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러시아의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두 시인, 푸슈킨과 레르몬토프의 생애를 살펴보려고 한다. 푸슈킨과 레르몬토프의 생을 살펴보는 작업은 그들의 텍스트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함이다. (창작을 통해 자기와 세계를 새롭게 창조하려 했던) 낭만주의 시인인 그들에게 삶은 곧 하나의 텍스트요, 창작의 재료였기 때문이다. 푸슈킨과 레르몬토프는 러시아 낭만주의 시인이라는 점 외에도 생애 전반에 걸쳐 공통점이 많다. 불행했던 유년시절, 낭만주의 시 창작에서 사실주의 소설의 창작으로 창작 영역을 넓혔다는 점, 비슷한 주제의 정치시를 창작했다는 점, 이른 나이에 결투로 인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 등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경로의 삶을 걸어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애도와 우울증』의 저자 이현우(로쟈)는 이들의 비슷해 보이는 삶과 문학 작품 안에서 차이점을 발견하고자 한다. 바로 상실에 대한 반응태도인 '애도'와 '우울증'이라는 분석틀을 통해서 말이다.

삶, 죽음 그리고 詩

알렉산드르 푸슈킨(1799~1837)의 외증조부는 아프리카 출신의 노예였으나 표트르 대제에 의해 군인이 되었다고 한다. 외조부 역시 표트르 대제를 섬긴 흑인 귀족이었는데, 푸슈킨은 자신의 곱슬머리와 검은 피부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리체이라는 학습원에서 공부를 하던 중 공개 진급 시험에서 자작시를 낭송하여 그 자리에 있었던 당대 최고의 시인 데르자빈에게 재능을 인정받기도 했다. 졸업 후에는 외무부에 근무하였으나 그가 쓴 ‘정치시’와 짧은 풍자시로 인해 남러시아로 추방된다. 추방생활 중에는 영국의 시인 바이런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낭만주의적 색채가 농후한 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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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푸슈킨이 등장하면서부터 문학계가 비로소 독립하게 되었다."
- 루쉰, 「마라시력설」, 『무덤』, <루쉰문고>, 146쪽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푸슈킨의 유명한 시 「삶이 그대를 속일 지라도」는 1825년에 발표되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지 마라, 성내지 마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옴을 믿어라.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오늘은 언제나 슬픈 것―
모든 것은 한 순간에 지나가는 것,
지나간 것은 또다시 그리워지는 것을.
― 푸슈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126쪽, 씨네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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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야는 니콜라이 1세와 스캔들이 있었지만 푸슈킨은 이를 믿지 않았다고 한다.
같은 해 12월에는 데카브리스트 봉기가 일어난다. 데카브리스트는 개혁을 부르짖으며 혁명을 일으킨 청년 장교들을 총칭해서 부르는 말인데, 이를 진압한 황제 니콜라이 1세는 자유주의 운동에 위협을 느끼고 전제정치를 더욱 강화하게 된다. 다음 해, 푸슈킨은 황제의 명으로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왔지만 평생 비밀감시를 받는 처지가 된다. 그리고 모스크바의 한 무도회에서 그의 운명을 바꾼 여성 나탈리야 곤차로바(당시 그녀는 17세)를 만나게 된다. 푸슈킨은 격렬한 구애 끝에 뛰어난 미모로 이름을 날리던 나탈리야와 결혼하고, 다시 관직에 등용되었다.

중편소설 『대위의 딸』은 결혼 이후에 쓰기 시작한 것이다. 1836년에는 잡지 『동시대인』을 발행하고, 이곳에 『대위의 딸』을 발표했다. 그러나 아내의 염문에 대한 익명의 투서를 받게 되고, 자신의 부인에게 계속 관심을 보이는 단테스에게 결투를 신청하게 된다.(단테스는 아내의 여동생과 결혼했기 때문에 푸슈킨과는 동서지간이었다!) 그 결투에서 치명상을 입은 푸슈킨은 이틀 뒤 사망하고 만다.

미하일 레르몬토프(1814~1841)는 모스크바의 귀족 가문 출신이다. 그에게는 ‘요절한 천재 시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세 살 때 어머니를 잃고,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러나 외할머니와 아버지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레르몬토프는 조숙한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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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런에게 나와 똑같은 일이 하나 있다. 그가 스코틀랜드에 있을 때 한 노파가 바이런의 어머니에게 '이 아이는 틀림없이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며 두 번 결혼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내가 카프카스에 있을 때 역시 한 노파가 내 할머니에게 그와 같은 말을 했다. 설령 바이런처럼 불행을 겪는다 하더라도 나는 노파의 말대로 되기를 바란다."

잦은 병치레로 휴양을 다니던 레르몬토프는 1825년에는 외할머니와 함께 카프카스 온천장에 휴양을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첫사랑의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당시 열한 살이었다.) 같은 해 12월, 데카브리스트 봉기가 일어났다. 1828년에는 모스크바국립대학교 부속 귀족기숙학교에 입학하고 이 시기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회화, 음악, 수학에도 비범한 재능을 보였다. 1829년부터 서사시 「악마」의 집필을 시작했으나 죽기 전까지 개작과 퇴고를 거듭하였다. 1832년, 레르몬토프는 모스크바국립대학교를 자퇴하고 기병사관학교에 들어간다. 기병사관학교 졸업 후에는 근위기병연대 소위로 임관하게 된다.

푸슈킨이 단테스와의 결투로 사망한 1837년 1월, 레르몬토프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 「시인의 죽음」을 통해 명성을 얻지만 동시에 체포, 좌천되어 카프카스로 유형을 떠난다.

시인이 죽었다!―명예의 노예―
헛소문과 비방으로 쓰러졌다,
가슴에 복수의 열망과 총알을 박은 채,
당당한 머리를 숙이고 쓰러졌다!
시인의 영혼은 사소한 모욕의
불명예를 참지 못하고,
그는 세상의 소문에 대항하여 일어섰다
혼자서, 예전처럼……그리고 살해당했다!
― 레르몬토프, 「시인의 죽음」중, 『애도와 우울증』에서 재인용, 285쪽

이듬해 레르몬토프는 외할머니와 시인 주코프스키의 탄원으로 사면되고, 페테르부르크에 돌아와 근무를 하며 계속 작품을 썼다. 1841년에는 그의 유일한 소설 『우리 시대의 영웅』이 재판(1200부 인쇄)을 찍기도 했다. 이제 좀 승승장구 하는가 싶었으나 7월 15일, 친구 마르티노프와 벌인 사소한 말다툼으로 결투를 하게 되고, 친구에 의해 생을 마치게 되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물일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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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브루벨(1856~1910), <앉아 있는 악마> _ 브루벨은 레르몬토프의 서사시 「악마」에서 모티브를 따서 이 그림을 그렸다. 앉아 있는 악마의 우울한 표정은 천상의 세계로부터 홀로 버려졌다고 느끼는 레르몬토프의 자아상을 연상케 한다.

작품 속 무의식 읽기, 그리고 우리의 '삶-읽기'

프로이트는 우리들 삶 속에서 순간순간 맞닥뜨리게 되는 '상실'에 대한 반응태도를 '애도'와 '우울증'으로 분류했다. '애도'는 상실의 빈자리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여 상실을 극복해 나가는 것을 말하고, '우울증'은 상실의 빈자리를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우지 못한 채 스스로 분열하거나 세상과 불화하는 것을 말한다. 『애도와 우울증』의 저자 이현우에 따르면 푸슈킨과 레르몬토프는 각각 '애도적 시인'과 '우울증적 시인'으로 분류된다. 푸슈킨과 레르몬토프 모두 유년시절 '상실'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경험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반응은 각각 달랐다. 푸슈킨의 경우, 유년시절의 상실을 귀족학교인 리체이 시절을 통해 대체하면서 '애도'를 주된 정조로 하는 창작세계를 형성했다. 반면 레르몬토프의 경우, 유년시절의 상실을 그 무엇으로도 회복하지 못한 채 우울증적인 창작세계를 형성한다.

푸슈킨의 애도와 레르몬토프의 우울증. 이것은 텍스트의 무의식에서도 고스란히 발견된다. 일례로 푸슈킨은 데카브리스트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를 창작했지만, 그의 텍스트적 무의식 안에는 '데카브리스트들처럼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마음이 숨겨져 있다. 레르몬토프는 이별을 노래한 시에서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라고 말했지만, 그 이면에는 '나는 너를 못 잊는다, 너도 날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는 우울증적인 목소리가 숨겨져 있다.

저자가 이와 같이 텍스트의 무의식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무의식’이라는 것은 우리의 의식 아래에 억압되어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또한 언제라도 우리의 눈앞에 다른 형태의 징후로서 나타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문학 텍스트가 일상을 살아가는 주체의 삶을 반영하는 것인 한, 텍스트 역시 형식적 구조 아래 억압된 무의식을 갖게 마련일 것이다. 이러한 텍스트 읽기법은 비단 러시아 낭만주의 문학에만 유효한 것은 아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애도와 우울증’은 낭만주의 시인, 작가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정서적 태도이다. 우리들 삶 속에서도 ‘상실’은 언제나 마주하게 되는 사건이며, 그 사건들 속에서 미처 언어화되지 못한 채 억압된 무의식들은 지금도 계속해서 생성되고 있다. 그럼에도 표층적으로 드러나는 사건과 의미들만을 의식하며 살아간다면, 언젠가 ‘유령처럼’ 귀환하는 무의식의 징후들에 놀라 당황하거나 그 심오한 의미들을 놓치고 가게 될 수도 있다. 우리도 (꿈이나 행동을 통해서 드러나는) 자신의 잠재적 무의식의 존재와 의미를 알게 되고, 깜짝 놀라게 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그건 어쩌면 그동안 우리가 보지 못했던 '삶의 또 다른 진실'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무의식, 내 안의 또 다른 목소리…… 이것은 불편하지만 언젠가는 마주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숨겨져 있던 삶의 또 다른 진실을 맞닥뜨리는 것에 대해 언제든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책 『애도와 우울증』은 푸슈킨과 레르몬토프의 작품을 이해하는 것, 러시아 낭만주의 문학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의식 아래 억압된 의미들을 불러냄으로써 우리들의 삶-읽기 또한 풍부화시켜 줄 것이다. 문학을 읽는 것은 곧 삶을 읽는 것이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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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와 우울증』에 관해

우리에게 ‘로쟈’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인터넷 서평꾼 이현우. ‘책에 대해서는 로쟈에게 물어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그의 블로그는 매일매일 책에 관한 전문적이면서도 대중적인 논평들로 넘쳐나고 있다. 책에 대한 그의 관심은 문학․철학․정치 등 분야를 막론하고 다방면으로 뻗어 있는데, 이러한 왕성한 호기심과 열정으로 인해 그가 러시아 문학자라는 사실을 기억해 내기란 쉽지가 않다. 그는 서울대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러시아 문학 전문가로서, 그간 관련 글과 강의들을 통해 러시아 문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었다. 이 책 『애도와 우울증』은 러시아 문학 연구자로서 로쟈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첫 저서로, 그의 ‘전공’인 러시아 낭만주의에 관한 것이다. ‘이제 러시아 낭만주의 문학에 대해서 로쟈가 답한다!’

이 책은 ‘애도와 우울증’이라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개념을 도입하여 러시아 낭만주의 시대를 관통했던 두 시인, 푸슈킨과 레르몬토프의 서정시를 분석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이들의 텍스트 안에 숨겨진 ‘무의식’으로, 이들의 생애 전반(특히 유년의 오이디푸스기)과 작품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그 무의식을 밝혀내고자 한다. 저자는 그동안 ‘러시아 낭만주의 시인’이라는 한 범주로 묶여 인식되었던 두 시인을 각각 ‘애도적 유형’, ‘우울증적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이들에게 러시아 근대문학의 각기 다른 기원으로서 새로운 자리를 찾아 주고자 한다. 또한 이 책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뿐 아니라 저자가 평소 관심을 가져왔던 라캉, 지젝 등의 이론을 끌어와 논의를 더욱 풍부화하고 있으며, 러시아 문학뿐 아니라 일반적인 문학 연구의 방법론으로서도 유의미한 틀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문학․역사․정치학․예술 등 ‘현대 러시아 문화’를 다각적으로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하려는 시도로서 그린비출판사에서 새롭게 기획한 <슬라비카 총서>의 두번째 권이다(1권 『러시아 문화사 강의』도 함께 출간될 예정이다). 그간 우리가 ‘러시아’ 하면 떠올리던 것들은 100여 년 전의 과거의 이미지, 소비에트 연방 시절의 낙후한 이미지이거나 서구의 시선과 감수성을 투과해 전해져 온 것들이 상당수로, 잘 다듬어진 상품으로서 소비되는 경향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슬라비카 총서>는 러시아 문화와 관련된 담론을 전문가 영역 안으로만 한정시키거나, 하나의 상품으로서 소비하는 것을 넘어서서, 러시아 문화에 대한 총체적인 앎에 다가갈 수 있도록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애도와 우울증 - 10점
이현우 지음/그린비
2011/08/31 09:00 2011/08/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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