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라는 ‘현장’에 밀착한 르포적 영화에세이를 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 영화에 대적할 수 있는 영화들은 언제 어느 곳에서도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란 믿음을 포기할 이유는 없다. 결국 영화는 스크린 앞의 관객들 것이고, 관객들이 관심을 기울인다면 영화적 단절을 극복하고 국가와 인종적 단절 또한 뛰어넘을 수 있는 힘도 만들어질 것이다. 그런 믿음이 없었다면 영화라는 프리즘을 통해 아시아를 본 이 책을 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 「머리말」 중에서

누가 요즘 영화에 역사의 진실 같은 것을 물을까? 하물며 그 역사가 아시아의 것이라면? 영화를 꿈과 가장 닮은 매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꿈이 희망과 허망의 경계를 오가듯 영화 또한 그럴 것이다. 깨어났을 때의 현실(reality)이 전제되지 않은 꿈은 허망하다. 마찬가지로 역사의 진실(reality)에 눈감는 영화 또한 허망하다. 이렇게 영화와 역사의 운명이 겹쳐진다.

지난 20여 년간 소설가로, 르포 작가로 세계를 돌아다니며 제3세계 인민의 삶과 정치의 현장을 전해 온 저자 유재현의 ‘유재현 온더로드’ 시리즈 6번째 책 『시네마 온더로드』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대만, 홍콩 등 아시아 14개국을 무대로 영화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이 영화에세이를 통해 그간의 글쓰기에서 영화가 떼어놓을 수 없는 동반자였음을 고백하고 있다. 글로 된 자료들을 통해 해소되지 않는 갈증, 직접 가볼 수 없을 때의 갈증을 영화를 통해 풀 수 있었고, 때론 기어코 그곳으로 직접 떠나도록 추동해 준 것 또한 영화였다는 것이다.

『시네마 온더로드』는 ‘온더로드’의 전작들, 특히 『아시아의 기억을 걷다』, 『아시아의 오늘을 걷다』와 긴밀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어서 ‘아시아 근현대사 3부작’이라고도 부를 만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할리우드 영화의 자장 아래 전일적으로 놓”(6쪽)인 아시아 영화의 현실로부터 출발해, 아시아의 근현대사라는 음화(陰畵)를 비추어 내는 영화를 찾아 나선다. 그 탐색을 통해 우리는 무심히 보고 지나치기 쉬운 영화의 배경 구석구석에 역사가 남긴 흔적이 있음을, 그리고 그 흔적들이야말로 영화, 즉 이야기의 바탕이라는 점을 알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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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강의 다리는 죽음의 철도(혹은 버마 철도)의 건설과정의 일부이다. 연합군 생존자들의 증언에 바탕을 둔 영화가 유명해지면서 이 곳 또한 덩달아 관광명소로 알려졌다.

『시네마 온더로드』는 ‘주말의 명화’용 고전 「콰이강의 다리」부터 영화의 변방 몽골에서 만들어진 「우르가」까지, 아시아를 무대로 하는 매우 다양한 영화들을 다루고 있다. 생소하거나 기존 영화 관련 도서에서 찾아보기 힘든 영화들이 많은 점이 우선 눈에 띄는 한편, 감상의 무게중심을 ‘아시아 역사’에 둠으로써 이미 알고 있던 영화들을 새롭게 곱씹으며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대개 영화에세이라고 하면 ‘영화에 대한’ 글이기 마련이지만 『시네마 온더로드』의 저자 유재현은 영화를 통해 영화의 바깥, 혹은 스크린 건너편의 역사와 현실을 말한다. 이 책은 영화에 대한 글이 아니라, 영화의 이름을 가진 다리가 놓인 글인 것이다. 섬처럼 고립되어 있던 방콕의, 캄보디아의, 대만의 역사가 영화라는 다리들로써 연결될 때, 우리는 거기서 ‘아시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영화라는 거울에 비친 아시아의 기억, 그리고 오늘


▷ 제국주의의 눈으로 본 아시아
베트남을 배경으로 한 2부의 「공포를 향한 오디세이」 는 ‘기왕 알던 영화를 감상의 초점을 바꿔 다시 보는’ 글 중에서도 백미로 꼽을 만하다. 여기서 다뤄지는 「지옥의 묵시록」은 이미 많은 영화 관련 도서에서 다뤄진 적이 있기 때문에, 『시네마 온더로드』가 얼마나 새로운 시각을 보여 줄지가 관건이 된다. “영화의 리얼리티를 측정해 보는 일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다.”(158쪽) 그리고 저자는 이 천연덕스러운 한마디와 함께 시작한 글은 장장 여섯 쪽에 걸쳐 주인공 윌러드 대위의 행로를 검증하는 파격을 보여 준다. 그 결과 「지옥의 묵시록」이 제시하는 모든 지리적 정보는 철저한 허구라는 것이 드러나지만, 저자는 오히려 그 허구로부터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쇠말뚝처럼 관통하고 있는”(164쪽) 단 하나의 리얼리티, 제국주의의 광기와 공포를 발견해 낸다.

이 전쟁은 미국 내부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지상군 증원은 미국 내의 반전 여론으로 닉슨에게는 정치적 생명을 걸어야 하는 일이 되어 있었다. 커츠의 독백처럼 미국의 보수파들은 자신들이 약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왜 약한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을 대신해 커츠가 내놓은 해답은 원주민의 야만적 광기이다. 물론 이 광기는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한 것처럼 ‘상상의 동양과 날조된 지식’으로부터 조작된 광기이다. 동양의 야만적 광기와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것과 버금가거나 그것을 뛰어넘는 (제국주의적) 광기일 뿐이지만 동양의 야만적 광기가 조작된 광기이므로 남는 것은 일방적인 제국주의적 광기이다. 그러므로 커츠의 자멸은 숙명이 된다.(169쪽)

「공포를 향한 오디세이」를 끝맺으며 저자는, 비록 「지옥의 묵시록」이 “미국의 제국주의적 욕망과 자의식이 드리운 어둠의 핵심을 미국의 전쟁에 담아 그렸다는 점에서” 큰 성취를 이뤘지만, “그러나 그건 여전히 미국을 위한 성취일 뿐”(169쪽)이라는 한계를 짚어낸다.

▷ 식민 혹은 난민의 아시아
말레이제도와 인도차이나반도를 주 무대로 하는 1, 2부에서는 ‘아시아인에 의한’ 영화도 찾아보기 어렵다. 태국의 위시트 사사나티앙, 말레이시아의 아미르 무하마드 정도나 꼽을 수 있을까? 이는 수백 년에 걸친 식민지 경험, 2차대전 종료 후 다시 드리워진 신식민주의의 그림자의 영향 아래서 자신들의 영화 언어를 찾기란 요원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구인들의 영화 속에서 아시아는 『슬리핑 딕셔너리』나 『왕과 나』처럼 서구인들의 판타지를 펼쳐 보이기 알맞은 이국적(Exotic)인 풍광으로 빈번히 소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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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과 나」의 한 장면. 몽꿋국왕의 아이들의 가정교사의 이야기인 애나 레오노웬스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유래하는데, 이 이야기의 객관성은 논란이 되고 있다. 실제로 타이에서는 역사적인 부정확성을 이유로 이 책과 뮤지컬, 영화에 관련된 것이 금지되어 있다.

그렇다면 장이머우, 천카이거, 왕가위 등 세계적 영화감독들을 배출한 중화권의 사정은 어떨까? 중화권을 무대로 한 3부를 여는 글의 제목은 「홍콩, 그 난민적 정체성에 대하여」이다. 이 글은 홍콩의 중국 반환 원년인 1997년을 중심에 두고 4편의 영화를 마치 연대기처럼 다루고 있는데, 첫 영화가 홍콩으로 흘러들어 온 베트남 난민 ‘호월’의 이야기인 「호월적고사」(1981)라는 점부터가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마지막 영화인 두기봉의 「흑사회2」(2006)는 홍콩의 중국 반환 후 사업 영역을 중국으로까지 확장한 홍콩 폭력조직 삼합회를 그린다.

주윤발의 성냥개비와 쌍권총을 팔다 할리우드로 도망간 홍콩느와르의 폐허에서 두기봉은 마침내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 홍콩의 중국반환으로 홍콩느와르는 거대한 물을 얻었다. 당대의 중국처럼 ‘느와르’한 세계가 지구상에 어디 있을 것이며 중국공산당과 필적할 만한 비정의 폭력집단을 또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쉬안화의 난민은 홍콩이 아니라 중국대륙을 헤매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201쪽)

『시네마 온더로드』는 베트남 발(發) ‘난민’의 운명이 홍콩을 거쳐 아시아 일반의 운명으로 번져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중국 본토의 장이머우에 대해, 저자 유재현은 「인생」 이후 시작된 장이머우 경력의 쾌속질주(「영웅」으로 대표되는)를 중국공산당과의 불편한 동거의 결과로 진단한다. 장이머우와 중국공산당이 공히 추구하는 것은 문화혁명이 상기시키는 이념의 시대에 대한 회피이다. 이제 이념이 사라진 난민들의 중국에서는 톈안먼시위를 소재로 삼아 “설익은 섹스가 시종일관 난무하는” “몰역사적이고 반역사적인 영화[「여름궁전」]를 만들 자유”(264쪽) 정도가 중요한 문제가 되며, 한 몽골 여성의 재혼소동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자치구로 편입된 몽골의 문화적 충격을 은유하는 소극(笑劇)처럼 그려진 「투야의 결혼」 같은 영화가 만들어진다.

아시아의 영화와 역사는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

아시아 전역을 헤매던 저자의 발길은 중동 지역에까지 닿지만, 골든글로브를 수상하며 서구 평단의 갈채를 이끌어 냈던 이스라엘 감독 아리 폴만의 「바시르와 왈츠를」 같은 영화조차도 결국은 “시오니즘의 자기합리화 내지 침략자의 자기기만”에 그치고 있음을 목격한다. 그러나 저자는 할리우드 영화로 대표되는 문화 제국주의의 횡포에서 자유로운 영화를 찾아 제시하겠다고 아시아 전역을 돌아다닌 것은 아니다.

식민주의와 신식민주의, 전쟁과 파시즘, 개발과 독재, 이념의 왜곡, 인종 간의 불화와 종교. 영화들에는 아시아의 모든 나라들이 대개는 감내해야 했고 지금도 안고 있는 현대사의 상흔이 동일한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 우리도 갖고 있지만 등판에 새겨져 있어 거울에 비추어야 간신히 볼 수 있는 바로 그 문신이다. 이 책이 담고 있는 영화들이 그런 종류의 거울이 되었으면 한다.(9쪽)

『시네마 온더로드』는 갖가지 상흔으로 점철된 아시아의 현대사를 영화에서 읽어낸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통해 모든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아시아에의 열망을 확인하게 된다. 그는 우리가 지금 찾아야 할 것은 해방된 아시아를 그리는 영화가 아니라(그건 허망한 꿈과 같은 영화이므로), 영화로부터 역사에 이르는 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길은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 홍보 문구와 평단의 의례적인 상찬을 의심할 때, 화면을 수놓는 주인공들의 이야기 너머 남루한 대중들에게 눈길을 던질 때, 그리고 왜곡되고 억압된 역사에 대한 애정으로 영화를 뜯어 볼 때, 영화는 제작자의 의도조차 뛰어넘어 진실에 이르는 길을 보여 줄 것이라고 저자 유재현은 말한다.
시네마 온더로드 - 10점
유재현 지음/그린비
2011/06/20 09:00 2011/06/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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