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의 길은 명심(冥心)에서

홍숙연

요하는 울지 않은 적이 없었다. 단지 사람들이 밤에 건너지 않았을 뿐이다. 낮에는 강물을 볼 수 있으니까 위험을 직접 보며 벌벌 떠느라 그 눈이 근심을 불러온다. 그러니 어찌 귀에 들리는 게 있겠는가. 지금 나는 한밤중에 강을 건너느라 눈으로는 위험한 것을 볼 수 없다. 그러니 위험은 오로지 듣는 것에만 쏠리고, 그 바람에 귀는 두려워 떨며 근심을 이기지 못한다.
나는 이제야 도를 알았다. 명심(冥心; 깊고 지극한 마음)이 있는 사람은 귀와 눈이 마음에 누가 되지 않고, 귀와 눈만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더욱 섬세해져서 갈수록 병이 된다. …… 한번 떨어지면 강물이다. 그땐 물을 땅이라 생각하고, 물을 옷이라 생각하고, 물을 내 몸이라 생각하고, 물을 내 마음이라 생각하리라. 그렇게 한번 떨어질 각오를 하자 마침내 내 귀에는 강물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무릇 아홉 번이나 강을 건넜건만 아무 근심 없이 자리에 앉았다 누웠다 그야말로 자유자재한 경지였다. (박지원, 「일야구도하기」,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고미숙・김풍기・길진숙 옮김, 그린비, 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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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츠시카 호쿠사이,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
"길이란 다른데서 찾을 게 아니라 바로 이 사이에 있는 것이지. 이것과 저것, 그 사이에서 존재하는 것은 오직 길을 아는 이라야만 볼 수 있는 법." - 박지원, 『고전톡톡』에서 재인용

세상살이는 일렁이는 물결 위에 있는 것 같습니다. 길흉화복이 들이닥쳐 우리를 기쁘게도 슬프게도 하니까요. 청소년기는 ‘대학만 가면!’으로 다 감수했는데 대학생이 됐다는 즐거움은 잠깐이고, 입학하면 그때부터 먹고살 직업을 구하는 일에 매진해야 합니다. 직장만 구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후엔 승진과 고용불안에 시달립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한 시절을 보내기도 하지만 그 사람과의 이별 때문에 괴롭기도 합니다. 다음에 또 보자며 인사한 사람과 영영 보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삶의 일렁임을 직시하고 있을까요? 혹시 좋았던 시절의 행복감 때문에 지금의 난관을 불행이라며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요하의 드센 물살을 건너는 사람들이 그저 하늘만 쳐다보면서 무사히 저편에 닿기를 바라고 있는 것처럼 저도 늘 안정된 삶만 갈구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정해진 삶을 오차 없이 밟아 가는 것을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보다 잘나가지는 못해도 뒤떨어지지는 않는 삶, 사리분별 잘하는 총명함은 그 길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봉변을 당하듯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을 때 저는 제가 잘 달려오던 길에서 내쳐진 듯한 불안을 느꼈습니다. 회사는 세상 속에 저의 좌표를 설정해 주는 곳이었습니다. 내가 누군지 말해 주고, 할 일을 주고, 인간 관계를 엮어 주던 곳. 이런 곳이 사라지고 나니 나를 고정할 곳이 없어 정처 없는 불안을 느꼈습니다. 빨리 다시 나를 엮어 줄 든든한 일자리를 찾거나 공부를 하더라도 든든한 학교 안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이 시점에 저는 연암이 물 위에서 얻은 깨달음인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를 읽으면서 귀와 눈만 믿는 자의 병통이 저의 병통임을 알았습니다.

물은 물이라 생각하고 땅은 땅이라 생각하기에 물을 얼른 건너 단단한 땅을 딛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물에서 전혀 배우는 바가 없이 그저 매번 물에 빠지면 죽는다는 공포만이 남아 있게 됩니다. 그런데 또 땅이 정말 그렇게 단단한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지진이 일어나면 한순간에 뒤집히고 갈라져서 땅은 단단하다는 우리의 믿음을 배신하니까요. 이렇게 생각하면 정말 어디 하나 믿을 구석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물에서도 살아야 하고 땅에서도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불안을 제거하려 하지 말고 나는 왜 그것을 불안하게 느끼는지 물어야 할 것입니다. 안정적인 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불안정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안정적이라고 생각한 것도 사실은 내 존재 자체의 안정감이라기보다는 안정적인 것에 소속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한순간에 잃어버리면 또 불안해지고 말 안정감이었죠. 알고 보면 물이 공포 그 자체인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다 가라앉습니다. 수영을 배우는 첫 걸음은 물에다 자기를 맡기는 것이죠. 그러면 신기하게도 몸이 둥둥 뜹니다. 내가 이전에 땅에서 하던 대로 물을 대하니 물이 두려운 것입니다. 물에서는 걷는 것과 다른 근육, 다른 호흡, 다른 행동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연암이 말한 눈과 귀가 마음에 누가 되지 않는 명심(冥心)이란 모든 게 마음먹은 대로 된다는 자기 암시나 이미지 트레이닝이 아니라 그동안 자기가 쌓아 온 선입관과 분별심을 부수고 나에게 닥쳐온 사건과 함께 자신을 변화시켜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뜻하지 않게 달리던 길에서 낙오되었는데 그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길 위에 엎어졌을 때 연암을 만나 정해진 길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가게 되었으니까요.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늘 일렁이는 물결 위에 있으면서도 단단할 거라고 믿는 저편을 갈망하며 살고 있었겠죠. 안정된 삶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불안한 삶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면 차라리 용기를 내어 그 파도를 타겠습니다. 그럴 때 눈에 보이는 길만이 아니라 언덕과 강물 사이에 무수히 나 있는 길들이 보일 것입니다. 연암이 말했던 그 ‘사이의 길’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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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에른스트, <입맞춤>
"우리가 행하는 것이 우리가 내버려두는 것을 결정한다. 우리는 행동함으로써 내버려둔다."─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것이요, 나의 원칙이다. (니체, 『즐거운 학문』, <니체전집>, 책세상, 281쪽)

홍숙연 |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연구실에서 공부하기 전까지는 별생각 없이 살았다. 남들 학교 갈 때 학교 가고, 졸업할 때 졸업하고, 그렇게 취직도 하고……. 이런 순종적인 삶에 균열을 가져다 준 연구실이 고맙다. 고전학교에서 공부한 지 5년 만에 겨우 역사와 고전이라는 빛바랜 것들에서 빛을 발견한 것 같다. 앞으로 그 빛을 내 언어로 말해서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기를, 그러면서 지혜로운 노인이 되어 가기를 바란다.

※ 『고전 톡톡』의 2부 '고전과 通하다!'에 수록된 글입니다. 다음 주에는 허준의 『동의보감』과 한 안도균 선생님의 글이 연재됩니다.
세계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 상 - 10점
박지원 지음, 길진숙.고미숙.김풍기 옮김/그린비
2011/08/16 09:00 2011/08/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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