의 기원』)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는 이 대의제를 썩 좋아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술자리에서, 지하철에서, 친척들 모인 자리에서 어른들 몇 분 모이면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과 냉소를 듣는 건 어렵지 않고, 심지어는 비난과 혐오의 감정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웬만한 선거의 투표율이 요즘은 50% 정도니까 절반은 선거를 무시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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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별장에 서 있(다)는 동상들. 우리는 대표를 뽑을 때 그들에게 특정한 환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기대가 무너질 때 그를 비난하고 표를 던진 것을 후회하지만, 임기가 끝나면 다시 대표를 뽑는다. 새로운 대표는 다를 것이라는 희망을 품으며.

그렇다면, 이제는 현재와 같은 대의제가 아닌 다른 대안을 찾아볼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정치인이 그 나물에 그 밥이라면 그 위치에 굳이 한 명에게 임기를 보장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여러 명의 대통령을 앉혀 두고 사안별로 혹은 기간별로 정책을 펴나갈 수 있도록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전자투표와 같은 기술 발전이 비용을 줄이면서 의견을 모으는 데 순기능을 할 수 있을 듯합니다). 고진의 책에 나온 ‘제비뽑기’도 한 방법일 것입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권력이 누군가에게 고정되는 것을 막기 위해 우연성을 도입한 예입니다. 아니면 대의적 방법을 전혀 구사하지 않는 제3의 길을 찾아볼 수도 있겠죠. 방법이야 어쨌든, 일제에 이어 미군정과 쿠데타를 경험하고 오늘날 직접선거를 이루었지만 여전히 ‘민주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에게, 이제는 또 다른 ‘대안’을 찾아보는 것이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을 더 이상 ‘집권자의 고민’(집권자가 된 민주화 세력의 통치력)이나 ‘집권자가 되기 위한 고민’(민주 세력의 권력 탈환)으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 즉 ‘데모스의 힘’은 사람들의 복종을 끌어내는 통치 권력의 크기가 아니라, 권력이 유포하는 유혹이나 공포에 쉽게 휘둘리지 않고 자기 삶을 꾸려 갈 수 있는 능력의 크기, 권력조차 그런 관점에서 다룰 수 있는 능력의 크기로 표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도래한 민주주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싸움은 우리 삶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권력과, 이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의 대안적 형식의 발명을 둘러싸고 벌어질 것이다.”(110~111쪽)

- 편집부 주승일

G20 그래피티 사건 후원을 위한 1일 파티: 파티하쥐!

5월 13일, G20 그래피티 사건에 대해 법원은 피고인 둘에게 각각 벌금 200만원, 1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판사는 공공기물을 훼손했기에 예술 창작 및 표현의 자유의 범주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이와 같이 판결했습니다. 판결 직후 각 언론 등을 통해 선고 결과가 여러 매체에 보도 되었기에 이에 대한 소식은 이미 접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언론보도보다 늦게 소식을 전해드리는 것은 내부에서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우선은 6월 3일 두리반에서 오후 4시부터 “G20 그래피티 사건 후원을 위한 1일 파티”를 열기로 했습니다. 이름하야 ‘파티하쥐~!!’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가능하시다면 곳곳에 웹자보를 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온라인으로도 티켓을 판매하고 있으니 링크를 참고하셔서 많이 참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온라인 티켓 링크 페이지로 바로 가기)
※ 위클리 수유너머에 실린 내용을 옮겨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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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클릭하면 온라인 티켓 구매 안내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10점
고병권 지음/그린비
2011/06/01 09:00 2011/06/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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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메밀밭의 난봉꾼 2011/06/03 00:26

    故프루동 옹 왈
    "선거는 지배 계급에게 주기적으로 지배와 억압에 대한 정당성을 선사해 주는 제도일 뿐이다." 고, 그리곤 대안없는 비판은 무의미하다는 비판을 입막음 하기 위해서였는지는 몰라도 '아나키즘'이라는 대안을 제시하셨죠. 물론 프루동 옹은 '아나키즘'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였을 뿐 그 이념은 그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지만요.(라고 하더라고요 그 시대에 안살아봐서 자세한 건 잘;;)

    저는 이 '아나키즘'이라는 것에 매력을 느낍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아나키즘은 인간 개체수가 현저히 줄어들지 않는 한 힘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구라는 행성에는 너무나도 많은 인간들이 복잡하게 엮인 이해관계를 형성하고 있고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은 대나무 숲의 뿌리처럼 그들을 더욱 단단하게 엮어 놓았죠. 한 사람이 민주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스케일을 넘어서 버린 겁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민주적인(물론 여성과 노예에게는 민주적이지 못했지만..)사회가 구성되었던건 어떤 일이건 아고라에 모여서 각자 한마디씩 말할 수 있는 스케일이였기 때문이 아니였을까 싶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이제와서 스케일을 줄이겠다고 멀쩡히 살고있는 사람들을 죽일수도 없는 노릇이고, 전자민주주의를 하자고 하니 하기도 전에 '명의도용'은 편의점에서 술,담배사기용 민증 조작보다 쉬운 상황이고, 제비뽑기를 하자니 어차피 이미 참가자들이 전부다 그놈이 그놈인지라 어떤 대안도 탐탁치 않아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대의 민주주의'라는 개념 자체에는 크게 하자가 없다고 봅니다. 60억이 한마디씩 하기 시작하면 딱히 답이 없는거죠(과장이 좀 심했나요?). 하지만 대의 민주주의 문제는 '전제조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의민주주의를 '주체적인 개인이 자신의 뜻을 대표해줄 사람을 뽑아서 주권을 행사한다'라고 멋대로 정의해 보자면, 이 '주체적인 개인'이라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어떤 대안을 내놓는다고 해도 마찬가지 일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체적인 개인'이 선행하지 않는 이상 어떤 대안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사실 '쥐'와 같은 동물은 인류역사에서 언제나 존재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 이구요. 근본적인 문제는 '쥐'가 아니라 '쥐'를 푸른기와집에 넣어 기르도록 해주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미스터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이 그런게 아닐까 싶어요. 그 어떠한 대안보다도 시급한 것은 '주체적인 인간'을 '교육'하는 것. (주자는 인간에게 선한 본성이 있지만 교육으로써 그 내제되어 있는 것을 발현시켜야 한다고 했다지요? 주제청도 그 선한 본성같은 것이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진심이 담긴 아부를 좀 하자면 '그린비'의 역할이 매우아주많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린비는 저에게 주체성을 교육시켜준 가장 큰 스승이니까요. 이힝ㅋ

    무슨 헛소리를 주저리 주저리 했는지 모르겠내욬ㅋㅋ
    고병권 선생님의 강좌신청했는데 차...참석할 수 있겠죠??ㅜㅜ
    근데 1,2차가 있던데 내용이 다른건가요??

    • 그린비 2011/06/03 11:18

      안녕하세요. 처음에는 긴 글에 헉...놀라고 감동했습니다! ^^*
      저도 민주주의는 어떻게 작동하면 좋은 걸까를 고민했는데요,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무엇 때문에 민주주의를 하려고 할까?"

      학교 다닐때 윤리니 정치니 사회문화니 하는 수업들에서 작은 정부, 큰 정부 등등 정부의 여러 형태들을 봤는데...정작 정부들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냥 있는 것 자체가 너무 자연스럽기 때문에 정부가 없으면 난리날 것 같았거든요. -_-;; (사실 저도 아나키즘이 왠지 멋있어 보였습니다. ㅎㅎ)

      좀 뜬금없게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내가 바뀌면 세상도 바뀐다'는 말을 믿습니다. 물론 바뀐 세상이 유토피아 같은 아름답고 정의로운 사회를 뜻하는 건 아니구요. 모든 것이 질서가 잡혀 있고, 그 질서를 잘 지키는 방식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질서없음을 긍정하고, 그 안에서 어떻게 잘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방식으로요. 여전히 고민만 하고 있습니다.^^

      참, 1차와 2차 강연은 신청하는 이벤트 페이지, 강연 날짜와 장소가 다른 것입니다~ 고병권 선생님 강의를 신청하셨다니 훈늉하십니다! ㅋㅋ 그럼 그날 뵐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