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의 눈과 감성의 눈

고병권

유통분야 또는 상품교환분야는 사실상 천부인권의 참다운 낙원이다. 여기서 지배하는 것은 오로지 자유・평등・소유・벤담이다. 자유! 상품[노동력]의 구매자와 판매자는 자기들의 자유의지에 의해서만 행동하기 때문이다. …… 평등! 그들은 오직 상품소유자로서만 관계하며 등가물을 등가물과 교환하기 때문이다. 소유! 각자는 모두 자기 것만을 마음대로 처분하기 때문이다. 벤담! 그들은 모두 자기의 이익에만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 속류자유무역주의자들은 이 단순상품유통 또는 상품교환분야로부터 자신들의 견해나 개념을 끌어내고 자본과 임노동에 근거한 사회를 평가하는 판단기준을 끌어낸다. 그러나 이제 이 분야를 떠날 때 우리는 등장인물들의 면모에 일정한 변화가 일어남을 볼 수 있다. 이전의 화폐소유자는 자본가로서 앞장서 걸어가고, 노동력의 소유자는 그의 노동자로서 뒤를 따른다. 전자는 거만하게 미소를 띠고 사업에 착수할 열의에 차 바삐 걸어가고, 후자는 자신의 가죽을 시장에서 팔아 버렸으므로 이제는 무두질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겁에 질려 주춤주춤 걸어가고 있다. (칼 맑스, 『자본』 1권,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1992)

십여 년 전 어느 학술대회에서 신영복 선생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선생의 강연은 학술대회 개막을 기념해서 마련된 것이었다. 마침 내 발표가 끝난 직후기도 했고, 글만 읽었을 뿐 선생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서둘러 강연장을 찾았다. 이미 청중이 빽빽이 들어선 터라 뒷문에 몸을 밀어 넣고는 까치발을 했다. 강연은 이미 종반에 접어들었고 학자들이 대부분인 청중과 이러저런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그때 어떤 이가 참 낯간지러운 질문을 던졌다. 선생의 아름다운 말씀을 청하려고 너무 바른생활 교과서 타입으로 말을 꺼냈다. 그날 자기가 목격한 장면이라는데, 어느 할머니 한 분이 큰 보따리를 들고 버스를 탔던 모양이다.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올라와서 요금을 내고 자리를 잡는 것까지 모든 게 쉽지 않았을 터이다. 그때 버스기사가 화를 버럭 내며 심한 말을 마구 내뱉었단다. 자기 어머니뻘은 족히 돼 보이는 노인네에게 험한 말을 쏟아낸 기사를 탓하며 그 학자는 돈만 밝힐 뿐 정신은 황량해진 요즘 세태를 꼬집어 달라며 선생께 말씀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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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비츠, <자화상> _ "가난한 사람처럼 살며,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 신을 발견하는 자는 가난한 사람들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짓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버리고 행복하라』, 19쪽

그런데 이상하게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버스기사 때문이 아니라 그 질문자, 아니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장소가 부끄럽게 여겨졌다. ‘아, 여기는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자리구나.’ 난 몸을 슬슬 빼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날아든 선생의 한마디가 내 뒷덜미를 잡았다. ‘아마 자기 어머니라고 생각해서 그랬을 겁니다.’ 그 말과 동시에 난 선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노인네가 그런 짐을 들고……. 택시나 탈 것이지. 자식들은 도대체 뭐하는 건지.’ 하지만 초라한 행색의 돈 없는 노인네나 그런 노인네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못난 자식들. 아마도 기사는 거기서 어머니와 자기 자신을 보았을지도 모른다고, 선생은 그렇게 답했다. 선생의 말을 들으니 기사가 내뱉었다는 욕설이 우리네 가난한 사람들의 신세 한탄이었던가, 하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내 어머니가 꼭 그랬다. 외할머니 병수발을 들다가도 곧잘 험한 말씀을 쏟아 놓곤 하셨다. 한평생 고생만 하셨는데 인생의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늙은 딸들 집을 전전하며 누워 계셨던 외할머니를 보며, 어머니는 ‘저 놈의 노인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힘껏 수발을 들면서도 어머니는 갑자기 무너지듯 그런 말을 내뱉곤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도 참 많은 속울음을 우셨을 터이다. 내 어머니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누구나 이런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이다. 말의 교환만을 보는 사람, 그 교환이 어떤 표정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 거기에 흐르는 정서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상황을 완전히 오판한다.

맑스의 『자본』을 읽을 때마다 그가 참 좋은 눈을 가졌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화폐와 노동력을 교환한 자본가와 노동자의 표정을 놓치지 않고 있다. ‘보상금 다 받았잖아.’ ‘결국 지가 원해서 한 거 아냐? 싫으면 안 하면 되잖아.’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았는데 생떼 부리는 것 좀 봐.’ ‘착취라고? 서로 이익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계약한 거잖아.’ 학자고 언론인이고 이런 말을 정말 잘도 뱉는다. 그런데 맑스는 돈과 몸뚱이를 교환한 두 사람의 표정을 보고 있다. 그는 자유로운 교환, 평등한 교환, 이익이 되는 교환을 해놓고도, 무두질을 기다리는 소처럼 고개를 숙인 채 주춤주춤 걸어가는 노동자의 표정이 뭘 의미하는지를 아는 사람이다.

등가 교환 밑에 부등가 교환이 있다는 것. 그는 자유, 평등, 소유, 이익이 정의되는 영역 아래 있는 것을 본 사람이다. 말의 교환(그것은 법이고 또한 과학이다)을 넘어 그는 ‘출입금지’ 영역을 본 사람이다. 맑스가 천재라면 오로지 그런 눈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눈은 말의 교환을 분석하는 지성의 눈이 아니라, 말에 묻은 감정을 느끼는 감성의 눈이다. 아니 이렇게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의 창조적 지성은 여느 학자들과 다른 그 감성에서 나온 것이라고. 그의 천재는 그의 감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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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 "우리가 맑스를 동료로서 발견하는 곳은 그가 굳건한 잣대로서 서 있는 지점이 아니다. 오히려 잣대 일반의 불가능성이 폭로되는 지점에서 우리는 그를 만난다."  - 『부커진 R3』, 「편집인의 말」중에서

※ 『고전 톡톡』의 2부 '고전과 通하다!'에 수록된 글입니다. 다음 주에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과 한 권용선 선생님의 글이 연재됩니다.
자본론 1 -상 - 10점
칼 마르크스 지음, 김수행 옮김/비봉출판사
2011/07/19 09:00 2011/07/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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