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를 던지다

정경미
그녀가 나에게 모과를 주었네 投我以木瓜
나는 그녀에게 옥돌을 주었네 報之以瓊琚
보답을 하려는 게 아니라 匪報也
그녀랑 친해지고 싶어서 永以爲好也
(『시경』, 「위풍・모과」 衛風・木瓜)

우리는 어떨 때 행복한가. 선물을 받을 때, 그때 나는 세상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느낌으로 충만해진다. 어린 시절 어느 크리스마스날 아침을 기억한다.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 머리맡에 놓여 있던 털실로 짠 양말과 그 양말 속에 들어 있던 예쁜 인형. 까맣고 숱이 많은 속눈썹을 깜짝이며 누우면 눈을 감고 일어서면 눈을 뜨는 그 인형이 얼마나 신기했던지 “얘들아, 산타는 있어, 정말 있다구!” 크리스마스날 하루 종일 나는 흥분해서 동네 골목을 외치고 다녔다.

존재의 기쁨을 일깨우는 선물! 『시경』 「위풍」에 나오는 「모과」는 바로 이 ‘선물’에 관한 시이다. 울퉁불퉁 못생긴 데다 과육이 단단해서 씹기도 힘들고 맛이 시고 떫은, 그래서 그냥 먹기보다 절여서 차를 끓이거나 말려서 약으로 쓰는 모과. 이 특이한 과일을 옛날 사람들은 좋아했나 보다. 연인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전할 때 모과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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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믿는 친구가 있다면, 또 좋은 결과를 얻고 싶다면, 마음과 마음을 함께하고 선물을 교환하며 아울러 그를 종종 방문해야 한다는 것을 너는 잘 알고 있다."  - 마르셀 모스, 「서문」, 『증여론』, 45쪽, 한길사

그녀가 나에게 모과를 주었네/ 나는 그녀에게 옥돌을 주었네/ 보답을 하려는 게 아니라/ 그녀랑 친해지고 싶어서 ……. 부드럽고 달콤한 과일은 여성의 생명력을 상징하고, 단단한 광석은 남성의 생명력을 상징한다. 좋아하는 마음이란 무엇일까. 맛있는 게 있으면 같이 먹고 싶고, 멋진 풍경을 보면 함께 감탄하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내게 소중한 무엇이나 선물하고 싶고, 존재 자체가 서로에게 선물이 되고 싶은 마음. 「모과」는 연인들의 이런 진솔한 마음을 노래한 시다.

이 시에서 재미있는 것은 “선물은 보답이 아니다”(匪報也)라는 구절이다. 그녀가 모과를 준 것에 대해 내가 옥돌을 준 것. 이것은 대가나 보상을 바라는, 계산된 행동이 아니라는 것. 값으로 따지자면 모과보다 옥돌이 훨씬 비싸지만 선물을 어찌 값으로 따질 수 있겠는가. 모과에는 나를 좋아하는 그녀의 온 마음이 담겨 있고, 옥돌에는 그녀를 좋아하는 나의 온 마음이 담겨 있다. 순수한 마음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모과나 옥돌이나 소중하기는 똑같다. 선물은 시장의 교환가치를 넘어서는 순수증여이다. 이 순수증여를 통해 이루어지는 교감의 기쁨이 사랑이다. 『시경』 「위풍」에 나오는 「모과」라는 시는 선물을 주고받는 연인들의 모습을 통해 순수한 사랑의 기쁨을 우리에게 전해 준다.

『시경』이라는 책. 이 노래의 책은 수천 년 전의 사람들이 우리 시대에 던지는 모과가 아닐까. 이 노래들은 부드럽고 달콤하지만은 않다. 거칠고 울퉁불퉁하고 시고 떫고……. 삶이 그런 것처럼, 종잡을 수 없는 온갖 맛과 결과 향이 다 들어 있다. 인생의 희로애락이 절절하게 배어나면서도 그 어떤 감정에도 걸림이 없는 『시경』의 경지를 공자는 ‘사무사’(思無邪)라고 했다. 정말 슬픈 노래는 슬픔에서 벗어나게 하는 힘이 있다. 아, 지금 내가 빠져 있는 슬픔이 나만의 것이 아니구나. 오래전 이 노래를 불렀던 사람도 나와 같은 슬픔을 겪었구나. 이렇게 교감을 하게 되면 나만의 슬픔에서 벗어나 그 슬픔이라는 감정을 통해 다른 존재들을 만나게 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시경』의 이러한 소통의 힘을 공자는 사무사라고 하였다. 「모과」에서 연인들이 주고받는 선물,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않는 이 순수한 선물은 곧 사무사의 정신과도 통한다. 『시경』은 바로 그러한 순수한 선물이기 때문에 수천 년 세월을 흘러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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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푸팬더> 1의 스틸컷,  "어제는 지나버렸고 내일은 알 수 없지만 오늘은 선물이란다. 그래서 현재(선물)라고 한단다."
_ 스트레스로 복숭아를 폭식(!)하던 포에게 우그웨이 사부님이 해주신 말씀. 우리의 현재가 곧 선물이다!

정경미 |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대학에서는 현대 소설을 전공했으나 <수유+너머>의 고전학교에 입교하면서 『논어』, 『시경』, 『사기』 등의 책을 만났다. 현재는 감이당 대중지성에서 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공부, 친구를 사귀고 세상과 소통하는 공부를 새로 시작하고 있다.
시경 - 10점
유교문화연구소 옮김/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11/08/30 09:00 2011/08/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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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늘 2011/08/30 10:53

    포가 스트레스로 복숭아를 폭식하고 있었던 거군요. ^^
    저도 쿵푸팬더에서 저 대사가 맘에 콕 박혔더랍니다.

    • 그린비 2011/08/30 11:09

      용의 전사로 뽑혔지만, 친구들이나 시푸 사부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좌절한 상태였달까요. 밤에 뛰쳐나가 우연히 보이는 복숭아를(평범한 복숭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만...) 잔뜩 먹던 장면과 그런 포에게 해준 우그웨이 사부님이 말이 저도 기억에 남았습니다.
      현재가 선물이라는, 그 의미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