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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편집자에게 편집 후기를 쓰라는 일은 조금은 곤혹스러운 일이다. 편집자들은 책을 만드는 동안 매 순간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를 ‘통해’ ‘자신의’ 의도와 기분을 ‘전달’할 뿐이지,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 오죽하면 “편집자는 오직 책으로 말할 뿐”이라는 표어(?)가 있겠는가. 신문사와 서점에 보내는 신간 배포자료를 쓰는 것으로 이미 편집자의 말은 끝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초의 독자’로서 『에도의 몸을 열다』를 읽으며 무엇을 떠올렸는지, 책 바깥으로 나와 접속해 봄직도 하다. 

편집을 시작하기 전에, 어떻게 책을 만들지 느낌을 잡으려고 원고를 일독하면서 나는 정민 교수의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을 떠올렸다. 이 책뿐 아니라 작년 한해, 18세기 조선에 관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분명 ‘우리 역사’를 알고 싶다는 국지적 분위기에 힘입은 바가 크지만, 한편으로는 문화사에서 18세기가 차지한 무게를 간과할 수 없는 현상이다.

18세기는 ‘새로운 지식’의 발견 시대였다. 꽉 막힌 유교 사회에서 중국을 통해 들어온 서구의 과학문명은 조선의 젊은 지식인들을 들쑤셨다. 정보 처리 방식과 정보의 유용성에 대한 판단 근거가 바뀌었다. 물적 토대의 변화도 한몫했다.
한마디로 하면, 자기 좋아하는 것에 미쳐 돈을 쓸 만한 경제력이 생겼다. 이에 힘입어 전에 보지 못한 괴상한 지식인들이 출현했다. 그들은 누구인가? 무엇에 미쳤던가? 이들을 들여다봄으로써 지금 우리 사회에 나타난 변화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정민,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

한쪽엔 조선 왕조와 한양이 있다. 또 다른 한편에는 도쿠가와 바쿠후와 에도가 있다. 등을 돌린 채 각자의 길을 걷던 아시아의 이란성 쌍둥이. 조선은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폐쇄적인 보안 사회(당시 비변사와 포도청은 20세기 후반 중앙정보부 못지않게 이데올로기 감찰기관 역할을 했다)로서 체제 안정과 경제 회복에 심혈을 기울였고, 대륙 진출이 봉쇄된 일본 역시 도쿠가와 바쿠후의 치세 아래 제법 안정기를 구가했다. 전쟁 이후 이후 두 나라의 외교는 왜관과 조선통신사를 통한 국지적 혹은 일시적인 형태로밖에 이루어지지 않았고, 조선은 청을 통해, 일본은 네덜란드를 통해 서양 문물을 접한다. 그리고 한쪽은 실학, 다른 한쪽은 난학을 발전시킨다.

18세기 백탑파를 비롯한 한양의 지식인들이 천문학이나 농업(원예학) 등 실질적인 지식뿐 아니라 담배, 벼루, 등산 같은 개인적인 취미를 키우는 데 열광했듯이(정민, 『미쳐야 미친다』; 안대회, 『조선의 프로페셔널』), 에도에도 정제된 도(道)가 아니라 지금-여기의 지식을 추구하는 여러 그룹이 생겨난다. 그 가운데 난학 열풍이 있었다. 난학 취미가 어찌나 유별났는지 ‘난벽(蘭癖) 영주’란 별명을 가진 사람이 나오고, 수시로 네덜란드상관을 찾아가 서양 문물에 대한 지식을 모조리 흡수하고, 그것을 백과사전으로 펴내는 사람도 나온다.

이런 현상이 일시적인 이국 취미의 유행일 뿐이라 믿을 사람은 없으리라. 지식(문화)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공간과 맥락이 달라지면, 지식의 내용이던, 형태든 달라지고 만다. 이 책이 보여주는 것은 해부학에 관한 일본인들의 열광이 아니다(그 내용은 책 소개글이나 책을 직접 보시길).

문화접변acculturation이란 흔히들 말하지만, 쉽게 이해되는 개념은 아니다. 거기에는 인과 관계를 따질 수 없는 혼란이 있기 때문이다. 그 확정할 수 없는 문화의 세밀한 결을, 타이먼 스크리치라는 미술사학도, 20세기 후반에 이미 서구화된 일본 사회에 유학 온 외국인은 현재 일본도 아니고 200년 전 에도라는 특수한 사회를 자기가 아는 지식의 틀, 즉 도상학 안에서 다양한 장르의 도판과 문헌을 통해 순차적으로 읽어간다. 서양 가위에 대한 열광이 통일국가 일본에 미친 국가관을 형성해 가는 과정을 좇아 에도 문화의 몸통 혹은 무의식을 파헤친다. 그리고 여기에 『에도의 몸을 열다』의 매력이 있다. 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과거, 드러나지 않은 무의식을 추적해 보면 어떨까? 또 어떤 흥미진진한 면이 열릴지, 궁금하고 기대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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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의 몸을 열다
타이먼 스크리치 지음, 박경희 옮김 | 도서출판 그린비 | 갈래 : 인문, 역사

발행일 : 2008년 1월 15일 | ISBN : 978-89-7682-502-5
신국판 변형(149X220mm)| 4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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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2 11:03 2008/01/22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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