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혹시 “연애” 중이신가요? 아 긍정의 답변과 부정의 한숨 소리가 한꺼번에 들리는군요. 이번 주에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그 “연애”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얼마 전 신문 사회면에 실린 기사를 봤습니다. 요즘 연인들이 모텔에서 원스톱으로 데이트를 해결한다고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걸 보면서 모텔가본 지 백만 년도 넘은 저로서는 ‘그런 가부다…’ 했지만, 뭔가 찜찜한 기분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그 찜찜함이 비단, 애인없고, ‘연인’이라는 관계는 무슨 관계였는지 기억도 안 나는 데서 오는 그런 종류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어째서 나의 그 친하고 하루라도 안 보면 ‘우정’에 금갈 것 같던 친구들은 그 이름도 가증스러운 ‘애인’만 생기면 연락도 뚝 끊어지고, 우정 따위 금가든 말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행동할까 하는 의문과 비슷한 찜찜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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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너무 ‘연애’에 목매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어머니들의 유행어 “연애가 밥 먹여주냐?”가 주장하는 대로 연애가 인생의 전부는 아닌데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연인’이라는 관계가 만든 감옥에 갇혀있는 것 같기 도합니다. 드라마를 보면 이런 세태가 아주 잘 나타납니다. 전문직 남녀 또는 전문직 남과 별로 안 전문직 녀가 먹고살 궁리는 안 하고 하루 종일 사랑하는 '그대'때문에 갈등하고 행복해하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네티즌 여러분의 비현실적 드라마 비난 레파토리가 되어버린 바로 그 장면들 말입니다. 코너 제목이 '이책하고 인사하실래요?'인 만큼 드라마 이야기는 여기서 접고 연속극으로 만들면 잘 어울릴 만한 어떤 소설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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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설이란 나쓰메 소세키의 『행인』(行人)입니다. 동생 지로, 지로와 자신의 부인 오나오의 관계를 의심하는 형 이치로, 이치로의 부인 오나오가 등장하여 스토리를 만들어갑니다. 지로는 그야말로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바람처럼 여행을 다니고 농담도 꽤나 잘하는 그런 쾌활한 사람입니다(제가 본 지로는 그야 말로 우리가 '삼촌'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그런 이미지를 가진 인물입니다. 잘 안 와닿나요? -_-;). 반면에 이치로는 대학교수에 내밀한 성향을 듬뿍 가지고 있는 데다 소심함이 극을 달리는 사람이구요(지로가 '삼촌'이라면 이자는 교무주임 선생님 같달까요. 이것도 역시...-_-;). 오나오는 전통적인 유교적 질서에서 요구하는 '부인'이라고 하기엔 조금 이상한 캐릭터 입니다. '부인'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려고 하지만(사실 정말 그 역할을 충실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뚝뚝한 데다가 자유롭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까지 알고 있습니다. 한데 역할은 전통적인 부인 역할을 하고 있죠. 그러니까 비전통적 현대여성의 정형화된 이미지 중에 자기일을 똑부러지게 하는 커리어 우먼 같은 그런 어떤 성향이 있는데 그 똑부러짐과 자기주체성이 가정사에서 구현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듯 합니다.

이야기의 큰 줄거리는 이치로가 오나오와 동생 지로를 의심하여, 지로에게 너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도록 부인 오나오와 함께 나들이를 다녀오라하고 나들이에서 오나오의 마음을 알아오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그날따라 태풍이 불고 지로와 오나오는 소풍 길에서 돌아올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낸 형수와 시동생이 돌아오자 형 이치로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굴지만, 의심은 더욱 커져서 결국 그를 신경쇠약에 이르게 합니다. 물론 둘 사이에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치로는 오해의 오해, 의심의 의심을 거듭하여 점점 꼬인 인간이 되어갑니다.

사실 이치로가 의심한 사람은 지로도 아니고 오나오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 머릿속에서 상상하고 있는 불유쾌한 이미지들을 현실의 지로와 오나오에게 투영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부인임에도 동생을 사랑할 것 같은 오나오와 사랑받을 것 같은 지로를 의심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 제가 내린 결론은 이치로에겐 부인도, 동생도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친구'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동생은 당연히 형에게 신의를 지켜야 하고, 부인은 절개를 지켜야 하는데, 부인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고, 동생은 형보다 훨씬 자유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가운데 이치로는 열등감, 무능력함, 자괴감 따위를 동시에 느껴 파멸을 불러오는 의심에 사로잡혀있는 것입니다.

이 구도 뭔가 연애적 관계로 고통받고 있는 우리들 중 누구누구들과 닮은 것 같지 않나요? 우리도 ‘애인’을 진정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서로의 아주 사소한 어떤 말과 행동을 꼬투리잡아 오해와 의심을 거듭해가고 있지 않은가 말입니다. 그래서 조그만 틈이 생겨도 어쩔 줄 몰라하고 다투고 헤어지는 그런 관계가 된 것은 아닐까요? 저는 이치로의 문제가 순전히 '관계'를 구성할 줄 모르는 무능력으로부터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온전히 내보일 상대가 없는 그에게 한번 시작된 '삐딱선'을 바로잡아줄 누구도 없었던 것이죠. 그런 상대는 그대와 나 단지 둘만 있는 관계에서는 절대로 나타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콩깍지 씌워진 우리에겐 그대는 늘 아름답거나 짜증나거나(극단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둘 중에 하나니까 말입니다.

모텔식 원스톱 데이트가 찜찜했던 것은 그것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랑의 대상이 자신 이외의 것과 관계하는 걸 참질 못하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만 바라봐야 하는 역할이 되기로 약속하게 되는 것이죠. 이 건전하고 상식적인 생각이 사실은 서로의 관계를 풍성하게 만드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은 어떤 관계 속에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저는 학교에선 ‘허접한 선배’로 통하지만, 친구들 사이에선 ‘똑부러지는 녀석’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그런 여러가지 관계들 속에서 생기는‘나’의 의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남들보다 훨씬 깊이 이해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려면 서로 우두커니 앉아서 어제 TV에서 본 농담이나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각자가 어떤 관계 속에서 어떤 사람이 되는가를 알아가고, 내가 만든 콩깍지를 스스로 걷어 내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행인』의 형 이치로는 자기가 만든 안경으로 동생과 부인을 보고 이 사람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자기를 대하고 있는지, 자기 부인이 자기와의 관계 이외에서 어떤 사람이 되는지 보는 것을 게을리 했습니다. 이 게으름이 동생과 부인을 ‘의심’의 방식으로 사랑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의심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사랑에 목매달고 있는 우리는 사랑하니까 의심한다고 자기 합리화를 하곤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그 뭐랄까 지고지순한 사랑에 네거티브한 의심이 끼어들어서 사랑하는 그대를 찌그러뜨려서야 어디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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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 둘이서 손을 마주잡고 서로가 어떤 관계 속에서 어떤 사람이 되는지 알아가는 가운데 온전히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둘' 사랑의 에너지는 '우리 둘' 밖의 무수한 '관계'들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만나는 사람을 ‘단 둘’로 한정하지 말고 이 친구 저 친구를 만나면서 그런 사방의 관계들에 영향 받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서로의 배치를 바꾸고 확인해간다면, “우리 벌써 3년이나 만났어. 만나도 할 게 없는걸”하는 이야기를 할 틈이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바로 '관계'의 능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커플에게는 사랑의 ‘소재’가 하염없이 넘쳐 날 테니까요. 함께 책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네요. 그렇게 둘이 읽다가 친구들도 초대해서 읽어보고, 함께 어디 좋은데 가서 그림도 그려보고 그걸 친구에게 선물하기도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만나서 영화보고, 밥 먹고, 모텔가고, 여름 되면 여행가고 하는 이 행위들의 무한 연쇄가 “사랑”을 담보하지는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그, 그녀와 동네 도서관 독서모임에라도 나가 보는 것은 어떨까요? 어두컴컴한 모텔방, 이치로의 어두운 마음 같은 그 방! 너무 지루하지 않습니까?

- 웹기획팀 鄭君 (junggu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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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5 12:10 2008/01/25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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