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역사에 대한 이의 제기

1. 그들만의 컷 사인

컷(cut)
 - 촬영한 필름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삭제하는 일.
 - 영화 촬영에서, 촬영을 멈추거나 멈추라는 뜻으로 하는 말.

한 편의 영화는 3킬로미터 이상 길이의 필름으로 이루어지며, 또 그 3킬로미터를 남기기 위해 얼마나 많은 필름을 필요로 할지는 사실상 미지수랍니다(수백에 달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랍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우리가 ‘역사’라고 말하는 것을 그 3킬로미터의 필름이라고 할 때, 그 길이를 남기기 위해 잘라내야(cut) 했던 더 많은 길이의 필름이 담은 장면은 무엇이었을까요?

‘역사’, 그 어떤 관형어의 부연이나 한정도 필요로 하지 않는, 세계가 지내온 시간을 단일한 이야기로 엮어낸, 편집된 필름 같은, 대문자 'H'의 역사(History). 그리고 시장논리가 전 세계를 관통하는 상황을 그 ‘역사’의 피날레라고 말하는 이들……. 그럼 지금 여기서 아시아의 역사를 말한다는 것은 그렇게 잘라내 버려진 필름무더기를 더듬어, 마치 그것이 자명하고 단일한 것인 양 제시되는 ‘역사’를 반박하는 일에 해당하지 않을까요?

2. 영화 속에서 역사를 발견해 내는 안력(眼力)

대강 이런 생각이 이 책 『시네마 온더로드 : 영화로 보는 아시아의 역사』를 편집하는 중에 떠올랐더랍니다. 영화와 역사는 그것이 결국 ‘이야기’의 형태로 유통된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고, 또 그렇기 때문에 아시아의 영화를 둘러싼 힘관계를 추적함으로써 아시아의 역사를 둘러싼 힘관계 또한 이해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다. 그럼 영화를 둘러싼 힘관계란 어떤 것일까요? 그건 이야기의 무대로서 아시아를 누가 차지할지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이제 책의 구성을 따라 그 힘관계의 작동을 일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슬리핑 딕셔너리」는 섹스를 찾아 방콕이나 프놈펜, 마닐라의 밤거리를 어슬렁거리는 유럽과 북미 그리고 극동의 굶주린 하이에나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성적 판타지 영화이다.
- 32쪽, 「잠자는 백인 중산층의 보르네오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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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슬리핑 딕셔너리」의 스틸컷.
"「슬리핑 딕셔너리」는 백인들의 식민지 판타지를 자극하고 있다는 점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니라 「한여름 밤의 꿈」에 가까운 영화다." (27쪽)

동남아시아를 뒤덮은 수백 년에 걸친 식민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 후 탈식민 시대의 시작과 함께 종식되었습니다. 어디까지나 명목상으론 말이지요. 현실적으로 탈식민이 완수되었다면 말레이시아를 배경으로 서구인들의 성적 판타지를 늘어놓는 영화가 버젓이 만들어질 순 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역사를 다뤘다가 검열로 개봉조차 하지 못하는 영화가 생기는 일도 없어야 할 것입니다(「아미르 무하마드의 렌즈로 보는 말레이시아 현대사」). 결국 동남아시아가 맞이했다는 탈식민 시대의 실상은 신식민주의와 군사독재의 이중 억압임이 영화들을 통해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식민주의의 폭압을 겪은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중화권은 어떨까요? 거기서 아시아라는 무대는 온전히 아시아 민중의 것이 되었을까요? 중국공산당은 그렇다고 말합니다.

영화[티베트를 무대로 한 중국공산당의 선전영화 「농노」(1963)]는 인민해방군의 등장으로 계급해방의 의식을 고취시킨 잠파가 동료와 함께 발에 묶인 쇠사슬을 끊는 장면으로 점프한다. 총을 들고 사원에서 승려에게 대항한 후 의식을 잃은 잠파는 군중들의 해방을 외치는 함성 소리에 깨어 일어난다. 잠파가 벽에 걸린 마오쩌둥의 사진을 보고 울먹이며 “마오쩌둥 동지”를 부르는 것으로 영화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 337쪽, 「티베트 또는 중국의 서부」

그런데 중국공산당은 1981년 「건국 이래의 몇 가지 역사적 문제에 대한 당의 결의」로 ‘그’ 마오쩌둥 동지가 주창했던 문화혁명을 ‘좌편향의 오류’라는 이름의 금지구역으로 설정한 후, 누구도 그곳에 다가가지 못하게 해왔습니다(「푸른 연」으로 그곳에 발을 들였던 톈좡좡은 무려 7년간의 영화제작 금지처분을 받았습니다). 이 망측한 인지부조화는 어디서 온 것일까요? 저자는 그 원인으로 집권자들의 “아래로부터의 혁명, 언론과 결사의 자유, 사상논쟁의 자유, 인민들에게 권력이 넘어가는 것 따위가 주는 공포에 대한 두려움”(261쪽, 「중국공산당의 혁명 후를 엿보다」)을 듭니다. 마오쩌둥마저도 감당할 수 없었던 크기의 ‘아래로부터’ 분출되는 욕구, 민중들이 주인이 되는 시대에의 공포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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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생」의 스틸컷.
"원작이 문화혁명보다는 대약진의 기근이 가져다준 참혹함에 무게를 싣는다면, 영화는 대약진보다는 문화혁명의 시대에 비중을 둔다."(260쪽)

저자는 발길을 중동까지 뻗어봅니다.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건 중동 지역을 팔레스타인 멸절수용소로 만들어 가고 있는 ‘중동 속의 유럽’ 이스라엘의 존재!

나블루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북부에 위치해 있지만 가장 큰 도시이다. (……) 테러리스트의 검거라는 명분으로 이루어지는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은 나블루스에 이르면 어느 지역보다 일상적인 활동이 되고 있다. 나블루스는 서안이라는 감옥 안에 만들어진 가장 튼튼한 감옥인 셈이다.
- 346~347쪽, 「천국과 지옥」

『시네마 온더로드』는 영화에서 영화로 건너다니며, 각 영화가 단편적으로 반영한 역사의 장면들을 모아 아시아 근현대사의 전체상을 그립니다. 이때 중요한 건 무엇보다 영화 속에서는 거의 감춰져 있는 역사의 장면을 발견해 내는 안력(眼力)입니다. 무대의 원래 주인공이었던 아시아 민중을, 서구인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로 덮어쓴 필름으로부터 찾기 위해선 그 안력이 필수불가결한 능력인 것입니다. 이 책의 편집을 끝내고, 지금 저는 제 능력은 얼마나 성장했을지 궁금합니다.
 
3. Appendix : 영화가이드

이 책은 (영화에세이치곤 상당히 많은) 52편의 영화를 다루고 있는데, 그 중 반수 가량의 영화가 서구인들의 시각으로 아시아를 그리고 있습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게 영화라는 이야기 양식 자체가 서구에서 유래한 것이니까요. 그렇다고 『시네마 온더로드』가 다루는 ‘아시아 영화’라는 것이 서구 제국주의의 첨병인 영화와 거기에 대항해 아시아인들이 만든 영화로 깔끔하게 나눠떨어지느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원고를 거듭 읽다보니 좀더 세부적인 제 나름의 분류법이 생겨났습니다. 『시네마 온더로드』에서 뽑은 영화가이드, 라고 해두죠. ^^ 대강은 이런 건데요.
 
첫째, 서구 제국주의의 시선 아래 그들 입맛대로 소재로 취한 아시아가 그려지는 영화.
‘고전명화’로 손꼽히는 「왕과 나」와 「콰이강의 다리」, 브래드 피트의 입신출세작으로 손꼽히는 「티벳에서의 7년」, 그리고 21세기 할리우드 섹시아이콘 제시카 알바의 스크린 데뷔작 「슬리핑 딕셔너리」 등등. 이런 영화들을 향하는 유재현 선생님의 평가는 신랄하기 그지없어서, 원고를 읽다 몇 번이나 혼자 킥킥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묘사.

운동권 청년들이 어쩌다 만난 미국인 관광객인 로라 앞에서 왜 그토록 정치적 수선을 피우는지는 이해하기 힘들다. 그들은 마치 코민테른에서 파견된 지도원 동지 앞에서 이를 악물고 충성심을 과시하는 아시아 공산당원이 되길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100쪽, 「아웅산수치를 위한 프로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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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미얀마의 민주화 인사 아웅산수치를 음으로 양으로 지원해 왔고, 이 영화 「비욘드 랭군」 또한 그 일단으로서 평가됩니다. 저는 아웅산수치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민주화 투사로서 자국(어느 나란지 항상 가물거렸고요^^;;) 군부에 의해 연금된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유재현 선생님의 혹독한 평가(“1988년 민주화항쟁에서 수치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부터가 굉장히 전복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영화 독해의 바탕에 깔린, 제국주의의 시선을 마주 쏘아보는 아시아인의 시선이 내뿜는 존재감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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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제국주의적 시선의 한계를 일정 부분 넘어서는 영화들.
그런 훈훈한 영화, 있습니다. 거장 프랜시스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 조금 지명도가 떨어지지만 역시 베테랑으로 이름난 필립 노이스의 「콰이어트 아메리칸」(이 두 영화엔 원작소설이 있는데요, 그 소설들이 에드워드 사이드의 명저 『문화와 제국주의』에서 나란히 다뤄지고 있다는 것, 팁 삼아 알려 드립니다^^) 정도를 이 유형의 대표 영화로 꼽을 수 있겠는데요. 이쪽 영화들은, 익숙한 영상 문법과 ‘정치적으로 올바른’ 내용을 담고 있어서, 굳이 말하자면 네 유형 중 가장 속 편히 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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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아시아’라는 무대를 아시아 민중의 것으로 되찾으려 시도하는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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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정명 ‘아시아 영화’라는 호칭에 값할 만한 영화들이랄 수 있겠지요. 사실 이쪽 영화들 중에서 국내에 잘 알려진 영화는 정말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절대적으로 수가 적은 유형이고, 또 그나마 시도가 성공적인 영화는 더 드물며, 그런 영화가 국내에 소개될 만큼 상업적 매력이 있긴 더더욱 힘들기 때문이겠죠. 물론 눈 밝은 디렉터 분들을 통해 각종 영화제에서 소개되는 일은 왕왕 있는 모양입니다만, 역시 가문 논에 물대기입니다.(ㅠㅠ) 말레이시아의 아미르 무하마드의 말레이시아 현대사 3부작 다큐(「빅 두리안」, 「라스트 코뮤니스트」, 「빌리지 피플 라디오 쇼」)만큼은 꼭 보고 싶은데요. 사실 전 요로조로한 경로로 영화 자체는 입수를 했지만 자막이……. OTL 「라스트 코뮤니스트」 같은 경우는 2006년에 EBS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을 통해 국내에도 소개된 적이 있답니다. 선례가 있으니 다시 한 번 기회가 언젠가 주어지리라고 믿는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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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입니다. 그것은 바로, 제국주의의 논리에 투항하거나 내면화한 영화들입니다
.
『시네마 온더로드』를 통해 알게 된 영화 중, 서구인의 등장이 거의 없거나 아시아인이 주인공으로 서는 영화이면서도 제국주의의 시선을 내비치는 그런 영화도 있습니다. 예컨대 일본의 반전영화인 「버마의 하프」와 「전장의 메리 크리스마스」. 아시아에서 출현한 제국주의가 다른 아시아 시선을 바라보는 시선, 사실 이 편이 첫째 유형 영화보다 더 입맛을 쓰게 합니다. 아마 두 편의 국산영화 「님은 먼 곳에」와 「알포인트」도 이 분류에 속해야 할 터라 또 한 번 입맛이 써집니다.
 
이렇게 분류를 해봤지만, 여전히 어디에도 들어가지 못한 영화가 남습니다. 유형을 두엇 더하면 될 거 같기도 한데, 그렇게 되면 유형화의 의미가 없어질 것 같군요.

- 편집부 김효진
시네마 온더로드 - 10점
유재현 지음/그린비
2011/06/21 09:00 2011/06/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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