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마시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시되는 요즘, 커피를 따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의외로 잘 모릅니다.(저만 그런 건 아니겠지요? ^^;) 『커피밭 사람들』에는 임수진 선생님이 라틴아메리카의 코스타리카, 니카라과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떻게 머나먼 코스타리카로 떠날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 또 그 과정에서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 선생님께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궁금하시죠? 지금, 선생님을 만나러 갑니다! +_+

임수진
1971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관광버스 운전수가 되길 간절히 꿈꾸었는데 어쩌다 보니 지리학자가 되어 버렸다. 전북대학교 사회교육과를 거쳐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6년 이후 현재 멕시코 콜리마주립대학교(Universidad de Colima) 정치사회과학대학(Facultad de Ciencias Políticas y Sociales) 교수로 재직 중이다. 틈틈이 멕시코 태평양 바닷가에 면한 콜리마 주 인근 라임밭을 기웃거리며 그곳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저서 및 논문으로 『세계의 분쟁』(공저),  「코스타리카 커피경제의 시공간적 전개와 지역적 다양성」, 「식량위기 시대의 멕시코 농업정책」, 「멕시코 토르티야 위기」, 「라틴아메리카 커피, 다시 꽃 피는 봄을 맞이하려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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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 부부와 함께한 임수진 선생님(오른쪽) _ 프레디 부부와의 사연이 궁금하시다면 책을 보시라~ ^^*

도냐 베르타 집 앞에 서서 당당하게 도냐 베르타를 불렀다. 문이 열리고 할머니 한 분이 나오시는데, 인상이 좋다. 동양인을 처음 보셨다면서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왔노라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왔노라고 말씀드리려 잔뜩 긴장하고 있는데, 대뜸 밥은 먹었냐 물으신다. 세상의 할머니들은 다 똑같은 것일까? 밥 먹고 왔다고 답하기도 전에 들어오라신다. 그리고 내가 들어오건 말건 돌아서서 타일로 만들어진 식탁에 이것저것 음식을 차리신다. 뭔가에 홀린 듯 이끌려 들어가 마치 이웃에 마실 온 사람처럼 편안하게 밥을 먹었다. 도냐 베르타와의 첫 만남이었다.
밥을 다 먹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내가 그 집에 온 이유를 설명했다. 여차저차 해서 이러저러 하다고 설명하려니 복잡하다. 그냥 커피밭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본문 「타라수를 알게 되다」 중에서)

Q. 선생님께서 지역연구로 커피밭에 가기로 결심하고 직접 실행에 옮기기까지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지역연구는 대략 어떤 것인지요? 그리고 지역연구를 하면 꼭 선생님처럼 그곳 사람들과 어울려 같이 생활하면서 하는 건지, 선생님께서 좀 독특한 경험을 하신 건지도 궁금합니다.

책의 프롤로그 부분에 나온 바대로 어렸을 때부터 늘 외부세상을 동경해 왔습니다. 대여섯 살 먹었을 때의 기억인 것 같은데요, 집에서 약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 서울 가는 신작로(1번국도)가 있었습니다. 아침 먹고 해가 중천에 뜰 즈음이 되면 그 길로 ‘금남여객’이라는 이름이 버스 꽁무니에 선명하게 박힌 ‘서울 가는 버스’가 지나갔는데, 혼자 신작로 입구에서 그 버스를 기다리다 버스가 지나가면 열심히 손을 흔들어 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참 웃기는 상황이지요. 조그만 꼬맹이가 매일 신작로 입구에 가서 서울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손 한 번 흔들어 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걸 낙으로 삼았으니, 그리고 서울 한 번 가보는 것을 꿈으로 삼았으니……. 그러다 유치원을 졸업하던 해 겨울에 할머니를 따라 서울에 다녀온 후로 외부 세상에 대한 갈망이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관광버스 운전수가 되기를 꿈꿔 보기도 했고, 길에서 ‘여관’ 간판만 봐도 마음이 쿵쾅거리고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픈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한테 “아버지, 저는 시내 나가서 여관 간판만 보면 막 그곳에 들어가 자보고 싶어요” 그랬더니 아버지가 깜짝 놀라시며 어디 가서 다른 사람들한테 절대로 그런 이야기하지 말라고 단단히 입단속 시키시던 기억이 나기도 합니다.^^ 고등학교 때는 사회과부도를 하도 많이 봐서 너덜너덜해질 정도였습니다. 대학교 때는 외항선원이 되는 방법을 알아보기도 했었습니다. 아마도 그때 시절이 지금만 같았다면 외항선원이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그때만 해도 여자가 해양대학교에 들어가기도 불가능하였고, 외항선원이 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전북대학교 사범대학 사회교육과 3학년에 재학 중일 때 미국 버클리대학교에서 문화지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정만 교수님이 지리전공 교수님으로 부임해 오셨는데, 제게 참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박사과정 재학 중 한국으로 돌아와 전북 완주군 구이면에서 마을사람들과 같이 농사를 지으면서 현지조사를 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희생세대Generation of Sacrifice’라는 제목의 논문을 쓰셨다기에 논문 내용을 물으니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희생을 강요당했던 당신 아버지 세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 했습니다. 그때 들었던 생각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지리학 논문이 되는가?’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외부세상을 동경해오던 특이한 이력과 평소 어지간히 사람들 살아가는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는 내 성정상 사람들 살아가는 이야기가 학문의 대상이 되기만 한다면 문화지리학이야말로 정말 내가 한번 해봄직한 공부겠다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반 친구들 형제자매 이름은 물론이고 집안 사정까지 속속들이 기억하여 호적계장이란 별명을 얻기도 하였고 어려서부터 동네아줌마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 때면 듣는 척 아니 듣는 척 그 주변을 배회하면서 재미난 연속극 보듯 아줌마들 이야기를 듣고 오래도록 기억하던 습관이 있었습니다. 나이를 먹어서는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뒤에 앉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 홀딱 빠져 내려야 할 곳에서도 이야기가 끝나지 않으면 가볍게 두 서너 정거장 정도는 더 가서 내린 적도 있었습니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긴데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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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리카와 니카라과 국경사이에 조성된 평화광장. 뒷쪽에 쓰인 문구는 '코스타리카 사람과 니카라과 사람은 언제나 형제입니다'라는 뜻이다.

그러한 연유로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문화지리학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제 학부 전공은 일반사회교육이었습니다). 마침 전북대학교로 부임하셨던 이정만 교수님께서 서울대학교 지리학과로 옮기셨기에 교수님을 좇아 저도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대학원에 들어갔습니다. 관광버스 운전수가 될까, 배타는 외항선원이 될까 이리저리 헤매다가 우연치 않게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대학원에 들어간 이후 제게 가장 큰 관심사는 ‘사람 사는 이야기’였습니다. 1995년에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그때 마침 일찍이 지역연구의 전통을 가지고 있던 지리학뿐 아니라 인문사회과학의 여러 학문분과에서 지역연구가 유행처럼 번지던 시기였습니다.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방법론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고 결과 또한 풍성한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각 학문 분과마다, 혹은 각 연구자마다 지역연구에 대해 너무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지역연구란 무엇이다’라는 통일된 답을 얻기는 힘든 시기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저와 같이 현지에 직접 들어가서 그곳 사람들과 같이 살면서 지역연구를 행하는 경우도 있고, 해당 지역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이용해 조금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지역 연구를 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두 방법을 혼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만 하더라도, 해당 지역에 들어가 사람들과 같이 살면서 ‘같이 먹기’, ‘같이 일하기’, ‘같이 거주하기’ 이 세 가지 원칙을 지키면서도 해당 지역의 관공서나 도서관을 찾아가 여러 가지 정보들을 구했기 때문에 두 방법을 혼용한 경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지역연구에 있어선 질적 방법과 양적 방법을 명확히 구분하기보다는 다만 어느 쪽에 더 치중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대학원에 입학한 후 제 지도교수이신 이정만 선생님께 제가 배운 가장 큰 부분은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었습니다. 지리학의 중심이 ‘인간’임을 늘 강조하셨고, 과거를 공부하든, 현재를 공부하든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없으면 죽은 학문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 늘 염려하시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인간의 범주에 ‘내’가 포함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여, 무엇을 하더라도 ‘내’가 즐거울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논문지도에 대해서는 거의 ‘방치’에 가까운 방임주의자셨지만, 매주 토요일 오전에 선생님 방에 모여 각자 한 주 동안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지리학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생물학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자연과학 서적과 심리학, 역사학, 사회학 등과 같은 인문사회과학 서적들을 같이 읽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기왕에 사람에 대한 관심이 충천하던 저였는데, 학문 안에서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일을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오케이 하시던 지도교수님 덕분에 석사논문이건 박사논문이건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맘껏 시도해 볼 수 있었습니다. 석사 시절 물 만난 고기처럼 전국을 돌아다녔습니다. 그 가운데 관심사는 늘 사람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저항할 수 없는 어떤 막강한 힘에 의해 그동안 살아온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폐광지역이나 수몰지역 그리고 간척사업이 이루어진 지역들을 수없이 훑고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한참 연육공사가 진행되고 있던 대부도를 석사논문 대상지역으로 정하고 그곳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어업 위주로 생계를 꾸리던 사람들이 갯바탕을 잃고 어떻게 자기 삶을 꾸려나가는지, 그 가운데 어떤 아픔과 기쁨을 경험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1996년 여름, 대부도 황금산 자락을 넘어 흘러들어간 영전마을 점방 술청에 방을 얻었습니다. 전형적인 서해 도서 지방의 미음(ㅁ)자 형 가옥이었는데, 시화 간척사업으로 갯바탕이 사라진 후 포도재배로 생계방식을 바꾼 마을사람들이 하루 일을 나가면서, 그리고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꼭 들러 소주를 말뚝고뿌(맥주잔에 가득 담아 한꺼번에 마시는 소주)로 마시던 작은 마당이 있던 집이었습니다. 더러는 토방에 앉기도 하고 더러는 샘가에 앉은 채 말뚝고뿌 소주를 마시며 하는 말들 대부분이 ‘아이고 힘들어 죽겄네!!’였지만 죽을 만큼 힘든 삶도 말뚝고뿌 소주 한 잔으로 씻어내는 그들 삶이 제게는 경이롭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들 삶에 화수분과도 같았던 갯바탕을 메워 버린 나라님이 한없이 미우면서도 아무말 못하고 살아가는 그들 삶이 참 슬프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마을에 하나 있던 점방 술청에 방을 얻어 들어갔으니, 처음엔 조금 걱정스러웠는데, 오히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그곳에서 마을사람들이 살아가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까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론 말뚝고뿌 소주를 마시는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에게 신김치조각이 전부인 공짜 안주를 날라다 주기도 했고 낮으로는 마을사람들 포도밭에 올라가 김을 매거나 포도봉지 씌우는 일을 같이 하면서 마을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같이 먹고, 같이 거주하고, 같이 일하기’의 힘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을사람들은 내게 자기들 맘 속내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때 매일 밤 적은 일기에 <영전마을 사람들> 이란 제목을 붙였습니다. 하지만 마을사람들의 이야기를 논문의 틀에 맞게 논리적으로 엮기엔 아무래도 부족한 부분이 많았고 결국 논문 심사가 한 학기 미뤄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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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구니에 가득 담긴 커피 열매들.

라틴아메리카 지역연구를 하겠다고 맘먹은 것은 박사과정에 들어가고 난 이후부터였습니다. 책 어느 부분에 나와 있는 것처럼, 그냥 운명처럼 라틴아메리카가 제 삶 속에 들어와 버렸습니다. 한편으론 섣부른 오기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대한민국 지리학의 역사가 반세기 이상이 되어가는 즈음이었는데, 아직까지도 라틴아메리카 전문가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라틴아메리카에 관한 연구로는 개론서 성격이 강한 ‘라틴아메리카지리’ 딱 한 권뿐이었습니다. 때문에 각 대학의 지리학과에 아메리카지리 수업이 개설되면 라틴아메리카는 슬그머니 사라지고 앵글로아메리카 쪽에 초점이 맞춰지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당시 지리학에서도 해외지역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던 시점이긴 했는데, 대세는 중국연구와 일본 연구였습니다.

처음에 라틴아메리카 연구를 하겠다 하니 많은 선배들이 만류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제가 선배님들께 반대의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답이 참 시시하게도, 너무 멀고 비행기 값이 비싸 현지에 자주 오고가기가 힘들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후배를 걱정하는 현실적인 이유였겠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더욱 오기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까짓것, 한 번 갈 때 200만 원 잡고, 열 번을 간다 쳐도 2000만 원인데, 그 때문에 라틴아메리카를 포기하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단돈 20만 원 만들기도 힘들었던 제가 아무리 봐도 미쳤었는가 봅니다. 그래서 역시나 생각해 보면 라틴아메리카 지역연구가 제 삶에 운명이었으려니 싶습니다.

그렇게 라틴아메리카 지역연구를 하겠다고 큰 소리를 뻥 쳐 놨는데, 막상 제 맘속은 좌불안석 안절부절이었습니다. 40여 개의 나라가 모여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어디로 가서 무엇을 연구해야할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지리학 쪽에서 라틴아메리카 현지조사를 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물을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때 제게 구세주와도 같았던 것이 서울대학교 국제지역원에 개설된 라틴아메리카 관련 수업들이었습니다. 석사과정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이었지만, 무작정 찾아가서 선생님들께 양해를 구하고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때 국제지역원에 적을 두고 있던 대부분 학생들이 학부에서 이미 스페인어를 전공하고 대학원에 진학한 경우였기 때문에 저야말로 그들 사이에 완전 초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석사과정 학생들이라지만, 어찌나 아는 것들이 많던지, 제게 선배처럼 느껴졌습니다.

박사과정에 들어간 후 2년 동안 참으로 열심히 헤맸습니다. 같이 수업을 받던 석사과정 학생들은 굵직굵직한 주제로 논문 제목을 쉽게 정하는 것 같던데, 저는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 시간에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페루나 볼리비아의 원주민인 듯한 사람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커피를 따던 모습이었는데 사진을 보여주신 선생님 설명이 이들이 하루에 벌 수 있는 돈이 기껏해야 2-3달러 정도라 하였습니다. 사진을 본 시간은 불과 1-2분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사진의 이미지는 오랜 시간 제 맘속에 남았습니다. 그렇게 논문의 주제가 정해졌습니다. 오랜 동안 헤맨 시간에 비하면 참 너무도 쉽게 결정되어 진 것이지요.

논문 주제를 ‘라틴아메리카 커피 따는 사람들’로 정한 이후에도 사실 많은 갈등과 혼란이 있었습니다. 일단, 너무 생소한 주제였기에 주변의 만류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늘 제자들에게 무한자유를 주시던 지도교수님조차 만류하셨습니다. 어느 날 늦은 밤까지 간다커니, 가지 말라커니 지도교수님과 설전에 가까운 논쟁을 벌이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집에 돌아온 적이 있습니다. 철없는 마음에 서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여 밤새 잠들지 못하다가 새벽 4시에 다시 학교로 올라가 구구절절 지도교수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왜 가야 하는지, A4용지 대 여섯 장은 너끈히 될 분량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도교수님께 답신을 받았습니다. 딱 한 줄이었습니다. ‘네 맘대로 해라.’

그렇게 저는 코스타리카로 가게 되었습니다. 무모한 결정 앞에는 조심스럽게 반대하시다가도 일단 결정이 내려지면 전폭 지원을 해주시는 지도교수님이 딱 한 가지 조건을 내거셨습니다. 반드시 오전에 코스타리카에 도착하는 비행기를 타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곳으로 간다 고집하는 제자가 첫날 숙소를 구해야 하는 상황을 염두에 둔 걱정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코스타리카로 떠나기 전 한국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왜 그곳에 가려하는가?’였습니다. 그리고 코스타리카에 도착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왜 이곳에 왔는가?’였습니다. 답을 하기로 치자면, 커피의 역사부터 라틴아메리카가 커피를 매개로 세계경제로 편입되는 과정까지 구구절절 서너 시간에 걸쳐 답변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질문을 한 사람들은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1-2분 내에 나올 수 있는 답을 기대하는 것 같았습니다. 덕분에 저 또한 단답식에 가까운 답을 준비해야 했던 것 같습니다. 제 답은 간단했습니다. ‘나는 지리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 커피를 매개로 라틴아메리카의 한 부분인 코스타리카에 대한 지역연구를 하고자 한다’였습니다. 물론 왜 커피인지, 왜 코스타리카인지 등에 질문들이 이어졌지만, 내 답의 키워드는 지리학, 지역연구, 커피, 라틴아메리카와 코스타리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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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보케테 지역 여관에 그려진 그림. 커피를 따는 과이미 여인.
"커피가 영그는 계절이 되면,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으나 과이미 여인들은 알록달록 원색으로 꾸며진 풍성한 전통의상을 입고 어김없이 나타나 타라수 다운타운 거리에 알록달록 수를 놓았고 그 자체로 풍요의 활기를 돋우었다." (154쪽)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듣는 질문은 ‘지역연구를 꼭 그런 방법으로 해야 하는가?’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지역연구에는 수십 가지의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각 학문 분야에 따라 방법이 달라지기도 하고 연구자 개인 취향에 따라 방법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제가 택한 ‘같이 거주하기’, ‘같이 일하기’, ‘같이 먹기’를 실행한 방법은 그 중 하나의 방법 일 뿐입니다. 연구 기간도 학문 성격과 개인적 상황에 따라 짧게는 1-2개월에서 길게는 5-6년까지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제가 경험한 지역연구가 제 개인 삶에 있어 독특한 경험이긴 했으나 학문 분야 내에서 독특한 경험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여간 저는 만 서른이 되던 해에 스페인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코스타리카로 무작정 떠났습니다. 가기 전에 학교 도서관에서 커피에 관한 책들을 모조리 구해 읽었고 커피뿐 아니라 사탕수수나 면화, 바나나 등과 같은 주제로 행해진 지역연구서도 상당히 많이 읽었습니다. 물론 라틴아메리카의 정치, 경제, 사회 등에 관한 책들도 구할 수 있는 대로 구해 읽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코스타리카에서 지역연구를 행하는 동안 기존 내가 가지고 있던 커피에 대한 생각, 논문에 대한 생각, 그리고 지역에 대한 생각들을 많이 수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 코스타리카에 갈 땐 1년 정도 바짝 하면 대충 논문에 필요한 자료들을 구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큰 오산이었습니다. 1년이 지나고 2년째가 되면서 의도적으로 논문에 대한 생각들을 완전히 잊고자 했습니다. 내가 책을 통해 얻은 생각의 틀에 그들의 삶을 끼워 맞춘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일인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논문에 대한 생각을 깡그리 잊고 백지 상태에서 그들 삶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온몸의 감각기관을 열어놓고 그들 삶을 기록하였지만, 제 개인적 감정은 철저히 배제하도록 노력하였습니다.

이년 후 한국에 돌아와서야 논문의 틀을 다시 잡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커피밭에서 본 커피밭 사람들의 삶은 사실 논문에 거의 표현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논문을 써나가는 내내 내 기억속의 그들이 등대와 같이 나를 인도해 줬습니다. 결국 그들 때문에 난 ‘라틴아메리카 지역연구자’라는 타이틀을 단 박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0년 세월 동안 마음에 담고 있던 그들의 이야기가 『커피밭 사람들』이란 제목의 책으로 엮여 지리학자가 쓴 라틴아메리카 지연연구서라는 평가를 받는 것 같으니, 이런 방식의 지역연구도 있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임수진 선생님이 코스타리카로 떠난 후에 대한 이야기는 '인터뷰 2편'으로 이어집니다. ^^
커피밭 사람들 - 10점
임수진 지음/그린비
2011/07/28 09:00 2011/07/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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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르래 2011/07/29 09:12

    와 두근두근거립니다.
    훌륭한 친구를 만난 기분에(물론 한참 선배이시겠지만은) 반갑고 즐겁습니다.

    • 그린비 2011/07/29 11:28

      도르래님 안녕하세요.
      꺄웅~! 두근두근 거리시다니! 이거야말로 제가 의도하던 바...(쿨럭쿨럭;;) ^^;
      함께 공감할 수 있을 때가 가장 기쁘네요. 이 즐거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주말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