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일본, 해부학을 만나다
― 신미술사학 방법론으로 본 에도의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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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의 몸을 열다』
- 난학과 해부학을 통해 본 18세기 일본

타이먼 스크리치 지음, 박경희 옮김 | 도서출판 그린비 | 인문, 역사

출간일 : 2008년 1월 15일 | ISBN(13) : 978-89-7682-502-5
신국판 변형(149X220mm)| 408쪽





18세기 일본은 네덜란드와 교역하면서 서구 근대 지식도 받아들인다. 난학(蘭學, 서양학) 연구 붐 속에 서양 해부학이 도입되면서, 사형수의 시체가 해부되고 풍부한 시각 자료로 남겨진다. 서구 도상학의 틀을 빌려 죽음, 식욕, 성욕 등 인간의 기본 욕망뿐 아니라 18세기 일본인들의 국가관, 세계관까지 에도 문화가 흥미롭게 소개된다.


∎ 지은이와 옮긴이 소개

지은이_타이먼 스크리치 Timon Screech | 1961년 영국 버밍엄에서 태어나 1985년 옥스퍼드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런던대 아시아·아프리카연구원(SOAS) 교수이자 일본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1994~1995년 아사히신문사의 국제교류기금 장학금을 받고 일본에 유학해, 신미술사학(New art history)의 방법론과 광학·기계·신체론을 결합한 새로운 시점으로 에도 시대 문화사에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저서로 『대에도 이인왕래』(大江戶異人往來;丸善ブックス, 1995), The Western Scientific Gaze and Popular Imagery in Later Edo Japan(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6), Sex and the Floating World(Reaktion Books, 2004)가 있다.

옮긴이_박경희 | 이화여대 사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화여대 부설 한국여성연구소 연구원으로 사료를 편찬했으며, 일본재단법인 사회통신교육협회 생애학습 일본고문서 Instructor 자격증을 취득했다. 서울여대 강사,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전문위원을 거쳐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연구위원으로 있다. 『연표와 사진으로 보는 일본사』를 썼고, 『조선미의 탐구자들』,『한 권으로 읽는 베트남사』, 『만들어진 고대』, 『역사교과서의 대화』 등을 옮겼다.



∎ 목 차

서론 접근의 도상학

1장 잔혹한 칼날 아래
칼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졌다 | 사람들은 날붙이에서 이국을 보았다 | 가위, 꽃 그리고 인체 | 외래 가위 잔혹한 매력 | 상자와 접이식 나이프

2장 신체를 베다
외과와 외과도구 | 네덜란드 의학 | 자르는 의사

3장 드러나는 신체
인간은 하나의 프로세스 | 서양의 충격 | 그들은 정말로 베었던 것일까 | 해부와 권력

4장 만들어지는 신체
뼈 있는 이야기 | 내외 진위, 그건 조건 나름이다 | ‘음식물 전투’의 메타포릭스 | 네덜란드 요리, 잘리고 쪼개지는 식재료 | 속에 신체가 생기다

5장 신체와 국가
손을 써서 도구를 다루다 | 신체지리학 | 해부와 여행 | 순환과 심장 | 신체는 세계에 열린다

결론 양파 속 같은 내부

부록
옮긴이의 글
에도 시대 인물 사전



∎ 책 소개

도쿠가와 바쿠후 치세 아래 안정기를 구가하던 에도의 어느 사형장. 이곳에 일군의 고위층 의사들이 몰려간다. 지배층인 사무라이 계급으로 인정받던 관의(官醫)들은 선혈이 낭자하고, 뼈와 살이 뒤엉킨 채 나뒹구는 참혹한 형장까지 행차해 천한 백정이 잘라 보여주는 대로 인체 장기를 하나하나 관찰했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충격적인 경험으로 내닫게 했을까?

『에도의 몸을 열다』는 18세기 에도 시대의 해부학 그리고 난학(蘭學, 네덜란드에 관한 학문이라는 말로 서양에 관한 지식 일반을 다루었다) 형성을 통해 본 에도의 문화사다. 이 책의 주제는 ‘연다는 것의 의미’, 그중에서도 몸의 엶, 즉 해부학이다. 도쿠가와 바쿠후는 쇄국 정책을 실시했고, 에도 사람들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일 통로는 네덜란드동인도회사를 상대로 한 무역밖에 없었다. 그러나 네덜란드와 일본이 물산만 교류한 것은 아니다. 네덜란드상관의 상관장이나 의사 등은 서양 문물을 가르치는 학교를 열어 문물뿐 아니라 문화도 전파했다. 이렇게 유입된 서구 근대의 지식은 난학 붐을 일으켰다. 일본에 서양의 의학이 소개되면서, 폐쇄적인 일본 사회에도 인간의 몸을 열어(베어) 본다는 인식이 생겨난다.

런던대 교수로서 일본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미술사학자 타이먼 스크리치(Timon Screech)는 신미술사학(New Art History)을 방법론으로 취해 에도 시대 일본인들이 서양 의학이나 외과도구에 놀라워하면서도 에도 문화의 심장부를 열어나간 다양한 경로를 탐색한다. 신미술사학은 예술 작품 속에 숨어 있는 이데올로기를 분석하고, 작품을 미화하는 사회체계를 검토하면서, 예술이 그 사회와 별개라는 인식을 문제시하는 연구 사조다. 이 책 역시 단순히 해부학과 해부학 그림의 역사를 좇는 것이 아니라, 해부학 너머의 역사를 다룸으로써 좀더 폭넓은 접근을 취한다. 해부학을 통한 네덜란드(서양)와 일본의 만남 속에 이념의 압제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려 했던 18세기 동서양의 지식권력 재배치가 유비되고, 상세한 역주와 함께 책 속에 등장하는 에도 시대 인사들에 관한 정보를 인물 사전으로 정리해낸 옮긴이의 노력이 더해져 낯선 에도 문화의 몸통이 활짝 열린다.


서양 가위에서 발견한 이국

저자의 에도 문화론은 그 난학 가운데에서도 ‘살아 있는 것을 전체로서’ 그대로 인식하려는 일본의 전통적 지식과 ‘열어서 안을 드러내고 구석구석까지 빛을 비추려는’ 유럽 근대 지식의 만남, 즉 ‘해부’를 통해 전개된다. 집은 창문을 열려 있고, 과일 껍질은 벗겨진 채인 네덜란드 정물화의 전통은 인간의 피부를 벗겨 보는 수준(렘브란트,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에 이른다. 그에 비해 일본의 전통적 감각은 대상을 통째로 본다. 채소는 껍질째 먹고, 생선은 젓가락으로 결을 따라 발라낸다. 포크와 칼처럼 되는 대로 자르고 쑤시지 않는 것이다.

18세기는 바쿠후의 치세 아래 평화 시대가 찾아와 사무라이의 칼은 이미 힘을 잃었다. 공식적인 할복에서는 더 이상 칼이 쓰이지 않았으며(쥘부채를 배에 살짝 갖다 대면 사형인이 뒤에서 단숨에 목을 쳤다), 유곽에 들어갈 때도 칼을 내려놓아야 하는 형편이라 사무라이들은 차라리 상인이나 의사로 변장했다. 그러던 일본인들이 서양 가위와 메스를 만났다. 외국에서 들여온 나이프에 에도 사람들은 단박에 매료되었다. 쪽가위에 비해 절삭력이 우수한 서양 가위는 보기 드문 사치품이었다. 문화적 관심의 주변부로 추방되었던 칼날이 외래산이라는 새로운 지위와 함께 복권되어 탐구의 대상이 된다. 서양화 기법을 가미한 제비꽃 그림에도, 네덜란드인을 묘사한 그림에도, 네덜란드 물건을 집대성한 백과사전에도 서양 가위와 펜나이프 등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의 몸을 자를 수 있다는 데서 더욱 흥미의 대상이 된다.


난의학의 탄생, 근대의 탄생

광학(光學)에 관한 열광, 즉 ‘보여주려는 강박’으로 요약되는 르네상스 이후의 서양 계몽주의는 의학 담론에도 영향을 미쳐 인간의 몸을 열어 보는 일이 신을 향한 진리에 다가가는 것이라 믿게 했다. 이에 반해 동양의 전통의학인 한의학은 인체 내부를 직접 들여다보기를 권하지 않는다. 인체 내부를 보지 않고도 기의 흐름에 따라 총체로서 이해하고 치료하는 한방의들이 본도(本道)라고 이해된 반면, 칼과 가위로 병을 고친다는 네덜란드 의사는 사람의 몸을 마구잡이로 대하면서도(“아란타 가위로 찢어지는 인간의 세계”) 이것이 병자를 치료하기 위함이라 하였으니, 외과라는 말만 떠올려도 에도 사람들은 묘한 두근거림을 느꼈다. 그러나 네덜란드 외과는 일본인들에게 로키 호러 쇼의 흥분을 자아내는 이국적 매혹의 상징으로나 치부되는 형편이었으니 외과가 본격적인 의학으로 받아들여질 리 없었다.

네덜란드 의학을 받아들인 난의들도 외과술을 실제 치료에 적용하기보다는 몸을 열어서 제대로 본다는 데 흥미를 느꼈다. 난의학자 집단은 독일의 의사 요한 쿨무스(Johann Adam Kulmus)가 낸 해부학서 『타펠 아나토미아』(Anatomische tabellen)를 저본으로 여러 서양 해부학서를 참조해 『해체신서』(解體新書)를 펴낸다. 난의학이란 새로운 지식을 탄생시킨 그들이 느낀 자부심은 번역서의 출간으로 끝나지 않는다. 바쿠후에서 사형수의 시신을 양도받아 해부해도 좋다(다 빈치도 무덤에서 훔쳐낸 시신을 해부해서 인체 그림을 그렸다는 말이 있듯이, 해부용 시신을 구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는 허락을 받은 그들은 화가들을 고용해 해부 과정을 상세한 그림으로 남겨 널리 그들의 업적을 알린다(사형수들 역시 해부도에 그 이름이 실려 그 형벌의 시한이 영구해진다). 그림 제작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았다. 최신 기술인 유럽의 동판화 제작 기술이 들어와 일본 최초의 해부학서들은 일본 최초의 동판화 인쇄본이 되어 근대적 지식뿐 아니라 근대 기술의 담지체가 된다.


신체와 국가

해부학 그림이 유행하던 시기 몸을 하나의 소우주로 파악하는 감각이 일본의 대중문화에도 파급된다. 몸속에 들어간 나쁜 음식들은 좋은 음식들과 전투를 벌이고(『뱃속 수도 음식물 전투』腹京師食物合戰), 과음을 일삼는 창기의 몸속은 서로 다른 부서의 책임자들(장기들)이 각론을 벌이는 회사에 비교되는(『열네 미인의 뱃속』十四傾城腹之內) 통속소설로 표현된다.

대상을 직접 눈으로 봐야 한다는 해부학의 감각은 진경 산수에 관한 관심과도 연결되었다. 이에 따라 국토를 구석구석 파악해야 한다는 데로 확장되어 국토 여행이 유행했고, 각종 ‘명소도회’(名所圖會)류의 책이 쏟아져 나온다. 여행기 출간 붐과 함께 신체에 피가 잘 돌아야 몸이 건강하듯, 도로가 잘 연결되어야 나라가 건강하다는 생각이 널리 퍼진다. 그리고 그 도로의 핵심에는 심장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고도(古都) 교토가 일본의 심장, 즉 천하(天下)의 기원으로 떠오른다. 통일국가의 기원이란 근대 민족국가 의식 형성의 기반이 아니던가.


일본 근대의 징후

저자는 하버드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90년대 중반 아사히신문사의 장학금을 받아 일본에 체류하고 이 책을 썼다. 에도 시대의 고문을 읽어낼 저력을 갖춘 젊은 연구자는 유학을 와서 풍부한 시각 자료를 접하며 에도의 문화에 한층 더 매혹된다. 해부도보, 통속소설, 여행기, 회고록, 동판화, 가부키 극본 등 에도 시대 문헌과 도판들이 장르를 망라해서 등장하는 가운데, 해부학이라는 이름을 빌려 나타난 이방(異邦)과 마주친 에도 사람들의 충격과 혼돈이 있는 그대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 혼돈은 새로운 지식의 징후였다. 서구 도상학의 틀을 빌려 저자는 섬세한 감수성으로 그 징후를 만화경 속의 패턴을 파악하듯이 일별해낸다. 에도의 사무라이들이 서양 메스를 쥐었을 때, 에도의 몸뿐 아니라 일본 근대도 열리지 않았느냐는 듯이.

18세기 영국에서 혈액순환 이론을 펼친 의학자 윌리엄 하비는 심장을 왕에 비교한다. 혈액이 심장으로 모였다 다시 흘러감은 국가에서 왕이 담당한 핵심적인 역할과 같이 생각된다. 새로운 지식 체계를 도입해낸 난학자들 또한 통일국가 일본을 찬양하는 정치적 분위기와 무관할 수 없었다. 『해체신서』는 쇼군(將軍) 외에도 여러 권력자 집안에 바쳐졌고, 사회질서를 해치지 않기 위해 신체 노출에 대한 검열까지 알아서 이루어졌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사후 200주기를 맞이하여 난학의 태두 스기타 겐파쿠(杉田玄白)는 난학과는 전혀 무관한 그를 눈에 띄게 칭송한다. 일본인의 건강을 책임지는 약사여래와 동일시되던 그가 난학 성립에 축복이라도 내려주었다는 듯이. 그리하여 진리를 이해하는 또 한 방법이 일본 사회에 수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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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6 11:11 2008/01/16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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