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와 우울증』 편집후기

낭만주의 문학, 솔직히 좀 서먹하긴 했어요

(문학운동, 예술운동으로서의) ‘낭만주의’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설레는 무언가가 있지만, 그 문학을 실제 제 삶에서 향유하기에는 저와 낭만주의 문학 사이에 보이지 않는 ‘장벽’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간 문학을 접할 때 ‘사실주의 문학’이라는 범주를 딱 잘라 접해온 것은 아니지만, 사실 저에게 영향을 주었던 많은 문학들이 사실주의 이후의 문학들이었고, 그 퍽퍽한 감성에 길들여 온 저로서는 낭만주의의 ‘넘치는 파토스’를 받아들이기가 좀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아니 가감 없이 말하자면, 낭만주의 시들은 솔직히 좀 과잉된 것 같았습니다. 그 안에 흐르는 정서 같은 것도 그렇고, 과장된 듯한 문체도 그렇고요. 문학작품을 바라보고 평가할 때, 현재의 잣대에 기대어 보면 안 된다는 걸 끊임없이 상기시켜 본다 한들, 낭만주의 문학이 내 삶에 확 꽂히게 할 순 없었습니다. 어찌어찌 ‘취향’의 문제로 돌리긴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제대로 읽어 본 적도 없으면서 유명한 몇몇 시에 대한 인상만으로, 낭만주의 시 특유의 문체에 대한 주관적인 느낌만으로 판단해 왔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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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야 레핀, <수중왕국의 사드코> _ 우리 마음 속에는 의식과 무의식이 항상 함께 움직이는데, '무의식'의 층 또는 부분에 사람의 지성이 접근하면 다양한 의미에서의 시적(詩的) 표현이 탄생하게 된다.

제가 낭만주의 문학을 ‘제 삶의 텍스트’로 즐길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낭만주의 문학을 창작하고 향유하던 이들이 현재의 우리와는 좀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나와는 분명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생각했을 것이다’라는 선입견이 작동하면서, 격정적인 어조로 사랑을 말하고, 혁명을 말하는 목소리에 감정이입이 잘 안 되었던 것일지도 모르죠. ‘어딘지 모르게 과잉된 느낌이 나와는 잘 안 맞는 것 같아, 그들이 느꼈던 것은 분명 나와는 달랐을 것 같아’라는 주관적 느낌들이 맞물리면서, 낭만주의 문학과의 인연은 그렇게 점점 멀어졌던 것 같습니다.

아 참, 이 원고를 처음 받았을 때 느낌을 물으셨지요? 빙빙 에둘러 말하기만 했네요. 만나서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 보지도 않고, 주관적인 느낌만으로 멀리했던 친구를 다시 만나는 기분이었다고 하면, 답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감추어진 의미들, 속사정을 읽으니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더라고요

이 책 『애도와 우울증』을 통해 푸슈킨과 레르몬토프가 살아온 궤적을 함께 밟아 가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제가 살아왔던 방식, 사건을 느끼는 방식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살아온 궤적을 함께 밟았다’라는 건 단순히 언제 태어났고, 언제 무슨 일이 있었고, 언제 무슨 작품을 창작했는지 연보 식으로 읽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특정 사건 이후 어떤 심적 변화를 겪었는지, 그게 작품에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에 주목한 것이었습니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시에서 푸슈킨과 레르몬토프가 이렇게 다른 태도와 문체를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푸슈킨과 레르몬토프의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 내는 요인은 무엇이었을까(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만, 삶에서 상실을 맞닥뜨렸을 때 푸슈킨은 ‘애도’라는 반응태도를 보이고, 레르몬토프는 ‘우울증’이라는 반응태도를 보이는데, 이게 두 시인이 결정적 차이를 가지게 되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문제의식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게 또 저의 고민이자 삶의 문제가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 삶의 ‘방식(형식)’은 무엇일까, 그 형식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져 온 것일까, 나는 삶에서 맞닥뜨리는 ‘상실’을 애도하는 편인가, 한없이 우울증에 빠지는 편인가. 어떤 때는 그 질문들이 자꾸만 저를 걸고 넘어져서 교정을 보고 있기가 힘들 지경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내가 무언가를 너무 쉽게 애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 때문에, 다른 한편으로는 ‘어서 털어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우울증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제자리만 맴맴 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아무튼 이런 애로사항들을 제외하면, 저에게는 참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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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 레핀이 그린 푸슈킨의 결투 장면.
"낭만주의 시인의 과제는 자기 자신의 문학적 생애를 창작을 통해서 기술해 나가는 것에 있었다. 그의 삶은 창작에 바쳐진 질료이면서 동시에 그의 창작이 궁극적으로 그려 내야 할 형상이기도 하다." (이현우, 『애도와 우울증』, 33쪽)

텍스트의 무의식, 푸슈킨과 레르몬토프 자신들도 모르지 않았을까요?

이 책을 편집하면서 가장 놀라우면서도 짜릿했던 순간은, 텍스트 표층의 의미와 무의식이 정반대로 어긋나는 순간들을 발견했을 때였습니다. 초반부에 조금 어렵고 딱딱한 부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텍스트의 의식과 무의식이 어긋나는 것을 보여 주는 순간, ‘이걸 읽어 내기 위한 선행작업이었구나’ 하면서 의문들이 풀리게 되더라고요.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데카브리스트들(12월 혁명의 주역)과 강한 연대감을 드러내는 시인 줄로만 알았던 푸슈킨의 「아리온」에서, 푸슈킨이 사실은 데카브리스트들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는 걸, 데카브리스트처럼 자신도 죽게 될까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걸, 오히려 자신을 끊임없이 감시하려 했던 니콜라이 1세와 더 가까운 거리를 두고 있었다는 걸 밝혀내는 순간이었습니다. 정치적 죽음을 맞이하게 될까 두려워하는 동시에 ‘정치적 변절’이라는 평가를 두려워하는 푸슈킨의 양가적 심정이 드러나는 순간, 푸슈킨에 대한 저의 공감도 함께 높아지는 걸 느꼈습니다.

여태까지 이 시를 읽어 왔던 사람들도 그렇고, 그 자신도 그 안에 그런 무의식이 있었다는 걸 모르고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사실 그 당시는 ‘무의식’이라는 개념이 고안되기도 전이었기도 하고요. 표층적으로 드러난 의미만을 해석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문학이 이전과는 다른 의미에서 ‘생명력’을 얻기 위해서는 앞으로 텍스트의 ‘무의식’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 그들이 말하지 못했던, 들을 수 없었던 많은 메시지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올 것 같습니다.

푸슈킨과 레르몬토프, 갠적으로는…….

평소 러시아 문학에 관심을 가지셨던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두 시인 다 매력적인 분들입니다. 어느 한 사람 딱 골라서 누가 더 마음에 든다고 말하기가 참 어렵지 말입니다. 푸슈킨의 경우에는 당대 최고의 시인일 뿐 아니라 러시아의 ‘문화적 신화’, ‘러시아 근대문학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한 문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적으로도 아주 매력적인 사람이었나 봅니다. 사랑에 대한 시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푸슈킨은 ‘연애의 달인’ 중의 달인, 카사노바도 울고 갈 만큼 연애편력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레르몬토프는 또 어떻고요. 그에게는 늘 ‘천재시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닐 정도로 문학적 재능이 아주 풍부했고요, 그의 작품 속에 그려진 ‘반항아’ 이미지로 유추해 보건대 뭇 여성들의 애간장을 많이도 녹였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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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르몬토프의 어린 시절 모습

푸슈킨, 레르몬토프에 대한 저의 감정을 잠깐 말씀드리면(두 분의 외모가 저의 갠적인 판단에 어....어떤 영향력도 미...미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혀 둡니다;;;), 사실 저는 레르몬토프에 좀더 공감했던 것 같습니다. ‘아니야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라는 절규 속에 ‘너를 절대 못 잊어’라는 메시지를 담아 보내는 이 어린 영혼이 저에게는 좀더 인간적으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이에 반해 푸슈킨은 ‘나는 너를 정말 사랑했지. 그치만 지금 우리의 마음은 변했으니 부디 다른 사람 만나서 잘 살길 바란다’라고 쿨하게 보내는 시를 많이 썼습니다. 한 문학평론가는 이런 푸슈킨 시의 유형을 ‘ILY[I Loved You]’라고 이름 짓기도 했습니다. 쏘쿨한 푸슈킨-_-). 자유가 상실된 상황을 쿨하게 애도하는 푸슈킨보다는 괴로워하고 분노하는 레르몬토프에 더 감정이입이 되기도 했고요. 이건 뭐 기존의 문학적 평가나 이 책 안에서의 평가와는 다르게, 그야말로 제 ‘갠적’인 느낌이니, 너무 깊게 생각하지는 마시어요. 호호.

이제 시를 읽을 때나, 소설을 읽을 때나 그냥 넘어가기가 힘들어요...

‘애도와 우울증’으로 텍스트 분석 작업을 한번 따라가고 나니, 무심결에 텍스트를 읽을 때 창작의 주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습관이 생긴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는 책장에 꽂혀 있던 소설책들을 하나씩 꺼내 이 인물은 애도적 유형일까, 우울증적 유형일까 생각해 볼 정도였으니까요. 사실 뭐 좀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 배우면 그것 가지고 모든 걸 다 해석하려 한다고는 하지만, 한동안 텍스트 무의식에 집착(!)하는 것에서 헤어 나오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뿐인가요, ‘제 무의식을 들여다보는 작업’, ‘나는 애도적 유형인가, 우울증적 유형인가를 생각하는 작업’도 한동안은 계속될 것 같습니다. 삶의 표면적인 방식에만 너무 관심을 쏟다 보니, 제 삶의 방식을 떠받치고 있는 것들에 무신경했던 것은 아닌가, 요즘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말하지 못한 것들, 말할 수 없었던 것들, 나조차도 모르게 꽁꽁 감추어 놓았던 것들, 이런 것들을 잘 살펴볼 수 있을 때, 제 삶의 텍스트도 좀더 풍성해 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봅니다.

지금까지 학교 다닐 때 문학을 전공했으나, 낭만주의 문학과는 어쩐지 서먹했던, 『애도와 우울증』 편집자의 논픽션 심경 고백이었습니다.

- 편집부 김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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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브루벨, <여섯 날개의 세라핌>

나는 손으로 만들지 않은 기념비를 세웠노라

                                                                      알렉산드르 푸슈킨

나는 손으로 만들지 않은 기념비를 세웠노라,
그리로 가는 민중의 오솔길에는 잡초가 자랄 틈이 없고,
기념비는 알렉산드르의 기념탑보다도 더 높이
머리를 치켜들고 솟아올라 있다.

아니다, 나는 아주 죽지 않으리라─영혼은 신성한 리라 속에서
나의 유골보다도 더 오래 살아남아 썩지 않으리라─
그리고 나는 영광을 얻으리라, 이 지상에
단 한 명의 시인이라도 살아남아 있는 한.

나의 명성은 위대한 러시아 전역에 퍼져 가리라,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민족이 그들의 언어로 나를 부르리라,
자랑스러운 슬라브족의 자손과 핀족, 지금은 야만적인
퉁구스족, 그리고 초원의 친구인 칼미크족까지.

그리고 오랫동안 나는 민중의 사랑을 받으리라,
내가 리라로 선령한 감정을 일깨우고,
이 가혹한 시대에 자유를 찬양하고,
쓰러진 자들에게 자비를 호소했으므로.

오 뮤즈여, 신의 뜻에 따르라,
모욕을 두려워하지 말고, 왕관을 바라지 말 것이며,
칭찬과 비방을 무심하게 받아들이고,
어리석은 자들과는 다투지 말지어다.
[1836]

애도와 우울증 - 10점
이현우 지음/그린비
2011/09/06 09:00 2011/09/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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