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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도타 커피조합의 한쪽에 문을 연 카페테리아에서 마신 카푸치노

Q. 최근 한국사회에서는 커피전문점, 카페가 많이 생겼고 커피를 즐기는 매니아들도 많아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커피를 마시면서도 커피를 따는 일이나 그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선생님께서 코스타리카 현장에서 부딪히며 커피 따는 일에 대해 알게 되고 느끼게 된 점들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일상에 너무도 흔하고 흔한 것이 커피일 것입니다. 도시와 농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커피를 소비합니다. 1996년 대부도 영전마을에서 현지조사를 하는 동안 동네 아주머니들의 커피소비량에 깜작 놀란 적이 있습니다. 밥을 먹고 나면 국대접이나 물대접에 뜨거운 물을 붓고 일회용 가공커피를 두세 봉지 풀어 마시는 것이 너무 당연한 그들의 일상이었습니다. 농촌 어디서나 일회용 가공커피가 아주 중요한 새참으로 소비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농촌 할머니, 할아버지들 중 커피 중독자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물론 달달한 인스턴트 커피지요. 그뿐입니까? 중고등학교의 수험생들은 수험생들대로, 공장 노동자들은 노동자들대로, 식당에서는 식사 후 공짜커피가 한잔씩 쉽게 대접되니, 대한민국에서 계층에 상관없이 소비되는 음료가 커피입니다. 대한민국의 일회용 가공커피는 분명 대단한 발명품임이 확실합니다. 고급 커피가 생산되는 중남미 나라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의 일회용 가공커피를 선물하면 그 맛에 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성인인구 1인당 연간 커피소비량은 2kg 미만입니다. 북유럽 국가들은 보통 8-9kg을 넘어섭니다. 미국도 4kg 정도 되지요. 커피가 일상의 한 부분으로 고스란히 녹아있는 우리나라의 1인당 커피소비가 2kg인 것을 감안하면 북유럽 국가들이나 미국에서 어느 정도 커피가 소비되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토록 커피가 우리 삶과 밀접한데, 문제는 커피 생산 현장과 커피 소비 현장의 지독한 괴리입니다. 일반적으로 커피는 생산지와 소비지가 확연히 분리됩니다. 그러다보니 석유에 이어 세상에서 두번째로 교역량이 많은 상품이 커피입니다. 커피는 그 시작부터 교역 대상 작물이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커피가 중동 이슬람 세계에서 소비되었고 이후 유럽이 커피소비를 시작하면서 아프리카에서 아시아,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대륙까지 커피생산 기지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19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이 세 개 대륙에서 생산된 커피 대부분이 유럽 대륙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지금도 유럽과 미국에서 전 세계 커피의 50% 이상을 소비합니다. 물론 유럽이나 미국에서의 커피생산은 제로입니다. 때문에 커피는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긴 여정을 거치게 되는데 슬픈 사실은 커피로 인해 파생되는 대부분의 부가가치가 커피가 소비되는 곳에서 파생된다는 점입니다. 커피를 통해 파생되는 부가가치의 90% 이상이 커피의 유통과 소비 과정에서 파생되고 커피 소비지에 쌓이게 됩니다. 그러니 커피가 생산되는 지역 대부분이 세계 빈곤지도와 겹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커피가 생산되는 곳엔 빈곤이 쌓이고 커피가 소비되는 곳에는 부가 쌓인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커피 생산 현장에서 수확된 원두와 커피 소비 현장에서 같은 양의 원두가 만들어내는 가치는 최소 300배에서 500배의 가격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각설하고, 최근 5-6년 사이 매년 한국에 들어갈 때마다 보게 되는 현상은 대한민국 커피소비의 고급화입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소위 고급커피라는 것은 ‘스타벅스’ 혹은 ‘커피빈’이 그 대표선수였던 것 같은데, 최근 몇 년 사이 기존 고급 커피전문점의 수가 늘어났을 뿐 아니라 다양한 커피전문 체인점이 생긴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방 중소도시에도 커피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커피전문점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덕분에 커피소비자들의 커피에 대한 이해도 한층 더 깊어지고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동안 커피에 대한 저작물들도 과거에 비해 훨씬 더 다양하게 나오는 것 같고요. 생소하기만 했던 ‘바리스타’라는 말이 이젠 아주 평범한 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커피 학교도 많이 생기고 있다고 합니다.

소비자들의 커피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그들의 관심 폭도 커피 소비에서 머물지 않고 커피 유통이나 생산 쪽으로 넓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허나, 제가 느끼는 아쉬움은 대한민국 커피소비자들의 관심 폭이 커피생산의 현장으로 넓어지긴 하지만 그 마지막 단계가 가난한 커피생산 국가의 소규모 커피생산 농가 정도에 그친다는 점입니다. ‘공정거래’나 ‘착한 소비’의 개념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그나마 그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너무도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 세상에는 커피밭을 한 평도 갖지 못한 채 일당 노동자로 커피를 따는 약 1억 5천만에서 2억 명 정도의 커피노동자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받는 임금은 제 책에 나오는 여러 명의 친구들처럼 잘 해야 하루 4-5천원 수준입니다. 그나마 1년에 서너 달 밖에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이는 생활물가가 썩 저렴하지 않은 코스타리카 기준입니다. 아프리나카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나라들에서는 이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임금을 받게 될 것입니다. 코스타리카와 바로 이웃한 니카라과만 하더라도 코스타리카에서 받을 수 있는 임금의 딱 절반 정도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저는 한국을 포함한 선진국들의 화려한 커피집을 보면 코스타리카 커피밭에서 만난 제 친구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이 버는 돈이 적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삶이 불행하거나 그러진 않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삶에 대한 자부심이 있고 그야말로 시리고 고된 삶의 마디마디 눈물까지도 웃음으로 살아낼 수 있는 ‘내공’이 있는 친구들입니다. 그들이 하루 종일 아니, 평생 커피를 따고 받는 돈이 너무 적다 하여 한국의 화려한 커피집들이 안타까워 보이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물론 미워 보이지도 않지요. 그들의 삶과 이곳의 삶 자체가 다른 것이니까요. 다만 늘 갖게 되는 한 가지 바람은 언젠가 기회가 허락된다면 그들에게 이렇게 화려한 커피집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초대해 화려하고 고급스런 커피집에서 커피 한잔을 우아하게 마시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평생 하긴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들 인생에 단 한 번만이라도 그럴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이 한알 한알 골라 따는 커피가 이렇게 고급스럽게 팔린다는 사실을 그들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그 커피를 마셔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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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계측 중인 모습.

Q. 베트남 커피가 강세를 보이면서, 국제 시장에서 커피의 경쟁이 무척 심하다고 들었습니다. 커피값이 하락하면서 커피밭을 재배하는 농장주나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은데요, 선생님께서 최근에 다녀오신 커피밭은 어떤 분위기였는지 궁금합니다.

베트남 커피의 등장은 확실히 세계 커피시장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1990년대 초반 전 세계 커피 생산의 0.1%를 점하던 베트남 커피가 2010년 현재 전 세계 커피생산의 10%를 넘어섰습니다. 한 세기 이상 부동의 2인자로 자리하던 콜롬비아를 제치고 브라질에 이어 전 세계 커피생산 2위 국가가 되었습니다. 불과 십수 년 만에 혜성같이 등장한 커피생산 신생국가가 2위 자리를 차지하였으니 전 세계 커피시장은 늘 과잉공급 상태입니다. 베트남 등장 이전에는 늘 브라질 상파울로 고원의 커피풍년이 과잉공급을 불러왔는데 이때의 과잉공급은 오래 가지 못해 곧 해소되곤 하였습니다. 커피생산의 마지노선이라 할 수 있는 남회귀선 언저리에 1000 미터 이상 되는 해발고도를 가지고 있는 상파울로 고원에 야간서리가 한 번 내려주면 과잉공급이 일시에 해소되었기에 많은 커피 생산국가들이 늘 바라마지 않았던 것이 바로 브라질 상파울루 고원의 야간서리였습니다. 그러니 상파울루 고원의 야간서리가 커피생산국가들 사이에선 ‘신神의 선물’이라 불리기도 하였답니다.

그런데 베트남 커피생산 이후 브라질 상파울루 고원의 야간서리도 그 기능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도무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과잉공급의 덫’에 걸려버린 것이지요. 결국 세계 커피가격이 끝모를 하락세로 접어들었습니다(1990년대 초 베트남이 커피생산을 시작하게 된 데는 베트남 정부 자체 결정뿐 아니라 커피 관련 다국적 기업의 로비를 받은 세계은행도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1990년대 후반 파운드 당 1.8달러까지 거래되던 커피가격이 2000년대 들어서 0.5달러까지 곤두박질 쳤습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커피위기는 커피생산 농가들에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나마 고급 커피가 생산되는 지역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시린 시간들을 견딘다 치지만,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커피와 큰 차이가 없는 질의 커피를 생산하던 지역은 베트남 커피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커피생산을 포기하는 경우가 속출하였습니다. 코스타리카 그 작은 나라에서도 타라수(산마르코스) 지역은 커피위기를 견뎌내는 반면, 페레스 셀레동 지역은 커피를 갈아엎은 곳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루에 커피 따는 노동자들 1000명이 투입된다던 대규모 농장 ‘산타페’도 커피를 갈아엎고 사탕수수로 전환하였습니다. 산페드로 마을에서만도 많은 커피밭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제가 엘레나와 함께 커피를 따던 두 군데 커피밭도 사라져 버렸으니까요.

커피밭이 사라지면서 마을 사람들의 삶은 더 열악해 졌습니다. 그나마 커피 따던 일이 참으로 우아한 일이더라고, 마을 사람들이 지난날을 아름답게 추억하는 것을 보면 그들 현재의 삶이 많이 힘든 모양입니다. 그때 커피 따던 사람들 대부분이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델몬트 혹은 유나이티드 푸르츠 컴퍼니 농장으로 파인애플을 따러 다닌다는데, 세상에 못할 일이 파인애플 따는 일이라 말을 합니다. 그늘 한 점 없는 땡볕에 쪼그리고 앉아 파인애플 하나를 따면 우리나라 돈 2원을 준다 합니다. 남자들 일부는 사탕수수 농장으로 나간다 하는데 긴 칼 마체테로 사탕수수 1톤을 잘라 그걸 등에 지고 트럭이 있는 곳까지 옮겨다 주면 우리나라 돈 2000원을 준다 하니 정말 동네사람들과 오손도손 이야기 나누며 커피 따던 일은 아주 우아한 일이었던 모양입니다.

다행히 최근 몇 년 사이 커피가격이 오르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이라는 거대 소비지가 등장하면서 베트남으로 인해 야기된 과잉공급의 덫이 서서히 풀려가는 모양입니다. 실제로 2000년 이후 7-8년 사이에 중국의 커피소비량은 세 배 가까이 성장하였습니다. 2008년 기준으로 중국의 커피소비는 전 세계 커피소비의 1%도 점하지 못하지만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과잉공급의 덫에 걸린 커피위기에 일단락 막을 내려줄 것이라 기대해 봄직도 할 것 같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400개로 성장한 중국의 스타벅스 매장 수가 2015년까지 1500개로 늘어날 예정이라 하니, 박리(薄利)하더라도 다매(多賣)할 수 있다면 중국의 등장이야말로 지난 세기 브라질 상파울루 고원에 예고 없이 내려주던 야간서리만큼이나 고마운 존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 라틴아메리카 커피생산 국가들이 이제는 유럽이나 미국 대신 중국을 통해 다시 한 번 꽃 피는 봄날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의 글은 2011년 1월에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 지역원 웹진에 ‘라틴아메리카 커피, 다시 꽃피는 봄을 맞이하려나’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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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 중인 커피들. 높은 지대에서 재배된 타라수 커피는 고급 커피로 수출된다. 하지만 커피가격이 곤두박질 치면서 베트남 커피와 질이 비슷한 커피를 재배하는 많은 농가들은 커피 생산을 포기하게 되었다.

Q. 공정무역을 통해 커피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간극을 줄이자는 이야기를 듣고, 또 공정무역 커피를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정무역 커피를 사면서 커피밭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는데요, 실제로 이 공정무역 거래가 커피밭 노동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지요? 만약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공정무역 커피가 커피생산지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공정무역 커피의 기본적 정의가 커피 생산자가 보다 정당한 대가를 받도록 하는 것이고 그 부담의 일부를 소비자가 지는 것이기 때문에 ‘착한 소비’라 불리기도 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는 분명 ‘뿌듯함’을 느껴도 될 만합니다. 실제로 공정무역 기관은 공정거래로 이루어지는 커피에 대해서는 커피생산자에게 배전 이전의 커피가격 기준으로 파운드 당 1.26달러를 보장해 주게 됩니다. 나아가 사회보장기금 명목으로 파운드당 0.05 달러를 추가로 지급합니다. 21세기 초 세계 커피가격이 파운드 당 0.5달러 미만으로 떨어졌던 점을 감안한다면 대단한 가격인 것이지요. 또 세계 커피가격이 보장가격을 넘어설 때는 시장가격을 적용해 지급하게 됩니다. 따라서 공정무역 커피 소비는 분명 커피생산지의 커피농가에 도움을 주는 시스템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공정무역 커피로 인한 수혜가 커피밭을 소유한 농장주에게 머문다는 사실입니다. 공정무역에 참여하는 커피생산 농가가 대부분 소농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공정무역 커피의 의미가 충분하다 할 수 있겠으나 커피생산에는 커피생산 농가보다 훨씬 많은 수의 커피노동자들이 참여합니다. 기계화가 100% 불가능한 작물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1억 5천 명 정도의 노동자들이 자기 소유 커피밭을 갖지 못하고 커피 수확철에 동원되어 커피를 딴다고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바대로 공정무역 커피의 조건이 커피생산 농가로부터 커피를 사들일 때 농장주에게 일정 수준의 가격을 보장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하루하루 커피를 따고 일당을 받고 사는 커피노동자들은 배제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인 것 같습니다. 제 책에 나오는 대부분 친구들이 바로 그러한 상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또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바는, 공정무역 커피의 양입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커피공동체가 공정무역 커피에 참여하고 있지만, 실제로 공정무역에 드는 커피의 양은 전체 생산의 2%도 되지 않는 실정입니다. 참으로 미미한 수준이지요. 보통 마을 공동체 단위로 공정무역 커피에 참여하게 되는데, 아직도 수많은 커피공동체들이 공정무역이라는 이름조차 모르고 있는 실정입니다. ‘공정무역’이나 ‘착한 소비’ 운동이 너무 좋은 개념이긴 한데, 제가 위에 언급한 점들을 바탕으로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Q. 엘레나, 얀시, 프레디, 안토니아 등등 선생님께서 커피밭에서 만난 친구들의 삶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선생님의 삶도 어떤 변화를 겪지 않았을까 추측해보게 됩니다. 『커피밭 사람들』을 쓰면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씀은 무엇인지요?

제 개인적 기억으론, 우리나라에서 커피는 늘 고급스런 이미지로 포장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도 500원 미만으로 마실 수 있는 자판기 커피도 있고 슈퍼에서 1000원 정도에 살 수 있는 캔커피도 있습니다. 그리고 한 봉지에 100원도 채 되지 않는 일회용 가공커피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커피에 대해 이야기 할 땐 늘 한 잔에 4-5천원 혹은 그 이상 하는 고급커피입니다. ‘한끼 밥값에 비해 너무 비싸다’라는 비판과 ‘삼각김밥을 먹을지라도, 난 비싼 커피를 먹겠다’라는 항변과, 그리고 또 다른 커피에 대한 이야기들 대부분은 ‘어느 경치 좋은 곳에 가면 어떤 이름의 카페가 있다더라’, 혹은 ‘그곳 주인장이 어디에서 커피를 공부하고 왔다더라’ 등등. 항상 비싼 커피에 대한 이야기뿐입니다.

책을 쓰면서 잠깐이긴 하지만, 한 가지 우려했던 점은 ‘커피밭 사람들은 하루에 커피 한 잔 값 벌기도 힘들다는데, 우리나라 커피 너무 비싸다. 커피값 내려라. 혹은 비싼 커피 먹지말자’ 등 독자들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우리나라 커피값, 그리 비싼 편 아닙니다. 유럽 국가들에선 한 잔에 7-8달러 하는 커피들도 많고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도 한 잔이면 3-4달러 정도는 하니, 우리나라 비싼 땅값(?)을 생각하면 그럭저럭 괜찮은 가격이란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엔 앞에 말씀드린, 싸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옵션이 충분히 있으니까요. 다만 커피밭에서 커피 따는 이들의 임금이 너무 낮다라는 점은 우리가 충분히 공감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생산과 소비의 연결고리가 아니라 생산과 유통(가공을 포함한)의 연결고리에서 해결되어져야 할 문제입니다. 커피가 상품이 되기까지 생산과 유통 그리고 소비 부분으로 나뉘는데, 가공을 포함한 유통 부분이 차지하는 부가가치 정도가 너무 큰 상황입니다. 유통이 차지하는 부가가치의 일부가 생산지로 나누어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극단적인 방법이 생산지와 소비지의 직거래를 기본으로 하는 ‘공정무역’ 커피입니다. 물론 앞서 말씀드린 바대로 그 또한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말입니다. 직거래에 기반한 공정무역 형태의 채널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통에서 파생되는 부가가치의 몫이 생산지에 조금이라도 이전된다면 굳이 소비자가 지금의 공정무역 커피처럼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지 않아도 충분히 생산자들의 삶을 개선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자본주의 논리상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일만큼 어려운 일이겠지만서도 말입니다. 하지만 이미 ‘공정무역’ 혹은 ‘착한 소비’를 통해 많은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완전 불가능이라 보고 싶진 않습니다.

『커피밭 사람들』이란 책을 쓰게 된 데는, 이 세상 어느 곳으로부터도 관심 받지 못하는 그들의 삶을 누군가는 기록하고 기억해야 할 역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커피밭 사람들뿐이겠습니까? 이 세상에는 숱하게 많은 제3세계 농업노동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탕수수 노동자도 될 수 있었고, 바나나 노동자도 될 수 있겠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작물 생산지에서 커피밭 노동자들보다 훨씬 더 열악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기록한 커피밭 사람들 이야기는 아주 극히 작은 부분일 뿐입니다. 거대이론이나 통계 속에 묻혀버리는 이들 삶에 대한 글들이 좀 더 많이 나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설탕을 먹는 사람들, 바나나를 먹는 사람들이 그러한 것들을 생산하는 자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함으로써 그들 사이의 간극이 좀더 가까워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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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하루 일을 마치고 지금은 사라져 버린 돈 프로일란의 커피밭을 걸어 나오며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커피는 현대 일상에 너무도 가까운 음료입니다. ‘공정무역’이나 ‘착한 소비’의 개념이 등장하고 커피에 관한 여러 가지 저술들이 나오는 상황이기에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커피에 대한 이해도 점점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기꺼이 더 많은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제3세계의 소규모 커피농가들을 생각합니다. 『커피밭 사람들』 책을 통한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제는 전 세계 커피생산 농가 숫자보다 훨씬 더 많은, 커피밭 한 평 갖지 못한 채 한알 한알 붉은 커피열매를 골라 따는 커피밭 사람들도 커피 마시는 이들에 의해 기억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가 그들 손에 의해 수확되었음을, 그들의 삶과 우리 삶이 커피를 통해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Q. 선생님께서는 현재 멕시코에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작업을 계획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제 나이 만 서른 살에 코스타리카 커피밭에서 프레디 부부를 만났습니다. 나보다 한 열 살 정도 위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와 동갑이었습니다. 그 때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 날들 동안, 혹 프레디가 앞으로 살아가는 날들 동안 그의 삶을 기록해야 겠다’. 물론 그 기록 안에 프레디뿐 아니라 안토니아, 엘레나, 기예르모, 둘리아, 아우구스틴, 얀시 등 그때 같이 만났던 이들의 삶의 기록도 들어가겠지만, 1971년 같은 해 한국과 니카라과에서 태어난 동갑내기 친구의 삶이 어찌 그리 다른가 싶었습니다.

사람들은 제게 질문합니다. ‘프레디의 삶이 라틴아메리카 커피노동자의 삶으로써 대표성을 갖는다 할 수 있는가?’. 프레디의 삶이 대표성을 갖는지 아니 갖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간 제가 코스타리카에서 만난 커피밭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코스타리카에서건, 미국에서건 평생을 약자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 프레디의 모습이야말로 오늘날 제 3세계 농업노동자들의 한 단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울하게도, 프레디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의 삶은 크게 나아질 것 같지가 않습니다. 프레디와 연락이 끊긴 지 오래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시간이 나는 대로 니카라과 보아코 산타루시아 마을에 들러 프레디와 안토니아를 수소문하는 일일 것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한 가족 이야기지만, 니카라과에서 태어나 땅 한평 갖지 못한 프레디의 삶이, 코스타리카 시골 산페드로 마을에서 나고 자란 엘레나와 기예르모의 삶이 커피를 통해 우리들의 일상과 어떻게 엮이는지 기록해 남기고 싶습니다.

그런데 주변의 걱정처럼, 역시나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묶인 몸이다 보니 학생일 때처럼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내가 있는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멕시코 태평양에 면한 이곳 콜리마주는 멕시코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라임생산지입니다. 멕시칸들의 주식인 타코에 라임이 빠지면 그야말로 앙꼬 없는 찐빵 격이니, 역시나 멕시칸들의 기본 작물이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코카콜라를 비롯한 세계적 청량음료회사의 긴요한 재료라 합니다. 작년부터 라임 밭을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라임도 커피와 같이 100% 사람 손으로 수확이 되는 작물입니다. 역시나 라임 수확철이면 멕시코의 가장 가난한 주에 속하는 미초아칸과 게레로, 그리고 오아하카에서 농업이민자들이 들어옵니다. 그들의 입지가 코스타리카에서 본 니카라과 사람들 혹은 과이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 이곳 콜리마에 있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곳에 올 때 짧으면 1년이고 길면 2년이다 맘먹고 왔는데, 벌써 6년째가 되었네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곳을 떠나게 되도 종종 이곳 라임밭을 기웃거릴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코스타리카 커피밭을 기웃거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혹 이곳에 있는 동안 라임밭 사람들 작업이 마무리되면 사탕수수 밭으로 갈 생각입니다. 이곳 콜리마에서 가깝거든요. 아마도 제 삶의 여건이 허락하는 한, 저는 라틴아메리카 농업노동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기록할 것 같습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중요하든 중요하지 않든, 대표성을 갖든 갖지 못하든, 지리학자로서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잊지 말라는 가르침을 받은 제가 가장 사랑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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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과를 마치고 낡은 의자에 앉아 쉬는 프레디. 이들 손에 묻은 커피진은 씻어도 씻어도 쉽게 가시지 않았다.
커피밭 사람들 - 10점
임수진 지음/그린비
2011/07/28 14:00 2011/07/2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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