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한 ‘나’들의 공동체

박정수<수유+너머 R> 연구원

우리는 꿈-형성의 장본인으로서 개개인의 두 가지 심리적인 힘(경향, 체계)을 가정할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꿈을 통해서 표현되는 소원을 형성하고, 다른 하나는 꿈-소망을 검열하고 검열을 통해서 소원의 표현을 왜곡하도록 강요한다. 문제는 검열을 행사하는 두번째 심급의 권한이 어디에 있는가이다. 잠재적인 꿈-사고는 분석이 수행되기 이전에는 의식되지 않는 반면에, 외형적인 꿈-내용은 의식적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두번째 심급이 누리는 특권은 사고가 의식에 진입하는 것을 허락하는 데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두번째 심급이 사전에 통과시키지 않는다면, 첫번째 심급의 어떠한 것도 의식에 이를 수 없다. 두번째 심급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여, 의식에 들어오고자 하는 것을 자신의 마음에 들도록 변화시키기 이전에는 어떤 것도 통과시키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의식의 ‘본질’에 대한 분명한 견해를 형성할 수 있다. 의식된다는 것은 표상 또는 개념의 형성 과정과 무관한 별개의 특이한 심리적인 활동이다. 의식은 다른 곳에서 주어지는 내용을 지각하는 감각기관으로 나타난다. 정신병리학에서는 이런 근본 전제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꿈의 해석』, 김인숙 옮김, 열린책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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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19세기에 쓰인 작품이지만 만화, 뮤지컬 등을 통해 계속 재탄생한다. 한 신체에는 하나의 '자아(ego)'만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 아닐까?

다수의 사람들은 내 안의 또 다른 내 목소리들을 의식하고 달래면서 하나의 ‘나’를 형성하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그 또 다른 나의 목소리들을 의식하지 못한 독립된 자아들로 독립시킵니다. 그런 사람들을 분열증자라고 합니다. 분열증자들에게는 ‘나’가 하나가 아니라 다수입니다. 분열증자의 자아는 무수한 ‘나’들의 공동체입니다. 일본 홋카이도의 우라카와(浦河)에 있는 정신장애인 공동체 <베델의 집> 사람들이 쓴 책 『베델의 집 사람들』(궁리, 2008)을 보면 공동체로서의 ‘나’에 대해 실감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흔히 ‘모자란 사람’, ‘미친 사람’으로 낙인 찍혀 사회로부터 추방된 정신장애인들이 자신의 병을 긍정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모은 것인데요, 그들은 자신의 정신병을 없애려고 하지 않고 다만 원만한 관계를 맺을 동반자로 여깁니다.

그들은 매년 ‘환각 및 망상대회’를 열어 서로의 환각과 망상을 자랑하고, 각자의 ‘약함’과 ‘문제’를 해소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그 때문에 서로 도우며 공동체를 이뤄 가게 하는 힘으로 여깁니다. <베델의 집>의 일원이 된 정신과의사조차 정신장애를 비정상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당하기 힘든 경쟁과 스트레스를 인내하고 살기를 강요하는 자본주의적 시민사회야말로 비정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이유는 그들의 자아 자체가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아가 ‘하나’이거나 ‘일관’되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베델의 집>에 사는 분열증자들은 다수의 다른 자아들을 거느리고 삽니다. 그들은 그 분열된 자아들을 제거하려고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서로 잘 소통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갑니다.

그들은 자기 안의 또 다른 자아의 목소리인 ‘환청’을 친근하게 ‘환청 씨’라고 부르는데요, 오자키 씨는 무려 721명의 ‘환청 씨’, 즉 721개의 자아와 더불어 삽니다. 그가 베델의 집을 대표하여 외부강연을 하러 1박 2일로 여행을 갔을 때였습니다. 여행에 지친 몇 명의 ‘환청 씨’가 강연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돌아가 버렸습니다. 오자키 씨는 그들을 빼놓고 강연을 할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강연을 마치고 돌아온 ‘오자키 무리’는 먼저 돌아온 환청 씨들 말고 몇 명의 ‘환청 씨’들이 더 모자라는 걸 알았습니다. 며칠 후 실종된 환청 씨들이 돌아왔는데요, 자기네들끼리 관광하고 히치하이크를 해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오카키 씨의 정신은 하나의 ‘나’가 아니라 721개의 ‘나’들이 함께 사는 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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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델의 집>이 지향하는 방향인 이 문구는 '내려가는 삶'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정상에 올라가는 것만이 최선입니까 확실해요?'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박정수 | <수유+너머 R> 연구원. 프로이트, 라캉, 지젝, 푸코, 들뢰즈, 카프카, 루쉰에 관심이 많으며, ‘욕망의 정치경제학’을 개척하고 있다. 노들야학과 매주 수요일 인문학 집중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으며, 2010년 10월 30일 시내 가판대의 G20정상회의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려 넣어 검찰에 의해 징역 10개월을 구형받은 그래피티 작가이기도 하다. 또한 동네 아이들과 놀이터에 ‘갤러리 놀이텃밭’을 일구면서 마을 공동체 만들기를 도모하고 있다.

※ 『고전 톡톡』의 2부 '고전과 通하다!'에 수록된 글입니다. 다음 주에는 다윈의 『종의 기원』과 한 박성관 선생님의 글이 연재됩니다.
베델의 집 사람들 - 10점
베델의 집 사람들 지음, 송태욱 옮김/궁리
꿈의 해석 - 10점
프로이트 지음, 김인순 옮김/열린책들
2011/08/02 09:00 2011/08/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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