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VS 콘텐츠(1)

지난번 글에서 출판의 ‘여지’에 대해서 언급했는데, 상황을 반전시킬 ‘여지’를 확보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건 프로모션에서 커뮤니케이션으로의 관점 이동이다. 프로모션(promotion)에서 pro는 ‘밖으로’의 뜻을 갖는 접두사이고, motion은 “운동, 동작(특히 의사를 전달하기 위한 손이나 머리의 동작), 움직임, 발의, 동의” 등의 뜻을 갖는 말이다. 결국 프로모션이란 “안에서 밖을 향해 메시지를 발신(발의)함으로써 동의와 지지를 구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지금까지 출판사업은 정확히 이 프로모션에 근거한 모델이었다. 이에 반해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란 ‘공통’ 또는 ‘공유’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communis’에 운동을 뜻하는 ‘-ation'이 붙은 말로,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공통화 또는 공유화하는 행동이나 과정”이 된다. 프로모션이 일방향의 운동을 나타내는 개념이라면 커뮤니케이션은 쌍방향 혹은 다방향의 운동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커뮤니케이션의 개념을 출판에 적용하면 “사유·감정·서사 등을 공통화 또는 공유화하는 행동이나 과정”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출판이 프로모션에 기초해 ‘책’이라는 하나의 제품을 생산하고, 하나의 가격을 매기고, 제한된 유통망을 통해 판매하는 ‘동일성’의 모델이었다면, 앞으로의 출판은 커뮤니케이션에 기초해 ‘책’을 포함한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다양한 가격을 매기고, 다양한 유통경로를 통해 판매하는 ‘차이’의 모델이 될 것이다. 이제 출판은 ‘출판의 잠재성(힘)’이 커뮤니케이션의 대지를 떠받침으로써 그 위에 다양한 구체물들이 설계되고 만들어지는 모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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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출판은 커뮤니케이션의 기반 위에 책을 포함한 다양한 컨텐츠를 생산하는 '차이의 모델'이 될 것이다.

여기서 잠깐! 논의를 본격적으로 전개해 나가기 전에 텍스트가 뭔지, 콘텐츠가 뭔지, 그 구분부터 해보기로 하자. 텍스트는 넓은 의미로는 “의미 있는 것으로 읽혀지고 해석되는 모든 것”(심지어 세계를 ‘사회적 텍스트’로 보는 학자도 있다)을 가리킨다. 문자언어뿐만 아니라 입말 언어, 이미지, 소리, 몸짓 등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기호체계 전반이 텍스트인 것이다. 이 용법에 따르면 활자텍스트, 사진텍스트, 그림텍스트, 영화텍스트, 사운드텍스트, 조각텍스트 등등의 용례가 가능하다. 그러나 좁은 의미로는 기록된 문헌으로서의 ‘활자텍스트’만을 가리킨다.

한편, 웹시대에 들어 콘텐츠라는 말이 널리 쓰이면서 텍스트와 콘텐트를 구별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는데, 나는 이 글에서 텍스트라는 말을, 그것이 영화든 사진이든 책이든, 변용과 혼용이 일어나기 이전의, 상대적으로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가 강하게 보존되어 있는 ‘작품’의 의미로 썼다. 또 콘텐트라는 말보다 복수접미사 s가 붙은 콘텐츠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쓰이는 이유는 웹의 세계가 기본적으로 복수성을 전제로 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각각의 아날로그 차원을 넘어 디지털의 0차원 세계에 비위계적인 데이터의 형태로 나란히 놓이는 콘텐트(내용물)들이 구성하는 세계, 그리고 그 콘텐트들의 혼용과 변용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트들이 생성되는 세계는 기본적으로 복수성의 세계일 수밖에 없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프로모션에서 커뮤니케이션으로 관점을 이동하면, 텍스트와 콘텐츠의 차이가 비교적 쉽게 이해된다. 텍스트가 프로모션과 짝을 이루는 개념이라면, 콘텐츠는 커뮤니케이션과 짝을 이루는 개념이다. 전자가 웹 이전 시기의 사고방식과 태도를 가리킨다면, 후자는 웹 이후 시기의 사고방식과 태도를 가리킨다(웹의 도래로 콘텐츠의 세계가 구성 가능해지고 커뮤니케이션의 일상화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텍스트가 닫혀 있다면, 콘텐츠는 열려 있다. 텍스트가 변형이 어렵다면(그래서 프로모션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콘텐츠는 변형과 변이가 자유롭다(자연히 커뮤니케이션의 대상이 된다). 텍스트가 작품을 지칭한다면, 콘텐츠는 내용물을 가리킨다.

작품도 내용물이라는 점에서 “텍스트는 콘텐츠다”라는 말은 성립한다. 그러나 그 역은 항상 성립하지는 않는다. 콘텐츠가 텍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편집’이라는 전문적인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편집은 누가 하는가. 저자와 편집자가 한다. 저자는 텍스트를 쓸 때 목차라는 큰 틀을 짠 다음 그 안에 구체적인 내용물을 채워 넣는 저술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은 저자 혼자 하는 경우도 있지만 편집자와 함께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원고로서의 텍스트가 완성되면 편집자는 이 원고를 보다 완성된 책의 형태로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부가적인 편집을 수행한다. 저자와 편집자는 지식의 크리에이터로서 편집이라고 하는 ‘공동의 활동’(커뮤니케이션)을 하는 파트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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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는 개인을 전통적 집단으로부터 떼어냄과 동시에 개인들의 힘을 모아 대량의 힘을 만들어내는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마치 오늘날의 일본이나 러시아에서처럼 서양에서는 르네상스 시대에 엄청난 정신적-사회적 에너지를 발산시켰다." - 마셜 맥루언, 「인쇄된 말」, 『미디어의 이해』, 247쪽

사용자제작콘텐츠(UCC)를 떠올리면 콘텐츠와 텍스트의 차이가 좀더 쉽게 드러난다. ‘사용자제작콘텐츠’라는 말은 써도 ‘사용자제작텍스트’(UCT)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블로그라는 개인미디어에서 글을 쓰는 사용자가 있다고 하자. 이것은 콘텐츠일지언정 아직 텍스트는 아니다. 조각의 글들이 하나의 컨셉 아래 목차가 짜여지고 그 속에 체계적으로 배치되고 다듬어짐으로써 하나의 사유의 직조물(texture)로 재탄생될 때, 그때 비로소 작품으로서의 텍스트(text)가 만들어진다. 콘텐츠는 텍스트가 될 가능성과 잠재성은 갖고 있지만, 아직 텍스트는 아닌 것이다.

콘텐츠가 저절로 텍스트가 되지는 않는 것과 달리, 텍스트는 그 자체로도 콘텐트가 되기는 한다. 그러나 이 경우 텍스트는 ‘텍스트=콘텐트’의 가장 단순한 형태에 그치고 만다. 이는 잠재성의 위축과 무능력을 의미한다. 지금 출판계가 미래의 방식으로 고민하고 있는 전자책도 단순히 종이책 텍스트를 디지털 파일로 변환하기만 한 것이라면, ‘텍스트=콘텐트’의 가장 단순한 형태에 그칠 것이고, 그럴 경우 종이책과 전자책은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텍스트와 콘텐츠의 관계는 ‘텍스트<콘텐츠’로 표현할 수 있다. 콘텐츠는 텍스트에 비해 외연이 훨씬 크다. 텍스트는 무수히 많은 콘텐츠로 변용될 수 있는 잠재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잠재성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텍스트 편집력과는 다른 의미의 편집력이 요구된다. 텍스트의 운동성을 부추기는 다양한 개입과 활동을 나는 통상의 편집력과 구분하여 ‘출판력’ 혹은 ‘마케팅력’—마케팅력과 ‘제품을 파는’ 세일즈 능력은 다르다. 마케팅력(marketing power)은 말 그대로 ‘시장을 만들어내는 힘’을 가리킨다.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파악한 독자의 구체적 욕망에 기초해서 제품을 개발하고, 가격을 매기고, 유통채널을 확보하는 일련의 시장적 과정을 독자가 만족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일관성 있게 실행해 낼 때 시장은 만들어지고, 그때 비로소 출판의 잠재성은 현실화된다—이라고 부르고 싶다. 또 전통적 의미의 편집력과 텍스트에 치중한 출판을 ‘선형적(linear) 출판’ 그리고 출판력에 의거해 무수한 콘텐츠를 생성해내는 출판을 ‘비선형적(non-linear) 출판’이라고 부르고 싶다. 선형적 출판이 예상한 만큼, 딱 그만큼의 기대를 충족시킴으로써 독자를 결코 놀라게 하지 않는 ‘무거운’ 출판이라면, 비선형적 출판은 예측 불가능의 우발성으로 독자를 놀라게 하는 ‘가벼운’ 출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콘텐츠는 인터넷이 일상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용어다. 인터넷이 등장하기 이전에 각각의 미디어는 분할된 미디어 영토 안에서 고유의 텍스트를 생산하면서(즉 출판은 책으로, 신문․잡지는 기사로, 방송은 프로그램으로) 자기를 재생산해 왔다. 이 텍스트의 세계에 일반대중은 생산자로 참여하기가 쉽지 않았다. 작품성과 전문성을 요구하는 텍스트의 세계는 상대적으로 폐쇄적이고 협소한 세계일 수밖에 없었다. 반면 콘텐츠의 세계는 생산자이면서 사용자인 프로슈머가 존재하는 세계로, 텍스트에서 파생되어 나온 무수한 콘텐츠와, 텍스트가 될 가능성과 잠재성을 갖고 있는 무수한 콘텐츠가 나란히 공존하는 광활한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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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네트워크 지도

다양성이 살아 숨쉬는 이 광활한 세계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웹이라고 하는 바다의 등장이 필연적이었다. 웹의 등장이라고 하는 ‘사건’(웹 이전과 이후는 불연속과 단절이 있다는 점에서 사건이라고 부를 만하다) 이전에는, 각각의 미디어는 강이나 하천을 흐르는 물과 같았다. 웹이라고 하는 미디어의 바다가 형성되자, 지류의 텍스트들이 흐르고 흘러 넓고 평평한 콘텐츠의 바다에서 하나로 만나게 된 것이다. 수많은 물방울들 같은 다양한 콘텐츠가 공존하는 그 바다에서, 무수히 많은 콘텐츠들이 평등성을 전제로 자기 발언권을 획득해 나가고 있는 것이 지금의 미디어 환경이다. 여기서 말하는 평등성이 질적 차이가 없는, 즉 평균화되고 평준화된 평등성이 아님은 물론이다. 여러 층위로 구성되어 있는 콘텐츠의 세계에서 사용자는 클릭을 통해 더 넓게, 더 깊게,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공간을 유영해 가면서 향유한다. 그 어떤 콘텐츠도 사용자의 선택 대상에서 배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용자가 각자 자기 입맛에 맞게 고를 수 있다는 점에서, 모든 콘텐츠는 평등한 것이다.   

“천 갈래로 길이 나 있는 모든 다양체들에 대해 단 하나의 똑같은 목소리가 있다. 모든 물방울들에 대해 단 하나의 똑같은 바다가 있다”(들뢰즈, 『차이와 반복』, 633쪽).

- 대표 유재건

2011/08/17 09:00 2011/08/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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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ocomotion 2011/08/17 21:10

    막힌 코가 뚫리듯(?) 머리가 뻥 뚫리면서 시원해지는 그런 느낌입니다!

    • 그린비 2011/08/18 11:30

      locomotion님 다음 주 월요일에 텍스트와 콘텐츠 2편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다음 주에 또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