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다른 사람의 행동을 쉽게 판단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하는데, 왜 저 사람은 못할까라는 부정적인 방식으로요. 그렇게 바라보기 시작하면 그 사람의 미운 모습만 자꾸 보이게 됩니다. 미운 모습을 싫어하는데 온 힘을 쏟다보니,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어렵더군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문득, '왜 이렇게 그 사람의 행동이 싫을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계기는 제가 상대방에 대해 무의식중에 어떤 기대를 하다, 그것이 실현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방도 좋아하길 바란다거나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을 상대방도 당연하게 여긴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얼마 전 같이 공부하자고 약속한 사람이, 어떤 이유 때문에 나가던 수업을 그만두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얘기를 들었을 때, 화가 났습니다. 본인이 하겠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이러나 싶었죠. 상대방이 한다고 했던 공부는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저와의 약속이라고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약속을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과 어떻게 잘 지낼 수 있을까, 그 공부가 절실하지 않은 건가 등등 온갖 추측을 다 했지요.

문제는, 그런 식으로 실망을 하게 되자 그 사람의 행동이 다 싫어지는 겁니다. 이런 기분이 들자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때를 계기로 저는 사람들에게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 실망감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상대방의 의지와 관계없이 저 혼자만의 기대를 투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상황에 부딪쳐 보니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기대를 하고 있었던 저를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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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의 크기가 나의 존재의 크기를 결정한다"고 했던가. 무지에서 벗어나면 두렵지 않고, 두려움을 모를 때 우리는 자유롭다. (김해완, 『다른 십대의 탄생』, 152쪽)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의 속을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 가능하더라도 온전히 그 사람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 다름을 어떻게 할 것인가, 막막했지요.

인간은 말과 이미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또한 각자는 종교의 보편적인 가르침을 자기의 고유한 상상계에 맞추어 각색해야만 하고, 다른 사람들의 상상계는 자기의 것과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자기를 표현하는 방식에, 더 나아가서는 사람들이 이해하는 방식에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우정은 정신의 융합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중지와 확인에 대한 기대 안에 있다. 내 생각에는 스피노자의 좌우명의 의미도 바로 이런 것이다. 스피노자가 자기 편지 위에 찍었던 봉인의 의미 말이다. Caute, 그것은 <신중하라!>라고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신중함은 <결코 예속이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인간 본성의 자유다.>
— 아리엘 수아미 지음, 강희경 옮김, 『스피노자의 동물 우화』, 열린책들, 80~81쪽

저는 스피노자의 '신중하라'는 좌우명에서 힌트를 조금 얻었습니다. 상대방의 행동에 화가 났다면 재빨리 그 감정을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원인은 제 안에 있을 테니까요. 신중함은 참는 능력 뿐 아니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역량을 포함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저는 신중함이 그런 의미에서 자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 사람은 참 답답해'라고 결정짓지 않고 그 사람 자체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누군가에게 그렇게 쉽게 판단되는 것이 싫으면서, 저 역시 다른 사람을 그렇게 쉽게 판단하고 있는 건 아닐지, 이런 상황을 저만 당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관계에서의 부딪침을 통해 오히려 제 상태를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부딪치는 지점을 '어떻게' 넘어갈 것인지 판단의 순간이 올 때마다 한 번씩 더 생각하려고 합니다.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관계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된 셈이니까요.

- 웹기획팀 이민정
스피노자의 동물 우화 - 10점
아리엘 수아미 지음, 강희경 옮김, 알리아 다발 삽화/열린책들
2011/06/17 12:00 2011/06/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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