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위대한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도 ‘백지의 공포’를 말했다지요. 제가 다른 어떤 능력으로 감히 그런 시성에게 비기겠습니까마는, 백지를 마주했을 때 벌벌거리는 정도만으로는 지지 않으리라고 자신합니다. 으으음, 그게 아니라고요? 그... 그렇겠죠?(^^;;) 아무렴 그런 시성께서 진짜로 백지를 앞에 두고 두려워하기까지 했으려고요. ‘백지의 공포’, 뭔가 심오한 고민을 담은 상징적 표현이랄까 그런저런 것이지 않았을까요? 그에 반해 저는 정말, 뭔가를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백지를 마주하면 머릿속이 하얘지는 그런 사람이랍니다. 하얘지다 뿐이게요. 델리케이트한 남자인 저는, 써야 할 글이 생기고 그 글을 마쳐야 할 시기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고확률로, 변비에 걸리고 맙니다. 네, 그렇습니다. 저는 그제부터 변비로 고생하고 있답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그러니까 변비 말고 제 백지 공포증 말입니다. 어쨌거나 지금은 글을 다루는 직장에 다니고 있고, 대학 시절엔 내내 강의실이 아니라 문학동아리 동방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던 저입니다만, 언젠가부터 점점 쓰는 글이 줄어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처음 ‘글’을 읽고 쓰는 행위에 어떤 자의식이랄까를 가졌던 무렵에는, 더 많은 책을 읽고 또 글 솜씨를 갈고 닦다 보면, 자연히 어느 날엔가는 자신이 동경하는 작가들처럼 멋진 글을 쓸 수 있게 될 거라는 순진한 환상도 품고 있었더랍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제 나름으론 부지런도 떤다고 떨어 항상 책을 가까이했는데, 자기 글이 나아지는 기미는커녕, 아예 글을 쓰고 싶다는 열의 자체가 빠르게 식어가는 걸 느꼈습니다. 대신 늘어간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남의 글에 대해 가타부타 말하는 빈도와 강도였다지요.…… 그리고 말이 쌓여 갈수록 글은 쓰기 어려워졌습니다. 자신이 남의 글을 비판할 때 했던 말들, 이러저러한 미숙함을 나타내는 표지들이라고 지적했던 그런 부분들이 정작 자신의 글에서 도무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조바심치게 되었습니다. 내가 신나게 비평한 글들의 글쓴이들이 내가 쓴 못난 글들을 보게 된다면 과연 어떤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할지, 상상 속의 논적(!)들이 제게 지탄을 퍼붓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더 좋은 글, 더 결점 없는 글을 쓰게 되는 그날까지, 사람들에게 내 글을 보여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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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빈번히 일어난다. 우리가 좋은 결과를 얻는 경우에도 그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의 성공이라기보다는 기대한 방식과 다른 방향, 다른 스타일의 성공일 때가 많다." 『코뮨주의 선언』, 320쪽

하지만 출판인인 이상, 특히나 (그린비의) 편집자인 이상, 자신 없다고 안 할 수 없는 중요한 일 중의 하나가 글쓰기입니다. 그리하여 초짜 편집자 김효진, 오늘도 변비로 고생 중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만난 게 아래의 구절, 제게 “아...” 작은 탄식을 흘리게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쓴 것들, 즉 우리 사유의 껍데기들의 부정확성은 사유하고 글을 쓰려는 우리의 의욕을 꺾는 게 아니다. 내일 새로운 친구들이 나타나서 우리 언어의 왜곡과 부정확함을 수정해 줄 것이고, 이런 왜곡과 부정확함이 없었다면 그 친구들에게 그 어려운 길[확장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독서의 길]이 열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스피노자의 동물 우화』, 아리엘 수아미   (81~82쪽, [ ] 안은 인용자 첨가)

아무리 입으로는 아니라고 아니라고 말은 해도, 어쨌거나 글과 함께하는 직업을 선택한 몸인 이상, 자기 글에 아무런 이입도 하지 않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또 아무리 입으로는 아니라고 아니라고 말은 해도, 그 자기의 글의 허점과 미숙함이 낱낱이 까발려지는 걸 보는 게 괴롭지 않을 이 또한 없을 것입니다. 초짜 편집자 6개월을 이럭저럭 좌충우돌하며 보낸 지금에 와서야 말하는 거지만, 저 역시 그랬다는 겁니다.

물론 제 글을 봐 준 사람들은 제 입장에서 보면 까마득한 선배, 숙련 편집자들이고 글을 다루는 솜씨 또한 제가 비할 바 못 된다는 걸 분명 머릿속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제 글에 대한 지적, 하나같이 아프게 맞는 지적들이라 전혀 부인할 셈은 없었으되, 너무 부끄러워 한시 빨리 그 글을 눈앞에서 치워버리고만 싶었습니다. 어차피 실패한 글이고 지금의 내겐 지금 필요로 하고 있는 글을 써낼 능력이 없으니, 수모는 이쯤으로 해두고 (전혀 비아냥이 아니라) 유능한 선배님들이 ‘너도 나중엔 이렇게 할 수 있을 거다’라는 위로의 말과 함께 보도자료고 뭐고 파박팍팍 써서 건네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도 했더랍니다. 하지만 선배들은 ‘이건 이렇게 고쳐봐라’, ‘저건 저렇게 고쳐봐라’는 말을, (지적의) 코멘트로 빼곡한 제 글과 함께 건네줄 뿐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던, 쓸데없이 고집스러운 비효율(‘이대로 가면 오늘도 야근인데, 나머지는 당신들이 좀 써주면 금방 끝날 거잖아!’).

수아미의 저 문장을 읽으며, 제게는 그때 제 보도자료가 출력된 모니터를 마주보며 한숨을 내쉬던, 혹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던 선배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내게 새로운 친구들이 나타나, 내 언어의 왜곡과 부정확함을 수정해 줬던 거구나, 그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또한 수아미가 스피노자에 의거해 말하길 “누군가가 어리석은 것을 말한다고 해서 (또는 쓴다고 해서) 그가 어리석은 것들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듯, 그(들)는 내가 알량한 자존심의 상처를 피해 보겠다고, 서슴없이 내던져 버리려 했던 ‘사유’를 어떻게든 구출해 보고자 그렇게 머릿골을 앓았던 거구나, 그런 생각도 떠올랐습니다.

이 구절이 적힌 절(節)의 제목은 ‘우정의 기원’. 내 어리석고 부조리한 언어를 바로잡아 줄 친구들을 초대하기 위해, 글을 쓰기 위한 마음을 다시 한 번 돋워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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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은 타인이 말한 것과 쓴 것에 대해 일관성을 내비칠 준비가 얼마나 되어있느냐에 따라 측정된다. 아주 사소한 우둔함을 찾아내고, 부조리와 추문으로 환원하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인가!"(같은 책, 81쪽)

- 편집부 김효진
스피노자의 동물 우화 - 10점
아리엘 수아미 지음, 강희경 옮김, 알리아 다발 삽화/열린책들
2011/06/10 09:00 2011/06/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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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rtha 2011/06/10 11:56

    우와, 효진씨의 글을 블로그에서 보니 반갑네요!
    저는 디자이너로서 완성된 텍스트를 건네받는 것이 너무 익숙했는데..
    그 텍스트가 완성되기까지 많은 노력이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어요..
    화이팅입니다!!! ^^

    • 그린비 2011/06/10 13:47

      누군가에게 정확하게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서로에게 더 도움이 되길 바라기 때문인 것 같아요. 관심이 없다면, 아예 그런 말 조차 하지 않게 되니까요. 선배의 마음을 헤아리고, (아프지만) 피하지 않고, 맞서는 모습이 멋집니다. +_+

  2. 도르래 2011/06/10 16:31

    우와 저 그림 정말.. 백지의 공포감 그 자체네요. 무슨 그림인가요?

    • 그린비 2011/06/10 16:57

      안녕하세요 도르래님.
      말씀하신 그림의 작가는 이 링크를 따라가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bit.ly/l20tFn

      (이미지는 뭉크의 <절망>으로 교체했습니다.^^;;)

  3. lan 2011/06/21 19:49

    델리케이트한 ....남자셨군요, 효진님. 괜히 죄송합니다__;;. 문체가 재밌네요~ 더불어 동료이야기에 원피스의 한컷을 넣는 센스를ㅋㅋ 앞으로 효진님 글 많이 기대할게요~

    • 그린비 2011/06/21 20:25

      동료하면 원피스죠! 62권도 출간되었다는데, 아직 구입을 못해서 무척 내용이 궁금합니다. 하하...
      블로그에서 자주 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