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예순일곱 살인 나는 간암 환자이다. 5년째 하루 세 번 꼬박 약을 챙겨 먹고,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봉지에 든 약은 여섯 알이나 되었다. 나는 두 알씩 세 번에 나누어 삼켰다. 물 한 모금과 함께 입속에 털어 넣은 두 알의 약이 식도를 넘어간 뒤에야 나는 두 알을 또 삼켰고, 그 두 알이 또 식도를 넘어간 뒤에야 남은 두 알을 삼켰다(김숨, 「간과 쓸개」, 『간과 쓸개』, 문학과지성사, 2011, 11쪽).

소설을 잘 읽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일이나 관심사와 관련된 책을 주로 읽다 보니, 자연스레 소설도 읽지 않게 됩니다. 한때는 나름 소설을 좋아했었는데(“남들이 취업준비를 할 때 나는 도서관에서 도스토예프스키를 읽고 있었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전 그 정도는 아닙니다……) 어쩌다 보니 이젠 1년에 한 권도 제대로 읽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김숨은 제가 좋아하는 소설가 중의 한 명입니다. 왜 좋은지는 잘 설명을 잘 못하겠네요(-_-;). 제가 그리 어두운 사람은 아닌데…… 그냥 그 처절하고 건조한 분위기를 좋아합니다. 그런 그의 새 소설집이 올해 초 출간되었고, 저는 얼마 전에야 『간과 쓸개』를 읽어 보았습니다.

표제작인 「간과 쓸개」는 간암에 걸린 60대 남성을 다루는 소설입니다. 투병 중인 그는 병원에 다니고, 약을 먹고, 별 문제 없다는 의사의 말에 안도하고,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의사의 말에 마음 졸이고, 다시 약을 먹고…… 이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솔직히 ‘소설’이 되기엔 그다지 강렬하지 않은 소재입니다. 거기다 김숨은 여전히 건조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제게는 이 담담한 서술이 굉장히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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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 깊어 가면서 공포는 낮을 밤으로 바꿔 놓았다. 나는 그녀가 무엇을 두려워하였는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죽는 것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더 심각한 그 무엇에 대한 것이다. (블랑쇼, 『죽음의 선고』, 19쪽)

올해 예순한 살인 저희 아버지는 간경화 환자이십니다. 9년째 하루 세 번 꼬박 약을 챙겨 드시고,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으며 살아가고 계십니다(물론 꼭 이것만 하시는 건 아닙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한때는 많이 심각하기도 했고, 또 어느 때는 괜찮기도 했습니다. 정말 조심해서 몸 관리를 하신 덕분에 지금은 많이 괜찮아지신 편인데, 그럼에도 가끔은 고통을 호소하시곤 합니다.
군대 시절을 제외하면 7년 정도 아버지를 지켜봤습니다. 사실 가장 심각하실 때는 군대에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병간호를 한 적은 없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아버지를 봐 왔고, 가끔은 매우 고통스러워하시는 것도 봤습니다. 그때마다 걱정스럽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이 소설을 읽으며 그간 생각하지 못했던 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과연 병으로 인해 고통스러울 때만 괴로운 것일까? 병원에 대한, 약에 대한 두려움이 항상 아버지를 괴롭히고 있는 건 아닐까?’ 『간과 쓸개』의 주인공은 이렇게 말합니다. “정기검진을 받으러 갈 때마다 매번 도살장에라도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주치의가 두렵기만 하다.” “검사를 받아보라는 권유만 받아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쩌면 어느새 일상적인 일이 된 병원 가기가 약 먹기가 항상 아버지를 괴롭게 만든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어느 순간부터 저는 그 ‘일상’이 고통스러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저렇게까지 하셔야 하나?’ 하는 짜증 섞인 눈초리로 아버지를 바라본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저희 아버지는 하루 세 번, 절대 거르지 않고 약을 드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만큼 저도 어느새 아버지의 철저함에 안심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너무나 철저하게 드시기 때문에, 혹시라도 약을 드시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아버지가 얼마나 초조할지를 떠올려 본 적은 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약을 거르지 않으려는 노력 자체가, 평생 하루 세 번 꼬박꼬박 약을 드셔야 하는 상황 자체가 지긋지긋한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던 것이죠.

결국 다시 알게 되는 건, 아버지 역시 타인이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부를 한다는 것은 그런 식의 무감각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저항하는 것이지만, 또 반대로 그 무감각에 저항해야만 삶도, 공부도 무의미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은 이런 저항들의 순환을 유지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한 일이라는, 또 중요한 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 편집부 김재훈
간과 쓸개 - 10점
김숨 지음/문학과지성사
2011/06/03 09:00 2011/06/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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