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0일 밤, 3차 희망버스는 경찰들의 방어막에 막혀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접근을 차단당했다. 2차 희망버스가 85호 크레인을 눈앞에 두고 봉래 3거리에서 최루액을 맞으며 멈춰서야 했듯, 크레인과 희망버스의 백여 미터 간극을 만들어 낸 것은 또다시 경찰이었다.

당일 나는 친구와 함께 문화제가 열리고 있던 수변공원을 벗어나 경찰의 감시를 피해 85호 크레인으로 향했다. 문화제를 진행 중이던 집회대오와 크레인 간의 그 백여 미터 간극이 위태롭고 불안해 보였기 때문이다. 크레인 맞은편 신도브래뉴 상가 앞에는 한 달 넘게 아스팔트 위에 돗자리를 깔고 조선소 담 너머의 크레인을 바라보고 있는 한진 해고노동자들(이하 조합원들)이 있었다. 그들은 6월 27일 행정대집행의 명목으로 경찰과 용역깡패들에 의해 회사 밖으로 쫓겨난 상태였다. 지난겨울 갑작스레 해고통보를 받고 6개월여간의 투쟁을 전개하던 한진 조합원들에게 국가 공권력이 화답한 것이 행정대집행의 강제퇴거 조치였다. 이제 그들은 밤마다 조선소 담 너머의 35미터 고공크레인을 응시한다. 쉰둘의 한 해고노동자가 200일이 넘게 올라가 있는 85호 크레인. 그 같은 크레인 10여 미터 밑에 다시 50대의 고령 노동자 네 명이 올라가 용역깡패들과 대치하며 ‘김진숙’과 해고노동자들을 지키기 위해 농성 중이다. 조선소 밖으로 쫓겨난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에게 이제 85호 크레인은 ‘희망’의 상징이다. 적어도 그들에게 있어서, 크레인의 농성이 끝나는 날은 삶의 희망이 시작되는 날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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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호 크레인 앞에는 매일 사람들이 와서 손을 흔들며 김진숙 지도위원을 바라본다. 손전등의 불빛으로 그 사람들의 마음에 화답하는 김진숙 지도위원.

나와 친구가 크레인 맞은편 신도브레뉴 상가 앞에 도착했을 때 이미 전쟁은 시작되고 있었다. 새까만 경찰들이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진입을 막아서고 있는 한편, 희망버스와 차단된 한진 조합원들의 농성지로 신도브래뉴 상가 주민 몇이 다가와 시비를 걸고 있었던 것이다. 50대를 즈음해 보이는 한 주민이 언성을 높이며 말한다. “잠 못 자게 뭐하는 거야. 여기 우리 사유지니까 나가요, 빨리!” 그의 손은 상가 영역과 인도를 가로지는 선을 가리키고 있었다. 삶과 죽음이 갈라지는 곳, 부와 빈곤의 고통이 나뉘는 곳이 바로 그곳에 있다. 그들의 손은 희망버스와 크레인 간의 백여 미터 간극만큼 넓고 거대해 보였다. 그래서, 희망버스가 가지 못한 그 백여 미터의 거리는 더욱 뼈아프게 다가왔다. 희망버스로부터 고립된 크레인은 바다에 뜬 작은 섬일지 모른다. 그 작은 섬을 만나기 위해 떠난 것이 ‘희망의 버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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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5월 말이었다.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을 응원하기 위해 ‘희망의 열차’를 타자고 제안된 이 기획은 트위터를 통해 급속도로 전파되며 (그리고 1대의 열차가 17대의 버스로 바뀌며) 6월 11일 총 천여 명의 시민들을 영도조선소에 집결시켰다. 그리고 그 천여 명은 다시 2차와 3차 희망버스에서 만여 명으로 확산되었다. 4월 말에 트위터를 시작한 내게도 희망버스는 어떤 피할 수 없는 호소처럼 다가왔다. 트위터의 타임라인을 열 때마다 희망버스는 내게 말을 걸었고, 정리해고는 우리 모두에게 피할 수 없는 현실처럼 가깝게 다가왔다. 비단 정리해고만이겠는가. 노동의 불안정, 부채에 짓눌린 생활, (성적/군사적) 폭력의 일상성, 그리고 미래가 불투명한 삶의 모든 현실이 누군가로부터 희망의 손길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 희망의 손길에 내가 작은 힘을 보탤 수 있을 것 같았다. 흔히 ‘평범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직장인의 신분으로 내가 희망버스를 탄 이유도 바로 그 느낌 때문이었다. 희망버스는 내게 세상에 말을 걸 수 있는 작은 공간을 열어 준 것이다.

희망버스를 타고 가면서 놀랐던 것은 희망버스에 함께한 많은 이들이 나와 비슷한 감정을 안고 있다는 점이었다. “정리해고가 남의 일만은 아니잖아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사실 별로 없어요. 그냥 저라도 가서 저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자, 이거라도 해야 마음이 편하겠다, 뭐 그런 생각에 왔어요.” “RT밖에 할 수 없어서 너무 미안해요. 이렇게라도 와야 마음이 놓일 것 같네요.” 많은 이들의 시작은 이랬다. 미안함, 죄책감, 공감은 그들이 자신의 작은 힘을 보태고자 하며 던진 표현들이었다. 처음 희망버스에 함께하지 못한 이들도 함께 가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호소하며 다음 희망버스의 새로운 승객이 될 것을 약속했다. 아마도 이 작은 약속, 함께하고자 하는 이 연약한 마음이 만여 명의 사람들을 부산 영도로 모이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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옅은 바람에도 쉬이 꺼질 것 같은 작은 촛불들이지만 이 작은 촛불들이 정리해고의 칼바람을 막아 낼 날이 머지않았을 것이다.

희망버스가 전개되며 85호 크레인의 김진숙을 살려내고자 했던 이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종교적 체험 같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그것을 해방감이라 부르기도 했다. 새벽 내내 울고 웃으며 마치 씻김굿을 하듯 밤을 지새우고 온 그들의 마음을 두드린 것은 ‘위로’였다. 희망버스를 다녀온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위로하러 갔다가 오히려 위로받고 왔다”고 말한다. 내게도 그 경험은 아마 ‘위로’였을 것이다. 내 작은 존재감을 위로해 주는 따뜻한 손길 같은 것이 그 밤 내내 내 몸과 가슴과 얼굴을 보듬어 주었다. 몸을 기울이면 죽음이 보이는 35미터 상공의 크레인이 내 앞에 있다. 그 크레인은 2003년의 기억을 안고 지금 35미터 아래에서 해고의 고통에 저항하는 조합원들을 바라본다.

여러분 우리 조합원들 한번 봐주십시오. 평생 일한 직장에서 아무 잘못 없이 쫓겨난 사람들입니다. …… 저 지친 어깨에 가족들 생계를 걸머지고 밤엔 절망으로 쓰러지고 아침이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희망을 찾아 기를 쓰고 버텨 온 사람들입니다.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가 목숨 던져 지켜낸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나를 버린다 해도 나는 저들을 버릴 수 없는 이유가 백 가지도 넘는 사람들입니다.(김진숙 지도위원의 1차 희망버스 환영 연설문 중에서, 『깔깔깔 희망버스』에 전문이 실림)

1991년 민주노조를 지키려다 타살된 박창수, 2003년 정리해고를 철회시키기 위해 크레인에 올랐다가 목을 맨 김주익, 그리고 김주익의 죽음을 보고 지하 11미터 도크로 몸을 던진 곽재규가 바로 정리해고에 맞서 싸우는 크레인의 울림을 대신한다. 그 목소리에는 170여 명의 해고노동자들의 고통이 담겨 있고, 천여 명 만여 명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다. 어디 이들뿐이겠는가. 해고와 비정규직과 야간노동에 맞서 싸우는 재능교육, 롯데손해보험빌딩, 콜트콜텍, 발레오공조코리아, 유성기업, 전북고속,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목소리도 그 안에 있을 것이다. 철거에 맞서 싸우는 명동 마리, 해군기지 건설로부터 자연과 평화를 지켜내고자 하는 제주 강정마을, 성폭력의 상처로부터 삶과 존엄을 지켜내고자 하는 고려대와 현대차 사내하청기업 성폭력 피해자, 그리고 삶의 거처를 박탈당하지 않기 위해 강제이주에 맞서 싸우는 포이동 주민들의 절규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날의 그 목소리는 그랬다. 나와 내 이웃을 넘어 그 목소리와 공감하고자 하는 수많은 이들의 마음이 바로 그날 85호 크레인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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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배를 접는 한진중공업 조합원 . 2차 희망버스에 온 만 여명의 시민들에게 화답하기 위해 조합원과 그들의 가족이 희망의 종이배가 담긴 엽서를 직접 만들었다.

며칠 전 KBS 「추적 60분」에서 방송한 ‘희망버스 편’에는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회사 밖으로 쫓겨나는 한진 해고노동자들의 모습이 나왔다. 그들 중 한 노동자가 눈물을 흘리며 호소한다. “김진숙을 살려주세요.” 살려달라는 말이 그렇게 내 몸을 사로잡았던 기억이 없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저 크레인 위에 있다. 몸을 돌리면 죽음이 보이는 곳. 그러나 눈을 돌리면 당신 등 뒤에서도 그 경계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희망버스는 부산으로 향했지만, 크레인의 호소는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그 모든 현실로 향한다. 희망버스는 그 목소리를 통해 바로 내 등 뒤에서 내 발목을 붙잡고 있는 어둠과 직면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그것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윤리적 응답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연대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다.

- 편집부 고태경
깔깔깔 희망의 버스 - 10점
깔깔깔 기획단 엮음/후마니타스
2011/08/24 09:00 2011/08/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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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1/08/24 21:09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그린비 2011/08/24 23:25

      위의 글은 김진숙씨를 응원하기 위해 부산에 다녀온 희망의 버스이야기입니다.
      글의 내용과는 다른 맥락의 말씀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