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와 창조, 살림과 죽임

박성관 <수유+너머> 연구원

생활을 위한 투쟁이 보편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진리임을 입으로 인정하는 것처럼 쉬운 일은 없지만, 이 결론을 항상 마음에 새겨 두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일은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 결론이 철저하게 마음에 사무치지 않는다면 자연의 질서 전체나 그에 포함되는 분포, 희소성, 풍부함, 멸종, 변이 등의 모든 사실이 어렴풋이 인정될 뿐이거나 또는 전적으로 오해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자연’의 얼굴이 기쁨에 빛나는 것을 본다. 이따금 식량이 남아돌아 갈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 한가롭게 지저귀는 새들이 대체로 곤충이나 씨앗을 먹고 살아가며 이리하여 끊임없이 생명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지 않거나 잊고 있다. 우리는 이들 노래하는 새나 그 알, 그들의 새끼가 육식을 하는 조류나 짐승들에게 얼마나 많이 파괴되는지를 잊고 있다. 우리는 지금은 식량이 남아돌아 가지만 매 년, 매 계절마다 그렇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항상 유념하지는 않는다.
─ 찰스 다윈, 『종의 기원』, 강태정 옮김, 일신서적출판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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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자갈치 시장의 풍경

어렸을 적에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가곤 했다. 추운 겨울날에도 훈김이 나며 시끌벅적했던 그곳. 거기에는 큼지막한 통나무 위에 생선을 얹어 놓고 식칼을 슉! 슉! 휘두르던 아줌마들이 있었다. 사내들마냥 왁자하게 웃으며 척척 일을 해냈고 가끔은 상소리에 삿대질을 섞어 가며 싸워 대기도 했던 그들. 어린 내게 인상적일 정도로 쾌활하고도 상스러웠던 그들. 그들은 집에 돌아가면 어떤 엄마 혹은 할머니였을까? 아마 열 중 일고여덟은 망할놈의 서방 탓에 아이들과 집안 살림을 도맡은 “복 터진” 이들이었을 게다. 생선 냄새를 풍기며 아이들을 씻기고 멕이고 재웠을 그들. 천하고 상스러운 악다구니와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다는 “어머니”가 그들에게는 따로 있지 않았으리라. 요컨대, 모성애에서 비루함을 읽지 못한다면, 또 역으로 비루함에서 고결함을 읽지 못한다면 우리는 세계의 진실을 오해하고 말 것이다.

『종의 기원』 중 “생존 투쟁”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수강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종종 던진다. “어미새가 새끼에게 먹이를 갖다 주는 모습을 보신 적 있나요? 참으로 아름답고 감동적이죠? 생명의 고귀함도 느껴지구요. 헌데 그 새끼의 입에 들어가는 먹이 쪽은 어떨까요? 그 먹이의 가정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부모 중 한쪽을 잃었거나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을 잃었겠죠? 게다가 지금 먹이를 받아먹는 새끼들은 과연 어른으로 무탈히 성장할 수 있을까요? 아니 그 전에, 얼마나 많은 이 새끼들의 형제자매들이 알 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와 보지도 못한 채 다른 생물들의 먹이가 되었을까요?” 이런 얘기를 늘어놓다가 강의 시간이 끝나면 강의를 들은 사람들 중 몇 분은 내게 이런 충고를 해준다. “세상을 너무 어둡게 보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세상을 너무 어둡게 본다…… 글쎄……?!

다윈과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생명이 얼마나 역동적이고 아름다운지를 볼 때, 그걸 위해 얼마나 많은 생명이 파괴되어야 하는지를 함께 볼 수는 없겠느냐는 것이다. 살리는 것이 곧 죽이는 것이요, 죽이는 것이 곧 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는 없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쉬운 이야기는 아니다. “생활을 위한 투쟁이 보편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진리임을 입으로 인정하는 것처럼 쉬운 일은 없지만, 이 결론을 항상 마음에 새겨 두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일은 없”다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 결론이 철저하게 마음에 사무치지 않는다면 자연의 질서 전체나 …… 모든 사실들이 어렴풋이 인정될 뿐이거나 또는 전적으로 오해될 것”이다. 조금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내 생각에 우리 인간은 아마도 이런 “진실”을 맞대면하지 않도록 진화해 온 것 같다. 그러니까 다윈의 조언을 아무리 여러 번 들어도 다윈처럼 생각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우리 중 누군가가 그런 진실을 항상 마음에 새겨둘 수 있다면, 그 진실에 마음이 사무칠 수 있다면 어찌 될까? 그런 그에게 활짝 열리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투명하게 드러나는 “자연의 질서 전체”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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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선택은 각각의 생물의 이익을 통해, 그리고 그 때문에만 작용할 수 있다." - 『종의 기원,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 소멸의 자연학』, 214쪽


※ 『고전 톡톡』의 2부 '고전과 通하다!'에 수록된 글입니다. 다음 주에는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한 홍숙연 선생님의 글이 연재됩니다.
종의 기원 - 10점
CHARLES DARWIN/일신서적
2011/08/09 09:00 2011/08/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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